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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02 18:28
친일파의 개념에 일본유학자도 포함되는 개념인가요? 당시 시대상황으로 인해 머리좋은 인물들이 일본유학을 가는건 당연했겠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친일파로 규정하지는 않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15/04/02 18:32
단순한 일본유학자가 아니라 유학을 다녀와서 조선의 고위직에 재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상정해 본 것입니다. 이들은 친일성향이지 않았을까요. 일본을 위해 살도록 교육을 받고 사상을 주입받았을텐데요.
15/04/02 18:37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친일파 인사를 써야했겠지만 이승만처럼 편법적인 방법으로 친일파를 옹호하지 않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서 했다면 지금 나타나는 뿌리부터 친일파인 사람들은 훨씬 적었을꺼 같습니다.
15/04/02 18:38
일단 이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친일청산은 논외로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세력에 지배 받았고 더구나 같은 민족이긴 합니다만, 현재 적국이라는 이유때문에 얼척없는 물타기가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북한이 친일청산을 했던 안했던 상관없이 우리의 친일청산은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에 논의의 주요쟁점으로 부각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우리의 친일청산에 대해서는 저도 모든 친일을 다 처벌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근 40년이면 사회생활의 시작과 끝을 일제치하에서 보내야만 했던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우리의 친일청산이 미흡하다고 평가할수 밖에 없는 것은 적극적으로 친일행적을 했던, 노덕술 등으로 대표되는 악덕 친일파가 이승만에 의해 애국자로 탈바꿈 되었다는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친일파를 처벌한 것이 미흡한 수준을 넘어 그들을 지도층으로 추대했으니 이 나라에 정의란 존재하기 어렵게 된 것이죠.
15/04/02 18:43
노덕술 같은 사람은 정말... 문제가 심각하죠. 그런데 사람이 단면적이지 않기 때문에, 한 면에서는 옳지만 다른 면에선 옳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15/04/02 19:03
공과 과가 양립하는 인물의 경우, 원리원칙대로라면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했어야 하겠죠. (이는 처벌은 과오만 따져 행적에 걸맞는 처벌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는데 여기에 쟁점이 되는 부분이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그들이 없었다면 건국 후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었느냐는 점이고, 둘째는 그들의 공적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쟁점에서도 친일청산이 이루어져야 했다고 보는 데, 그들이 없더라도 국가 발전은 가능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지식인이 친일파에만 존재했던 것도 아니고 독립운동가 중에도 지식인은 많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해방 후 공적이 있다 하더라도 과오는 과오대로 처벌 받는 것이 옳습니다. 이런 인물로 어렸을 때 제 모교(고교)의 재단 설립자였던 김활란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여성교육발전에 큰 공이 있다 하더라도 그녀의 친일 행위는 처벌을 받았어야 했죠. 공적을 고려하여 처벌 수위가 솜방망이 수준이 되었다 치더라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었을거라 봅니다.
하지만 이런 논의, 글쓴분께서 생각하시는 '친일 청산이 가능했는가?'에 대한 고민은 의미없는 행위가 되어버렸습니다. 노덕술도 죄를 묻지 않는 판국에 어느 누구를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정의감 없던 건국 세력과, 정치 놀음으로 이데올로기를 악용하던 세력 덕분에 친일 청산은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죠. 애당초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그라운드가 마련된 셈입니다. '친일세력이 없었다면 건국과 국가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친일세력이 건국세력이 되고 애국세력이 되어, 이미 그들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나라가 만들어졌으니까요.
15/04/02 18:41
딜레마(?)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해방 초기는 공산주의가 대세였고, 그러다보니 미 군정이나 우파 정치인들의 경우 구 친일세력이라도 끌어안을 수 밖에 없었겠죠. 때문에 적극적인 행동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거기에 6.25까지 터지면서 극단적인 반공을 취할 수 밖에 없게 되었으니...비극적이지만, 다른 길이 있었을까 싶은 생각을 하긴 합니다. 지금이야 민주적인 무언가나 국민의 무언가를 말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왕정과 식민지배만 알았던 사람들이었고...
15/04/02 18:45
역만없이라고 넘어가기에는 정말 진지하게 다시 고찰해 볼 사안이라 생각합니다 진지한 학문적 고찰이 부실하기는 하지만 저는 일단 후노우즈 님 의견에 역간 회의적입니다 당장 이육사 윤동주 같은 저항시인들을 보더라도 그 당시 일제 부역 지식인들의 결정은 자의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15/04/02 18:47
적어도 고급공무원, 적극적 부역자, 작위를 받은 귀족가문에 대해선 철저하게 청산을 했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문제였죠. 오히려 그들이 이승만정권을 창출하면서 계승되어버렸습니다.
15/04/02 18:47
다른나라와 비교하기 참 애매한 문제죠...
인도나, 동남아시아 국가들,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은 짧게는 100년, 길게는 수백년에 걸쳐서 식민지였기 때문에, 피도 섞이고, 언어도 바뀌고, 문화도 완전히 바뀌어버린 상태라 논외. (아마도 일본이 원했던게 이거였겠죠? 창씨개명이라던지 문화말살정책 같은거요...) 그렇다고 해서, 2차대전때의 유럽국가들하고 비교하자니(프랑스같은) 그 기간이 너무 짧아서 논외. 일제강점기 30년...은 딱 한 세대정도의 기간인지라... 참..
15/04/02 18:58
일제 강점기가 30여년이었던 것도 크지만,
당시 우리사회에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고, 민주주의를 대신하여 사회를 이끌어나갈 사회지도층도 없었죠. 유럽과의 비교는 정말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15/04/02 18:49
기간을 떠나서 이승만이 집권하는 순간 불가능했을거라 봅니다. 독립운동 세력이 해방 대한민국의 주권을 잡았다면 가능했을건데.. 이승만이라는 뜬금포가 미국을 등에 업고 대한민국을 접수해버리는 순간 이승만은 국내 지지기반이 없었으므로 유능한 기반을 만들 수 밖에 없었죠 필연적으로..
그래서 좋은놈이든 나쁜놈이든 최근까지 요직에서 일했던 친일파들 등용했구요.
15/04/02 18:49
뭐든 정도가 문제지요
어떤 이유에서든 일제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인물은 당연히 처단되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이지 않았더라고 당시 지도급 인사들은 해방된 나라에서 적어도 숨어사는 분위기까지는 만들었어야죠 "적극적"이라든가 "지도급"의 정도가 문제인데..... 이승만은 관련해서 치열한 고민이 없었습니다 여러 행적을 봐도 권력에 눈이 멀었던 거죠 현재 친일관련 연구결과 나 친일인사 사전등의 인물은 백번 양보해서 "민족의 역적"입니다 최소한 그들은 처단해야죠
15/04/02 18:50
현실적으로 당시 한국 상황상 이승만 집권 이후 친일파 청산이 불가능했던 것은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15/04/02 18:52
당시 미군정 시각에서 보자면 한국에서 써먹을만한 지식인은 크게 두 부류였죠.
친일파/공산주의자...민족주의자는 말그대로 한줌이구요. (단체만 만들면 좌익이 아래부터 먹어버리는...) 거슬러 올라가서 따지자면 서방이 일본이랑 편먹고 조선을 버렸기때문이지만...어쨌건 당시 시점에서는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선택지가 없지 싶습니다. 미국이 한반도 공산화를 용인하는 게 아닌 이상 말이죠.
15/04/02 22:27
미국입장에서보니 보다 명확해 지는군요.
친일파냐 공산주의자냐의 선택이라면 미국은 당연히 친일파겠죠. 그렇다고 당시 해방된 조선이 스스로의 역량으로 국가를 세우는 것은 무리였을 거구요. 하고자 했어도 주변에서 그냥 안 뒀을 겁니다. 더더욱 그 냉전시기에 말이죠.
15/04/02 18:54
6.25때 친일파를 완전 배제했으면 우리나라가 남아있을까 싶습니다.
프랑스의 부역자 숙청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대입하긴 힘들죠. 개인적으론 6.25가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친일파.. 김일성 형인 김영주가 친일파로 분류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15/04/02 19:05
개인적으로도 결국 6.25가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야 아무것도 모를때니 청산이 어려웠어도 점차 그들이 필수적이지는 않게 될테니...허나 6.25로 반공이 더 시급해지고 그렇게 몇 십년이 흐르면서 유야무야 되버린게 아닌가 싶네요. 뭐 남북분단 자체가 냉전의 산물이긴 하지만...
15/04/02 21:34
근현대사를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김일성이 개아들(....)이라는 걸 알게 되죠.
6.25가 없었으면 직선제 개헌도 이뤄지지 않았을테고 내각제 상황에서 당시 한민당과 척을 졌던 이승만이 2대 당선될 일은 더더욱 없었겠죠.
15/04/02 18:55
적극적 친일과 소극적 친일은 구분해야겠죠.
단순히 일제에 부역했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없을 겁니다. 창씨개명도 흔한 일이었구요. 다만 구한말 정부에 일본과 합병을 청원하고 애국단체공격한 일진회와 이권팔아먹고 국가까지 팔아먹은후 일부는 일제작위받은 대신들, 일제시대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잡아다 고문하고 죽음까지 이르게한 고등경찰, 중일전쟁 태평양전쟁기에 남자는 천황의 군대에 입대하자고, 여자는 자위대에 들어가자고 적극적으로 글써대고 지시내린 지식인들, 고위층들정도는 악질이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요? 그들의 많은 수가 여전히 대한민국정부수립후에 우리사회 권력층으로 남았고 재물을 취했으며 아직도 여기저기에 동상도 세워져있는 상황정도는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지않았을까요? 그정도 사람들도 없어서 나라가 안굴러갔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안 쳐냈을 뿐이지요.
15/04/02 18:58
완전한 친일파 청산이야 불가능했다는데 대부분 동의하시는 것 같으니 넘어가고,
친일파 청산에 있어서 중요한 건 결국 '친일을 하면 처벌받는다.'라는 인식을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어도 조선-대한민국을 잇는 선상에서 국가와 국민에 해를 끼치는 자는 반드시 불이익을 준다는 의지의 표시가 있어야만이 보통의 약한 사람들이 친일 같은 기회주의적 행위에 기우는 것을 막는 예방이 되겠죠. 때문에 악질적인 경찰이나 제국군 수뇌부 등 국민들에게 친일의 상징이 되는 자들은 반드시 처리하고 넘어갔어야 하고, 이러한 자 수십명을 처리하는 데는 그다지 치안과 행정의 공백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지도 않기에 새로운 해방 정부의 수반이라면 미국의 협조를 얻어서 해냈어야 하는 일이죠. 어떤 사람들이 떠받드는 국부께서는 본인의 권력 말고 이런 사소한 일에는 관심도 없으셨던 모양이지만.
15/04/02 19:02
없죠. 단적으로 얘기해서, 이 게시판에 오는 분들 중에 35세 이상자가 몇명이나 될까요.
태어나니 일제시대라 평생을 일본식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고위직에 있었으니 악질이다 라는 건.. 그냥 재산과 능력이 있으니 악질이다와 다르지 않고 북한에서는 마침 공산혁명에서 타도할 자본가=친일파였으니 숙청이 된거죠.
15/04/02 22:54
사실 노덕술씨 같은 정도의 양반들이라도 '털어내는 시늉'정도는 할 수 있었다고 보는데, 그마저 못한 부분은 아쉬운 일이죠.
북한하고 '비교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절대평가상 낙제점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북한하고는 애초에 비교할 필요도 없을것으로 사려됩니다.
15/04/02 19:08
북한얘기가 나와서 쓰는데. 북한도 친일파 척결 그렇게 잘된건 아닌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피지알에서 관련글도 본적이있네요 눈시님이셨는지 다른분이셨는지 아무튼 역사관련해서 좋은글 적어주시던 분의 글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15/04/02 19:12
좀 다른얘기긴 한데,
독립운동에 힘좀 쏟았던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고 싸우는데 친일파 청산이 될리가 없죠. 생각해보면 상해 20년대 임정때부터 서로 물어뜯던 사람들인데 광복하면 더하면 더했지 달라질리가... 정말 실제 생활에서도 느끼고 역사책을 봐도 느끼는 거지만 여러명이 목소리를 내면 일처리가 도저히 진행이 되질 않습니다. 누군가 한명이 총대매고 나서야 되는데 보통 그게 독재로 이어지죠. 북한은 김일성, 우리는 이승만이고 친일파들은 개2득.
15/04/02 19:14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로서 적극적 친일부역자=자본가였던 관계로 어부지리로 처리했던 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군청, 경찰 이런 사람을 친일파라고 매도하고 처벌하는 것은 어부성설이고 걔중에서도 적극적으로 친일부역을 했던 노덕술이니 이광수같이 민족반역자들은 처벌했어야했죠. 그러려고 반민특위를 만들었던 것이고 반민특위에서 검거했던 명단이 그런 사람들이였고요. 결론은 이승만 개XX입니다.
15/04/02 19:17
생각해보니 친일파 제거 하자고 하던 정치인이 얼마나 있었나요?
여태 그걸 생각을 안해봤는데, 딱히 생각나는 당대 주류 정치인이 없네요. 이승만 같은 경우가 적극적으로 옹호해서 문제가 될지 언정, 다른 정치인들도 그냥저냥 넘어가려고 한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정치인들이 그렇게 소극적인 상황이라면 아무리 민중이 분노해도 처리가 안됬을거 같네요. 거기다가 6.25로 '그래도 빨갱이보단 친일파가 낫네'가 되버리니깐요.
15/04/02 19:21
당시에 제헌국회에서 반민특위를 구성하여 친일파를 잡아들이고 조사를 했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이른 바 6월공세라 불리는 국회 프락치 사건과, 경찰을 동원한 반민특위 습격(...)으로 힘을 잃고 유야무야 되어버리죠.
15/04/02 19:21
100% 청산이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어느정도의 청산과정은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그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청산이 이루어질테니말이죠 현재의 독일처럼 하지만 그런것은 전혀없었다는것이 우리나라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15/04/02 19:42
북한의 친일파 청산은 http://image.munhwa.com/gen_news/201308/2013081301070323037006_b.jpg 자료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북한은 청산을 했는데 우리나라는 못했네 라고 배웠는데 사실이랑 다르더군요. 마지막 줄에서 첫째줄에 대해서는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라는 책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요. 책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주인공은 바로 이봉창 의사입니다.
15/04/02 19:47
비록 말로만 처벌수준의 엉터리 처벌이라도 있었어야 했죠
나라팔아먹은사람들이 더 당당하고 높은자리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순간부터 망국의 뿌리가 내린거라 봅니다 요즘 게임만해도 핵유저 버그유저가 꿀빤거 그냥 두면 게임망하죠 핵과 버그로 부당이득을 취했다면 처벌하는게 당연하고 그게 게임(국가)을 건강하게 서비스하는 방법이기도하구요
15/04/02 19:57
친일파 문제도 민족주의 문제랑 연관이 되어 있어서 제대로 보기가 어렵죠. 물론 친일파 문제를 민족의 문제에서 떼어놓을 수는 없지만 "민족주의"랑은 또다른 문제니까요.
15/04/02 20:15
프랑스나 북한같은 피의 숙청은 하지 않았어도 최소한 재산 몰수나 공직 진출에 대한 제한은 있었어야죠. 뭐 친일 경찰로 독립투사들 고문하던 노덕술이 경찰 간부로 떵떵거리고 잘 살다가 국회의원 출마까지 했다는데요.....
15/04/02 20:29
당장 군부독재의 충견들이 임명직 선출직에 나가서 득세하는 대한민국에서, 친일파 청산은 불가능합니다 ㅠㅠ
첫단추부터 잘못 꿰었어요. 그래서 제 결론은 이승만을 깝시다!!!
15/04/02 20:33
가능했습니다. 반민특위가 1차로 핵심친일인사 478명을 잡아들였는데...이승만이 대놓고 옹호를 하기시작했죠...여기서 이승만의 의지만 있었어도..친일파는 청산됏을겁니다.
15/04/02 20:33
친일파 청산이 가능하느냐의 여부를 떠나 친일파를 청산했을때 과연 국가운영이 가능했을까에 대한 의문도 표시하셨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합니다. 저는 가능했을거라 생각하는 쪽입니다. 친일파가 국정에 능력이 있어서 살아남았다라기보다 재빠른 반공노선을 취해서 미국과 이승만으로부터 간택받은 측면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옳바른 예는 아니지만, 장개석이 2.28 사건 당시 수만명의 지식인 경제인이 학살을 당했지만 어쨌든 나라는 굴러갔죠. 40년가까이 계엄령이 유지되긴 했지만...
15/04/02 20:45
멀리 있는 프랑스를 예를 들지 않고 중국만 예로 들어도 일제협력자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지는지 알수있죠.
오히려 프랑스보다 "한간재판"을 통해 더 엄격하게 처벌을 한 것이 중국이고요. 초대대통령의 권력욕때문에 친일파가 면죄부를 얻어 기득권세력이 된 우리나라를 볼때, 중국이 과거청산을 잘 한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5/04/02 20:50
친일파가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장난일뿐입니다
결국 친일파가 정권을 이어가는 비극이 생겼기에 그런 말을 만들어낸거고 북한의 존재에 꼭 북한도 친일파 청산못한거다 역시 일차적으로 확실한 검증이 안된 자료에 의존한거고 북한을 대한민국과 별개로 보는 자체도 우스운겁니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당시는 동일선상이었고 오히려 남한에 비해 북한은 비교도 안되게 많은 친일파를 청산했습니다 헌데 당시 남북한을 비교하면 6.25만봐도 안습이죠 국가존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친일파정권으로 유지된 남한 이승만정권이 어떤 꼴을 했는지 어떤짖을 했는지 이건 논하고 자시고 할것도 없을정도로 남한은 막장이었습니다 . 그잘난 친일파들로 만든 국가가 우리보다 더 친일파 청산을 많이한 북한에 그냥 골로갈정도로 무능하고 무력했는데 친일파가 없었으면 대한민국이 존재할수 없었다.....웃기죠 바로 뻔하게 증명된 역사가 보여주는데 이게 무슨 되지도 않는 괘변인지 철저한 친일파에 의해 연명된 정권과 그후손들이 만들어낸 날조이자 괘변일뿐입니다
15/04/02 20:53
대한민국은 독립후 건준위도 만들어지고 자치적으로 치안유지까지 하게되죠..친일파 없었어도 아무문제 없었어요...근데 미 군정이...에휴...그말싫...
15/04/02 21:29
건준위도 좌익이 장악하면서 인공 선포 후에 우익이 튕겨나오죠.
당시 한국은 공산주의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있는 상태였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미국은 당시에 친일파/공산주의자 중에서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 입장이었고 선택은 뻔한거였죠. 소련의 즉시 독립/미국의 신탁통치-이렇게 입장이 갈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구요. 당시 한국에서 한국인 자치라는 건 그냥 여기는 이제 소련 꺼라는 소리입니다.
15/04/02 21:47
그니까 저런 인민위원회 등 자체적으로 치안유지하고 세금걷고 알아서 잘 했다는거지요. 친일파가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다는건 말장난이죠
15/04/02 21:56
전 말장난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제압하지 않았으면 조선공산당 중심의 소련위성국 중 하나가 됐을거라고 봐서...그럼 분명 지금의 대한민국이 아니죠. 물론 그 당시 지식인들과 민족주의자들이 미국보다 소련을 신뢰한 이유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소련이 1차대전 이후 약소국 문제에 훨씬 적극적이었고, 공산주의 이론이 분명 더 구미가 당기는 부분이 있죠.
15/04/02 22:01
아니죠. 미군정이 들어와서 한국사정만 제대로 알고 들어왔어도 친일파를 등용하는 경우는 절대 없었을겁니다. 남쪽에 설치된 인민위원회가 다 좌파라는 생각을 가지신건 아니실테고 이건 엄연히 한국사정을 모르는 미군의 실수죠. 심지어 미군은 임시정부가 있는지도 몰랐죠.
15/04/02 22:12
임시정부가 충칭을 말하지는 않을테고(어쨌든 작전도 같이 준비 했으니) 인공을 말하는 거면 몰랐다고 할 수 없죠.
포고문 1호에 대놓고 정치조직의 치안활동 인정 안한다고 하는데요. 미군정이 특히 한국의 경제구조를 제대로 몰라서 심하게 민심을 잃기는 했는데, 이념이나 정치지형은 그나마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15/04/03 07:34
그 치안조직을 인정안한거 자체가 미군정의 실수라고 볼수 있죠.. 이 인민위원회가 치안과 세금 등 잘 돌아가고 있음에도 인정을 안하고 그때의 국민정서에 반한 친일파 등용은 명백한 실수입니다. 어느식으로든 정당화 될순없죠
15/04/02 21:25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들은 이완용에게도 참가의사를 물었다더군요. 국내에 남아있는 독립운동가들과 일부 친일파들의 관계는 멀지 않았다는 점도 친일청산이 어려웠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15/04/02 21:48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그대로 옷의 끝자락까지 단추를 채워봐야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당시 요직에 몸 담았던 경험을 가진 친일파들을 그대로 등용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없다는 것은, 향후 대한민국이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흠결이 있더라도 능력이 받침된다면 해당되는 자를 국가의 요직에 앉혀도 된다는 이야기 밖에 안 된다고 봅니다. 적어도 저는 제 다음 세대에게 그런 가르침을 남기고 싶지는 않네요.
15/04/02 22:32
우리 스스로 끼운 단추가 아니었기에 제대로된 단추를 끼울 수 없었던 거죠.
소련-조선-중국으로 이어지는 공산진영을 미국이 그대로 바라보기는 어려웠겠죠. 아무리 일본-필리핀으로 라인을 긋는다고 해도 남한에 딱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거와 뒤에서 라인 긋고 있는 것은 전략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죠. 상대 앞마당 앞에 엎어진 것과 센터를 잡는 것 정도의 차이랄까요? 결국 미국 XXX 가 되는 얘기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그냥 우리 스스로 할게요 하기엔 지금 북한이나 동유럽을 보면 좋다고 할 수는 없죠.
15/04/02 22:56
사실 '넘어갔다면' 현재의 북한이나 동유럽의 양상이 현재와 달라졌을터라 해당하는 비교는 의미가 없습니다.
한국전도 일어나지 않았을테니 '주변국가들'의 상황도 달라졌을거고요. 변수가 너무 많아서 과거에 '만약'을 다는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15/04/02 23:18
아뇨 공산진영이 '붕괴'한다고 해도 현재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을거란 이야기입니다.
냉전의 양상도 달랐을 터라 더 알기어렵고요. 다른 영역에서 '대리전'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자유진영-공산진영이라는 구분 자체가 어떤형태로 성립했을지도 예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중요한 변수라기 보다는 '한국전'이 중요한 변수이고, 적어도 '현재의 북한' 같은 형태가 되지는 못했을 겁니다. 걍 평범한 소련 위성국으로 출발해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겠죠.
15/04/02 23:23
한국전이 없었다고 해도 현재의 북한은 아니겠지만 현재의 한국도 아니겠죠.
동유럽과는 달리 북한-남한의 대치가 조선-일본의 대치로 바뀌었을 뿐이므로 역시나 화약고임에는 큰 차이가 없었을 겁니다. 지금같은 수출주도 공업국으로서의 성장은 불가했을 것이고 반도의 특성으로 해운위주의 국가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현재보다는 훨씬 못한 사정임에는 틀림없었을 겁니다. 사실 한국의 고도성장에는 미국의 직간접적인 원조가 80% 이상을 차지한다고 봐서요.
15/04/02 23:25
가정이 너무 많아져서 따지는것이 유의미해 보이지 않습니다.
역사에 만약이 없는 이유는 인간사회가 복잡성이 높고 '초기값'에 민감한 체계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내전경험후 육상에 형성된 휴전선을 마주한 대립과, 내전경험 없이 해상경계선을 마주한 대립을 동일한 수준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대리전이 독일쪽에서 났을 가능성도 있고요. 막말로 '한국전'이 발생하지 않는 바람에, '우발적 핵전쟁'을 예방할 양반이 그때 그자리에 있지 않아서 우발적핵전쟁이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ㅡㅡ; 현재보다 '못할'것이라고 생각할 수야 있지만, 틀림 없을수는 없습니다.
15/04/03 00:01
과연 이승만이 미래를 보는 선견지명이 있어서
공산화가 될 위기를 막기위해 친일 처단을 안 한것일까요? 한국전쟁중에도 군대빼돌려 쿠테타 일으킨 양반이 그런 생각을 했을리가 없죠 그냥 권력 욕심에 안한거죠. 당시에는 친일파를 처단하는게 옳았고 미래가 어떻게 되는것은 차후의 문제죠
15/04/03 00:12
일제시절 한반도 국정운영의 핵심수반이 친일파였으면 고민할 수 있겠죠
그런데 국정운영의 핵심은 친일파가 아닐겁니다 일본인이죠 친일파라고 고위직에 올라간 애들도 있었지만 실권없는 직책만 줬습니다. 공장을 돌려도 단순노동만 시키고 핵심기술자는 다 일본인이어서 공복후 공장이 놀고있는곳이 많았고요. 대일본제국 본국의 사람들이 과연 2등민족 조선인에서 살랑댄다고 몇몇 친일파에게 크게 신임하고 중책을 맡겼겠습니까 전제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15/04/03 00:40
위의 분께서 당대의 이승만이 미래를 보는 선견지명이 있어서 공산화가 될 위기를 막기 위해 친일 처단을 안 했냐고 반문하시는데 바로 미래를 몰랐기 때문에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체시킨 거죠. 당대의 이승만은 부패한 독재자가 아닌 김구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독립운동가였으니까요. 그도 민중들의 친일파 처단 열망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화신백화점처럼 반민특위가 자본가 친일파들을 잡아들였다면 이승만은 그들 중 몇몇을 처형하고 나머지는 죄를 사하는 방식으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이승만은 노덕술을 잡아들였을 때 움직였습니다. 당시 이승만이 믿을 만한 조직은 경찰밖에 없었죠. 여순 반란 당시의 사건으로 군을 믿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반민특위의 시대적 맥락을 살펴 보면 이승만이 보기에 남한은 경찰과 공산주의자들이 서로의 뒤를 노리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미래를 아는 입장에서야, 곧 전쟁이 벌어지고 노덕술의 공이나 이런 것 없이도 한국전쟁은 일어났을 것이기에 그 당시 반민특위가 거물 친일파 몇몇을 처형하고 나머지 친일파들에 대한 죄사함으로 갔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는 시대적 한계에 갇혀 있었기에 여론을 무시하고 반민특위를 해체시키는 것을 택했죠.
15/04/03 07:51
국련에 위탁통치신청하고
김구 암살의 배후로 보이는 이승만이 부패한 독재자가 아니었다? 여순반란을 진압한거도 군대고 4.3에도 군대였습니다. 그후 이미 군대 내의 공사누의자는 많이 없애죠 그래도 군대가 신뢰하지 못할 조직이었다? 친일파를 처단한다고 그자리를 공산주의자들만 체우는 것도 아니고 친일파는 일단 처단하고 군대네 공산주의자를 없애는건 그 다음이죠 경제위기가 올수 있으니 경제사범을 사면하자도 아니고 친일파 이와도 우익은 많았습니다 단지 국내 기반이 부실했던 아승만이 친일을 자기세력으로 끌어들인 거죠
15/04/03 12:24
-이승만이 김구 암살의 배후라는 이야기는 직접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근거가 될 만한 책이 있는가요? 그리고 정적 암살과 부패는 상관 없습니다.
-군대로 진압했다고 군대 전체를 믿을 수는 없었겠죠. 군대 내에서 공산주의자와 자신의 편이 상존하며 존재한다고 인식했다는 쪽이 더 사실에 가깝습니다. -당대에 해외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전부 국내 기반이 부실했다는 약점이 있었고 김구도 예외는 아닙니다. 김구마저도 친일파 처단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인 바 있는데요. -오히려 당대에는 친일파 자본가를 처단하는 쪽이 더 쉬울 것입니다. 경제사범을 사면하자라는 논리로는 반민특위가 노덕술을 체포했을 때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해체시킨 것을 설명할 수 없지요. -이승만에게 친일파와 공산주의자라는 두 적 중 하나는 이미 대한민국에서 그 기반을 잃어버린 약한 세력이고, 하나는 자신을 위협할 만한 직접적인 세력이라고 할 때 그가 친일파와 손을 잡게 된 것도 아예 이해하지 못할 구석은 아닙니다. 그에게는 친일파보다 공산주의에게 자신의 정권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요. 현실주의적 논리로 보면 더 큰 적을 앞에 두고 과거의 적과 손을 잡은 거라 할 수 있겠죠. 친일파들은 원죄가 있기에 협력했구요.
15/04/03 12:55
이승만이 동지회 자금을 개인용도로 사용했었던것등
부패했던 증가는 이미 많습니다. 1공화국 이후에 벌어진 정적제거만 보더라도 충분히 심증이 있는거죠. 반민특위 활동당시는 이미 국가보안법 실시뒤로 군대내 좌익 색출이되고 있는이후 입니다. 이미 좌익기반이 약해져 있었고 좌익이 있더라도 핑계에 불과하죠 전쟁중에도 부산정치사태때 군대 빼돌려 쓴 사람이 공산화를 막기위해라는건 핑계에 불과하죠 김구이야기는 왜 하시죠? 논점일탈입니다 김구가 친일청산을 안하면 그건 그것대로 잘못이죠? 경제사범을 제가 사면하라고했나요? 사면해서 안된다는 뜻이죠. 범죄사실에 정상참작도 아니고 공산주의를 막기위해 유신은 어쩔수 없었다와 같은 논리입니다.
15/04/03 13:45
글쎄요, 논점일탈은 제가 아니라 손오공님이 더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요. 여기서 부산정치사태, 혹은 경제사범, 유신 등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군요.
제가 아까부터 일관되게 주장하는 핵심 부분은 이승만은 노덕술을 건드렸을 때 반민특위에 대한 반대 움직임을 드러냈다. 그러므로 이승만에게 노덕술은 중요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왜 노덕술이 중요한가에 대한 이유로 군을 믿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실제로 그 당시 남로당이 군대에 얼마만큼 침투해 있었는가가 아닙니다. 이승만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우리는 현재에서 평가하지만, 그의 행동은 그 시점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기타 그 당시 이승만이 부패했는가, 혹은 김구를 암살하라고 사주했는가는 제 주장의 중심 논점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부연인데, 당대에 독립운동가 중 박헌영을 제외하면 모든 소극적 친일부역자에 대한 적극적인 처단, 혹은 청산을 요구한 쪽은 없었으며 그것은 이미 당대에도 그들을 모두 청산하는 것이 힘들며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을 위해 다시 부역하도록 해야 한다는 사회적 동의가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그 과정에서 죄사함의 과정-몇몇 악질 친일파들을 본보기로 처단하고, 나머지에게는 조금씩 형벌을 줄여 나가는 방식-이 없었음이 안타까울 뿐이죠. 그리고 그 악질 친일파에 반드시 들어있어야 할 노덕술이 정권의 보호를 위해 지켜졌다는 부분이 아쉬울 뿐이구요.
15/04/03 14:25
이승만의 향후행보나 이전 사실을 보면
이승만이 친일처단을 안한건 순전하 자기 권력욕 이라는거지 공산화 저지같은 포부는 없었다는거죠. 이승만이 일개 시민도 아니고 국가지도자라면 잘못된 행동을 평가하고 넘어가야지 그 사실이 이해 할만하다고 정상참작을 하나요. 친일의 완전한 청산은 아닐지라도 친일 전력자를 권력의 하수인으로 부려먹는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넘어가나요.
15/04/03 14:39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정권이 무너진다고 대한민국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87년에는 전두환 정권이 무너졌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의 안보나 존립 자체를 위협하지는 않았죠. 왜냐하면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대표되는 외부 강대국에 의한 안전보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세력도 없었구요.(북한이 87년에 침공하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승만 시기의 경우 외부 강대국에 의한 안전보장이 없었고, 정권을 직접적으로 공격하려던 세력이 외부에 있었기 때문에 이승만 정권의 소멸은 곧 대한민국이 망하는 것을 의미했죠. 그렇기 때문에 이승만이 친일처단을 하지 않은 동기가 자신의 권력욕 때문이라고 해도 결국 그 당시엔 정권이 곧 국가였으니 결과적으론 분리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저는 정상참작이나, 면죄부를 준 적이 한번도 없는데 왜 계속 저에게 그런 허수아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시는가요. 저는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해체시킨 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제가 미래에서 과거를 평가했기 때문이고, 미래를 보는 수정구가 없는 이승만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죠. 제가 그의 판단이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것이 [나는 그에게 동의한다]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15/04/03 15:37
건국초기 군경 갈등이 극에 달했던것은 경찰내 친일파를 제대로 처리 못한 문제도 있었습니다.
여순사건에 하나의 원인이기도 했고요. 공산주의자가 군대내에 많았던 것은 당시에도 군대는 힘없고 백없는 사람이 가는곳이어서 그런거지 사회전체적으로 공산주의자가 위협이 될정도로 많았던것도 아닙니다. 거기에 여순사건등으러 군대내에 남로당등 공산주의 자들을 정리했으니 더이상 큰 위협이 되지않았고 이승만도 6.25때 행동으로 보면 그렇게 인지하고 있을 가능 성이 큽니다. 친일파처딘하지 않은것이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고? 이승만도 그렇게 생각해서 처단하지 않은것도 아닙니다. 친일파 처단과 대한민국수호를 분리해서판단해야지 결합시킬 문제가 아니죠. 반민특위에서 제시한 친일파의 두배 세배 처벌했어도 한반도가 공산화하고는 연관이 없었을 겁니다. 부산정치사태를 보면 이승만은 대한민국수호보단 정권수호가 중요한사람이었고 결과적으로 한반도 공산화를 막은셈이 되었지만 이건 소뒷걸음치다 쥐 잡은격이지 이 뒷걸음을 평가하고 자시고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래에서 과거를 평가하는게 당연한 겁니다 과거기준에서 판다!한다면 이해되지 않을 행위가 어디있나요? 대체 왜 친일파 비처단을 공산화와 연관지어 생각해야하나요.
15/04/03 01:18
정확하게 하자면 친일파란 용어보단 종일파와 그 다음엔 민족반역자가 나을 겁니다. 구한말 조선의 평범한 양민/천민의 후계들은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면 기본적으로 일제에 타협적인 자세를 취하니까요. 저 소시민 친일파를 방패로 이인호씨의 할아버지 이명세씨 같은 기회주의적 거물 종일파를 생활형 소시민 친일이라고 감싸는 경우를 왕왕 봤는데 희비극적인 일이죠.
깨끗한 청산은 원래부터 이상적인 것이고 현실에선 주도권과 상징이 필요한 것이었죠. 어느 나라나 마친가지입니다. 자주파가 무력으로 독립했거나 승리했으면 주도권은 당연히 잡고 세력균형의 필요에 따라 가혹한 숙청에서 상징적인 숙청까지 선택이 가능하지요. 중국도 동북과 만주국 문제로 친일파/종일파가 많았지만 국공합작으로 승전한 터라 친일로 문제를 골치를 썩인 적이 드물고 숙청이 대대적이지 않았음에도 그들 스스로를 역사의 패배자로 생각하며 꿇거나 숨었습니다. 우린 그러지 못했으므로 둘 다 하기 어려웠을 뿐입니다. 남한에서 실질은 몰라도 명분상으로나마 가능했던 건 저항의지와 테러로 장개석의 지원과 인정을 얻어낸 상해임정의 김구인데, 김구도 귀국 초기에 거물 종일파들의 돈과 지지로 요정정치를 했습니다. 그 뒤는 아시는대로입니다. 돈을 참 많이 썼죠 그 사람들. 이승만은 미국과 학벌을 업고 자기가 개선장군처럼 종일파 거물들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전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중기 쯤부터 컨트롤이 어려웠고 독재하다 쫓겨난 뒤엔 변비만 남겼을 뿐이죠. 김구는 정치를 너무 몰랐고, 이승만 너무 잘 알았죠. 우리의 입장에서 북한과 공산당이 악이라 해도, 남한에서 거물 종일파들이 주도적으로 반공을 외치고 반공으로 상황을 타개하고 주도권을 잡은 건 그냥 역사적 팩트라 봅니다. 두 가지가 겹치기 때문에 민초들에겐 유구한 내적 갈등이 있죠. 남한 공화국의 설립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에 기초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명호 같은 뉴라이트는 그걸 부정하고 싶어서 김구가 남한건국에 아무 공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역사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독립을 저항을 통해 쟁취했냐고 물을 때 우리는 신화적 부풀리기나 비겁한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민초들이 그 결과는 초라했지만 의지만은 본받으려 했던 김구에 대해서 우파 내부의 공격이 강해지면서 최근의 추세는 후자가 대세인 것 같고요. 해방 전후 남북의 역사에서 제 기억에 남는 것은, 남북의 조선인들이 일본인/종일파에게가 아니라 조선인들 내부의 정치적 대립 문제로 서로에게 잔혹하게 굴었다는 점입니다. 학살 그리고 학살. 국가운영의 기틀이 될 인재니 하는 그런것도 별로 따지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우세일 때 그러했죠. 반민특위의 민족반역자 초안이 263명 가량이고 유야무야 됐는데 해방 후 서로서로 깨끗하게 숙청한 비민족반역자는 몇 명이었던가요. 우린 단지 약자에게 잔인했을 뿐입니다.
15/04/03 18:36
어떤 국사 선생님의 동영상을 통해본건데
친미파도 필요하고 친일파도 필요하다, 일제 시대때 나라를 팔아먹고 그에 동조해 이득을 본사람들은 친일파라 부를게 아니라 반민족행위자라고 칭해야된다 라고 말하시더군요. 단순한 단어의 관습화겠지만, 동영상을 보고 났는데 심적으로 크게 와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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