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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12 13:35
삼국지를 감명깊게 보는 거야 이해하지만 현실에 적용하려는 논리전개가 이상해지는군요..
최소한 연쇄살인범이나 잔학살인, 유아 성범죄 등은 사형시켜도 되지않나요? 랑 돈 없고 빽없는 사람들만 정해진 법에 의해 처벌받고 그렇지않은 놈들은 요리조리 다 피해가는게 요즘 세상이랑 관련성이 큰 사건이 있었나요? 독재자와 그 수하들에 대한 이야기면 모를까 그건 또 아닌것 같고 좀 뜬금없군요..
14/12/12 13:43
그걸 몰랐던 건 아니고요
그냥 삼국지 이야기를 요즘 이야기로 전환하는 전개가 이상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내용에 걸맞는 요즘 사건이 있었나 궁금하다는 거고요
14/12/12 13:38
서릿발 같이 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성장해서 업적을 쌓느냐 아니면 미움받고 한직을 전전하다 죽느냐는 결국 그 주인의 그릇의 크기에 달린일이죠.
14/12/12 13:41
조조는 현대기준으로 전쟁범죄수괴(학살)죠. 안그런 사람도 많습니다만 사실 유비에 대한 반달리즘으로 미화되는게 조조 아닌가 싶습니다.
인재 잘봤다고 그런부분을 까먹으면 스탈린도 위대한 인물이죠.
14/12/12 14:44
저 때야 스승 욕한 놈 죽였다고 의롭다고 칭송퍼지고 그런 시대니 뭐
(요새라면 그냥 욕이나 먹을 일이지요) 현대의 눈으로 과거를 보면 안되죠. 현대 이전엔 조조 깔때 메인타겟을 불충 이런거로 잡았지만 요샌 서주학살을 메인으로 잡는 것처럼 시대마다 판단기준이 조금은 다르니까요. 반대로 과거의 눈으로 현대를 봐도 안되겟지만
14/12/12 14:51
본문에서 현대에 과거를 접목시키면서 그리워하길래 하는 소리죠. 물론 비슷한 과거를 현실에 접목시키는데는 수위를 다투는 기독교도가 이런소리를 하는것도 우습기는 마찬가지겠습니다만..
14/12/12 14:54
옙 그래서 마지막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사실.,.백기의 유언과 얽힌 일화 등을 보면 고대에도 서주대학살같은 대학살은 아주 나쁜짓이 맞았죠.
14/12/12 15:02
사실 성서에도 여리고의 전투가 있죠. 신성모독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쟁메뉴얼중에는 대놓고 하나님이 뒤통수를 취라 명한 부분도 있고..
현실적으로 따지면 사실 이쪽이 서주 학살건보다는 잘 언급은 안되는데 의외로 자주대치되는 골때리는 문제라서. 조조는 그냥 나쁜놈이라 정리하면 땡이지만 교회입장에서는 더 힘들다고 보거든요 실제로 성서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야만성이 줄어든걸로 봐서 그당시 하나님이 나빴고, 예수의 시대로 오면서 그후로도 보다 인간적으로 맞추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결론중입니다.
14/12/12 15:14
애초에 '실제로 정복이 있긴 있었나? 용병질하고 뭐니 하면서 대충 아둥바둥 낑겨들어간 걸 한참 나중에 윤색한 거 아냐?'는 의혹마저 받는 여호수아의 그것하고(심지어 여긴 '12지파가 아니라 원래 12개의 다른 부족이었는데 나중에 '우리는 한형제! 힘을 모읍시다!'는 정치적 의도로 1부족 12지파라고 적었다는 의혹도...) '실제로 있었다고 상당한 역사적 공정성을 지니는 사서에 명시된' 조조의 그것은 동급취급하기가 좀...
14/12/12 14:58
반유비라고 해서 조조를 미화시킬 필요도 없고 그냥 뛰어난 인물인것만큼은 사실입니다.
(사실 근데 전 유비빠라능..) 물론 서주대학살이야 당연히 잘못한 부분이기에 조조가 결국 통일할 수 없던 이유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구요.
14/12/12 14:17
땅콩 사건이 생각나네요 지금의 법관은 만총이 아니며, 지금의 태조는 당시의 태조가 아니라서,
예전의 조홍처럼 지금의 조홍이 원하는 대로 될 것 같군요 그렇다고 죽이자라는 건 아닙니다 당시의 법관점은 당시의 것으로 해석해야지요
14/12/12 14:30
"군주가 죄인을 용서해줄까봐 빨리 법집행을 했다."
라는게 과연 객관적이고 평등한 법집행인지 잘 모르겠네요. 객관적이고 평등한 법집행이라는건 플러스건 마이너스건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정해진 규정하에 법을 집행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이 글의 사안만 보면 다분히 집행자가 '군주로부터 법집행을 참견받고 싶지 않다' 라는 개인적 욕구로 자의적으로 집행을 당겨서 해버린것 같은데요. 거기에 더해서, [어떤 넘은 살인해도 집행유예. 어떤 넘은 10년, 어떤 넘은 5년 등]으로 형이 내려지는건 각 살인들에 대한 평가가 동일할수 없기 때문이지요. 수십명을 취미삼아 죽인 살인범의 살인과, 십여년동안 강간을 당하다가 이를 참지 못하고 가해자를 죽여버린 살인의 가치를 동일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겁니다. 그래서 형량에 차이가 있는거고 말이죠. 단순히 특정 범죄에 대한 형벌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 법집행에 문제가 있다는 논리는 좀 헛점이 많다고 봅니다.
14/12/12 14:50
아, 만총이란 인물이 형집행을 자의적으로 한 인물은 아닙니다. 당시 시대상 무조건 그리할수도 없는 일이구요.
부연하신 부분은 저도 알고는 있으나 요즘 여러 사건을 보면 형량이 고무줄 같다 여기기에 사족으로 단 부분입니다.
14/12/12 14:52
이전에 태위(太尉)를 역임했던 양표(楊彪)가 체포되어 현의 옥으로 보내졌다. 상서령(尚書令) 순욱(荀彧), 소부(少府) 공융(孔融) 등은 모두 만총에게 부탁했다.
"단지 죄상에 대해 설명을 듣는 것에 그치고 형벌을 가하지는 마시오." 만총은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법에 따라서 심문했다. 며칠이 지나, 만총은 조조에게 만나기를 요청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표를 심문했지만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사형에 처해야만 되는 자는 먼저 그의 죄를 명백히 밝혀야만 하는데, 이 사람은 사해 안에서 명성이 있으므로 만일 죄가 명확하지 않으면 명공(明公)은 반드시 백성들의 신망을 크게 잃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사사로이 명공 때문에 애석해 하고 있습니다." 조조는 그 날 중에 양표를 사면하여 석방시켰다. 처음에 순욱과 공융은 만총이 양표를 엄하게 심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매우 화를 냈었지만, 이러한 결과를 얻게 되자 오히려 만총에게 감사했다.
14/12/12 14:56
아, 애초에 만총이라는 사람이 어떻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글에서의 행동만 놓고 보았을 때, 그것을 공정한 법집행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14/12/12 15:03
네 뭐 그렇게 해석을 할수도 있겠습니다만,
'살려주어라' - '아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와는 이야기가 좀 다른것이 '살려주라고 할것 같아서 그러기 전에 [미리] 죽여버렸다.' 가 되어버리므로 외압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는 의지였겠지만, 실제로는 외부 작용에 법 집행을 서둘러버린게 되니까요. 저는 그게 그다지 공정한 처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는겁니다. 사형 날짜가 잡힌 사형수가 있는데, 그걸 대통령이 광복절 특사로 빼내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사형 날짜보다 당겨서 사형을 집행해버리면, 그건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집행일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14/12/12 15:09
애초 전제왕정과 자유민주주의의 대통령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달라서 맞는 비교라 할 수 없고,
또한 원래 죽일 사람이었기에 외압에 굴복하여 형량을 낮추기보다 원래 의지대로 시행한 것이 전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하게 조조가 건석 아저씨를 처벌한 것도 당시엔 엄청난 센세이션과 더불어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니까요.
14/12/12 15:14
자유민주주의 대통령과 전제왕정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다르면, 전제왕정 시대의 법집행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날의 법집행 이야기를 하는것부터가 잘못된거죠. 게다가 오늘날의 기준으로 전제왕정 시대의 법집행이 공정했느니 공정하지 않았느니 판단하는것도 잘못된거구요. 말씀하신대로 자유민주주의와 전제왕정의 차이를 인정하고 들어가려면 저 시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저 행위의 공정성을 논하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되는겁니다. 그리고, 외압이 아직 발생하기도 전입니다. 형량을 낮추라고 한것도 아니고, 그냥 책임자를 불렀을 뿐입니다. 외압이 발생하기도 전에, 어 외압 발생하겠네. 죽여버리자. 는 말이 안되는거죠. 그리고, 설사 죽일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죽일 날까지 그는 살아있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걸 앞당겨서 죽이는것 자체가 완전히 불공정한거죠. 사형수의 하루하루는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하지 않을까 싶은데 저 만총은 그걸 '외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의적 두려움'에 자기 마음대로 앗아가버린겁니다. 공정이요? 무식하고 엄하게 집행한다고 그게 다 공정한건 아니죠.
14/12/12 14:54
만총은 고평현(高平)의 현령을 대행했다. 고평현 사람 장포(張苞)가 군의 도독(督郵)이 되자 탐욕스럽게 직책을 더럽히고 뇌물을 받아 행정을 어지럽혔다. 만총은 그가 관사에 있을 때를 이용하여 관리와 병졸들을 인솔하여 그를 붙잡아 범한 죄를 문책했고, 그날 중에 조사를 끝내자 그대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 여기서 만총이 관직을 버리고 귀향한 이유는 직분이상으로 월권행위를 하였기때문입니다.
14/12/15 16:31
무장입니다. 주로 지방관역활을 수행하긴 했지만, 당시 지방관은 법집행 + 치안 + 방어 모두 전권을 가지고 있었죠.
조인 vs 관우 붙은 형주쟁탈전에서 번성에 조인과 함께 고립된 장수중 한명이기도 하고, 조인, 우금이 관우와 붙었다가 캐발리고 만총이 있던 번성에 고립되죠. 그리고 조인이 탈출 하려는걸 설득해서 번성을 끝까지 수성하도록 조언합니다. 결국 서황의 구원군 + 여몽의 뒤통수 까기에 털린 관우가 퇴각하게 되면서 번성 포위가 풀리죠. 손권의 합비 공격을 막은 것으로 유명한 장료의 료라이.. 가 나온건 2차 합비공방전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 손권이 오 황제에 오른 이후에는 거의 격년제로 합비 공격을 합니다.. (연래행사) 이 손권의 합비 공격을 모두 격퇴한건 모두 만총입니다. (당시 예주 자사) 만총은 예주, 연주 병력을 모두 소집할 수 있었는데, 당시 평지에 있던 (구) 합비성이 항상 포위되는 위험에 빠지면서 수비하는데 어려움을 겪자 후방으로 거점을 옮겨서 새로 산성을 쌓은게 합비신성.. 이고 합비신성으로 옮긴 이후에는 포위되는 일도 없어집니다. 손권의 합비공격에 가장 임팩트 있는건 장료이지만, 꾸준함을 보면 만총이죠.(?)
14/12/12 21:41
만총은 사실 깔게 없는 인물아닌가요
번성전투라든지 대 동오전을 보면 게임에서 과소평가 되는 대표적인 문무 겸장입니다 게다가 꽤 청렴해서 집이 엄청 가난했다고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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