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무엇보다 이 영화의 음악을 한스 짐머가 담당했단걸 알고 좀 놀랐습니다. 보통 한스 짐머표 음악하면 오케스트라 기반의 웅장하고 역동적인 음악이 대표적인데 인터 스텔라의 음악은 조그맣고 정적인 분위기 위주 였거든요
한스 짐머 하면 이런 음악 전공으로 알았는데...
또다른 부분은 놀란 감독이 변했다는 겁니다. 메멘토, 인섬니아, 프레스티지, 다크나이트 같이 그간 놀란 감독이 만든 영화는 밝고 희망차기 보다는 딥 다크한 측면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물론 코브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며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인셉션이 있긴 하지만 인셉션은 가족 드라마라 보기엔 힘든 영화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놀란 감독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믿음, 소망, 사랑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니라를 설파하는 영화를 만들더니 예전엔 찾아 보기 힘든 유머마저 끼워 넣었더군요.
이 영화에서 개그를 담당하는 TARS(왼쪽)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에서 부르스 웨인과 알프레드 사이의 만담(...)이나 인셉션의 썰렁한 개그(아 그 회사 내가 사버림)를 생각하면 진일보한 개그를 보며 뭔가 예전과는 다른 것을 시도하려는 놀란 감독의 모습이 이채로웠습니다. 뭐.. 그외에 영화속 과학적 오류를 비롯해서 이 영화에 모티프를 제공한 각종 SF영화와 소설등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도 많이 다뤘으니 그건 넘어가도록 하고...
이 영화를 무미건조하게 평가하자면 말도 안되는 장면들이 산재해있지만 강력한 비주얼과 딸바보 아버지의 최루성 가족 드라마로 말도 안되는 것을 뛰어넘어 버리는, 일종의 반칙성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다보니 그래비티와 비교되는 경우가 많은듯 한데 필요하지 않은 잔가지들을 다 쳐내고 간단명료하게 한 사람이 다시 생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자신이 살아야 할 지구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려낸 그래비티와 비교하자면 인터스텔라는 이래 저래 굳이 이 장면을 넣었어야 했나 싶은 씬들이나 뭔가 급하게 건너뛴듯한 장면이 많았습니다. 바로 전까지 쿠퍼를 부여잡고 울고불던 만 박사가 갑자기 쿠퍼의 뒷통수를 치는 장면은 어쨌든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물이고 이쯤에서 위기가 한번 더 터져야 하니까 기계적으로 집어 넣은것 같았고 옥수수 밭에 불지른 머피와 오빠의 갈등이 순식간에 봉합되어 버리는 모습은 저를 아연실색 하게 만들었습니다. "니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넣어봤어" 뭐 이런 생각이었는지 어쨌는지... 하여간 인터스텔라는 깔끔하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감동적이었냐? 라고 묻는다면 감동적이었다고 할 거 같습니다.
영화의 막바지, 거대한 중력에 의해 지구에 비해 느린 시간대에서 있었던 쿠퍼는 지구상의 나이로 120세가 넘었지만 여전히 30,40대의 신체인 상태고 쿠퍼의 딸 머피는 시간을 고스란히 맞이하여 임종을 앞둔 호호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있습니다. 돌아온 쿠퍼에게 머피는 부모가 자식이 먼저 죽는 모습을 볼 이유가 없다며 잠들어 있을 브랜드를 찾으러 갈것을 권합니다.
쿠퍼의 시간과 머피의 시간은 서로 어긋난채로 흘러갔고 쿠퍼의 딸인 머피가 더 오랜 삶을 산 상태입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두 사람이 공유했던시간은 얼마 되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시간 역시 얼마 남지 않았죠. 전 우주에서 쿠퍼와 같은 시간을 오래 보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브랜드 뿐입니다. 그랬기에 쿠퍼는 브랜드를 찾으러 우주로 향합니다. 그 막바지 장면에서 나와 같이 극장에 들어와 내 옆자리에 내 손을 잡고 앉은 사람이 서로 같은 우주에서 같은 시간 위를 살아 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제 입장에선 영화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딸과 아버지의 사랑보다는 이 부분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더군요.
걸작이다, 범작이다 이래저래 말이 많았는데 스토리의 진행같이 영화의 객관적인 완성도란 측면은 사실 높게 평가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감동의 크기는 상당히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논쟁도 이로 인해 벌어지는게 아닌가 싶구요. "헐? 어떻게 이런걸 보고 감동을 느낌?" vs "내 감동에 재뿌리지 마 임마" 대충 이런 구도? 하여간 제가 보기엔 그런 느낌입니다.
제가 느낀 감동과는 별개로 걸작나 수작이라 하기에는 어렵고 뭐랄까.. 놀란 감독이 뭔가 변화를 시도하는 가운데 일종의 과도기 단계에 있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은, 인터스텔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