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런 주제로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 첫사랑과 이별하고 왔습니다.
첫사랑이라고 해봐야 사랑이 뭔지 알지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이니...
중학교 1학년 때였어요.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남녀공학 중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녀가 합반이었지만 기술/가정, 가사/공업과 같은 특정 과목은 홀짝수 반을 섞어 남자끼리, 여자끼리 모아서 수업을 진행했지요.
아직 반 친구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시기이니, 아마 3월 중순, 늦어도 3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반에서 기술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분위기가 이상한 겁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 몇몇이 저를 보는 눈빛으로 뭔가 일(?)이 있었다는 것을 감지했지요.
물론 어떤 연유에서 그 일이 발생했는지는 모르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가정 수업 시간에 한 아이의 고백 아닌 고백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수업을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진행된 진실게임이었는지, 혹은 그 아이의 공책에 낙서된 제 이름이 우연히 가정 선생님 눈에 띄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아이가 쓴 쪽지가 선생님 손에 들어간 것인지... 뭐 학기 초라 선생님의 고민 상담이 있었을 수도 있겠죠.
친한 친구들과는 장난도 많이 치고 특히 남자 아이들과 노는 데에만 익숙했던지라, 여자 애들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 꺼냈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하면 여자들한테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그날 기술/가정 수업이 끝나고 나머지 수업을 마칠 때까지 몇몇 여자 애들의 그 이상한 눈초리는 계속되었습니다.
이윽고... 수업을 마치고 버스 타러 가는 길에 그나마 말을 좀 나눴던 한 여자 아이로부터 쪽지를 건네 받게 됩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수경...;;; 이라고 칩시다, 워낙 예전의 일이라.
"유경(..이라고 치죠, 당시 '경'자 돌림 유행;;;)이가 이 쪽지 전해달래, 보고 나서 내일 응답해 주는 거 알지?"
(이거 뭐 응답하라 1994도 아니고... )
가슴이 철렁 했어요.
그 아이가 누구인지는 알았지만 아직까지 말 한번 안 해본 애였던데다가 여자들 앞에서 숫기 없었던 그시절이었으니..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너를 본 순간 나의 첫사랑이 될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 류의 철 좀 든 내용은 아니었고,
이제 갓 중학교에 올라간 애들이 뭘 알겠습니까
그냥,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친하게 지내고 싶으면 그냥 친하게 지내면 되지, 수업시간 후 이상한 눈초리들 + 다른 애를 통해서 보낸 쪽지라니.
이걸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말 한번 안 걸어 본 애한테... 게다가 여자인데 뭐라고 하지?
어린 마음에 고심 끝에 생각한 대처 방법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아니나 다를까, 쪽지를 전해준 수경이가 묻더군요.
"생각해 봤어? 어떻게 할 거니?"
"응, 사실.. 쪽지를 교복 주머니에 넣어 두었는데 집에가서 보니까 없더라.. 잃어버린 것 같아 ㅠㅠ"
"뭐? 진짜? 그걸 어쩌다 잃어버려...! 보긴 본 거야?"
"아, 아니..."
사실 그 순간을 넘어가는 데는 성공했는데, 문제는 그 때부터였던 걸 뒤늦게야 알았지요.
이제 학기 초인데 그 아이를 1년 내내 어떻게 봐야 할 지...
게다가 숫기 없는 녀석이 어떤 행동을 취했겠습니까.
계속 모른 체 하다가, 결국 그 아이와 말을 하게 된 건 봄 소풍 갈 무렵이던 4월 중순 이후였습니다.
그런데 또하나 문제가 생긴 것이, 저랑 초등학교 때에도 두번이나 같은 반이었고 중학교 들어와서도 한 반이 된 친한 친구가 학기 초를 지나면서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된 것이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여자 애들은 그 아이의 쪽지 건을(+ 저 나쁜 놈이 쪽지를 분실...) 대부분 알고 있었고, 남자 애들은 거의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물론 이 녀석은 쪽지 건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요.
한 글에 다 쓰려고 했는데, 내일 새벽 출장이 예정되어 있어서 이만.. ㅠㅠ
평소에 글을 이메일이나 메모장에 적어 놓고 한꺼번에 몰아 쓰곤 하는데, 그렇게 되면 까먹게 되곤 해서 여기에 저장할 겸 작성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