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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3/03 15:29:43
Name yangjyess
Subject [일반] 케인스 vs 하이에크
케인스는 기존 경제학이 지지한 자유방임주의의 무기력함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국가의 적극적인 경제개입을 주장한 그는 한편으로는 히틀러 같은 파시즘세력의 호감을 사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케인스사상의 바탕에는 완고한 반공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나는 노동당에 참가할 것인가? 그것은 매력이 있지만 그 계급정당에는 나의 계급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만약 내가 무엇이든 당파적 이익을 추구한다면 나는 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계급투쟁에 있어서 나는 교양 있는 부르주아지 편에 선다"

케인스의 이런 발언은 우연히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경제서적을 집필하거나 정책을 제안하는 데에서 항상 체제의 안위문제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러시아와 독일에서 자본주의가 어떤 공격에 부딪혔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도 거대한 총파업 물결 속에서 자본가들이 휘청거린 바 있었습니다.

케인스는 때때로 영국을 포함한 세계 자본주의 열강의 지도층을 맹렬히 비난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자본주의를 지키는 능력이 부족해 보인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케인스 일생에 걸친 문제의식은 바로 어떻게 하면 자본주의를 보호하고 지속적으로 번영하게 할 것인가. 였습니다.

고전경제학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은 시장의 조화로운 질서를 어지럽힐 뿐이라고 여겼는데

이러한 시대에 케인스의 비판은 상당히 급진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시장의 자율적 조절능력에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난 이상 정부가 전면적으로 개입하고 지도해서라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토대를 유지, 보호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루스벨트는 그 유명한 뉴딜정책으로 케인스식 정책의 필연성을 입증했습니다.

테네시 계곡의 댐을 건설하는 사업은 수많은 실업자들을 일터로 불러들였고

이 외에도 다양한 공공시설 투자사업을 통해 많은 노동자들의 구매능력을 회복시켰습니다.

실질적 구매능력을 가진 소비자들이 다시 생겨나자 산업자본가들은 이들을 상대로 팔아치우기 위한 상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멈췄던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끊어질 듯했던 자본주의의 숨통이 트였고 케인스는 자본주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이에크는 189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수십권의 저서와 백수십여편의 논문을 집필하는 등 정력적인 학문활동으로 신자유주의의 몇몇 대표주자중 한명으로 꼽힙니다.

과거의 하이에크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이는 케인스와의 논쟁에서 패배한 사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식의 좌익적 행태건 파시즘식의 우익적 행태건 시장질서에 개입하려는 모든 시도를 반대했습니다.

그런 하이에크의 시각에서 볼때 위험천만한 케인스식 경제정책.

우연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벌어진 하이에크와 케인스의 논쟁.

그 시점은 1930년대였고 자유시장경제의 결론은 세계대공황임을 눈앞에서 생생히 확인할 수 있었던 때였습니다.

아무리 논리기계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치밀했던 하이에크라도 패배는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이후 상황이 변했습니다.

케인스식 경제정책을 통해 서구자본주의는 한동안 호황을 누렸으나

1970년대 이후 스태그플래이션이 나타나는 등 그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유주의와 개입주의라는 제한된 패러다임 사이에서 사람들은 왔다갔다 했습니다.

1980년대로 접어들어 영국의 대처수상과 미국의 레이건대통령이 하이에크를 따르며 자유주의 정책을 펼쳐나가기 시작했지만

이 주장이 과연 인류의 미래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가는 신중히 평가해 보아야 할것입니다.

노년의 하이에크는 구소련과 동독의 몰락을 보면서 기뻐할 수도 있었겠지요.

1992년 생을 마치며 그는 '우리의 자유주의가 승리했다'며 행복하게 잠들었을까요?

하이에크가 말한 자유란 사유재산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사회에서 사유재산이란 먹고사는데 필요한 생활필수품 보다는 자본주의적 생산을 유지 확대할 수 있는 생산수단을 의미하며 이것은 곧 기업가들을 지칭합니다.

하이에크의 '자유'는 고귀한 표현이지만 사실상 다수의 자유에 맞선 소수의 자유입니다.

기업이 시장을 독점할 자유.

복지제도를 해체할 자유.

노동조합을 공격할 자유.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환경을 파괴할 자유.

다국적 기업이 제3세계 아동노동자들을 고용할 자유.

뭐, 좋습니다. 어쨌든 자유는 자유지요. 그런데 문제는 앞서 늘어놓은 자유를 행사하는데에 하이에크가 그렇게도 반대했던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개입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이에크의 주장을 받아들여 현실정책으로 받아들인 당사자들은 각 나라의 정부들이었지요.

하이에크의 주장은 결과적으로 정부로 하여금 시장에 개입하는 방식을 전환하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날 케인스는 다시 물어올 것입니다.

개인의 경제적 자유는 신성불가침한 것이냐고.

이리의 자유는 양떼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고.

방향은 달랐지만 공산주의에 맞선 자본주의 진영의 수호자로서는 동지였던 두 사람.

저세상에서 또다시 논쟁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런지요.

=================================================

밤샘근무하고 아침에 퇴근해 자게의 난리통을 구경하니 마음이 뒤숭숭해 잠이 안오던 차에 개인의 자유와 그 통제에 대해 생각하다 별 뚱딴지같은 잡설이 튀어나와버렸네요. 이것도 잠시 논의를 멈추자는 항즐이님의 부탁에 어긋나는것은 아닐지.. 요는 케인스와 하이에크 모두 자본주의를 보다 원활히 돌리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이고.. 글쓰기의 무거움에 대한 논의도 보다 즐거운 피지알짓을 위한 것이라는거.. .어느쪽으로 결론이 나든 서로 너무 감정적으로 격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음. 지금 쓴 글과 너무 상관없어보이는데 억지로 엮은듯? 잠만 쏟아지고 마무리가 안되네요.. 문제의 피드백은 어려울것 같습니다 양해를 구하며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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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03 15:39
수정 아이콘
http://youtu.be/d0nERTFo-Sk
갑자기 저도 생각나는 동영상이 하나.
이미 많은 분들이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포스팅 할려고 했었던 "케인즈 vs 하이에크 랩배틀"입니다.
yangjyess님이 설명해주신 이야기들을 즐겁게 요약정리(?) 받을 수 있습니다. (영어 동영상이지만 영어 자막이 있으니 그럭저럭!)
요정 칼괴기
14/03/03 16:13
수정 아이콘
그런데 그건 너무 하이예크 관점에 치우친 영상인지라...
14/03/03 16:17
수정 아이콘
맞아요 :) 그래도 이 동영상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이 다음 것이 노골적으로 하이예크 편을 들긴 하더군요.
신세계에서
14/03/03 15:40
수정 아이콘
이렇게 좋은 글을 써 주시고도 피드백에 대한 양해를 구해야 되다니 참으로 현재 피지알의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견우야
14/03/03 15:43
수정 아이콘
본문 글 잘 읽었습니다.
삼공파일
14/03/03 15:47
수정 아이콘
서울대 장대익 교수님이 기획하신 "지식인마을"이라는 시리즈 도서가 있는데 동일한 제목이 있어요. 그걸 보고 쓰신 걸 수도 있겠네요.

그 시리즈 정말 명저입니다. 장대익 교수님이 직접 쓰신 쿤 VS 포퍼는 한국에서 대체재가 없을 정도고요.
endogeneity
14/03/03 17:17
수정 아이콘
그 시리즈에서 '케인즈 대 하이에크' 쓰신 분도 꽤 쓸만했습니다.
MakeItCount
14/03/03 15:52
수정 아이콘
어찌보면 경제학계의 영원히 풀리지 않을 난제라고도 볼 수 있는 시장자유vs정부개입..
실제로 케인즈의 정부개입이 대공황을 물리치고 케인즈 혁명이라고 불릴만한 큰 영향을 가지고 왔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그와 반대로 오히려 대공황을 이겨낸건 루즈벨트의 뉴딜이 아닌 제 2차 세계 대전이라는 평가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점도 한번 곱씹어볼만 한 것 같습니다.
요정 칼괴기
14/03/03 16:06
수정 아이콘
그거야 말로 케인즈를 부정하지 못하는 증거죠.
어중간한 재정정책이 아닌 전쟁덕에 영미 정부는 곳간에 돈이 사라질 정도로 그깟 TVA할 정도로 엄청 돈을 써볼 수있게 되었고, 전쟁이라는 소비 머신 덕에 잉여 생산물이 일거 소비 되어버렸죠.
결국 생산이 아닌 소비를 통해 경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TVA를 비롯한 뉴딜이나 전쟁이나 그게 뭐든 간에
맞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14/03/03 16:15
수정 아이콘
전쟁에 따른 호황이야말로 윤리적으로 어찌 되었든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 결과이긴 하죠.
김연우
14/03/03 16:30
수정 아이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준 힘은 '엄청난 소비'가 아니라 '엄청난 소비세'라구요.

승리는 했지만, 패전국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즉 승전국이 소비해서 없어진 자원을 충당할 재원이 어디에도 없었지요. 그 재원은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하면, 최대 90%에 육박했던 소비세 밖에 생각 안납니다. 소비세를 바탕으로 한 큰 정부, 큰 정부에 의한 큰 소비, 이렇게 생각하면 전쟁은 가장 강력한 뉴딜정책이겠지요.
요정 칼괴기
14/03/03 16:36
수정 아이콘
그리고 전후 반공한다고 패전국과 동맹국에 쏟아 부었던 천문학적 전후 복구 비용도 어마어마 했죠.
MakeItCount
14/03/03 16:42
수정 아이콘
전쟁당시 소비세가 90%까지나 올라갔었나요? 최고구간 소득세는 그정도까지 올린건 알고있었는데. 아무튼 1945~70년까지 이어진 소위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온건 전쟁을 비롯한 정부개입주의의 산물이라고 불리지만 한가지 생각해볼만한건, 그 후의 케인주주의자들이 마치 정부개입이 경제의 만능통치약인 것처럼 여겼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공황과 같은 과잉생산에 의한 디플레이션 상황에서의 정부의 개입에 의한 유효수효 창출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경제가 어느정도 호황인 상태에서의 정부개입은 오히려 비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넘 간과했지요. 이래나 저래나 경제학은 특히 자본주의는 재밌으면서 뗄레야 뗄수 없는 오묘한 학문인듯 합니다.
요정 칼괴기
14/03/03 16:47
수정 아이콘
글쎄요. 그렇게 단정 짓는 건 약간 성급하다고 봅니다.

일단 과연 60후반 ~70년대가 정상적인 경제 상황이었는지 애매합니다.
베트남전을 통해 과잉 통화 공급에 이어 브래튼 우드 시스템 붕괴 같은 큰 사건이 존재했죠.
물론 신자유주의 입장에서 너무 정부가 개입해서라고 하지만 일부는 잘못된 개입을 해서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도 경제적 접근의 실패하기 보다는 전쟁과 같은 아주 정치적 접근적인 문제에서 실패)

그리고 가장 큰게 케인즈가 안맞기 시작한 건 경제적 상황이 이시기 부터 너무 급변해 버렸습니다. 일단 원론적
수준만 해도 고정환율에서 변동환율로만 바뀌어도 케인지안적 접근이 힘을 잃습니다. 그게 이시기 현실화 되었습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3/03 16:52
수정 아이콘
사실 시장이 존재가능하게 하는것 자체가 정부개입이기 때문에......
어떤 정부개입인가? 의 문제지 정부개입이 이루어지는 것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MakeItCount
14/03/03 16:57
수정 아이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유주의 진영에서 애덤스미스를 마치 시장"만능"주의의 아버지격으로 말하긴 하지만 도덕감정론에서 부터 수차례 말하듯이 시장은 정부라는 일종의 "감시자" 혹은 "관리자"가 없이는 제기능을 발휘하기 힘들겠죠. 문제는 "얼마나, 어느 선까지 정부개입을 용인할것이냐"는 것이겠죠.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자나 시장만능주의자 혹은 아나키스트들을 제외하곤 정부 자체를 부인하진 않습니다.
김연우
14/03/03 17:20
수정 아이콘
최고소득세 구간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http://tywkiwdbi.blogspot.kr/2011/07/top-bracket-income-tax-rates-1913-2008.html
MakeItCount
14/03/03 17:46
수정 아이콘
예. 최고 한계소득세율은 90%까지 갔었던 것이 맞습니다.
소독용 에탄올
14/03/03 16:00
수정 아이콘
시장은 가정되는 '보이지 않는 손' 뿐 아니라, 정부의 '더러운 손'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변화합니다.
따라서 원글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시장자유라고 하는 주장은 사실 정부개입의 특정한 유형이며, 정부개입의 조정이지 감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제 대쳐리즘이니 레이거니즘에서 정부개입은 심지어 더 강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향을 추구하는 것을 일련의 시장자유화정책의 묶음으로 보던, 특정계급의 정치적 프로젝트로 보던간에 일단 신자유주의라고 부르긴 합니다.
노직이나 하이에크의 자유주의와 이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요......
14/03/03 16:06
수정 아이콘
현재 패러다임은 케인지안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얼마전에 대공황에 빠질뻔 했던 경제를 어떻게 구해냈는지 생각하면요.
endogeneity
14/03/03 17:22
수정 아이콘
여담인데 케인스와 하이에크는 모두 비트겐슈타인에게 갈굼(?)당했던 공통점이 있습니다.(사실은 하이에크보단 주로 케인스가...)
제리드
14/03/03 18:03
수정 아이콘
저도 경제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학부수준이라 크게 아는건 없긴 합니다만...현대 사회는 이미 보이는 손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게 아닌가 싶어요
위의 랩배틀하니까 생각나는게 한국에서도 EBS 다큐중에 '자본주의' 시리즈 중의 마지막 부에서 케인즈랑 하이에크가 나와서 랩배틀하는 장면이 있죠. 갑자기 다큐보다가 데드피 목소리가 나와서 "앨범은 안내고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던 크크...
타임트래블
14/03/03 18:37
수정 아이콘
널리 퍼진 오해 중 하나인데 케인즈의 정부개입에 대한 책은 뉴딜정책이 실행된 후에 나온 것입니다. 케인즈가 주창한 것을 실행한 것이 아니라 실행이 먼저고 케인즈는 그 정책의 정당성을 보여준거죠. 하이에크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습니다. 케인즈냐 하이에크냐는 정부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정답은 그 둘 사이의 어딘가에 있겠죠.
요정 칼괴기
14/03/03 18:45
수정 아이콘
고용이자와 화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이 36년 TVA가 33년이니 그렇게 볼 수 있지만 그책은 완성본이고
이미 기본 이론은 20년대 화폐론과 화폐 개혁론이란 책에서 저술했습니다. 그러니 잘못된 오해가 아니죠.
타임트래블
14/03/03 19:02
수정 아이콘
화폐개혁론은 20년대, 화폐론은 30년에 나왔습니다. 일반적으로 뉴딜의 이론적 근거로 일반이론을 얘기하지 화폐개혁론을 얘기하진 않습니다. 앞선 저작들이 거대한 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화폐론은 저축과 투자의 괴리에 의해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는 현상을 설명했다면, 일반이론은 끊임없는 불황이 게속될 수도 있음을 밝히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정부 개입이 필요함을 주장합니다. 정부개입에 대한 이론적 틀은 일반이론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진보를 주장하는 분들 또는 신자유주의나 하이에크에 반대하는 분들에 대해 잘 이해되지 않는 점은 이명박근헤 정부를 신뢰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개입 강화를 주장하는 모순에 빠져있는 겁니다. 하이에크의 주장이 극단적인 면은 있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을 때 시장에 대한 개입이 얼마나 잘못될 수있는 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endogeneity
14/03/03 20:26
수정 아이콘
'정책 입안자' 케인스와 '이론가 케인스'를 구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1.

케인스는 애초에 1923년 저작 '화폐 개혁론' 등을 통해 영국의 '성마른 금본위제 복귀'에 반대하는 화폐정책 논객으로 데뷔한 것이었고(이전에 파리 평화회담의 전쟁배상 논의에 반대하면서 관직을 버린 얘기는 유명합니다), 이후 대공황 직후(1920년대 말~1930년대 초) 맥밀런 위원회 등에서 이미 확장 통화정책, '공공지출 증대', 보호무역 등 대부분의 '케인즈적 아젠다'를 선보였습니다. '이론가 케인스'는 이러한 정책 논쟁 와중에, 보수적인 '정책'의 배후의 '신고전파 경제이론' 자체를 거꾸러뜨려야만 할 필요성을 느낀 순간 태어났던 것이었고요.(아마도 맥밀런 위원회 와중에 오스트리안의 영향을 받았던 라이오넬 로빈스와의 논쟁, 그리고 케임브리지 학파의 유보적인 태도 등에 자극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화폐론을 '균형이론'으로, 일반이론은 '불균형이론'으로 나눠보는 건 케인스 학설의 발전을 나눠보는 유용한 틀 중 하나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화폐론은 결국 '관리통화체제' 구축을 주장하는 정책제언으로 끝맺고, 일반이론은 23장에서 '호황과 불황의 반복'을 설명합니다. 물론 이런 점은 타임 트래블님이 '앞선 저작들이 거대한 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셨던 것으로 보아서는 고려를 하신 것은 같습니다.(화폐론에선 '재정정책'은 언급되지 않는데, 화폐론 자체가 화폐 문제에 대한 총괄적 저술로 기획된 것도 한 원인이고, 결정적으론 분명히 '승수'라든가 일반이론에서만 등장하는 어떤 내용들이 화폐론 저술시기인 20년대 중후반엔 케인스의 사고 속에 없었던게 컸을 겁니다. 하지만 케인스가 승수 개념을 파악한건 1936년이 아니라 1931년이었습니다.)


2.

한마디로 케인스가 '미국의 경제정책'인 뉴딜의 입안자는 아니었는지 몰라도, 미국, 독일, 스웨덴, 영국 등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불황에 대한 거시정책적 대응'의 '최초의 실천자', 그것도 '중요한 실천자'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정책들을 케인스가 고주알 미주알 다 꾸몄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겠지만, 세계 각국에서 그런 류의 정책을 생각해냈던 사람들은 케인스의 '카리스마'나 '지적 영향력'을 접했을 공산이 큽니다. 물론 그건 2차대전 종전 전까지는 영국, 그 중에서도 케임브리지가 경제학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게 컸겠죠.
타임트래블
14/03/03 21:30
수정 아이콘
케인즈가 뉴딜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부정하기 보다 제 처음의 댓글은 제대로 된 이론이 나온 후에 뉴딜정책이 수립되었다는 일반의 오해를 지적한 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대공황이 발생한 1929년에는 케인즈 역시도 재정정책에 의한 승수 개념이나 불황의 악순환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뉴딜과 그 이전의 정부 재정투입, 노동자 권익 확대 등의 정책은 대공황으로 인한 사회적 요구에 대한 정치권의 응급 처방 측면이 강하다고 봅니다. 뉴딜정책과 같은 재정투입이 먼저 시작되고 이에 반발하는 기득권층에 대응하는 이론적 근거로서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케인즈가 뉴딜과 같은 정책에 강한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하지만, 그게 분명한 이론으로 수립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ndogeneity
14/03/03 23:39
수정 아이콘
좋습니다. 사실 저나 타임트래블님이 케인스 경제학의 발전에 대해 '의견차이'랄 만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분명한 이론으로 수립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도 타당합니다. 케인스 자신의 설명을 빌자면

'정확한 언어의 사용은 사유 발전 과정의 뒷부분에서 나타난다. 말하자면, 사고를 언어로 선명하게 만들기 오래 전부터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케인스의 1933년 케임브리지 대학 강의록 中)
MakeItCount
14/03/04 00:06
수정 아이콘
사실 현재 경제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신고전파경제학과 케인즈경제학) 중 어느 입장에 서 있느냐가 케인즈에 대한 판단을 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케인지언들은 아무래도 케인즈의 저러한 정부개입에 대한 여러 저작들과 코멘트들에 대한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동시에 케인즈를 영웅화시키는 면도 없지않아 보이는 반면, 신고전파쪽이나 공급중시 경제학자들은 (대표적으로 '백악관 경제학자'의 저작속의 경제학자들) 케인즈의 정부개입 관련 코멘트들이 그 전의 경제학이론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주장들을 많이 하더라구요. (제이콥 바이너 -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실업대책으로 임금삭감보다 인플레를 선호했다는 것 말고 전통 이론과의 별 차이가 없다.)
이런 면들이 아무래도 경제학의 속성상 이념과 사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과학의 한부분임을 반증하는게 아닐가 합니다. 한마디로 보고싶은 부분을 보는 주관성이, 객관성을 넘어서는듯한 부분들.. 별개로 위에 상세하고 자세한리플은 감사히 보고 갑니다.
endogeneity
14/03/04 00:12
수정 아이콘
바이너는 사실 '정책 입안자' 케인스의 팬이면서 '경제이론가' 케인스의 적이었다는 점이 재밌습니다.(바이너의 입장은 먼 훗날 로버트 루카스가 거의 유사하게 계승한 것 같더군요. 정확히는 루카스가 케인스 정책을 지지했다기보단 케인스가 '사회에 참여하는 경제학자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면을 높이 샀다는 것..)
하이에크도 비슷한데, 다른 여러가지 면에서 케인스를 존경했지만 딱 하나 '경제이론가'로서만은 무시했죠.
재밌게도 밀튼 프리드먼은 '경제이론가' 케인스를 존중하면서, 정책입안자라든가 사회사상가로서의 케인스의 적을 자처했고요.

어떤식으로든 경제학이 '이념과 사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점은 분명히 있다고 보입니다. 아무래도 케인스와 하이에크가 그 점을 주지한 마지막 세대가 아니었나 싶고요.(그런 의미에서 경제학자들이 사회 정책을 평하면서, 지나치게 자주 '이념적'이란 말을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거슬립니다.)
MakeItCount
14/03/04 00:27
수정 아이콘
마르크스가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라고 한 말처럼 아마 케인즈도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는 케인즈주의자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지않을까 싶습니다. 누가뭐래도 케인즈는 시장의 중요성을 끝까지 놓치지않은 "시장주의자"였고 정부의 개입은 어디까지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기침체 혹은 디플레 상황" 일때나 용인한다. 는게 그의 생각이였는데 그의 추종자라는 케인지언들이 오히려 정부개입은 언제나 좋고 옳다. 라는 식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말입니다.
이부분은 자유주의진영도 아마 자유롭진 못할 것같은데 그렇다면 제 3의길, 혹은 실용주의가 맞느냐? 혹은 이 모든 자본주의의 경기순환은 잘못되었고 결국 사회주의가 옳으냐? 생각하다보니 길게 되었지만 참으로 답하기 어렵습니다.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될까요??
endogeneity
14/03/04 01:16
수정 아이콘
케인스는 실제로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2차대전 중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 경제학자들과 회동하면서 '여기 케인스주의자 아닌 사람은 나뿐이구려')

사회철학자로서 케인스는 중도 자유주의자 정도 선을 기준으로, 때로는 좌로 때로는 우로 오락가락했던 것 같습니다. 분명한 건 케인스가 어느 시점에서든 자유시장의 미덕이랄 수 있는 '기업가정신이나 창의성'을 존중했던 건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케인스는 '실제 현실의 기업가들'에 대해 냉소적이었고(이에 대한 에피소드가 여럿 있습니다), 그 자신도 탁월한 트레이더였으나 금융시장의 작동양식에 대해 점점 회의적으로 변해갔습니다.(그의 투자전략은 20년대엔 단기차익형이었다면, 30년대엔 가치투자자로 변신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 줄 말씀은 '자본주의 사회철학'의 핵심 문제입니다. 여러모로 댓글 하나로 다루기는 너무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MakeItCount
14/03/04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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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러운 답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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