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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03 15:39
http://youtu.be/d0nERTFo-Sk
갑자기 저도 생각나는 동영상이 하나. 이미 많은 분들이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포스팅 할려고 했었던 "케인즈 vs 하이에크 랩배틀"입니다. yangjyess님이 설명해주신 이야기들을 즐겁게 요약정리(?) 받을 수 있습니다. (영어 동영상이지만 영어 자막이 있으니 그럭저럭!)
14/03/03 15:47
서울대 장대익 교수님이 기획하신 "지식인마을"이라는 시리즈 도서가 있는데 동일한 제목이 있어요. 그걸 보고 쓰신 걸 수도 있겠네요.
그 시리즈 정말 명저입니다. 장대익 교수님이 직접 쓰신 쿤 VS 포퍼는 한국에서 대체재가 없을 정도고요.
14/03/03 15:52
어찌보면 경제학계의 영원히 풀리지 않을 난제라고도 볼 수 있는 시장자유vs정부개입..
실제로 케인즈의 정부개입이 대공황을 물리치고 케인즈 혁명이라고 불릴만한 큰 영향을 가지고 왔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그와 반대로 오히려 대공황을 이겨낸건 루즈벨트의 뉴딜이 아닌 제 2차 세계 대전이라는 평가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점도 한번 곱씹어볼만 한 것 같습니다.
14/03/03 16:06
그거야 말로 케인즈를 부정하지 못하는 증거죠.
어중간한 재정정책이 아닌 전쟁덕에 영미 정부는 곳간에 돈이 사라질 정도로 그깟 TVA할 정도로 엄청 돈을 써볼 수있게 되었고, 전쟁이라는 소비 머신 덕에 잉여 생산물이 일거 소비 되어버렸죠. 결국 생산이 아닌 소비를 통해 경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TVA를 비롯한 뉴딜이나 전쟁이나 그게 뭐든 간에 맞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14/03/03 16:30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준 힘은 '엄청난 소비'가 아니라 '엄청난 소비세'라구요.
승리는 했지만, 패전국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즉 승전국이 소비해서 없어진 자원을 충당할 재원이 어디에도 없었지요. 그 재원은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하면, 최대 90%에 육박했던 소비세 밖에 생각 안납니다. 소비세를 바탕으로 한 큰 정부, 큰 정부에 의한 큰 소비, 이렇게 생각하면 전쟁은 가장 강력한 뉴딜정책이겠지요.
14/03/03 16:42
전쟁당시 소비세가 90%까지나 올라갔었나요? 최고구간 소득세는 그정도까지 올린건 알고있었는데. 아무튼 1945~70년까지 이어진 소위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온건 전쟁을 비롯한 정부개입주의의 산물이라고 불리지만 한가지 생각해볼만한건, 그 후의 케인주주의자들이 마치 정부개입이 경제의 만능통치약인 것처럼 여겼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공황과 같은 과잉생산에 의한 디플레이션 상황에서의 정부의 개입에 의한 유효수효 창출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경제가 어느정도 호황인 상태에서의 정부개입은 오히려 비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넘 간과했지요. 이래나 저래나 경제학은 특히 자본주의는 재밌으면서 뗄레야 뗄수 없는 오묘한 학문인듯 합니다.
14/03/03 16:47
글쎄요. 그렇게 단정 짓는 건 약간 성급하다고 봅니다.
일단 과연 60후반 ~70년대가 정상적인 경제 상황이었는지 애매합니다. 베트남전을 통해 과잉 통화 공급에 이어 브래튼 우드 시스템 붕괴 같은 큰 사건이 존재했죠. 물론 신자유주의 입장에서 너무 정부가 개입해서라고 하지만 일부는 잘못된 개입을 해서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도 경제적 접근의 실패하기 보다는 전쟁과 같은 아주 정치적 접근적인 문제에서 실패) 그리고 가장 큰게 케인즈가 안맞기 시작한 건 경제적 상황이 이시기 부터 너무 급변해 버렸습니다. 일단 원론적 수준만 해도 고정환율에서 변동환율로만 바뀌어도 케인지안적 접근이 힘을 잃습니다. 그게 이시기 현실화 되었습니다.
14/03/03 16:52
사실 시장이 존재가능하게 하는것 자체가 정부개입이기 때문에......
어떤 정부개입인가? 의 문제지 정부개입이 이루어지는 것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4/03/03 16:57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유주의 진영에서 애덤스미스를 마치 시장"만능"주의의 아버지격으로 말하긴 하지만 도덕감정론에서 부터 수차례 말하듯이 시장은 정부라는 일종의 "감시자" 혹은 "관리자"가 없이는 제기능을 발휘하기 힘들겠죠. 문제는 "얼마나, 어느 선까지 정부개입을 용인할것이냐"는 것이겠죠.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자나 시장만능주의자 혹은 아나키스트들을 제외하곤 정부 자체를 부인하진 않습니다.
14/03/03 17:20
최고소득세 구간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http://tywkiwdbi.blogspot.kr/2011/07/top-bracket-income-tax-rates-1913-2008.html
14/03/03 16:00
시장은 가정되는 '보이지 않는 손' 뿐 아니라, 정부의 '더러운 손'으로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변화합니다.
따라서 원글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시장자유라고 하는 주장은 사실 정부개입의 특정한 유형이며, 정부개입의 조정이지 감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실제 대쳐리즘이니 레이거니즘에서 정부개입은 심지어 더 강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향을 추구하는 것을 일련의 시장자유화정책의 묶음으로 보던, 특정계급의 정치적 프로젝트로 보던간에 일단 신자유주의라고 부르긴 합니다. 노직이나 하이에크의 자유주의와 이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지만요......
14/03/03 17:22
여담인데 케인스와 하이에크는 모두 비트겐슈타인에게 갈굼(?)당했던 공통점이 있습니다.(사실은 하이에크보단 주로 케인스가...)
14/03/03 18:03
저도 경제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학부수준이라 크게 아는건 없긴 합니다만...현대 사회는 이미 보이는 손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게 아닌가 싶어요
위의 랩배틀하니까 생각나는게 한국에서도 EBS 다큐중에 '자본주의' 시리즈 중의 마지막 부에서 케인즈랑 하이에크가 나와서 랩배틀하는 장면이 있죠. 갑자기 다큐보다가 데드피 목소리가 나와서 "앨범은 안내고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던 크크...
14/03/03 18:37
널리 퍼진 오해 중 하나인데 케인즈의 정부개입에 대한 책은 뉴딜정책이 실행된 후에 나온 것입니다. 케인즈가 주창한 것을 실행한 것이 아니라 실행이 먼저고 케인즈는 그 정책의 정당성을 보여준거죠. 하이에크에 대해서도 오해가 있습니다. 케인즈냐 하이에크냐는 정부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정답은 그 둘 사이의 어딘가에 있겠죠.
14/03/03 18:45
고용이자와 화폐 및 화폐의 일반 이론이 36년 TVA가 33년이니 그렇게 볼 수 있지만 그책은 완성본이고
이미 기본 이론은 20년대 화폐론과 화폐 개혁론이란 책에서 저술했습니다. 그러니 잘못된 오해가 아니죠.
14/03/03 19:02
화폐개혁론은 20년대, 화폐론은 30년에 나왔습니다. 일반적으로 뉴딜의 이론적 근거로 일반이론을 얘기하지 화폐개혁론을 얘기하진 않습니다. 앞선 저작들이 거대한 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화폐론은 저축과 투자의 괴리에 의해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는 현상을 설명했다면, 일반이론은 끊임없는 불황이 게속될 수도 있음을 밝히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정부 개입이 필요함을 주장합니다. 정부개입에 대한 이론적 틀은 일반이론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진보를 주장하는 분들 또는 신자유주의나 하이에크에 반대하는 분들에 대해 잘 이해되지 않는 점은 이명박근헤 정부를 신뢰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개입 강화를 주장하는 모순에 빠져있는 겁니다. 하이에크의 주장이 극단적인 면은 있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을 때 시장에 대한 개입이 얼마나 잘못될 수있는 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14/03/03 20:26
'정책 입안자' 케인스와 '이론가 케인스'를 구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1. 케인스는 애초에 1923년 저작 '화폐 개혁론' 등을 통해 영국의 '성마른 금본위제 복귀'에 반대하는 화폐정책 논객으로 데뷔한 것이었고(이전에 파리 평화회담의 전쟁배상 논의에 반대하면서 관직을 버린 얘기는 유명합니다), 이후 대공황 직후(1920년대 말~1930년대 초) 맥밀런 위원회 등에서 이미 확장 통화정책, '공공지출 증대', 보호무역 등 대부분의 '케인즈적 아젠다'를 선보였습니다. '이론가 케인스'는 이러한 정책 논쟁 와중에, 보수적인 '정책'의 배후의 '신고전파 경제이론' 자체를 거꾸러뜨려야만 할 필요성을 느낀 순간 태어났던 것이었고요.(아마도 맥밀런 위원회 와중에 오스트리안의 영향을 받았던 라이오넬 로빈스와의 논쟁, 그리고 케임브리지 학파의 유보적인 태도 등에 자극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화폐론을 '균형이론'으로, 일반이론은 '불균형이론'으로 나눠보는 건 케인스 학설의 발전을 나눠보는 유용한 틀 중 하나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화폐론은 결국 '관리통화체제' 구축을 주장하는 정책제언으로 끝맺고, 일반이론은 23장에서 '호황과 불황의 반복'을 설명합니다. 물론 이런 점은 타임 트래블님이 '앞선 저작들이 거대한 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셨던 것으로 보아서는 고려를 하신 것은 같습니다.(화폐론에선 '재정정책'은 언급되지 않는데, 화폐론 자체가 화폐 문제에 대한 총괄적 저술로 기획된 것도 한 원인이고, 결정적으론 분명히 '승수'라든가 일반이론에서만 등장하는 어떤 내용들이 화폐론 저술시기인 20년대 중후반엔 케인스의 사고 속에 없었던게 컸을 겁니다. 하지만 케인스가 승수 개념을 파악한건 1936년이 아니라 1931년이었습니다.) 2. 한마디로 케인스가 '미국의 경제정책'인 뉴딜의 입안자는 아니었는지 몰라도, 미국, 독일, 스웨덴, 영국 등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불황에 대한 거시정책적 대응'의 '최초의 실천자', 그것도 '중요한 실천자'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당시의 정책들을 케인스가 고주알 미주알 다 꾸몄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겠지만, 세계 각국에서 그런 류의 정책을 생각해냈던 사람들은 케인스의 '카리스마'나 '지적 영향력'을 접했을 공산이 큽니다. 물론 그건 2차대전 종전 전까지는 영국, 그 중에서도 케임브리지가 경제학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게 컸겠죠.
14/03/03 21:30
케인즈가 뉴딜 정책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부정하기 보다 제 처음의 댓글은 제대로 된 이론이 나온 후에 뉴딜정책이 수립되었다는 일반의 오해를 지적한 것입니다. 말씀하신대로, 대공황이 발생한 1929년에는 케인즈 역시도 재정정책에 의한 승수 개념이나 불황의 악순환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뉴딜과 그 이전의 정부 재정투입, 노동자 권익 확대 등의 정책은 대공황으로 인한 사회적 요구에 대한 정치권의 응급 처방 측면이 강하다고 봅니다. 뉴딜정책과 같은 재정투입이 먼저 시작되고 이에 반발하는 기득권층에 대응하는 이론적 근거로서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케인즈가 뉴딜과 같은 정책에 강한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하지만, 그게 분명한 이론으로 수립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4/03/03 23:39
좋습니다. 사실 저나 타임트래블님이 케인스 경제학의 발전에 대해 '의견차이'랄 만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분명한 이론으로 수립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도 타당합니다. 케인스 자신의 설명을 빌자면 '정확한 언어의 사용은 사유 발전 과정의 뒷부분에서 나타난다. 말하자면, 사고를 언어로 선명하게 만들기 오래 전부터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것이다.'(케인스의 1933년 케임브리지 대학 강의록 中)
14/03/04 00:06
사실 현재 경제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신고전파경제학과 케인즈경제학) 중 어느 입장에 서 있느냐가 케인즈에 대한 판단을 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케인지언들은 아무래도 케인즈의 저러한 정부개입에 대한 여러 저작들과 코멘트들에 대한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동시에 케인즈를 영웅화시키는 면도 없지않아 보이는 반면, 신고전파쪽이나 공급중시 경제학자들은 (대표적으로 '백악관 경제학자'의 저작속의 경제학자들) 케인즈의 정부개입 관련 코멘트들이 그 전의 경제학이론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주장들을 많이 하더라구요. (제이콥 바이너 - 케인즈의 일반이론은 실업대책으로 임금삭감보다 인플레를 선호했다는 것 말고 전통 이론과의 별 차이가 없다.)
이런 면들이 아무래도 경제학의 속성상 이념과 사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과학의 한부분임을 반증하는게 아닐가 합니다. 한마디로 보고싶은 부분을 보는 주관성이, 객관성을 넘어서는듯한 부분들.. 별개로 위에 상세하고 자세한리플은 감사히 보고 갑니다.
14/03/04 00:12
바이너는 사실 '정책 입안자' 케인스의 팬이면서 '경제이론가' 케인스의 적이었다는 점이 재밌습니다.(바이너의 입장은 먼 훗날 로버트 루카스가 거의 유사하게 계승한 것 같더군요. 정확히는 루카스가 케인스 정책을 지지했다기보단 케인스가 '사회에 참여하는 경제학자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면을 높이 샀다는 것..)
하이에크도 비슷한데, 다른 여러가지 면에서 케인스를 존경했지만 딱 하나 '경제이론가'로서만은 무시했죠. 재밌게도 밀튼 프리드먼은 '경제이론가' 케인스를 존중하면서, 정책입안자라든가 사회사상가로서의 케인스의 적을 자처했고요. 어떤식으로든 경제학이 '이념과 사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점은 분명히 있다고 보입니다. 아무래도 케인스와 하이에크가 그 점을 주지한 마지막 세대가 아니었나 싶고요.(그런 의미에서 경제학자들이 사회 정책을 평하면서, 지나치게 자주 '이념적'이란 말을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거슬립니다.)
14/03/04 00:27
마르크스가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라고 한 말처럼 아마 케인즈도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는 케인즈주의자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지않을까 싶습니다. 누가뭐래도 케인즈는 시장의 중요성을 끝까지 놓치지않은 "시장주의자"였고 정부의 개입은 어디까지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기침체 혹은 디플레 상황" 일때나 용인한다. 는게 그의 생각이였는데 그의 추종자라는 케인지언들이 오히려 정부개입은 언제나 좋고 옳다. 라는 식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말입니다.
이부분은 자유주의진영도 아마 자유롭진 못할 것같은데 그렇다면 제 3의길, 혹은 실용주의가 맞느냐? 혹은 이 모든 자본주의의 경기순환은 잘못되었고 결국 사회주의가 옳으냐? 생각하다보니 길게 되었지만 참으로 답하기 어렵습니다. 혹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될까요??
14/03/04 01:16
케인스는 실제로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2차대전 중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 경제학자들과 회동하면서 '여기 케인스주의자 아닌 사람은 나뿐이구려')
사회철학자로서 케인스는 중도 자유주의자 정도 선을 기준으로, 때로는 좌로 때로는 우로 오락가락했던 것 같습니다. 분명한 건 케인스가 어느 시점에서든 자유시장의 미덕이랄 수 있는 '기업가정신이나 창의성'을 존중했던 건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케인스는 '실제 현실의 기업가들'에 대해 냉소적이었고(이에 대한 에피소드가 여럿 있습니다), 그 자신도 탁월한 트레이더였으나 금융시장의 작동양식에 대해 점점 회의적으로 변해갔습니다.(그의 투자전략은 20년대엔 단기차익형이었다면, 30년대엔 가치투자자로 변신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 줄 말씀은 '자본주의 사회철학'의 핵심 문제입니다. 여러모로 댓글 하나로 다루기는 너무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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