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A가 내게 어느 사람B의 욕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근데 그 이유를 듣자하니 어이가 없습니다. 무슨 사회 통념에 어긋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법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일반 도덕에 어긋난 언행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A 본인 생각과 어긋난 짓을 했다는 겁니다. 원래 B는 이런 사람 아니냐. 그럼 이렇게 행동해야하는데 저렇게 행동한다. 고 말입니다.
듣는 저는 대략 멍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사람 원래 그런 사람이고 또 이번 일도 그 사람 답게 한겁니다. 물론 A가 서운해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지 마구잡이로 심한 욕을 퍼부어대고 악담을 늘어놓을 만한 짓은 아닙니다.
근데 중요한 건 저나 A나 B와 그렇게 각별히 가깝고 친한 사이는 아니라는 겁니다. 아니, 저희 그러니까 저와 A는 그 사람 얼굴과 이름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B는 나라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를 겁니다.
안녕하세요 얘기 좀 할까요
그렇게 나를 잘 안다고요
...
이름만 겨우 아는 사이에
어머나 그대랑은 정말
손끝만 스쳤다간 아주 난리 나겠어요
가인의 이번 솔로앨범 신곡 '진실 혹은 대담'의 일부 가사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해대는 사람들을 향해 얘기하는 가사라는데 사실 이런 일은 유명하지 않아도(위에 예시는 유명인을 들었지만), 심지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일어납니다.
참으로 황당스럽다 못해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나는 그냥 나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다른 사람들이 니가 이런 사람인줄 몰랐다느니 실망이라느니를 넘어서서 심지어 속았네 어쩌네 합니다. 근데 정작 나는 그 사람들 속인 적 없습니다. 연기도 한 적 없었고,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딱 잘라 말한 적도 없었죠. 그저 나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 사람들 하나하나 붙잡고 "그러니까 나다운 게 뭔데?"하며 중2병 클리셰스러운 대사를 내뱉고 싶은 심정일겁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봐왔던 가족들도, 심지어 나도 가끔 내가 누군지 헷갈리는데 당신들이 얼마나 나에 대해서 잘 아느냐고 그런 소리를 하는지 묻고 싶을 때도 있을 거구요. 심지어는 사람들마다 얘기가 다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 말이 맞다는 가정이 서자면 세상에는 이중 인격을 넘어서서 삼중, 사중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 하거나 아니면 도플갱어가 넘쳐나거나 최소 둘 중 하나겠죠.
당신이 보는 나는 혹은 그 사람은 진짜 그가 맞는 걸까요? 생각해봅시다. 일부 단면만 보고 멋대로 상상하고 틀을 짜맞춰 멋대로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단정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잘라버리려고 하지 않나요? 도대체 당신은 그 사람의 언행 어디에 화를 내고 있나요? 그 사람이 진짜 잘못을 저질러서? 아니면 당신의 상상을 파괴해서?
단정(斷定)이라는 한자는 끊을 단 자에 정할 정자를 씁니다. 이대로 풀이하자면 정해진 대로 잘라버린다는 얘기죠.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멋대로 틀지어버리고 틀에 어긋난다고 팔 다리를 잘라버리지는 않는지 이따금 자신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저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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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해도 인간은 인간을 결론내릴 수 없죠. 인간이 우주를 결론내릴 수 없는 것처럼. 다만 우린 언제나 별자리를 관찰하며 선을 긋고 그 선들에, 면들에, 이름을 붙이죠.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최선의 행동이겠죠. 인간은 우주를 완벽히 알 수 없듯이 타인을 알 수 없으니 결국 어떻게든 갖고 있는 정보로 해석을 하여 이름을 붙이고 이미지를 만들죠. 네, 언제나 그 과정으로 부조리와 거짓과 폭력이 생깁니다. 그러니 모두가 모두에게 최선의 행동을 기대하는 수 밖에 없어요. 폭력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지만, 최선을 다해 막은 폭력은 그 자체로 최선을 다한 무엇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