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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12/03 03:05:23
Name 곰주
Subject [일반] 그 남자와 그 여자, 그리고 결혼
1.
그 여자는 참 독특한 사람입니다.
일단, 말이 없고, 소심한데다가 그렇게 이쁘지도 않습니다.
성격은 딱 빅뱅이론에 나오는 너드들과 같은 성격입니다.

우리나라 제일의 대학에 아주 무난히 진학하여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그 분야 세계 제일의 대학에서 훌륭하게 박사학위를 마쳤습니다.

연애따위는 해본적도 없고, 남자와의 관계를 맺는 것은 의미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돈이야 내가 벌면서 자라면 된다. "어차피 인생 독고다이 아이가." 라고 생각합니다.

어느새 나이는 삼십을 넘어갔지만 결혼이나 연애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그런 여자입니다.



2.
그 남자는 참 독특한 사람입니다.
술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는데다가 대책없을 정도로 태평합니다.
여자는 이뻐야 여자다라고 하는 꼴마초적 생각에 사로잡힌 듯 해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성인권에 대한 생각도 해보는... 뭐 흔해 빠진 맨 중 맨 입니다.

대학은 뭐 그럭저럭 갔고, 기회가 되서 어렵사리 미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박사과정에 들어섭니다.

이여자 저여자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역시나 ASKY의 전철을 밟기도 하고,
혹은 굴러들어온 기회를 드립다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는...

약간의 중2병도 있는 듯한 오덕의 기운이 느껴지는...

나이는 삼십을 넘어갔지만 정신연령은 10대라고 착각에 빠진,
그러면서도 결혼은 최소한 어느정도 이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는 자가당착에 빠져있는 그런 흔한남자 입니다.


3.
둘은 그냥 얼굴만 어떻게 알게된 사이입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있어서, 그냥 술 좋아하는 이 동네에 거주하는 흔한 남자 일 뿐이고,
여자는 남자에게 있어서, 별로 맘에 둘 생각도 없었던 공부만 하는 너드 였을 뿐입니다.

둘은 어느날 길거리에서 만납니다.

두사람은 "우연히도" 스트레스를 만땅으로 받은 상태입니다.
두사람은 "우연히도" 술이 급 땡겼습니다.
두사람은 "우연히도" 그날이 술을 마실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날 이후로 두사람은 급격히 친해지고,

수년후 결혼하게 됩니다.



4.
남자에게 여자는 이상형도 아니었고 이쁜사람도 아니었고 마음을 확 다잡은 그런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여자에게 남자는 연락하는 것도 귀찮고, 생각하는 것도 귀찮고, 자신의 공부를 방해하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그 생각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은 듯 합니다.
두사람은 미칠듯이 다투기도 하고 삐지기도 하고 소리지르기도 하고 서로 때리기도 합니다.
주로 일방적으로 남자가 당하긴 하지만요.

그래도 두 사람은 잘 삽니다.



5.
시간이 지납니다.

의문이 듭니다. 왜 결혼했을까?
어찌보면 두사람의 추구하는 가치와는 전혀 상관없거나, 아예 서로 방해하는 존재일텐데 말이죠.


여자에게 묻습니다. "왜 결혼했나?"
여자가 답합니다. "그냥. 같이 있으니까 좋고, 생각하면 좋으니까."

남자에게 묻습니다."왜 결혼했나?"
남자가 답합니다. "그냥. 같이 있으니까 좋고, 생각하면 좋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둘에게 묻습니다. "왜 결혼했나?"
둘은 답합니다. "글쎄요. 왜일까요?"


수 년간 곰곰히 생각해보고 반복되는 질문에 지칠 때 즈음하여 두사람은 하나의 대답을 발견합니다.
"제 땡깡을 이해해 줄만한 사람인 것 같아서요."



6.
어떤 사람은 이해타산을 기준으로 결혼을 바라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치의 완성을 기준으로 결혼을 바라봅니다.
뭐가 어떻겠습니까. 기준은 누구에게나 다른 것을.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제 주변에 이상하리도 상대방을 (애인이든 배우자든) 찾는 여성분들이 많이 있는 상황에서
그 분들과 이야기 하면 그 한가지 공통정 때문에라도 참 안타까운 마음도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성분들이 찾고 있는 배우자에 대한 너무나 높은 기준 때문이라는 것도 아니고,
여성분들이 가지고 있는 애인 혹은 배우자를 바라보는 마인트가 문제다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수많은 여성 분들이 자포자기 한 듯해서 더 안타깝습니다만....


안타까움은 여성분들의 삶의 성공에 대한 열망에 기인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우리나라에서 지내오신 많은 여성분들은 사회적인 불평등을 몸소 받아오셨죠.
특히나 외국으로 나오실 정도면, 한국의 주류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생각되어지긴 합니다만,
그와는 별개로 여성분들은 자신의 성공에 대한, 그러나 그 성공은 우리나라의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을 수 있는
그런 수준의 성공에 대한 열망이 높으신 듯 하더군요.

그런 열망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몰아부치 듯 지내오니, 어느새 주위에 남자는 떨어져 나가버렸다...
라는 안타까움이 많이 보이더란 말이죠.



7.
해봐서 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큰 오만일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주변에 누군가가 보인다. 일단 기회를 만드세요. 그리고 이야기해 보세요.
맘에 안든다? 그럼 패스~ 다음 분~. 상처 받으면 어때요? 상처도 추억이 되지 않나요?

그러다 이사람이다 싶으면 잡으세요. 혼신의 힘을 다해서. 후회없도록.
만약 상대방이 그렇게 다가온다면 진정성을 가지고 확실하게 대하세요.
관계를 발전시키거나, 혹은 그것이 아니거나.


결혼은 삶입니다. 삶은 철학이구요. 그렇기에 철학적 동질성을 느끼는 상대와 지내는 것은
비록 굴곡은 있을 지언정, 그것을 통한 재미와 행복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제 옆에 붙어있다는 것.
그만한 행복이 어디있을까요.






물론 오늘 지금 이순간도 와이프가 열심히 땡깡을 부리고 있다는 것은 함정입니다만. 흐규.


덧> 미국에서 지내다 보니, 왜이리 어여쁜 싱글 여자분들이 많이 보이는지...이것은 결혼한 유부남의 눈에 보이는 착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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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03 03:17
수정 아이콘
아래 글과 연관이 좀 있는 듯 하네요. 저는 이 문제는 그냥 단순하게 '현대 문명과 인간의 동물적 본능간의 불일치' 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짝 찾아서 가족 이루고 사는 것에 다한 욕구는 애초에 사회에서 30 년 공부하고 하루에 15 시간씩 일하면서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고 싶은 (문명 사회에서만 존재하는) 욕구와 강하게 상충하는 성질이 있지요. 가부장 사회에서는 이 욕구 충족을 남자들에게만 열어놓음으로써 어영부영 넘어갔었지만, 성평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이 욕망을 개인이, 특히 여자가 둘 다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이게 뭐 자아실현의 욕구를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지라 누가 누구한테 양보를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죠. 전 양보 받았고, 그래서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걸 강요할 수는 없지요
13/12/03 03:23
수정 아이콘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특히나 현대시대에 들어서면서 사회 구성원간의 역할 분담과 관계가 중요해지면서 오히려 사회가 인간의 본능 뿐 만아니라 인간의 사고마저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가는 것이 그 문제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보수적 관점이든 진보적 관점이든간에 사회가 미치는 개인에 대한 영향이 고전적 시각으로는 그 한계성이 분명히 드러난다고 봅니다.

따라서 개인적 차원으로서는 욕망의 재정립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보고, 사회적 차원으로서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어느쪽도 쉽지는 않겠지요.
대지의저주받은사람들
13/12/03 03:47
수정 아이콘
두 가지/ 내지는 세 가지 욕구를 이루고자 하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는 게 점점 더 분명해져 보입니다. 그런데 Orbef님께선 불가능의 영역 두 가지를 가지신 위너이시군요...(아니 그리고 벌써 미국분들이 일어나실 시간에 나는 무얼 했는가!)
13/12/03 03:52
수정 아이콘
저는 반칙 (21 세기인데 가부장!) 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다?
13/12/03 03:18
수정 아이콘
저도 막 결혼한 유부총각이지만 미국나와보니 눈이 휙휙 돌아가더라구요. 시골 깡촌도 이런데 대도시는 어떨지 한 번 가보고 싶네요.
13/12/03 03:24
수정 아이콘
시골깡촌에서도 살아보고 도시에서도 살아봤지만, 어딜가도 한국 싱글 여성의 비율이 높은 것은 동일하더군요.
오렌지샌드
13/12/03 08:18
수정 아이콘
그런 열망으로 살아오다보니 필요한 줄도 몰랐고 기회를 잃은 분들도 상당수 계실 것 같습니다. 당장 생각해봐도 글곰님 와이프 분과 비슷한 제 동기가 떠오르네요 흐흐. 남자엔 정말 관심없고 한성깔하는 친구였는데 유학가더니 결혼한다 하더군요.
조심스럽게 이의 제기하고 싶은 부분은, 글곰님이 들으신 '싱글로 살고 있는 이유' 가 정말일까요? 우리나라의 여성들 중 성공과 자아실현에 뜻을 둔 사람들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자신이 완벽해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인정하기보다 납득될만한 말로 포장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스스로는 이게 뭐가 어때서! 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라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되는 일은 있을 수 있잖아요. 남녀관계나 결혼에 관한 문제는 그런 종류의 민감한 부분에 해당하지 않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성적인 이슈나 권력관계에 대해서 과도기에 있는 세대이다보니 함부로 말할 수 없는 - 일단은 보수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 측면도 있구요. 남들에게 꼬치꼬치 털어놓고 싶지 않은 개인의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정말 관심없고 생각없는데 솔직히 말하면 더 잔소리 들을까봐 관심있는척 하거나 다리 좀 놔달라 하는 여자분들도 종종 있죠 ^_^
13/12/03 08:26
수정 아이콘
결혼은 삶입니다. 삶은 철학이구요. 그렇기에 철학적 동질성을 느끼는 상대와 지내는 것은
비록 굴곡은 있을 지언정, 그것을 통한 재미와 행복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문장 너무 좋네요.
미오X히타기X하치만
13/12/03 08:48
수정 아이콘
본문의 1,2번을 섞으니 제가 나오는데요..
그런데 저는 왜 결혼이라는 방식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건지..크크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나 경험 때문이겠죠?
그래도 이왕에 (이상형이 아니더라도?) 결혼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겨 지금 옆에 함께하는 이가 있다면, 시간이 지나더라도 처음의 그 마음을 잃지 말고. 옆의 그 사람을 아끼며 손잡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결혼을 했거나 앞두고 있는 제 친구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말이죠.
'당신들은 그럴 의무가 있어!'라고 말하고 싶다면 오지랖이 좀 넓은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지는 모르겠지만요. 크크
서늘한바다
13/12/03 09:42
수정 아이콘
아.. 어제 남편과 한 대화가 생각나네요.
남편이 이박삼일동안 집을 비우고 난 후 돌아온 밤이었습니다.

"남편이 없으니 슬펐어?"
(고개만 끄덕... )
"남편의 소중함을 깨달았지?"
(피식...)
"왜 피식이야?"
"남편은 항상 소중하니까..."

저한테 왜 결혼했냐고 물어보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니까... 남편을 만나고 난 후로 세상에 남자는 오로지 남편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더군요.
13/12/03 09:47
수정 아이콘
???!!!

대단하십니다!

제 마님은 어제 술 먹으러 미국 동부에서 중부까지 날아온 옛 술친구와 같이 술 마시러 나가면서 '나 만취할 거니까 너는 술 먹지 말고 딱 기다리고 있다가 이따 차갖고 오쇼' 라고......

물론 저도 제 친구들과 놀 때는 똑같이 대합니다? 그리고 제가 더 자주 술을 마시니까 WINNER
13/12/03 10:25
수정 아이콘
음 울 애엄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본인만 알고 있겠지만 말로만이라도 그런 이야기 들어보고 싶군요.
말로는 세상에 없는 꼴통이라는 소리를 하고 다니니... T.T
HOOK간다
13/12/03 11:31
수정 아이콘
제 와이프한테도 물어보고 싶군요 -0-;;;

그냥 '오빤 내 가정부?' 이런 대답나오면 아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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