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다른 취미가 없는 저는 책을 읽는 게 그나마 유일하게 하고 있는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도 이것 저것 나름대로 꽤 많은 책을 읽었는데 올해 읽었던 책들 가운데서
[A House in the Sky]라는 책이 가장 인상이 깊어서 이 책에 관한 얘기를 좀 해볼 까 합니다.
이 책을 쓴 아만다 린드아웃은 캐나다의 시골 마을인 레드디어에서 자랐습니다. 그녀의 가족사는 순탄하지가 않았는데 어려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혼을 했고 새로 들어온 어머니의 남자 친구는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는데 가정폭력을 일삼는 사람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거의 왕따다시피 했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나 계획도 없었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남자친구와 함께 대도시인 캘거리로 들어옵니다. 그녀는 밤에 웨이트리스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을 착실히 저축하면서 미래를 설계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훌쩍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고 돈이 다시 떨어지면 캐나다로 되돌아와서 다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중남미 국가를 시작으로 해서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을 돌아다녔으며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처럼 여행자들에게는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하는 나라들까지 두루 여행을 다녔습니다. 여행은 마치 중독처럼 그녀에게 다가왔지요. 그 동안 사진작가가 꿈인 나이젤이라는 호주 출신 남자를 만났고 그녀 또한 사진 기술과 포토샵 프로그램을 배워서 프리랜서 스타일로 사진도 찍고 기삿거리를 작성해서 작은 잡자 같은 곳에 기고도 하면서 계속해서 여행을 했습니다. 이란에 소재한 한 TV 방송국회사에서 파견한 이라크 특파원으로 일하기도 했고요.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는 다음 여행지로 아프리카의 소말리아를 선택합니다. 가혹한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죠. 누구나 말리는 소말리아로 여행을 떠난 커플은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 교외에 있는 한 난민 촌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그곳을 방문하던 중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납치를 하고 몸값을 챙기는 일당들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예전에 이라크에서도 이런 식으로 잠깐 붙들렸다가 반나절 만에 오해를 풀고 빠져나온 경험이 있던 그녀는 이번에도 쉽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비록 그녀의 바램과는 달리 문제 해결에 15개월이나 걸리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납치 이후 그녀의 삶은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납치단은 그 둘의 몸값으로 한 사람당 백만 불씩 모두 이백 만 불을 요구했지만 캐나다나 호주 정부는 공식적으로 납치범들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는 다는 원칙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고 아만다의 가족들은 모두 어렵게 생계를 꾸리고 있는 상황이라 백만 불이라는 몸값을 선뜻 지불할 수 없는 처지였지요. 생각처럼 돈이 쉽게 들어오지 않자 그녀를 고문하고 강간하고 구타하는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 됩니다.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는 이곳 저곳 거처를 옮겨가면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게 됩니다. 책에는 1인칭 시점으로 그녀가 겪었던 처절한 감금생활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의 내용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가운데 하나는 감금된 지 5개월 정도 지났을 때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화장실 창문을 통해서 밖으로 탈출했을 때의 이야기 입니다. 그 둘은 감금 시설 밖으로 빠져 나온 뒤 무작정 모스크를 향해서 뛰어갑니다. 감금 기간 동안에 납치단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나은 대접을 받으려고 이슬람교로 개종을 했기에 모스크라면 자신들을 납치 단원들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기도를 위해 모스크에 모여있던 주민들은 그들을 쫓아 온 납치 단원들이 그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다시 끌고 가는 동안 조금도 그들을 위해 나서주질 않고 방관하기만 했습니다. “우리는 무슬림 형제들이다. 저 사람들은 우리를 감금하고 폭행했으며 강간했다, 제발 우리를 도와달라”고 아무리 외쳐보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직 한 무슬림 여성만이 그녀를 위해 몸을 던져 납치 단 앞을 가로막았지만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다시 감금시설로 끌려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은 인간은 원래 악하게 태어나는 것 같다는 것과 종교라는 것이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비 인간적인 모습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도록 하는 것 같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납치단원들에게는 국가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 소말리아에서 내전의 상처를 입고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납치에 뛰어들었다는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기본적으로 아무런 잘못도 없고 저항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단지 감금만 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끔찍한 일들을 거리낌 없이 자행했다는 점에서 인간성이라는 외피의 두께가 상황에 따라서 얼마나 얇아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15개월의 감금 생활에서 막 풀려난 후의 아만다와 나이젤
그리고 이슬람교라는 종교는 교리상으로는 “같은 형제를 사랑하고 어려움에 처한 무슬림 형제들을 도와야 한다”고 설파하면서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인 납치 단원들이 비인간적인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도덕적, 심리적 제약도 제공해 주지 못했으며 오히려 “너의 오른 손이 소유한 것(포로나 노예)는 너의 뜻대로 처분해도 좋다”는 식의 교리를 통해 그러한 잔악한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임으로써 과연 종교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해악을 끼치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역시 “가장 강한 것은 인간의 정신과 의지이다”라는 점일 것 같습니다. 완전히 실성을 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극한의 상황에서도 글쓴이가 이를 이겨내고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언젠가는 다시 자유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굴의 의지 때문이었으며 그러한 가운데서도 납치단원들의 입장과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였고 나중에 자유의 몸이 되고 난 뒤에도 소말리아의 아이들과 여성들의 교육을 위한 재단을 만들어서 그들을 돕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에서 나타나는 주인공의 이해와 용서, 그리고 관용의 정신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절망의 구렁텅이에 내려 비치는 한 줄기 빛이 아닌 가 생각해 봅니다.
절망도 우리 인간이 제공한다면 희망 역시 우리 인간에게서부터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녀가 소말리아에 처음으로 세운 학교의 이름은 소말리아어로 “Rajo”, 즉 “희망”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