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2/08/31 01:13:46
Name 진돗개
Subject [일반] 잠시 접다.
잠시 접다.


좀 늦었네? 언제 불렀는데 이제야 오냐. 응? 밖에 바람이 많이 분다고? 어쩌겠냐 태풍님이 지나가신다고 길을 비켜라는데, 사람님이 그런 바람정도엔 휩쓸려 줘야지.
밖에 부는 바람이 문제가 아니야, 내 인생에도 커다란 태풍이 몰아치는데, 그깟 바람따위에 이렇게 늦어서야 되겠냐 이 말이야.
왠 헛소리냐고? 놀라지마라, 이 형님도 이제 드디어 취업이라는 사회의 벽을 넘었다는거 아니겠냐.
축하할일이지 그래, 암. 축하해야되는데, 왜이래 생각이 많냐.


아, 이제 직장도 잡았겠다. 걱정거리가 없어야되는데 이상하게 딱 취업하고 나니까 생각이 더 많아지냐.
한없이 놀면서 반백수로 있을땐, 그냥 무슨일이든지 가져와봐 다 헤치울수 있으니까! 같은 호기 반에,
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벌꺼다! 라는 객기 반이었는데.
결국 돈에 좇아 나도 한풀 꺽이게 되는구나. 싶다.


웃기지 않냐? 어릴때 장래희망 쓰라고하면, 뭐하지? 하는 생각이랑, 뭘해도 결국 먹고 살 순 있을거야. 같은 생각이 들더니
스물 셋, 넷 때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아도 돈벌이는 되겠지. 라는 생각이 들더니
딱 스물 다섯, 반오십 지나고 나니까. 아.. 이제 뭐해먹고 살지, 하는 생각으로 바뀌더라.
넌 안그렇디? 난 그렇던데.


진짜 올해 초만해도 봐라, 내가 너한테 했던말이 뭐냐.
난 글쓰고 사진찍으면서 책한권 내서 돈벌꺼다! 라면서 큰소리 떵떵쳤잖아.
어떻게 보면 정말 패기가 쩔었다. 진짜.
근데 그 패기 하나로는 참 어렵더라.


아, 돈이야기 하는거 정말 싫은데, 어떻게 니만보면 돈이야기가 먼저나오냐.
한잔하자, 오늘은 술이 좀 쓰네.


야, 벌써 우리도 이십대 중반이다. 아니지 엄밀히 따지면 중후반이지 뭐,
갑자기 왜 직장생활한다고 설쳐대냐고? 어쩌겠냐, 돈이 없는데.
솔직히 나도 글쓰고 사진찍고 하면서 살고 싶지.
누구 말마따나 사진기 하나 들고, 노트 하나 들고 다니면서 전국에 다 발도장 찍어보고, 느낀점만 적어도 백과사전 하나 분량은 나올꺼다. 라고 믿으면서 반년정도 보내봤는데,
참 돈이라는게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렇게 돌아다니는거 하나하나도 돈이 들더라고.
남들한테는 글쟁입니다. 라고 이야기하기에도 이뤄놓은 결과물이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 하나라도 더보려고 집문밖만 나가도 하나부터 끝까지 돈이 들어가니,
결국 수중에 남는건 없고, 남들이 보기엔 한량에 백수로만 보이고, 집에서는 눈치만 보이고.
결국 뭐 그렇게 살다가 결론은 이쪽으로 온거지 뭐.


솔직히 말하면, 니들도 한몫했다.
다들 돈없이 술한잔하고, 없는돈 쪼개가면서 같이 놀다가 이제 하나, 둘 직장생활하고, 월급받고 살면서, 오히려 얻어먹고, 돈없어서 빌빌대는 내 꼴을 보다보다 못해,
직장생활한다고 설치는거 아니겠냐.


어렸을땐 막연히 자기가 하고싶은걸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기만 하더니, 이젠 정말 너무 대단해 보인다.
아! 자유로운 영혼이 이제 한곳에 얽메이게 되는구나. 어쩌겠냐, 세상사 모두 이런걸.


그래도 걱정마라 임마, 내 꿈을 잠시 접은거지 아주 지워버린게 아니란말이야.
결국 난 내가 하고 싶은걸 하면서 살꺼다.
지금은 잠시 거쳐가는거라고 생각하자.

강을 하나 건너는데도 징검다리가 몇개씩 있는데,
난 이제 겨우 하나 건넜을 뿐이잖아?

일단, 지금 현실에 맞춰서 즐겁게 살아야지.


미래에는, 장미빛 인생만.



계산은 니가해라. 아직은 백수잖니.


---------------------------------------------------------------------------------------------------------------------------

취업 하게됐습니다.

기쁜일인지, 슬퍼해야되는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꿈을 잠시 접고서, 생업의 전선으로 뛰쳐 나갑니다.

제 인생의 반의반정도 차지하는 pgr에는 꼭 글하나 남겨야겠다 생각하여, 이리 글을 올립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2/08/31 02:32
수정 아이콘
저와 같은 나이이시네요 반가워요:)
저도 올초에 취업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었구요. 이제 어떻하지 싶나하고 아직까지 생각중이에요.
꿈이 있다는거 아무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다는게 있다는거니. 25..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해요.
님말대로 잠시 접은거지 지운게 아니잖아요. 앞으로의 계획을 잘 세우고 실행하면 좋은 결과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힘내자구요^^
쎌라비
12/08/31 02:51
수정 아이콘
취업 축하드립니다. 아직 충분히 어리신데요 뭐.
리리릭하
12/08/31 03:35
수정 아이콘
저도 짜치는 재능에 음악듣고 글쓰고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지만, 현실은 매달 돌아오는 월급날만 기다리면서 음악도 글도 모두 잊어가는 생활을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인생이라는건 결국 하고 싶은걸 하는것보다 일단은 배를 채우는게 중요한가봅니다.
12/08/31 10:29
수정 아이콘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걸로 돈 버시는 분들은 대단하신거 같아요;
12/08/31 10:48
수정 아이콘
저번에 술먹고 친구랑 대화하는 비슷한 글 쓰신적 있으시지요?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대로네요 문체가 크크크크

취업 축하드립니다! 이런글 좋아요.
PoeticWolf
12/08/31 11:00
수정 아이콘
오랫만입니다. 개과님.

비슷한 나이 때에 비슷한 고민을 한 현재 아자씨로서 먼저 응원드립니다.
저도 글로 먹고 살고 싶었던, 그렇게 될 줄 알았던 사람이었던지라, 그 꿈에 비해 너무나 엉뚱했던 첫 직장(영어 강사)에서의 느낌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뭔가 나는 여기 속해 있지 않는다는 느낌도 들었었고, 그래서 계속 겉돌게 되고, 모든 업무 지시, 해야 할 일, 만나는 사람, 처리할 서류 내용 등이 전부 글감으로 보여 머릿속에서 소설은 계속 집필되는데, 그만큼 실제 업무는 놓치게 되고... 그러다보니 업무에 시간을 더 쏟게 되어서 머릿속에 있던 소설들은 어느 새 흔적조차 없고... 그리고 그게 한 해 한 해 쌓여서 일 못하고 공상하는 게 습관이 되고 제 정체성이 되어버렸네요.

그런데 계속 꿈꾸다보니 그 비슷한 쪽으로 방향이 서서히 돌아가더라고요. 무능력만 빛나던 학원가에서 나와 이런 저런 경로로 번역을 하게 되고, 잡지에 글을 쓰게 되고, 편집장도 해보게 되고, 지난 겨울엔 PGR에 도배질을 하기도 하고... 그게 제가 꿈꾸던 '작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긴 하지만 앞으로 이런 저의 행보가 저를 어디로 이끌까 기대가 되기도 하고요.

그렇게 돌고 도는 와중에 느낀 게 있다면 글이란 게 원기옥이랑 비슷하다는 거에요. 계속해서 내 안에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게 어느 날 우루루 백지위로 타자 속도가 감당치 못할 정도로 쏟아지죠. 그런데 손오공이 손을 들지 않으면 아무리 기를 주고 싶은 사람이 기를 보내도 모아지지 않는 것처럼 내가 그런 공상을 하지 않으면 일상의 삶이 아무리 글감을 보내줘도 아무런 '글'을 쌓지 못해요. 그 손을 들려고 손오공이 빈틈을 보이게 되고 상대에게 얻어 맞고 그러는 것처럼, 그런 글감을 하나하나 모으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것 또한 과감히 포기하게 되고요. 그런데 그런 공상을 하게 하고, 포기에 대해 과감하게 하는 건 바로 글에 대한 꿈이거든요. ('인류 작가'가 되는 게 꿈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만...)

그러니.. 잠시라도 접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마세요.
다만 사진기 들고 갈 여행지로 선택한 곳이 다를 뿐, 이미 여행은 시작된 겁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8951 [일반] [긴급] 국민대, 세종대 등 43개 대학 '정부 재정 지원 제한' [30] 제크7950 12/08/31 7950 0
38949 [일반] [잡담] 나의 일본드라마 BEST 15 (1) [58] 슬러거15352 12/08/31 15352 0
38948 [일반] 돌아왔습니다.. [33] Hook간다6265 12/08/31 6265 1
38947 [일반] KARA 일본 솔로컬렉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고 있습니다. [3] 효연짱팬세우실3823 12/08/31 3823 0
38946 [일반] 칠종칠금(4)-그들의 선택 [6] 후추통5320 12/08/31 5320 2
38945 [일반] 나란 인간 눈치빠른 인간 [53] 바람모리5823 12/08/31 5823 13
38944 [일반] 보험이야기 (4) 생명보험 vs 손해보험 [14] 블레이드4426 12/08/31 4426 2
38943 [일반] 로엔의 새로운 걸그룹 FIESTAR [18] 5893 12/08/31 5893 0
38942 [일반] 새누리당 대표, "결혼을 권장해 성범죄를 줄이자" [58] Nair6400 12/08/31 6400 1
38941 [일반] "피지알씨 직장 가다." 제2편 당신의 시급은 안녕하십니까? 제2부 월 근무시간의 비밀 [18] 터치터치4381 12/08/31 4381 2
38940 [일반] 한국의 교육에는 답이 있을까요? [83] bachistar4654 12/08/31 4654 1
38939 [일반] [해축] 금요일의 BBC 가십...(심판의 날?) [68] pioren4854 12/08/31 4854 0
38938 [일반] 해외 축구소식 몇개 [27] wizard4494 12/08/31 4494 0
38937 [일반] 대법관 임기 이후의 정치활동 (부제: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계속될 수 있길 바라며) [49] 곰주4013 12/08/31 4013 0
38936 [일반] 퓨쳐워커와 드래곤라자의 일본판 일러스트 + @ [28] Cand12726 12/08/31 12726 0
38934 [일반] [해축] 2012~2013 챔피언스리그 조 추첨 결과 입니다~ [51] 꼴통저그4796 12/08/31 4796 0
38933 [일반] 잠시 접다. [6] 진돗개2855 12/08/31 2855 1
38932 [일반] 전역하고 오겠습니다! [21] Whych3656 12/08/31 3656 0
38931 [일반] 경실련이 이명박 대통령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5] 어강됴리5513 12/08/31 5513 0
38930 [일반] [해축] 레알 마드리드 MF 에스테반 그라네로 QPR 이적 확정 [56] 삭제됨5503 12/08/30 5503 0
38929 [일반] [영화공간] 우리 시대, 한국의 아름다운 중견배우들 [31] Eternity6250 12/08/30 6250 2
38928 [일반] 20세기 가장 위대한 발명 10선 [26] Neandertal12853 12/08/30 12853 0
38927 [일반] [정치]문재인 후보가 충북에서도 기어코 1위를 했네요. [42] 아우구스투스5322 12/08/30 5322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