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특성상 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영화공간] 2012년, 가장 주목해야 할 조연 배우 7인
오래 전, 그러니까 2008년 즈음 한국의 조연 배우들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당시에 썼던 배우들이 유해진, 이문식, 오달수, 윤제문, 김뢰하, 안내상 등이었다. 이렇듯 한번 조연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쓴 기억이 있어서, 오늘은 대한민국 최고의 조연 배우들이 아닌 '2012년 가장 주목할 만한' 이른바 최근 1~2년간 가장 '핫'한 활약을 펼친 조연 배우 7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다만 기존의 유명 조연 배우 혹은 중견 배우 가운데서도 올 한해 특급 활약을 펼친 경우에는, 본문에 포함시켰음을 밝혀둔다.
1. 류승룡 - 2012년, 관객들을 매료시킨 치명적인 매력남
류승룡은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중견 배우이다. 내가 류승룡이란 배우의 존재를 처음 인식하게 된 것은 2006년 장진 감독 작품인 <거룩한 계보>. 이 영화에서 주인공 동치성(정재영)의 친구 '정순탄'으로 등장하는 그는 특유의 낮은 저음으로 동치성의 의리있는 친구 순탄역을 소화해내며 관객들의 뇌리에 류승룡이란 배우의 얼굴을 각인시킨다. 그 후, 다양한 작품을 거쳐 최근 <고지전>에서는 국군 악어중대에 맞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북한군의 수장 '현정윤' 역으로 열연하고 <최종병기 활>에서는 포스 넘치는 청나라 적장 '쥬신타' 역으로 분하며 관객들에게 멋진 존재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해 2012년,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미워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의 카사노바 '성기' 역을 맡으며 관객들의 배꼽을 뒤집어 놓기에 이른다. 감히(?) 올해 내가 본 영화 캐릭터 중 최고의 조연 캐릭터라고 얘기할 수 있는 '성기' 역의 류승룡은 관객을 어떻게 공략해야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배우이다. 겉으로 보이는 남자답고 무뚝뚝한 마초적 이미지와 다르게 그의 연기 세계는 의외로 섬세하고 치밀하다. 이런 점이 그를 2012년 가장 주목받는 조연 배우 중 1인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주연의 존재감을 뛰어넘는 조연 배우. 그는 이미 대표 조연 배우라는 수식어가 부족할 정도의 커다란 배우로 성장했다.
대표작 :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최종병기 활>(2011), <고지전>(2011) 등
2. 조진웅 - 배우는 스펙트럼으로 말한다
배우 조진웅을 언제부터 봤는지 잘 기억은 나질 않지만, 적어도 대중들에게 그의 존재감을 어필한 작품들은 영화가 아닌 드라마 쪽으로 기억한다.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의 '부르터스 리', <추노>의 무사 '곽한섬', <뿌리깊은 나무>의 호위무사 '무휼' 역 등을 맡으며 대중들에게 때로는 친근하고 재밌는, 또 때로는 든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지도를 쌓아왔다. 내 개인적으로는 조진웅이라는 배우를 2009년 <국가대표> 해설가로 처음 보게 됐는데, 처음 보는 배우였고 비중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영화 속 그의 감칠 맛 나는 해설이 귀에 들어왔고 그의 캐릭터가 인상에 남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아주 작은 배역이라도 그 배역의 개성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뚝심있는 배우가 아닌가 싶다. 그리하여 최근의 <고지전>, <퍼펙트 게임> 등을 거쳐 올 상반기 최고의 흥행 영화인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주인공 최형배(하정우)의 라이벌 조폭 김판호 역으로 본인의 존재감을 폭발시킨다. 사실 곽한섬, 무휼 등의 든든하고 의리있는 선역 캐릭터만 기억하던 내게 <범죄와의 전쟁>의 김판호를 열연한 조진웅의 모습은 이른바 컬쳐쇼크(?)였다. 그 이전에 그가 연기했던 선역들이 깡그리 지워질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을 선보인 것. 역시나, 주연이든 조연이든, 좋은 배우는 스펙트럼으로 말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입증한 배우가 바로 조진웅이다.
대표작 :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퍼펙트 게임>(2011), <고지전>(2011) 등
3. 조성하 - 묵직하고 진중한 돌직구의 소유자
조성하는 평범한 이목구비를 지녔다. 물론 약간 매서운 눈매를 지니긴 했지만, 지나가다가도 흔히 볼 법한 그런 매서운 인상의 중년 남자의 느낌?
이는 조연 배우로서 상당히 큰 아킬레스 건일 수 있다. 유해진, 오광록, 박철민, 오달수 등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조연 배우들의 그런 인상이 아닌 매우 평범한 중년 남자의 느낌을 가지고 있고 이는 전형적으로 연예계에서 주목받기 힘든 외모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약점을 그는 오직 한가지, '묵직한 연기력'으로 극복했다. 영화 <황해>는 분명, 하정우와 김윤석의 카리스마 대결이 가장 큰 축이고 볼거리이긴 하지만, 사실 이영화는 하정우와 김윤석의 <황해>이자 조성하의 <황해>이기도 하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 최고 배우의 반열에 올라선 김윤석, 하정우를 상대로 한치도 밀리지 않는 묵직한 카리스마를 선보인 조성하의 연기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자신의 부하들에 의해 지하 창고로 잡혀 온 구남의 면전에 대고 나직한 목소리로 정체를 추궁하던 그의 얼굴은 <황해>의 또다른 발견이기도 했다. 물론 그는 <황해> 이전에도 많은 영화에서 단역과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이런 그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이렇듯 대중들에게 검증되지 않은 배우를 당당히 <황해>의 한 축에 세운 나홍진 감독의 눈썰미 또한 대단하지만 결국 그런 기대에 대한 부담감을 이겨내고 본인의 진가를 120% 발휘한 것은 결국 배우 조성하의 힘이다. 어찌됐든, 이 영화를 계기로 연기력과 존재감을 인정받은 그는 <화차>, <알투비 : 리턴투베이스> 등에서도 안정적이고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순항 중이다. 이른바, 우리 영화계의 오승환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배우 조성하의 묵직한 돌직구를 또 한번 기대해본다.
대표작 : <황해>(2010), <화차>(2012), <알투비 : 리턴투베이스>(2012) 등
4. 김희원 - 그에게서 제2의 송강호를 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글은 배우 김희원을 타켓(?)으로 한 글이기도 하다. 즉, 애초에 김희원에 대한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미루고 미루다 보니 김희원 못지않은 새로운 조연 배우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 참에 그럼 다같이 얘기해보자, 뭐 이런 식이 된 것이다. 사실 배우 김희원이 대한민국 영화판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제대로 못 박은 것은 <아저씨> 이 한편이 유일하다. 그 이후에 찍은 <마이웨이>에서는 역할의 비중이 너무 작았고, <빛과 그림자>는 드라마이므로 적어도 영화판에서는 조금 더 검증을 받아야 하는 배우가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편의 영화만으로 주목받은 그를 이 글의 메인 이벤터(?)로 세우고자 하는 이유는, 그의 연기에서 과거 <넘버3> 시절의 송강호의 향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송강호의 '연기'가 아닌 송강호의 '향기'. 송강호의 연기에 대한 오마쥬나 차용이 아닌, 배우 김희원 자체의 향기가 어딘가, 초창기 송강호와 닮아 있다는 얘기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가 <아저씨>를 통해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악역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한국 영화계의 악역 캐릭터들은 거의가 카리스마와 포스로 무장한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다. <타짜>의 아귀, <공공의 적>의 조규환, <인정사정볼 것 없다>의 장성민, <놈놈놈>의 창이 등 최고의 악역 캐릭터들은 모두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와 포스로 무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아저씨>에서 김희원이 연기한 악당 '만석'은 다르다. 어딘가 허술하면서 조금 웃기기도 하고, 그런데 또 보면 볼수록 사악하고 잔인한, 종잡을 수 없는 악당. 마지막 원빈과의 '방탄 유리씬'에서 죽기 직전까지 웃음을 뽑아내던 그의 연기 내공은, 다른 조연 배우들과는 '급'이 달라 보였다. 당시 많은 이들의 <아저씨>에서의 원빈의 카리스마 넘치는 호연에 찬사를 보냈지만, 내 눈에는 원빈의 연기보다도 김희원의 연기가 더 눈에 들어왔다.
이른바 지금까지 없었던 캐릭터를 일개(?) 조연 배우가 창조해 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이 지점에서 그는 과거의 송강호와 닮아있다. 더불어 송강호의 그 유명한 <넘버3> 연기가 본인의 치밀한 계산과 노력에서 나온 것처럼, 김희원 또한 본능이나 감에 의지해 동물적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 치밀하게 계산하고 연구해가며 캐릭터를 완성해가는 스타일이다. 결국 이 점이 무섭다고 본다. <아저씨>에서의 연기가 자신의 원래 성향과 본능에 의지한 반짝 연기였다면, 앞으로를 기대할 필요가 없겠지만, 디테일한 계산과 치밀한 연구에서 나온 캐릭터라는 사실이 그의 발전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배우 김희원, 과연 그가 어디까지 발전하고 치고 올라갈지, 이제부터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대표작 : <아저씨>(2010), <마이웨이>(2011), 드라마 <빛과 그림자>(2012) 등
5. 조정석 - 2012년 가장 핫한 차세대 조연 배우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뜩이' 조정석을 보며 느꼈다. '어라? 이놈 물건일세?'
이 영화 한편으로 충무로 최고의 블루칩 조연 배우 중 하나로 발돋움한 조정석은 분명 무서운 신예이자 다크호스이다. 조정석이 연기한 납뜩이 역은 정말,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내게 만들고 또 왠지 모를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유쾌하고 능글맞은 캐릭터였다. 일종의 <넘버3> 송강호의 오마쥬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그의 연기는 어설프지 않았고, 또 신선했다. 물론 이 하나의 캐릭터를 통해서 그의 연기력이 뚜렷하게 입증되거나 증명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배우로서 그의 진정한 무서움은 코믹함이 아닌 '영리함'에 있다. 사실 코믹함으로만 치자면, 대한민국 조연 배우들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배우들이 차고 넘쳐난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조연 배우들이 대체로 '코믹 연기'로 자신들의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젊은 배우 조정석의 가장 뛰어난 점은, 영리한 캐릭터 포지셔닝으로 관객들과 소통할 줄 아는 배우라는 점이다.
그는 관객들이 자신의 연기를 보며 어느 지점에서 공감을 할지, 또 자신의 어떤 말투와 행동에서 배꼽을 잡을 지에 대해 잘 아는 똑똑한 배우라고 여겨진다. 즉, 자신도 모르는 본능적인 코믹연기에 의해, 의도치 않게 대중들을 웃기는 '조커' 박명수옹과는 다르게, 조정석은 관객들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웃겨야 할 지점에서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고 싶은 지점에서 관객들을 울릴 수 있는 재능은, 그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능력이다. 이와 더불어, 드라마 <더킹투하츠>에서 왕실 근위 중대장 역으로 전혀 다른 연기를 선보인 그는, 앞에서 소개한 김희원처럼 철저히 준비하고 계산하는 배우이다. 솔직히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배우가 이 정도의 감각을 가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다만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은, 더 많은 작품을 통한 차세대 조연 배우로서의 검증일 것이다. 과연 다음 작품에서도 관객과 소통하는 놀라운 감각을 보여줄 것인지, 이제 공은 그의 손에 넘어갔다. 어찌됐든 지금 현재, 충무로의 차세대 블루칩 조연 배우로 성장한 조정석의 승승장구를 앞으로도 기대해본다.
대표작 : <건축학개론>(2012), 드라마 <더킹투하츠>(2012) 등
6. 오달수 - 말이 필요없는 미친 존재감의 씬스틸러
사실 여기에 오달수를 넣는 것은 밸런스 붕괴다. 이른 바 지금까지 소개한 배우들이 최근 1~3년 들어 주목받기 시작한 배우들이라면, 오달수는 유해진, 이문식 등과 함께 대한민국 영화계를 이끌어 온 대표 조연 배우이다. 다만 그를 오늘 글에 넣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의 경력을 떠나서, 2012년 가장 활발하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장 핫한 조연 배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달수를 빼놓고는 2012년의 한국 영화판을 얘기할 수가 없다. 사실 오달수가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영화는 <올드보이>로 벌써 십년 전이다. 이 영화에서 오대수(최민식)의 이빨을 뽑기위해 고군분투하던 사설감옥 주인 철웅 역을 인상깊게 연기했던 그는, 이후 <달콤한 인생>, <주먹이 운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구타유발자들>, <음란서생>, <놈놈놈>, <박쥐>, <방자전>,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
, <도둑들> 등 말 그대로, 2000년대 한국 영화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대표작들만 추린 것이 이정도지, 그 외에 작품들까지 전부 포함시키면 정말 셀 수가 없다. 이렇듯 배우 오달수가 오랜 시간동안 감독과 대중들에게 사랑받으며 살아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영화 속 캐릭터와 스스로의 존재감 사이의 적절한 줄타기에 있다.
사실 대한민국의 많은 조연 배우들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영화 속에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배우 스스로의 이름을 보여준다는데에 있다. 예를 들어, 배우 성동일의 경우, (<추노>의 천지호를 제외하면) 그가 어떤 작품을 하든, 그는 성동일이다. 그는 캐릭터로 재미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성동일이란 배우 자체의 개인기와 애드립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가 더 많다. 일례로, 최근 개봉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도 물주 장수균 역할로서 재미를 자아낸 게 아니라 단지 성동일 본인의 개인기로 웃음을 뽑아냈다. 하지만 오달수는 다르다. 그는 캐릭터와 배우 사이의 줄타기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다. 즉, 배우로서의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는 개인기만으로 유머를 자아내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개인기와 더불어 영화 속 캐릭터의 힘을 감쪽같이 빌려내어 하나로 섞어낸다. 그러니 관객의 입장에서 이질감이 없다. 영화에 녹아들지 못하고 혼자 붕떠서 애드립과 개인기를 펼쳐내는 원맨쇼가 아니라, 영화 속 캐릭터와 적절히 화해하며 귀신같이 타협점을 찾아내는 능력을 그는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오달수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미워할 수가 없다. 영화 속 캐릭터와 배우 본연의 장기를 적절히 버무릴 줄 아는 영리한 배우이기에, 그래서 오달수는 매력있다.
대표작 : <도둑들>(2012), <올드보이>(2003),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 등
7. 김해숙 - 한국 최고의 명품 중견 여배우
오달수와 마찬가지로 배우 김해숙도 이 글에서 다룰 수준의 '급'은 아니다. 그녀는 말 그대로 클래스가 다르다. 배우 김해숙은 천호진, 변희봉, 백윤식, 나문희, 윤여정 등의 중견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한다. 하지만 여성 조연 여배우가 한명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에 열심히 둘러보던 중, 올해 김해숙 만한 조연 여배우가 없기에, 그녀를 선정하기로 했다. 그나마 생각나는 건 '류현경' 정도인데, 그녀도 올해는 이렇다할 활약을 펼쳐보이지 못했다. 찾으면 찾을수록 정말, 김해숙 만한 명품 조연 여배우를 찾기가 힘들다. 뭐 이제는 주연급 반열에 올라섰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명품 조연 배우의 교과서나 마찬가지인 그녀의 연기를 한번쯤 되짚어 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물론 1970년대부터 영화계에 뛰어든 그녀의 모든 필모그래피를 살펴볼 수는 없고, 2000년대 이후로 한정해서 살펴보자면, <우리 형>, <해바라기> 등에서 볼 수 있듯 그녀도 초창기에는 (대부분의 중견 여배우들이 그러하듯) 엄마 역할의 조연을 대체로 맡았다. 어떻게보면 '김해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엄마'의 이미지이다.
그리고 사실 안타깝게도, 우리 영화계에서 중견 여배우들이 '누구누구의 엄마' 말고 맡을 수 있는 역할은 무척이나 제한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배우 김해숙은 이러한 선입견을 타파하며 중견 여배우로서는 이례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며 당당하게 최고의 조연 배우로서의 클래스를 입증했다. 최근의 필모그래피만 살펴보더라도 <무방비도시>의 소매치기 대모 강만옥에서 <박쥐>의 라여사, 그리고<도둑들>의 씹던껌에 이르기까지. 2000년대 이후의 한국 영화계에서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그것도 젊은 연기파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소화해낸 중견 여배우는 김해숙이 유일하다. 이것이 배우 김해숙의 힘이고 그녀의 클래스인 것이다. 여배우들의 인재풀이 너무나 부족한, 특히나 연기파 여배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우리 영화계에서, 감독들에게 배우 김해숙의 존재란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이러한 그녀의 존재는 한국 영화계에서 롱런하지 못하고 금방 사라지는 수많은 여배우들에게 커다란 자극이 될 것이고 또 하나의 롤모델이 될 것이다. 이른바, 배우 김해숙이 써내려가는 명품 중견 여배우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대표작 : <도둑들>(2012), <박쥐>(2009), <무방비도시>(2007) 등
마치며
이 외에도 <위험한 상견례>의 송새벽, <방자전>의 류현경, <범죄와의 전쟁>의 검사 곽도원, <범죄와의 전쟁>의 하정우의 2인자 김성균 등의 활약이 눈에 띄었지만, 특별히 따로 연기에 대해 리뷰를 써야할 만큼 인상 깊지는 않았다. 조연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가지 느낀 점은, 이른바 완성형의 연기파 주연배우들의 멋진 연기를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조연 배우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일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라는 점이다. (내 개인적으로, 존재감 있는 조연에서 자연스레 주연 테크를 탄 배우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배우는 진구였다.) 어찌됐든 같은 의미에서 오달수, 김해숙 등의 완성형 조연 배우들의 멋진 연기를 지켜보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이제 막 연기의 꽃을 피운 김희원, 조정석 등의 젊은 조연 배우들의 행보가 더욱더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