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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6/20 23:18:01
Name 자이체프
Subject [일반] 역사, 그 후의 이야기 - 홍종우의 두번째 이야기

https://ppt21.com../?b=8&n=37774 - 이게 첫번째 입니다.

열화와 같은 성원(정말?)에 힘입어 두번째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내일부터 코엑스에서 열리는 도서전 참관과 답사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서 오늘 후딱 해치우려고요.

지난번에 홍종우와 김옥균이 상해로 함께 갔다고 했었죠. 그리고 일본은 홍종우가 김옥균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일본이 이 사실을 눈치챈 건 홍종우의 보스인 이일직 때문입니다. 앞선 암살자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줬던 그는 뜬금없이 홍콩에 머물고 있던 민영익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자신이 부하인 홍종우를 시켜 김옥균을 암살할 것이니 그리 알고 있고 있으라고 말이죠. 아마 홍종우가 공을 독차지할 것을 우려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민영익은 갑신정변때 우정국에서 김옥균 일파에게 칼질을 당해서 죽었다 살았기 때문에 좋아할거라고 믿었나 봅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일에 끼고 싶지 않았던 민영익은 홍콩주재 일본영사를 찾아가 편지를 건네주고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손을 뗍니다. 홍콩주재 일본영사는 바로 일본 외무성에 보고했고, 이렇게 해서 일본은 김옥균의 암살계획을 눈치챕니다. 그래서 가명을 쓰고 출발할 때는 물론 상해에 도착해서 머물 예정인 동화양행의 일본인 주인에게도 감시를 철저히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그렇다면 이일직은 왜 본국에다가는 보고하지 않고 민영익에게만 알렸을까요? 조선 정부에서는 이일직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믿었는지 귀국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가 무시하자 수배령까지 내린 상태였습니다. 알려봤자 좋은 소리를 못들을 상황이었죠.

1894년 3월 24일 고베를 출발한 김옥균 일행은 다음날 상해 황포부두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동화양행의 2층에 머뭅니다. 하루밤을 지내고 다음날인 3월 26일 오후, 홍종우가 김옥균을 살해합니다. 세발을 맞았는데 치명상은 왼쪽 뺨에 박힌 총알이었습니다. 이게 뇌에 박히면서 김옥균의 삶을 끝장낸 것이죠. 경호원 노릇을 하던 와다 엔지로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벌어졌습니다. 이부분부터 국내 자료들이 오류가 많이 나옵니다. 조재곤 교수님도 그렇고 다른 연구자분들의 저서에는 김옥균 일행만 2층을 사용한 것으로 나옵니다만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매천야록에 나와있는 것 처럼 방에서 낮잠을 자다가 총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나옵니다만, 사실은 8호실 앞에서 죽습니다. 눈시 님이 보여주신 일본 만화책에는 총에 맞고 비틀대면서 밖으로 나갔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뇌에 총알이 박혔다면 움직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8호실 앞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그리고 문제의 8호실에는 일본해군 군령부 국장이 가명으로 머물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문제의 인물에 대해서는 간단한 조사만 있었을 뿐 별다른 심문이 없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김옥균 암살에 있어서 일본의 역할과 개입을 의심하는 이유는 암살자가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척 한 점, 그리고 하필이면 같은 층에 일본 해군의 고위 관계자가 숙박하고 있었다는 점이죠. 어쨌든 김옥균은 그렇게 죽었고, 헐레벌떡 도망친 홍종우는 다음날 새벽 농가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조계지 경찰에게 체포됩니다. 조계지 경찰이 대단히 유능한 탓이기도 했지만 갓과 도포차림이었으니 눈에 띌만 하죠. 김옥균의 죽음과 홍종우의 처벌은 대단히 애매하게 되어버립니다. 죽은 장소는 청나라 땅이었지만 조계지였고, 피살자와 가해자는 조선인이었으니까요. 일단 범죄에 대한 조사는 공부국이 하고, 범인인 홍종우의 신병은 청나라 관헌들에게 넘어가는쪽으로 정리가 됩니다.

홍종우는 자신을 체포한 공부국, 즉 조계지의 행정관서 책임자에게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김옥균의 사망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과 조선의 시체 쟁탈전이 벌어집니다만 이번에는 정말 드물게 조선이 승리합니다. 이홍장의 지시로 죽은 김옥균과 살아있는 홍종우를 태운 청나라 군함이 제물포에 도착한 것은 4월 12일이었습니다. 양화진으로 옮겨진 시신은 잘 아시다시피 토막(!)나 버리고, 일본 신문에서는 김옥균의 처참한 죽음을 대서특필하면서 조선과 청나라의 야만성을 비난합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청일전쟁이 벌어지면서 김옥균과 홍종우는 모두 잊혀져버립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김옥균과 홍종우의 삶입니다.

참, 김옥균을 따라왔던 와다 엔지로는 조계지 경찰에 신고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등 뒤처리를 깔끔하게 합니다. 하지만 상해주재 일본영사의 방해로 인해 배에 싣지 못하는 사이 이홍장의 명령을 받은 청나라 관헌들에게 빼앗깁니다. 일본은 김옥균의 죽음을 방조했을 뿐 아니라 철저하게 이용하기로 한 것이죠.

이후 홍종우의 삶에 대해서는 조재곤 교수의 책에 나와있습니다. 저는 그 분의 저서가 나온 이야기들을 뼈대로 이후에 발견된 다른 자료들을 토대로 그의 삶을 복원해봤습니다.

김옥균의 시신과 함께 금의환향한 홍종우는 형식적인 과거를 보고 합격하면서 본격적인 관리생활을 시작합니다. 반면 일본에 남아서 박영효를 암살하려던 이일직은 들통이 나면서 일본경찰에게 체포당하게 됩니다. 운명이 한 순간에 바뀌게 된 것이죠. 고종은 홍종우에게 상금과 집을 내리면서 이름을 바꾸는게 어떻겠느냐고 말합니다. 일본의 눈을 피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만 홍종우는 그런다고 저들이 눈치채지 못하겠느냐며 거절합니다. 그리고 청일전쟁 발발직전에는 청군의 개입을 주장하던 민영준을 찾아가 청과 일본이 싸우면 일본이 이길 것이니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는 충고까지 합니다. 나름대로 냉정하게 정세를 분석한 것이죠. 이런 와중에 드디어 청일전쟁이 벌어지고 일본이 승리하면서 홍종우의 입장도 대단히 애매해집니다. 조재곤 교수의 저서에서는 나약한 고위관리들을 질타하면서 홀연히 떠났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아관파천으로 일본의 세력이 물러날때 까지 중앙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고 되어있습니다만 몇 년전 발간된 제정러시아와 조선간의 외교문서 관련 서적에 흥미로운 기록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청일 전쟁이 끝난 직후인 1895년 7월 조선관리가 갑자기 블라디보스톡에 나타나서 연해주 지사에게 고종의 친서를 전달합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부당한 간섭을 받고 있으니 러시아가 도와달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당시 조선에도 러시아 공사관이 있었는데 왜 그곳이 아닌 저 멀리 블라디보스톡까지 갔던 것일까요? 아마 이런저런 이유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접수를 거절했거나 본국에 통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이 머나먼 길을 갔던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안 일본측은 아연 긴장해서 정보를 수집합니다. 일본 공사의 방문을 받은 고종과 중전 민씨는 당연히 아니라고 잡아뗍니다. 재미있는건 일본측에서는 이 밀사가 홍종우라고 생각한 겁니다. 실제로는 홍종우가 아니라 권동수와 홍상우라는 인물입니다만 권동수는 이일직과 함께 움직인 암살단 출신입니다.  와다 엔지로의 증언에 의하면  두 사람은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였습니다. 어쨌든 홍종우가 고종의 밀사로 러시아로 갔을 수 도 있다는 점은 뮈텔 주교가 그의 일기에서 그 해 11월 홍종우가 원산에서 체포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남겨놨다는 것으로 뒷받침됩니다. 어쨌든 납작 엎드려있던게 아니라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점은 확실 한 것 같습니다.

일본 역시 홍종우가 조선 북부에서 러시아와 손잡고 계속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합니다.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기세는 아관파천으로 인해 부서지고 맙니다. 그리고 아관파천 직후 홍종우는 경연원 시독에 임명되면서 조용히 관직으로 복귀합니다. 몇 차례의 사직과 재임용을 거듭하면서 홍종우는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바로 황국협회를 이끌고 말이죠.

할일이 많은 관계로 오늘은 여기서 마치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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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2/06/20 23:54
수정 아이콘
정말 역동적인 시대에 걸맞는 드라마틱한 삶인데... 황국협회를 이끌고 등장만 하고 끊으시다니... 이거 뭐 주인공이 수련 거치고 준비를 한 후 세상에 다시 나오는 드라마 보는 거 같네요 ㅜ.ㅜ 할일 빨리 마치고 써주세요!! 잘 읽었습니다 ^^
12/06/21 09:13
수정 아이콘
글을 쭉쭉 정말 읽기 쉽게 쓰셨네요. 저번글부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애패는 엄마
12/06/21 11:21
수정 아이콘
너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자주 빨리 써주세요
12/06/22 00:04
수정 아이콘
눈시BB님에 이어서 또 현기증 나게 하시는 분이 여기 등장하셨네요 크크
Mactuary
12/06/22 13:4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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