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분명히 기억나는건 그때의 내가 대학교 새내기였다는 겁니다.
두번정도 걷어차이고 나서 인생에서의 첫 연애를 할때였지요.
차인게 네번이었던가?
더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좋지 않은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는 나의 뇌세포에 건배를..
그후로 몇번의 연애에서도 그랬지만 전 항상 대가 센 여자들만 만났었어요.
항상 수동적인 자세로 연애에 임했죠.
몇시까지 어디로 오라고 하면 가서 기다리고..
저기가자 하면 가고..
조금 비싼 선물을 바치고 아주 싼 선물을 받았죠..
아주 좋지 않은 자세에요.
마지막 연애때는 저런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해서 헤어졌드랬죠.
그날은 아마 발렌타인 데이였을거에요.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나름 기대감을 가지고 나갔었죠.
손을 잡게 허락해준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항상 기분이 붕붕 뜬 상태였거든요.
이곳저곳을 왔다갔다 하다가 헌혈버스가 그애의 눈에 띄었어요.
헌혈을 하자더군요.
난 피를 뽑았고 그애는 간호사가 혈관을 찾지 못해서 안뽑았어요.
증정품으로 초콜렛을 주더라구요.
그애가 낚아채가더니 물었죠.
"줄까?"
전 고개를 끄덕끄덕했어요.
아마 꼬리가 있었다면 미친듯이 흔들었을 겁니다.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요.
난 하나도 못먹었고 그애가 다 먹었어요.
그리고 또 어느날이었어요.
시간이 늦었는데 나오라고 하더군요.
같이 동대문을 걸어다녔지요.
별로 했는일은 없었고 뭐 사는것도 아니고 그냥 동대문 쇼핑몰 일대를 왔다갔다 했어요.
두타 앞에서 공연인지 패션쇼인지 하길래 그거 구경도 하구요.
스킨십이라고는 손잡는것 밖에 없었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감히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아니 상상도 하지 않았어요.
정말 지금 내가 생각해도 찐따같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그애는 막차시간이 되서 집에 가버렸지요.
남겨진 저는 일단 지하철을 탔는데 막차였습니다.
을지로입구까지만 가더라구요.
교통카드말고 뭐가 더있나 하고 보니까 이천원이 있었습니다.
집에는 걸어가다가 날이 샐것이 분명하고 한동안 고민하다가 왕십리에 자취하는 친구 생각이 났어요.
반대방향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와서 의문이 드는데 그때의 난 왜 뛰었을까요.
을지로 4가역쯤까지 뛰었을 겁니다.
배가 너무 고팠어요.
이천원을 가지고 김밥천국에서 김밥을 한줄 샀습니다.
뛰다가 힘들면 걷다가 그렇게 그렇게..
한손에 바통처럼 김밥한줄을 들고 한시간을 갔습니다.
그때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배가 고파서 김밥을 샀는데 뛰기만 하고 왜 안먹었니..
예.. 그렇게 친구의 자취방에 도착해서 을지로입구부터 여기까지 한시간걸려 왔다고 자랑했습니다.
씻고 나니까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느지막히 일어나서 보니까 김밥에서 쉰냄새가 나길래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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