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점없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아주 선선한 가을 날씨입니다.
여자친구 꼬셔서 김밥 몇줄 싸서 유원지나 동물원 가을 소풍을 가고싶은 날씨입니다.
물론 저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 입니다. 아무튼 날씨 한번 우라지게 좋습니다.
이런 좋은 날 집에만 있을 순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바쁘게 즐겁게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10년전 골목에서 친구들과 테니스공으로 야구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캐치볼 모임 장소에 나갔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자마자 제대로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캐치볼을 할 수 있는 운동장을 향해 출발 합니다.
인솔자이신 홀리님께서 말씀하시길 원래 캐치볼을 하기 전에는 가볍게 러닝을 하면서 몸을 풀어줘야 한다지만
지금 운동장으로 향하는 코스를 걸어서 올라가게 된다면 러닝은 자동적으로 생략된다고 합니다.
동네 뒷산 마실 나가는것보다 빡셉니다.
십오분정도 미니등산을 하고 나서 캐치볼을 할 수 있는 운동장에 도착했습니다.
가을 햇살 답지 않게 햇살이 제법 따뜻하다 못해 따갑습니다.
일요일인데 운동장에는 축구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꽉 차 있습니다.
글러브를 준비해가지 않고 몸만 정말 가볍게 왔기 때문에 인솔자(홀리)님이 빌려주셨습니다.
글러브의 감촉을 느끼는게 근 십년만 입니다.
국민학교 시절 골목야구했을때 글러브는 오로지 포수 전용이였습니다.
포수 빼고 나머지는 다 테니스공으로 맨손 야구를 했습니다. 저는 4번타자에 에이스 였던가...?
오랜만에 껴보는 글러브 감촉이 참 낯설기도 하고 생소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어렸을때는 글러브가 그렇게 크게만 느껴졋는데 성인이되서 끼고나니...
글러브를 낀 소감이 딱 네오포르테에서 임요환 선수가 문준희 선수에게 한 채팅러쉬가 생각납니다.
마치 손가락에 발가락 양말을 신은 느낌입니다. 글러브가 좁..좁아.
그래도 손을 꼼지락 꼼지락 거리자 어느정도 움직일만한것 같습니다.
글러브는 원래 그렇게 타이트하게 끼지 않아도 충분히 공을 잡을만 하다고 합니다.
캐치볼을 하기 전에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간단히 자기소개를 합니다.
그리고 팔 어깨 다리 손목 발목 운동을 하며 스트레칭을 합니다.
고작 스트레칭을 하는것 뿐인데 온몸에서 뼈그덕뼈그덕 요란한 소리가 납니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야구공을 만져봅니다.
제법 딱딱하기도 하면서 부드럽기도 한 것이 묵직하면서 따뜻한 느낌이 듭니다.
감촉이 매우 좋습니다. 자두만한 플라스틱 탁구공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촉입니다.
글러브를 끼고 야구공을 가만히 만지기만 했는데도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입니다.
캐치볼을 하기전에 공을 살짝 위로 던져봅니다.
글러브를 낀 손을 뻗어서 넣기만 하면 됩니다.
'틱...데구르르르르'
공이 글러브에 스치더니 저 멀리 굴러갑니다.
어 이게 아닌데...다시한번 공을 하늘 위로 던져봅니다.
'........데구르르르르르'
이번엔 공이 아예 글러브에 스치지도 못합니다.
아니 제자리에서 던진공도 못받아먹는데 도대체 이거 캐치볼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듭니다.
어린시절 글러브를 끼고 캐치볼을 해본 경험은 없지만 문방구 가면 부직포가 달린 플라스틱 캐치볼 셋트를 팔았습니다.
플라스틱 모양에 빨간색,초록색 부직포가 달려있고 테니스 공 같은걸 던지면
딱 하고 공을 받는게 아니라 붙히는 그런 장난감 캐치볼 셋트 입니다.
어릴때 친구들이랑 놀던 그 캐치볼을 생각하고 왔는데 이거 초반부터 불안 합니다.
여기저기 서로 짝을 지어서 캐치볼을 하기 시작합니다.
저도 캐치볼을 해야합니다. 공을 던졌습니다. 상대방방이 '퍽'하는 소리와 함께 훌륭하게 공을 받아냅니다.
이제는 제가 받아낼 차례입니다. 혼자서 던진 공도 못받았는데 이거 설마 얼굴로 받는건 아니겠지...
'퍽'
공은 기분좋은 소리와 함께 글러브에 정확히 빨려듭니다.
글러브로 공을 받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글러브가 공을 쫙쫙 빨아먹는 느낌입니다.
절대 플라스틱 캐치볼 셋트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느낌입니다.
글러브 안으로 느껴지는 야구공의 묵직하면서도 약간은 알싸한 느낌이 참 좋습니다.
서로 말은 필요 없이 오로지 공에만 집중한채 캐치볼을 합니다.
공을 던지고 받는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상대방 글러브에 공을 정확하고 빠르게 던질것만 집중하면서
상대방의 공을 실수 없이 놓치지 않게 잘 받는것만 생각합니다.
예전에 체육관이나 공원에서 사람들이 캐치볼 하는걸 봤을때
저리 단순한 공놀이를 뭘 저렇게 열심히 즐겁게 할까 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는데...
단순히 공을 던지고 받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스릴있고 재미있는 놀이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한 30분간 정신없이 공을 주고받자 글러브를 낀 손바닥에서 신호가 옵니다.
공을 촥촥 빨아먹을때마다 뼈에서 뼈로 전해지는 강렬한 충격!
손가락에 든든한 쿠션역할을 해줄 살집이 있었으면 덜 아팠텐데
몇십개쯤 공을 주고받으니 공을 던지는 어꺠보다 공을 받는 손바닥이 훨씬 아프고 뜨겁습니다.
파트너 분께서 눈치를 채셨는지 적절히 닥터스톱을 내려주셨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잠깐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물 도 좀 마시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캐치볼 모임이긴 하지만 피지알에서 만난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 하겠습니다.
스타이야기 밖에 꺼낼게 없습니다. 스타야말로 스덕사이에서는 만국공용어 인거 같습니다.
드디어 내야펑고 시간입니다.
인솔자이신 홀리님께서 내야땅볼을 쳐주시고 사람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한번씩 공을 받아서 1루수에게 송구합니다.
운동장에서 따로 캐치볼을 하러 오셨던 민간인(스덕이 아닌..)두분이 파티에 합류하셨습니다.
이런 느낌 참 오랜만입니다. 꼭 고등학교 체육시간 같습니다.
학생들이 체육선생님에게 실력을 보여주고 다른 학생들은 플레이를 보고 환호를 보내거나 야유를 하기도 하며
선생님은 아이들의 폼에 따라서 a,b,c를 외치고 체육부장은 그것을 열심히 적고 있던 그림이 생각난다면...
내야펑고에서는 다들 시작전 '화이팅' 구호를 외치고 뒤에 사람들은 '나이스'를 외쳐추고
좀 아쉬은 플레이가 나오면 '아까비'를 외쳐주며 서로 격려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니 체육시간보단 어린시절 친구들과 '즐거운놀이'를 하는 기분에 더 가깝습니다.
저는 처음 땅볼 두개를 그럭저럭 잘 잡아서 '어 이거 좀 되는데?' 싶었다가
그 뒤로는 거의다 알을 깠습니다. 처음 두개는 '초심자의 행운' 이였나 봅니다.
잘 하지는 못했지만 캐치볼이 아니라 배트에서 날아오는 땅볼을 잡는것은 캐치볼과는 다른 유쾌한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글러브에 제대로 공을 넣지 않고 얄밉게 간만보고 빠져나오는 공을 보니 가슴이 시립니다.
유일한 여성분이였던 '소녀'님 조차 저렇게 매끄럽게 공을 잘 받으시는데...
저는 '그래 나는 내야수' 체질이 아니라 외야수 체질일거야' 라고 속으로 말도안되는 위로를 보냅니다.
내야펑고가 끝나고 외야펑고가 시작됐습니다.
근데 외야펑고는 초심자가 자칫 잘못하다간 얼굴로 공을 받아서 어디한군데 깨지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홀리님의 적절한 경고멘트로 인해서 참여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중계(볼보이)를 받았습니다.
일단 코가 깨지건 눈이 밤탱이가 되건 일단 무모한 도전정신 하나만큼은 꽤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초심자가 처음 놀러와서 사고라고 당하면 저는 괜찮다지만..
친구들이랑 노는것도 아니고 초면에 다른 분들에게 민폐를 끼칠까봐 얌전히 자리를 지켰습니다.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하늘높이 날아가는 공을 보는것만으로도 가슴이 후련해지는 느낌입니다.
오, 저기 멀리서 공이 글러브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는 작은 사고
[?]가 일어났습니다.
역시 무리하게 나서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야펑고를 마칠때쯤 되자 저녁노을이 저 멀리 붉게 빛납니다.
가을해는 역시 빨리 집니다. 우라지게 좋은 날씨도 저녁이 가까워오자 제법 쌀쌀한 가을 날씨로 변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떡밥으로 던지신' 홀리님의 포심과 투심 커브와 너클커브의 시연이 이어집니다.
뭐랄까 베틀넷 공방초보인 제가 이영호가 업테란을 눈앞에서 강연을 듣는 느낌일까요.
기본지식이 일천하기 떄문에 흡수하기는 어려웠지만 듣는것 보는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로웠습니다.
다들 20분정도 마지막 불꽃을 태우면서 저녁노을이 지고 해가 어둑어둑해지고 나서야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방향이 다르른 몇몇분들과 적별인사를 나누고 내려가는 길 슈퍼에서 도란도란 앉아
'홀리'님이 사주신 음료수를 마시며 잠깐의 담소를 나눴습니다.
오늘 캐치볼 재미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잠깐의 스타이야기 그 밖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주제는 '여자에게 스타진 남자들의 슬픈 경험담' 이였습니다.
몇몇 스덕모임을 가져봤는데 모일때마다 '그분'은 단 한번도 안 까인적이 없었습니다.
아 그리고 두번정도 모임에 참여한 프로게이머 '손석희' 선수 이야기도 나왔는데...
안타깝지만 손석희 선수는 '캐치볼모임의' 영원한 얼굴마담
아니 처음오시는 분들에게 신화적인 인물이자 이야기소재로 사골국물처럼 끝없이 반복될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캐치볼토스 손석희 선수 공군가서도 필승 하세요.
그리고 처음 만났던 지하철 입구에서 다음에 또 만나서 놀기를 기약하며 작별인사를 나눴습니다.
모임의 주최자이시자 처음부터 끝까지 동네형처럼 편안하고 자상하게 이끌어주시는라 고생하신 '버디홀리' 님게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함께하신 다른 회원 분들께도 재밌고 즐겁게 놀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아 마지막으로 캐치볼 참여하신 분들중에 커플로 오신 분들이 있엇는데....
중간에 캐치볼을 하시면서....남자분께서 여자분께 하신말씀이...
'야, 아무리 니 혼사길이 (나로인해) 빵빵 열려있다고 해도 똑바로 잘해야지! 정신차려!'
이건 간접프로포즈도 아니고 뭔가요?
지하철에서 잠깐 표사는라 버벅대는 바람에 마지막인사를 못드렸는데...
두분 앞으로도 행복하고 이쁜사랑 하세요.
10년전 동네에서 친구들과 공놀이하던 느낌을 다시 추억하고 싶으신 분들
10년전 왁자지껄하던 중,고등학교 체육시간의 정겨움을 다시 느껴보고 싶으신 분들
그냥 캐치볼이 하고 싶으신 분들!
캐치볼 하러 놀러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