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한 잡상... 저번에 제 글로 파생된 글이 두 개였죠. 그 이후 장문으로 한 네 개 쯤 썼다가 지웠습니다. (지우진 않고 따로 보관해 뒀죠)
솔직히 어떻게 해야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같은 경우 사학의 길을 포기한 상태고, pgr의 평균연령이 높은 만큼 저보다 지식 있고, 진짜 석사, 박사 수준 전공자 분들도 계실 테니까요. 거기다 pgr은 역사 관련 사이트가 아니니까요.
적당히 가벼운 거 하다가 '어떻게 봐도 틀린 게 분명한 것' 하나를 건드렸는데 그게 일이 좀 커져 버렸네요.
우선, 그래도 제가 쓰고 싶은 걸 쓰겠습니다. 중국편은 좀 미루도록 하죠. 보시면서 타블로 사건이랑 대입해보면 재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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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들 많죠? 태진아-이루 사건, 타블로 사건 같은 것들요. 인터넷은 양날의 검이 된 지 오래입니다. 이런 비슷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전문가 혹은 '진실을 밝힌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주장했고, 인터넷으로 퍼져 가면서 그게 진실인 양 계속 왜곡돼 가던 사건이죠.
뭐 가장 큰 건 결국 환단고기겠습니다만... 그건 아예 안 쓰거나 끝판 대장으로 미뤄두도록 하죠.
1592년. 임진왜란. 두 장수가 있었습니다. 한 명은 경상도에, 한 명은 전라도에 있었고 휘하 병력은 전자가 서너배 많았죠. 전쟁이 끝난 후 그 둘은 선무공신 1등에 이름이 올라갑니다. 둘이 공이 많이 비슷했나 봐요.
하지만 그 후 한 명은 '일제'와 '군사정권'에 의해 군신으로 추앙받고, 한 명은 천하에 둘도 없는 쓰레기 취급을 받았습니다.
90년대 초반, 너무나도 평가절하된 장수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됩니다. 많은 사실들이 새로 밝혀졌고, 그 성과는 마침내 여러 권의 책을 거쳐 마침내 드라마로까지 옮겨갑니다. 성공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 분이 태어난 평택에서는 그를 위인으로 모시고 있죠.
이것이 바로 환단고기와 함께 한 때 '재야사학계'를 주름잡았던 '원균옹호론'입니다.
-_-; 재조명은 개뿔. 시작합니다.
1. 시작과 끝
'원균명장론' '원균맹장론', 뭐 보통 '원균옹호론'이라고 부르는 이 학설은 90년대 초반 '원균정론'이라는 책에서 시작됩니다. 이재범이었던 가 같은데 어떤 학자가 낸 거였죠. 그는 원균행장록과 여러 기록들을 조합하여 원균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주장합니다. 전쟁 초반에 왜선 10척을 무찔렀던 사실, 이순신과의 갈등이 단순히 그의 전공에 대한 욕심만은 아니었다는 것, 칠천량에서 억지로 끌려갔지만 죽음을 피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죠. 이와 함께 이순신도 전공을 다퉜고, 원균을 속이기도 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그냥 권력 싸움일 뿐이었다는 거죠.
이는 90년대 중반에 '원균을 위한 변명'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옵니다. 이에 호응하여 나온 소설이 '원균 그리고 원균'이었고, 꽤나 유명한 소설가 역시 '불멸'에서 이를 받아들였죠. 인터넷에서는 몇 년에 걸쳐 센세이션을 몰고 옵니다. 특히 당시 한창 진행중이던 '위인도 인간이었다' 라는 게 컸죠.
그렇게 해서 나온 드라마가 '불멸의 이순신' 하지만 수많은 고증 오류와 함께 처음에 시작했던 원균옹호론은 없어지고 그나마 맹장이긴 했다는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그 즈음 나오는 다른 이순신 관련 서적들도 원균옹호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었죠. 지금도 주변 책들 보면 꽤나 남아 있습니다.
불멸의 이순신에 대항하여 김경진-윤민혁-안병도 트리오의 '임진왜란'이 책으로 나왔고,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이 때를 기반으로 대반격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원균은 원균옹호론이 나오기 이전보다 더 까이게 됩니다.
현재도 어떤 사이트들에는 원균옹호론이 계속 돌겠죠. 뭐 그러려니 합니다. 학계? 학계는 애초에 미동도 하지 않았죠. -_-;
2. 뭘 왜곡했는가?
처음에 이 주장이 들고 나온 건 '선조수정실록'입니다. 여기서 기존 선조실록과 다른 것을 밝히며 이 부분에서 원균이 왜곡됐다고 대차게 주장했죠.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까입니다.
... 근데 수정실록은 당시의 사료집 ( 징비록, 난중잡록 등 )을 기반으로 한 짜집기, 실록 보충용이었을 뿐이었죠. 전쟁으로 실록 내용이 너무부실했거든요. 지금도 그들의 단골 메뉴는 수정실록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기록들을 보여주죠. 전라도 감사였나? 하는 사람이 '경상도에서는 경상우수사가 왜적과 잘 싸우고 있다' 고 했다고 하네요. 난중잡록에서는 '경상우수영 배들은 잘 싸웠다'고 하네요.
... 위의 글의 전문은 '경상도에서 경상우수사가 잘 싸우고 있으니 걱정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글이었습니다. 실제 잘 싸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일단 백성들을 안심시키는 글이었죠. 원문을 봤을 사람이 딱 그것만 자른다는 게 웃기죠? 여기서부터 왜곡은 시작된 겁니다.
이순신이 원균 몰래 장계를 올렸고, 원균이 그에 대해서 열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후로 장계를 따로 썼다고 하죠. 근데 어쩌죠? 조정에 장계를 보낼 땐 주변 기관들에 전부 복사본을 돌리는데요. 애초에 원균이 '같이 올리자'고 한 건데 그런 건 조선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싫다고 하고 자기가 보낸 거고, 원균은 자기가 공이 없으니 아무 말 못 한 겁니다. 거기다가 따로 장계를 올렸다면서 실록 기록을 보여줬죠. '원균이 장계를 올렸는데 이건 이전 이순신이 올린 한산도(옥포의 오기) 싸움과 같다' 자, '옥포의 오기'라는 거에 집중합시다. 저자는 이걸로 옥포해전 때부터 장계를 따로 올렸다는 걸 말하고 싶었나 봐요. 근데 어쩌죠? 저 기록이 적힌 날짜가 한산도대첩 직후인데요. 그 때까지 몰랐을까요? 옥포 해전으로 인한 상이 한산도 대첩 이전에 도착했는데요? 실록 안 보는 사람은 모르고 그냥 '아 옥포를 잘못 쓴 거구나' 하겠죠. 저자가 정말 몰라서 그랬을까요?
그러면서 내세우는 게 바로 '원균행장록'이죠. 근데 애초에 행장은 애초에 자기 조상을 띄워주기 위해 만든 거라서 객관성이 가장 크게 떨어집니다. 행장만 믿는다면 명량대첩 때 전라우수사 김억추는 혼자 진도까지 철쇄를 연결했고 검기로 왜군을 쓸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철쇄설 역시 근거가 없습니다)
심지어 경상우수영이 1만이면 수군은 10만이고 육군은 50만이다는 일본 우익들이 이순신 깔려고 만든 자료를 인용합니다. 아니 각 수영 및 병영의 병력은 전부 실록 및 각종 기록에 적혀 있는데 말이죠.
3. 무엇이 문제인가?
원균행장록은 정말 금과옥조입니다. 단지 문제제기가 아닌, 원균행장록의 내용은 무조건 맞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다른 모든 기록을 철저히 부정합니다.
그에 대한 근거는 이거죠. '진실을 밝혀야 된다' '일제와 독재정권으로 이순신이 지나치게 조명되었고, 거기서 나온 단점들은 전부 원균이 맡게 되었다' 는 거죠. 정말 감정에 호소 잘 하죠. 원균이 까이는 게 그렇게도 싫었나 봅니다. 다른 자료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교차검증할 수 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전부 원균 스스로 말 한 거죠. 이순신의 행동 하나하나는 다 깔 거리가 됩니다. 그리고 다른 자료에서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원균에 옹호적인 발언 하나 발견하면 '봐라. 이게 원균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럽니다. 그래서 선조실록을 참 좋아하죠. 선조와 원균에게 친한 신하들이 원균 칭찬 해 줬거든요. 근데 이건 알아야죠. 당시 사료들은 최대한 '보여주기 위해 모든 걸 쓴다'는 걸 원칙으로 했습니다. 실록이 대표적이죠. '사관론' 하나 말고는 그야말로 그 때 있었던 걸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습니다. 원균행장록, 선조실록 다음으로 원균에게 유리한 사료인 난중잡록(사실 여기도 원균 까는 게 대부분인데 그 말은 쏙 집어넣죠)에서도 자기가 일단 썼으면 안 지웁니다. 자기가 보고 듣고 생각한 걸 다 보여줄테니 후대에서 보고 판단하라는 겁니다. 지금 학자들이 하고 있는 건 그런 것들을 최대한 살펴 보고 최대한 분석해서 판단하고 있는 거죠. 한 두 구절 보고 '우와~' 거리는 게 아닌 거죠. 그것 때문에 학설 하나가 나가고 들어가는 데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죠.
거기다 그러면서 일제와 독재정권이 띄워줬으니 그 거품을 없애야 된다 ( 임란 이후 이순신을 사람들이 어떻게 봤는지 보면 무서울 정돕니다. 해방 후 그렇게 가난할 때도 주민들이 돈을 모아서 기념비나 동상을 세울 정도였죠 ) 고 하면서 진리의 수호자인양 하죠. 아니 그거랑 원균이 뜨는 거랑 무슨 상관일까요?
논리적으로 밀리면 '그렇게 이순신을 신격화하고 싶냐'고 하구요. 다른 자료를 들이대면 조작이라고 하죠. 결국 안 되자 조선실록 자체가 조작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럼 대체 뭘 근거로 삼아야 될까요?
'상식적으로 이순신도 공에 대한 욕심이 없었겠냐' '상식적으로 원균이 도망만 다니는 장군이었겠냐?' 그러죠. 말만 하면 뭐해요. 자료가 없는데. 그리고 역사적인 배경 지식조차도 없는데. 결국 이순신이 체포되는 부분이나 칠천량해전에 대한 부분 등이 디테일하게 밝혀지면서 원균은 더더욱 심하게 까이게 됩니다. 너무 기니까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칠천량해전 당시 선봉(?)이던 김완이 쓴 기록이 있는데 적이 공격해 오니까 원균이 후퇴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 다음이 웃기죠. 당시 조선 수군을 쫓던 왜선은 단 두 척이었습니다.
뭔가 잘난 척 하고 싶은 사람들은 아직도 '사실은 원균이 말이야' 그러겠죠. 하지만 원균옹호론에 대한 자료는 '원균정론' 이후 20년 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습니다. 이미 죽은 학문이고, 알고 보면 선조를 옹호하기 위해 원균을 복원시킨, 애초에 목적을 가지고 한 짓이었던 거죠. 물론 원균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목적과는 아예 다른 목적으로요.
그렇게 일제와 독재정권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이른바 '강단 사학'은 욕하면서 자신들은 정작 원균옹호론을 처음 재창한 학자를 떠받들죠. 아니 어디 교수님이 이랬는데 틀릴 일이 없다구요. 거기에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나왔는데 틀릴 리가 없다구요. 이전 토론글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죠? 자기가 인간 복사기인 걸 인증한 것일 뿐이죠. 무엇을 위한 원균옹호론이었을까요?
결국 원균옹호론은 이순신이 얼마나 대단한 분이었는지, 원균이 얼마나 쓰레기였는지 더 자세하게 알게 해 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작은 쉬워요. 같잖은 자료를 내밀고, 기존 자료와 기득권을 욕 하고, '진실'을 부르짖고, '상식'으로 판단하고, 그러면서 어떤 책이나 어떤 학자 한 명만 (그게 사학자가 아니더라도) 추종하면 되는 겁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중국편 빨리 써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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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잘 모르겠지만, 의병장 조경남이 쓴 난중잡록은 본인의 의병활동을 제외하고 나머지 왜란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지인들 혹은 그동안 만난 사람들에게 들을 이야기를 옮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료들과 교차해서 비교해 보면 맞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깐 요즘으로 치면 '카더라 통신'이 좀 섞인 사료라고 해야할까요.
사료들이란게 역시나 사람이 쓰는거라 부분부분 오점이 없을 수 없겠죠. 그래서 중요한게 여러 사료를 종합하고 교차해서 공통점을 뽑아내는 작업인데 원균옹호론자 같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수법이 특정 사료의 부분만 뽑아서 역사적 기록이라는 이유로 근거를 내미는 것이죠. 이번 타블로씨에 대한 이야기도 눈시BB님의 말씀처럼 이런 향기가 강하게 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사학의 길을 공부하셨으니 저보단 확실히 아시겠지만 이순신 장군님에 대해 비판 해야할 부분은 그 분의 잘못보단 독재 정권시대에 너무 심한 띄우기로 인한 부분 아닌가요? 뭐 위인전기의 폐해에 대해선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런 부분이 오히려 흠을 만들었다고 알고있습니다.
그 흠중 하나가 원균에 대한 비난으로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원균도 위인이라고 보긴 힘들지만 일반적 장수는 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글을 읽다보니 그게 바로 원균옹호론이라 말씀하셨는데 그럼 위인전 정도의 평가가 사실인겁니까?
솔직히 말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충무공의 위대함을 오히려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식민사관의 영향인지 몰라도,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에 길이남을 위대한 인물도 '자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평가 절하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니까 당연히 억지로 띄운거겠지...'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순신 띄우기래봤자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라는 멋있는 대사같은 걸 위인전에 만들어 넣은 거랑,여색을 밝혔고 몸이 자주 아팠던 부분을 생략한 것등의 '이미지 상의 띄우기'이지,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이순신장군을 띄운 것은 아닌데 말이죠.
어떤 나라가 그런 내용을 생략하지 않고 위인전을 만드는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원균의 경우 '탁월한 전략가는 아니였지만,용감한 군인 정도는 됬다'라는 옹호의견이 있는데,칠천량에서 말아먹은 것만 해도 충분히 까일만 합니다.
애초에 민간전문가랍시고 역사를 갖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학계의 정론과 반대로 나가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때문에 별로 믿을 만한 사람들이 못 되죠.
우리나라 재야사학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네들은 다른 식의 눈을 본다고 하면서
엄연히 나와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무조건 무시하고 자기네가 택한 것만 정확하다고 한다는 점이죠.
생각해보면 이른바 정조독살설 역시 결국 정조대왕의 어찰집 발견으로 인해 학계에서 확실히 무너진 학설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야사학자들은 자기네가 맞다고 억지주장을 계속 피고 있죠.
이런 것을 보면 그들은 그저 돈 벌기에 급급한 사람으로 전락하지 않았나란 생각이 절로 듭니다.
솔직히 원균 옹호론이 득세하게 된건
박정희 시대의 이순신 띄우기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게 아닌가요?
박정희가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이순신을 너무 띄웠다
다시 고찰해봐야한다. 하다가 원균이 폄하되어 보이길래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위해 이순신을 엄청나게 띄웠고 그 결과 원균은 엄청나게 폄하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사료 다 끌어모아 원균을 옹호한것이겠죠.
아무튼 박정희에 대한 반발로 원균옹호론이 계속 나왔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