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0/08/22 11:06
4번이 요약되어 있어서 그런지 이해가 잘 안가네요
뭐하러 굳이 훼이크를 쓰면서 "'아놔. 지는 온천으로 놀러가면서 나보고는 여진 잡아오래. 고기덕후 자식. 근데 누가 쳐들어왔어?"라고 정보를 수집하고 쳤나요? 그냥 정보 수집하고 치는 것과 차이점이 뭔지.. 여기서 뭔가 세종대왕님의 특색이 있는 것 같은데 이해가 잘 안가서 그러니 설명 부탁드릴게요!
10/08/22 11:08
보통 장영실 위인전 보면 마지막 부분에 가마가 부서져서 대신들이 엄벌을 내릴 것을 요구하지만, 세종이 끝까지 막아줘서 목숨은 부지하고 이후의 행적은 모른다로 나와있는데, 최근의 세종대왕 오덕설을 읽다보면 이 글의 3번쪽이 좀더 어울리는군요 -_-;;
10/08/22 11:44
1.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에는 대왕이 절대음감이었다고 기록되어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합병증으로 눈이 먼 이 후에 귀가 예민해진것 뿐이랍니다. -> 세종대왕의 절대음감은 실록(!)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세종이 절대음감을 자랑한 사건은 제위 15년째 일이었는데 이땐 대왕의 눈이 극도로 나빠지기 훨신 이전의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세종이 장님이 되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눈이 매우 나빠 거의 보이지 않아 장님처럼 느껴진다고 말씀하시긴 했지만요. 2. 당시 조선은 달력과 시계가 없어 중국의 수시력이라는 책을 참고했었습니다. 헌데, 중국과 조선과의 공간적 차이 때문에 14분 정도의 오차가 생겼고, '14분이면 내가 고기를 먹어도 2접시는 더 먹겠다!' 며 새로 만들어 오라고 했다고 하죠. --> 그래서 조선형 달력을 새로 만들어 버렸죠... 이걸 주도한 사람이 당대 최고의 유학자인 정인지였다는 사실은 뒤에 입만 살았던 소위 사림들과 많은 비교가 됩니다. 3.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궁궐로 돌아온 대왕은 장영실을 불러 곤장을 죽도록 패고는 궐 밖으로 내쫓아버리지요. ->실록에 따르면 대왕은 그동안의 공을 감안해 장영실의 벌을 2등 감형해주었다고 나옵니다. 그 후 장영실의 행적을 알 수 없는것은 사실이지요.
10/08/22 11:46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조선 국왕으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거의 다 당뇨병 같은 대사성질환을 앓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생각이 지금과는 전혀 달라서 적게 움직이고 많은 먹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활이 가능했던 왕이나 직계친족들은 아마 다들 당뇨병이나 고혈압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그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런 흔적이 보입니다. 비교적 근대에 왕위를 지냈던 고종 황제만 해도, 서양인 선교사들이 테니스 치는 것을 보면서 혀를 차면서 이렇게 말했다죠. "저렇게 힘든 것은 아랫것들 시키지"
10/08/22 11:56
3번의 경우 세종대왕이 성향상 일부러 화를 내고 벌을 준다음 비밀리에 보호해준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당시에 왕의 옥체를 다치게 했다는건 사형에 가까운 중죄인데 이정도면 최소 죽을때까지 곤장을 맞거나 사약이라도 먹어야 될텐데 그런 기록조차없으니까요. 더구나 세종대왕시절 가마사건 전까지 자주 오르내리는 조선최고의 과학자중에 한명이 이런식으로까지 기록에 없는게 이상하죠. 뭐 장영실의 공적이 너무 큰나머지 양반들의 견제가 쎄서 가마사건을 일부러 일으켜 궁외에서 편안하게 살게해줄려고 이랬다라는 풍설도 있기도 합니다.
10/08/22 12:02
고기덕후란것도 있나요? 그럼 오타쿠아닌 사람이 없겠다는...해산물덕후,야채덕후,밥덕후,술덕후..
3번 장영실건은 다른 행적을 봤을때 봐줄려고 하지 않았을런지... 죽이려고 했으면 공개적으로 사형시켜서 기록에 남는쪽이 더 쉬웠을텐데..
10/08/22 13:49
3번 장영실 가마사건에 관련해서는 조선의 과학이 독자적으로 발전하던 것을 견제하려던 명나라에게 장영실을 지키기 위해 했던 자작극이라는 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혹시 제대로 아시는 분 없으신지?
10/08/22 15:04
장영실 가마사건에 대해서 어렸을때 읽은 위인전의 내용을 더듬어보자면
1. 장영실이 세종의 명을 받들어 새 가마를 만듦 2. 세종이 새 가마 시승식겸 해서 나들이를 나섰는데 하필 그날 비바람이 몰아쳐서 가마가 부서지고 세종은 엉덩방아T 3. 왕의 옥체에 손상이 간 중대한 사건이라 국법에 따라선 처형도 가능하였으나 세종이 장영실을 보호하여 귀양으로 감형됨 4. 그후 장영실은 종적을 감춤 정말 조선시대 대천재 과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초년시절과 말년이 매우 불행했죠.
10/08/22 15:04
"야이 존만아, 니가 사성칠음을 알면 얼마나알고 문자의 자모에 대해서 뭔 이해를 한다고 지금 본좌한테 먹어대냐? 뒤지고 싶냐?"
이부분을 스타로 비유하면 왠지 이렇게 될꺼 같네요. 정명훈曰 : 최코치님 이번 빌드는 좀 이래저래해서 안좋은거 같아요.. 최코치曰 : 야이, 니가 빌드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고 빌드조립에 대해서 뭔 이해를 한다고 지금 본자한테 개겨대냐?
10/08/22 15:21
4번과 관련해서... 김종서 장군의 북벌은 서울에 있으면 세종이 하도 일을 많이 시켜 그걸 피해 북벌을 자원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0/08/22 22:19
1번...
세종대왕이 박연에게 새로운 악기를 만들라고 지시를 했는데 악기를 만들어왔더니 "잘 만들었는데 여기서 반음정도 틀린 것 같다." 라고 했다더군요. 기존의 악기라면야 훈련으로 음감을 얻을 수 있을텐데 발명된 악기의 틀린 음을 짚는다는 것은 타고나지 않고서야 힘들 겁니다. 고로 저는 세종대왕이 절대 음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