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방이 뚫렸습니다.
천안함 침몰로 인해 생떼 같은 장병들이 시신이 되어 돌아와 장례가 치러졌고 어떤 이들은 시신도 찾지 못해 머리카락 등을 태워 그것으로 장례를 대신했지요. 그리고 그런 중에 오락가락하고 갈팡질팡했던 군대의 행보는 이른바 '당나라 부대'가 특수부대로 보일 만큼 창피했습니다. 언젠가 해군의 매뉴얼을 날조하는 군 측을 제가 다른 글에서 질타했는데, 해군 매뉴얼과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통합 매뉴얼이 있기는 있었다더군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국가 위기 대응 매뉴얼’이라는 통합 매뉴얼이 만들어졌는데, 정부가 바뀌며 안보 분야는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실이, 일반 재난 분야는 행정안전부 재난관리과가 각기 분리해서 관리하는 것으로 이원화시켰다고 합니다. 통합 매뉴얼로서의 가치를 죽여버린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사실 지난 정권의 안보정책을 말살시키고 분산시켜 생긴 통합 대응 부재 부분의 문제는 이명박 정부 위정자들도 인지하고 있는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모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2008년 4월 중순에 당시 류우익 대통령실장이 회의를 주재하면서 '현 정부가 출범하고 한 달여 동안 우리가 가장 실수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라'고 주문했을 때. 국정홍보처를 해체한 것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를 대외전략비서관 밑으로 격하시켜 유명무실화한 것을 큰 실수라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이 잘못인지 인정은 했지만 그 뒤의 후속 대책이 이렇다할 게 없었다는 것이죠.
지금 천안함 문제로 드러난 난맥상과 갈팡질팡함이 걱정되는 것은 군 자체의 대응 및 보고체계 문제도 큰 문제일뿐더러, 군과 정부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그에 못지않은 문제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원칙도 매뉴얼도 실종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도발행위에 보복이나 대응을 하겠다는 목소리만 높이고 국방 체계가 엉망이 된 것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전쟁이 나네 마네 하는 소리는 차치하고서라도
99.9%의 확률로 또 뚫립니다. 세간에 유명한 사건이었던, '백소령에게 총기를 넘겨주는' 정신빠진 군인이 또 나오지 말란 법이 없고. (어뢰라는 가정이 맞다고 간주할 경우) 소나를 달아놓아 봤자 눈뜬 장님이 되는 군함이 또 나올 수밖에 없고. 이번처럼 또 보고가 늦지 말라는 법도 없고. 그래서 또 누군가가 죽거나 다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뚫리지 말아야 할 게 뚫렸기 때문입니다.
● 방역이 뚫렸습니다.
천안함 문제로 덮여졌던 문제 중 하나지만 국민의 일상생활과 연계된 문제이며 지금 상당히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구제역 문제입니다. 처음엔 그저 강화 지역에서 잠깐 벌어진 일인 줄 알았더만, 이건 어찌된 게 김포를 넘어 엉뚱하게도 충주까지 확산되면서 역대 최악의 구제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더 어이없는 것은 이렇게 방역망이 계속 뚫렸는데도 구제역 바이러스가 어떻게 전파됐는지 뚜렷하게 파악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4개 시도에서 발생해서 역대 최고의 전파 기록(?)을 세운 것도 모자라 살처분 규모가 점점 늘어나면서 살처분 보상금도 역대 최고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구제역 사태가 장기화되며 소, 돼지를 시장에 내다 팔지 못하는 농가의 소, 돼지를 사들이는 수매 비용도 늘어나게 되어 여러 모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거기에 계절적으로도 구제역 전파에 최적의 시기(?)라고 하는데도 아직까지 원인조차 찾지 못했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죠.
하지만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충남 축산기술연구소에서 사상 처음으로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축산기술연구소는 - 아시는 분은 아시는 곳이지만 - 가축에 관한 한 전문가들이 모인 국가기관이고 씨소, 씨돼지 등을 개량해 번식용 샘플 및 가축 등을 분양하고 품종개량을 연구하는 곳이라 일반 사육 농가에 비해 철저하고 전문적인 방역과 위생 조치가 취해지는 곳이라고 하죠. 그런데도 구제역이 걸렸으니 전반적인 방역 체계가 부실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안 나오게 생겼나요? 이거 원.-_- 일반인들이야 뚫릴 수 있다지만 충남 축산기술연구소는 방역망이 뚫려서도 안 되고 뚫릴 수도 없어야 하는 곳인데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어이가 없습니다. 당연히 연구소의 구제역 판정으로 인해 번식용 샘플과 가축을 비롯해 씨소, 씨돼지까지 모두 살처분 대상이 되었으니 이를 어쩐답니까.
구제역. 얼마나 더 퍼질지 알 수 없고 원인조차 알 수 없으니 더 불안합니다. 고기는 먹어도 된다고 하나 푸성귀밖에 없는 식탁을 각오해야 하는 게 아닌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로 불안해하는 것은.
뚫리지 말아야 할 게 뚫렸기 때문입니다.
- The xi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