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봤던 영화를 다시 한번 볼 기회가 생겨서 제대로 리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리뷰특성상 말이 짧습니다. 이해 부탁드릴게요.
그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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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감독의 두번째 작품이 된 영화 '의형제'. 보통 작가라 함은 일관된 스타일, 또는 어떠한 메세지나 주제의식등을 이어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편인데, 의형제라는 작품 또한 전작 '영화는 영화다'와 같은 주제의식을 이어받는다. 전작의 마지막이 건달이든 배우든 어차피 진흙탕 인간이었던 것 처럼, 이 작품 또한 간첩 빨갱이든 국정원 요원이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볼품없이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즉, 감독은 두 작품 모두에서 '니들은 어쨌든 이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야!!'라고 관객에게 외치는 것만 같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현실적인, 그런 특별할 것 없는 그런 메세지.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작품은 이런 '평범한 인간'이란 결론이나 메세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칫하면 용두사미로서 아무것도 남지 않을 작품으로 남아버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 영화는, 전작에 이어서 '오락영화'로서의 충실한 기능을 동반하며 충분히 마지막을 잘 마무리 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메세지를 재미있게 녹여내어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하는것. 오락영화가 가져야 할 아주 중요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극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송강호와 강동원은 각각 국정원 요원과 남파공작원이란 직업을 지닌다. 그러나 이것이 남파공작원중 국제적 암살자로 활약하는 '그림자'라는 사람 때문에 이들의 직업관계는 흐릿해진다. 한쪽은 작전실패로 민간인이 되어버리고, 한쪽은 작전시 불성실로 버려진 남파공작원이 되어버린다.
강동원은 여기서 인간미를 상실하지 않은 우수한 공작원으로 등장한다. 그의 마지막 임무가 되었어야 했던 그림자와의 살인임무. 그러나 그는 거기서 죽여야 하는 사람의 가족들에게 손 대기를 꺼려한다. 그림자는 그러한 강동원을 향해 일갈한다. 그는 자신이 죽일 살해대상의 아내와 장모를 죽이며, '감성적인 남한 놈들은 다 쓰레기야. 어줍잖은 연민으로 북한놈이랑 결혼하니까 저꼴로 뒤지는거 아니갓어.' 라고 강동원에게 훈계한다. 그러나 결국 강동원은 그 집의 아이를 죽지 않게 하려 그림자에게 '..아이입니다.' 라고 말하며 살인을 방해한다. 여기서 그는 그림자에게 버림을 받는 계기를 만들고 만 것이다.
극의 시작이 강동원이 이북의 가족과 그리움이 얹혀진 통화를 하는 만큼, 그에게는 간첩으로서는 지니지 말아야 할,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지닐 수 밖에 없는 '인간애'라는 것이 존재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씬이었다. 그는 살인을 일삼아야 하는 공작원이었으나 사람을 소중히 하는것을 포기할 수 없는 캐릭터로 나오는 것이다.
재미있는것은, 또 하나의 주인공 송강호다. 그는 국정원요원의 생활이 끝난 뒤에, 가족과도 이혼하고 쓸쓸히, 조금 추잡스럽게 흥신소를 하며 살아간다. 그는 살인과 인간애사이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는 강동원처럼, 자본-돈-을 위해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억지로 찾아내어 끌어내야 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것이다. 이렇듯 두 캐릭터는, 사상은 정 반대의 위치에 있으나 궁극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인간에 대한 인간 본연적 사랑과 그것을 죽여야 하는 직업, 사회적 역할, 또는 자본이나 권력, 이데올로기가 요구하는 모습사이의 갈등을 안고 살아야 하는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우리 모두가 갖고있는 모순과도 일치한다. 우리는 흔히 가슴속 이상을 죽이는 법을 배우고, 가져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포기하기를 수없이 권장당한다. 그게 어른이고, 그게 사회이니까. 그것은 영화내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면 영화도 우리의 삶의 단면을 영상으로 담았을 뿐이니까.
송강호가 이 극중에서 하는 가장 뼈아픈 대사가 무엇일까? 강동원이 북한사상교육을 받은 간첩인걸 알면서도 동업을 하면서 차 속에서 지나가듯 하는 대사. '자본주의는 남의 돈으로 내 행복을 사는게 죄가 아닌 나라야.' 이거야 말로 극 초중반의 송강호를 대변해 준다. 자본주의는 남의 돈을 받아내어 내 행복을 사는것이 죄가 아니다. 돈을 위해선, 돈을 받기위해선, 내 행복을 위해서는 '남의 돈, 남의 행복'을 받아내도 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송강호는 이러한 원칙을 갖고 사람들을 찾아내고 수수료를 챙긴다. 그 과정에 있어서, 수갑을 채운다던가 하는 비인간적 행태에 대해 강동원은 항의한다. '인간적으로 좀 대합시다. 저들이 죄를 지은것도 아닌데.' 송강호가 얼마나 웃겼을지 상상할 수 있는가? 그의 앞에 서 있는건 남한에 내려와 사람죽이는 임무를 하는 간첩인데! 그가 수갑좀 채우기로서니 인간적이란 소리를 떠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걸 티 낼수도 없는 일이고. 결국 강동원과 송강호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어찌어찌 일을 잘 수행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강동원과 송강호는 한 의뢰에서 찾은 여자가 알고보니 남편에게 상습 폭행을 당하고 있던 약자임을 알았다. 여기서 송강호의 변화는 주목할만하다. 이제까지 쭉 자본과 돈이 그의 삶의 중심이 되어있었는데, 강동원과 일을 하며 점점 어른으로서 죽어버린, 자본주의에 의해 잃기를 강요당했던 마음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는 결국 그 여자를 놓아줌으로서 스스로의 변화를 암묵적으로 긍정한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그들은 대척점에 있던 캐릭터에서 스스로들의 공통점을 발견한, 국정원요원과 북괴공작원이란 역할 속에 놓여진 한 인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결국 송강호는, 그 나름의 정보를 통해서 강동원이 처한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알게 되고, 강동원 또한 그가 진짜로 국정원 직원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 후, 송강호는 강동원에게 그가 간첩임을 알고있었다고 고백함으로서 진짜 그를 파트너로 맞이하게 된다. 그들은 결국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꼴을 깨닫고, 진짜 의형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극은 이들을 가만 두지 않는다. 그림자는 다시 나타났고, 그는 결국 강동원을 빈사상태까지 몰고간다. 그 상황에서 강동원은 스스로를 희생하여 송강호를 살렸다. 그리고 송강호는 그런 강동원을 끝까지 보호하며 결국 그림자를 없앤다. 국정원 요원중 누구도 총알이 쏟아지는 곳에 간첩을 보호하며 적을 잡으러 돌진하지 않았으나, 이젠 국정원 요원도 아닌 그만이 총알 맞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그를 구하는 것이다. 오락영화에서 이보다 더 깔끔하고 명확한, 진부하지만 기분좋은 스토리가 또 있을까? 더 괜찮은 점은, 강동원이 결국 살았으며- 그의 가족들 또한 살아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이면에는 사실 좀 불편한 점이 존재한다. 어째서 간첩현상금 1억이 목표였던 송강호가, 강동원을 정말 동료로 인정했을까. 과연 그게, 그의 안타까운 사연-가족을 남쪽으로 오게 하기위해 돈을 모으는 것-때문이었을까? 천만에. 그는 인간애를 찾았지만 어린이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강동원도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인간애가 있을지언정 임무수행을 거부하지 않는 모습을 보아서는 역시 인간애만으로 살아가는 어린이는 아닌 것이다. 그가 정말로 강동원을 동료로 맞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아주 우수한 직원이었던 것이 아닐까? 사람찾는 일을 너무나 잘하는 강동원. 그리고 그가 옴으로서 송강호의 사업은 이전보다 훨씬 스무스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인간미만으로 그가 그러한 판단을 할 만큼 어린이같은 캐릭터가 아니다. 송강호든 강동원이든. 그가 강동원에게 그를 간첩으로 잡으려 했으나 포기했음을 고백할때의 대사는 그걸 잘 보여준다. '우리 둘이 제대로 일 한번 해서, 사업도 키우고, 금액도 확 올리고, 그렇게 돈좀 벌어보자!'
그런데 이러한 현실감을 작가는 오락영화답게 마지막에 부숴버린다. 우수한 직원으로서 사업을 키우는데 일조했어야 했던 강동원은 결국 그를 떠나버리는 것이다. 그림자와의 사투에서 다친 몸을 요양하다가, 마지막엔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간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송강호는 다시 혼자사는 모습 그대로 보여진다. 그의 사업은 여전히 흥신소를 하고 있는 것이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송강호와 그의 관계가 틀어지지는 않았다. 즉, 송강호는 그가 돈을 가져다 줄 직원 이전에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한게 아닐까. 마지막 비행기 씬에서, 그들은 런던행 비행기에서 서로를 마주해 진정으로 웃는 형님아우가 됨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것은 결국, 극의 마지막에 와서 감독이 그 둘은 현실적인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움직인 게 아니라, 그저 그들의 인간애적 공통점에 강한 이끌림을 통해 의형제가 되었다는 결론을 타당하게 해주는 씬인 것이다.
강동원의 멋진 외모, 시원한 액션씬, 송강호의 구수한 역할, 화끈한 대사들. 북한간첩과 국정원요원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아주 뻔하게 흘러가는 기승전결의 사건들까지. 오락영화에 걸맞게 명대사 보다는 일상적 대사가 재미를 주는, 그러한 영화. 의형제는 오락영화로서도 충분히 좋은 영화였고, 결국 인간은 이데올로기나 자본이전에 존재하는 본질적 인간으로서의 가치에 이끌리게 되어있다는 작가의 메세지도 제대로 전달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전작의 영화는 영화다가 어두움을 통해 '어차피 니들도 진흙탕속 인간일 뿐'이라는 냉소적이지만 현실적 메세지를 던졌다면, 이번의 의형제라는 작품은 '아무리 대단한 사상과 자본의 압력이 있어도 결국 인간은 인간을 사랑하는 본질적 가치가 가장 강하다'라는 메세지를 던져, 조금은 비 현실적일 지라도 긍정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게 아닐까싶다.
생각없이 훈훈하고 시원하게 보기도 좋은 영화이고, 연기력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주인공과 조연들은 충분히 매력적이며, 생각할만한 단서도 꽤 여럿 존재하지만 극의 주제를 방해하지 않는 영화. 나는 이 영화는 한국영화중 꽤 잘만든 영화에 속할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간만에 좋은 영화를 보아서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