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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4/22 00:52:22
Name INFINITI
Subject [일반] [잡담] 전화번호부를 지우며 집착을 생각하다
개인홈피에 먼저 쓴 글이라 반말체임을 양해바랍니다.

1. 전화번호부

내 핸드폰 주소록에는 500여개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뭐가 그리 연락할 사람이 많냐고 질문한다면,
당연히 그 많은 번호들을 모두 사용하는 것은 아니며,
사실 최근 일적으로나 사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번호들은 100여개 미만일 것이라 생각된다.
번호들이 이렇게 늘어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일적으로 사적으로 저장되는 번호들은 조금씩 늘어나는데 비하여,
기존의 번호들은 되도록 삭제를 하지 않은 때문이다.
왠지 그것을 삭제하는 순간 그것들과의 연이 완전히 끊기는 느낌이 싫었다.
종종 너무나 싫은 사람이나 혹은 장소의 번호는 지워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역시 조금 생각해보면 지우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야 전화가 왔을 때 안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오늘 문득, 다시는 연락을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번호들 7,80여개를 지워버렸다.
아직도 바뀌지 않았는지 조차 모를 번호들은 숫자에 불과할 뿐,
그것과 다시 연이 닿을 일이 있다면 그냥 다시 입력하면 그만이다.
재밌는 사실은 도대체 누구인지가 기억나지 않아 지우지 못한 번호도 2, 30개는 되었단 것이다.

내 마음속에 남겨둔 미련 같았다고나 할까.
내가 버림으로서 끝날 인연이었다면 그대로 끝내면 될 것이오,
아직 상대방에게도 무언가가 남았다고 한다면 언제가 내쪽으로 흘러오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같았다.
내 마음속 연의 집착에 대해서, 나를 편하게 해주는 하나의 의식.
자, 이제 내 차례는 끝났으니, 다시 나에게 오고 안오고는 더이상 내 선택이 아니다.
고로 더이상 펼쳐질 일 역시 내 잘못이 아니다.


2. 집착.

집착은 애정이 낳은 결과물일까, 혹은 집착을 위한 자체일 뿐인가.
전자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든다.
집착이라는 결과물에 닿기 위해서는 무언가 선행되어야한다.
그것은 바로 '결핍' 이다.
무언가가 부족하기에 그것을 갈구하고, 그 결과물이 바로 집착이 아닐까.
이미 충만하고, 부족함이 없는 자에게 과연 집착이라는 감정이 필요할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애정이 없는 대상에게 집착은 또한 생기지 않는다.
집착은 '무관심'과의 반대 성향을 갖는다.
즉, 애정이 있는 대상의 부족함에 대한 갈구함이 이러한 집착으로 나타남은 아닐까.

한가지를 생각해본다.
그 대상을 연인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집착하는 대상에 대한 불안과 더이상 아무런 집착도 보이지 않는 대상에 대한
불만은 어느 것이 더 관계를 악화시킬 것인가.
충만함에 만족했을 때, 혹은 더이상 어떠한 결핍도 느끼지 않았을 때,
그렇게 집착을 잃어갈 때, 관계 역시 잃어갔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갈구하였음에도 끝내 부족했던 애정보다는
잠시나마 풍요로움을 느끼고, 그것을 넘어 더이상 집착하지 않았던 내 자신이.
그렇기에 비참하지도 않았었다.
다만 그 집착을 나에게 보이던 누군가가 더이상 아무런 느낌조차 없이
세상을 살고 있고, 그 풍요로움을 내가 너무 가벼이 보았다는 후회가 느껴질 때면 그건 어쩔 수가 없다.
만약 반대였다면 적어도 비참해질 지언정, 후회는 남기지 않았을테니.

지저분하게 매달리지 말자.
사랑이란 것에 눈이 멀어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지말자.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지 말자.
다만 그것이 후회된다면 그건 그만큼의 내 몫일 뿐이다.

그렇게 나는 내 판단대로의 그 만큼의 후회를 조금씩 남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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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22 00:57
수정 아이콘
1번 정말 공감되네요..
휴대폰, 네이트온 주소 바꾸기 전까지 거의 300개씩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 싹 비워져서 고생 좀 하고 있습니다.

근데 가끔씩 이렇게 flush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괜히 이야기도 안 하는 사람이 계속 로그인해 있으면
"아, 이 사람한테 말을 걸어야되나? 안부라도 물어볼까? 쟤는 내가 안 궁금한가?"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아서요.

적어놓고 보니,
술자리가 2차, 3차로 이어지면 몇사람씩 떨어지는 것하고도 비슷해보이는군요. 흐흐.
나백수..
10/04/22 01:11
수정 아이콘
저만 그런게 아니었군요 ..
그레이티스트
10/04/22 01:32
수정 아이콘
공감가는게 받기싫은 녀석의번호가 있었는데, 괜히 지웠다가 몇달뒤에 그놈한테 전화와서 모르고 받았다가 바로 끊기도 뭐하고 약간 당황했던 기억이있네요.
지금은 군대도 갔다오고, 핸드폰도 몇번잃어버리니까 자연스럽게 필요한 번호만 남아있는데,
예전같은경우 번호가 200개있어봤자 그나마 연락하는번호는 20개미만이더라고요.
그리고 고딩때야 어려서 그랬는지 심심하면 저장된번호아무한테나 쓸데없는문자라도 다 보내고 그랬는데,
나이먹다보니 안부문자나 전화같은거 잘안하게되고, 절친들말고는 왠지 먼저 연락하기도 어색합니다.
나해피
10/04/22 01:38
수정 아이콘
계속 전화번호를 안 지우고 있다가 제가 전화번호를 바꾼 후에, 안 친한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보내면,
번호 변경 됬다는 문자를 받거나, 아니면 아예 없는 번호라고 나올 때 참 씁쓸하면서도 슬프더라고요.

나이가 들수록 자주 연락하는 번호는 10개 미만이 되네요.
10/04/22 01:41
수정 아이콘
어차피 더이상 발전적인 관계를 구축하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쉽게 지우지 못하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잘하셨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집착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남아있으면 볼때마다 신경쓰입니다. 버릴건 버리고 긍정적인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코칭계의 정석입니다.
내일 시간이되면 관련 글을 하나 올리겠습니다.
王天君
10/04/22 05:19
수정 아이콘
오~ 저랑 반대의 글이어서 좀 희한하네요.
전 요새 들어야 핸드폰 번호를 주고 받는 거에 익숙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전화 하지도 받지도 않을 번호를 대체 왜 주고 받는 것인가? 인사치레로 번호 저장하는 게 무척 싫었거든요.
그래서 번호를 묻지도 않고 굳이 제 번호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만, 그게 굉장히 오만하게 느껴질 수 있겠구나 싶더라구요.
꼭 친구가 될 사람이 아니더라도 일단 자기자신을 어느 정도는 오픈하자 ~ 는 마음으로 번호 주고 받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번호 물어보면 '너 나한테 계속 연락할 꺼야?? 괜히 인사치레로 번호 주고 받지는 말자~' 라는 소리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전 핸드폰에 100명도 안되는데 나머지 연락안하는 80명을 빨리 정리해버리고 싶더라구요.
연락하지 않는 번호들 보면 난 그냥 잊혀진 사람이고 이 사람들도 나한테 잊혀져서 사는 구나 괜한 쓸쓸함이 느껴져서..
LunaticNight
10/04/22 09:33
수정 아이콘
1번 저도 정말 공감되네요..
왠지 지우기도, 놔두기도 망설여지는 번호들.
정말 연락하는 사람들은 일이십프로 안쪽이지만, 왠지 못 지워버리겠더라구요..
동료동료열매
10/04/22 10:42
수정 아이콘
전 최근 6개월내로 연락하지않고 앞으로도 연락할일이 없는사람은 다 지웠습니다.
그리고 나니 핸드폰에 80명정도 남더군요.
영웅과몽상가
10/04/22 11:06
수정 아이콘
역시 다들 전화번호는 수백개 되지만 정작 연락하는 사람들은 그 중의 한 10%~20%정도로 생각합니다.
10/04/22 14:19
수정 아이콘
전화번호마저도 얼마 없는 상태라..으하하-
Why so serious?
10/04/22 17:11
수정 아이콘
전 지금 등록된 번호도 50여개가 전부인데.. 게중에 연락하는 번호도 10개 안팎.. 아 급 우울해지네요 술이나 먹어야겠네요
초코와풀
10/04/22 18:09
수정 아이콘
전 14개.. 인데, 남친 말고는 연락 거의 안합니다. - -;;
켈로그김
10/04/22 18:43
수정 아이콘
술먹고 폰 잃어버려서 30개 정도로 확 줄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괜찮아요 이거. 꽤 괜찮아요..;;
SummerSnow
10/04/22 21:34
수정 아이콘
얼마전 핸드폰 바꾸면서 지우고 지우고 해서 100명 정도 남았는데,
자주 연락하는 사람은 애인이랑 친구 몇명이랑.. 그리 안되는군요.
그외에는 언젠가는 연락을 하거나 올 사람들이라고 남겨두긴 했는데,
그래도 관계유지를 위해서는 가끔이라도 그 사람들이랑 연락을 하는게 좋다고 생각하며 저장해놓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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