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S전자 스마트폰 개발자로 3년 정도 근무하다가 3년전에 퇴사하고 대학원(인지과학 전공)에 진학했다가
곧 졸업하게 되는. 사실 흔치 않은 경력의 엔지니어입니다.
대학원 가기 위해 대기업 퇴사를 하는게 그렇게 가시밭길인줄 몰랐네요. 특히 '공부하고 싶어서'라는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주위 시선들이 참 곤혹스럽게 느껴졌습니다 .
또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내가 대학원에 대해 잘 모르는채 덤벼들었구나란 생각도 종종 했고요.
쉽지 않을거라 생각은 했지만. 졸업후 다시 사회 복귀하는것도 녹록치 않더군요. 다행히 원하던 직장을 다시 얻게
되었지만. 인생의 한매듭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셀프 인터뷰를 작성했습니다.
만일 제가 3년전에. 혹은 6년전에 이런 셀프 인터뷰 글을 봤다면 제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거라 생각이 들어
혹시 제 글이 도움이 될 분이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망설임끝에 이곳에 올립니다.
석사 졸업생이지만. 박사과정 동생들하고 늘 나누던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했으니. 제 글이 실제와 크게 다른
정보는 되지 않을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공계 학생, 종사자들 힘내세요!!!
먼저 인터뷰에 응해주신 TORCS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 그리고 졸업 축하드립니다.
네. 고맙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졸업을 맞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정리를 촛점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근황을 먼저 여쭙고 싶습니다.
졸업논문 통과하고. 취업할 회사도 최종적으로 결정해서 더이상의 구직활동도 중지하고. 으음..특별히 바쁜게 없네요. 불과 몇일전에 졸업논문 마무리할때는 몇일동안 잠도 못잘정도로 바빴는데. 이럴땐 시간을 저축했다가 바쁠때 좀 돌려받는 은행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졸업논문 쓰느라 바쁠땐 읽고 싶은 책도 많고 보고 싶은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가 참 많았는데. 그게 다 어디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땐 운동장에서 공차는 학생들 구경하는것도 재밌었는데....
졸업논문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졸업논문에 대해서 설명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 학위논문에 대한 설명에 앞서 제 전공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드리는게 순서인듯 하네요. 일단 공식적으로 제 석사 전공은 인지과학입니다. 그 세부전공으로 컴퓨터공학이 되겠지요. 인지과학은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마음을 연구한다... 다소 철학적으로 들리네요.
네 맞습니다. 마음이라는 주제는 과학과는 그동안 동떨어져있던. 한편으로는 문학적 수사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애매한 부분인데 이 부분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여러 학문.. 이를테면 심리학, 철학, 전자공학, 컴퓨터 공학, 언어학 등 여러가지 학문들이 손을 잡고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미국에는 제법 활성화 되어 있고, 주목받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긴 해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학교 등의 대학원 과정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전자공학 출신의 대기업 엔지니어에서 마음을 연구하는 과학도로의 변신이라.. 흥미롭군요.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나는 인지과학 학위를 받고 졸업하는 와중에도 마음에 대한 연구는 큰 관심이 없어요. 더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얼마간 있던 호기심도 2년간의 석사과정을 통해 소멸해버렸다고 해야겠네요. 제가 관심있는 부분은 인공지능입니다.
인공지능이라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SF 소설이나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사람같은 로봇을 의미하는것인가요?
제 궁극적인 목표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 있지 않아요. 다만 일반인들 처럼 막연한 환상이나 기대를 갖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을뿐이죠. 제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최후의 인공지능은 결국 사람과 같은 지능이라고 생각해요. 그 이상도 가끔 상상하긴 하는데, 아직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은듯 하고...
그렇다면 인공지능에 관심있었는데. 인지과학을 전공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씀드린 궁극적 인공지능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저마다의 방법을 제안하고 있어요. 사소하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는 인공지능을 점차 발전시켜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고.. 그러다 보면 결국
인간의 지능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입장과 처음부터 생체적 인간을 모방하여 지능을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이죠. 상향식, 하향식의 문제로 나누기도 하는데. 저는 후자를 지지하는 편이예요.
후자를 지지하게 된 동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왜 후자를 지지하느냐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를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을 사용해야 할것 같아서 자세히 이야기할순 없지만. 어쨌든 저는 인간의 뇌구조를 먼저 분석하고. 벤치마킹을 해 유사한 지능형 시스템을 구현하는게 옳다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런편이에요. 인지과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뇌구조에서 찾아보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편이예요. 목적은 다르지만 뇌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발상이
제가 인공지능을 다루려는 방법론과 맞물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지과학 전공을 결심하게 되었죠.
그렇다면 어떤가요? 인지과학에서 접근하는 뇌과학적 방법론은 TORCS씨의 인공지능
연구에 도움이 되었나요?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거의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한국의 인지과학은 20년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걸음마를 떼는 단계인듯해요. 인지과학의 특징은 학제적이라는것입니다. 여러학문이 협력해야 한다는 의미지요. 그러나 한국의 인지과학은 다소 기형적이게도 심리학이 압도적으로 주도하고 있어요. 심리학 위주의 인지과학에서 인공지능 연구에 도움이 될만한 요소를 찾기 힘들었어요. 현재 심리학에서 다루는 뇌는 fMRI 라고 해서 뇌의 활성화에 따른 인간의 심리상태 관찰 정도예요. 그러나 제가 보고 싶었던 부분은 좀 더 미시적이예요. 뇌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동작하는지가 더 궁금했고 필요했죠. 돌이켜 생각해보면 오히려 저는 인지과학이 아닌 뇌과학 전공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현실적이지 않군요.
다시 학위논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봐야겠네요
아. 그렇군요. 학위논문을 이야기 하다가 전공이야기를 했죠. 말씀드렸듯 전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싶었고. 실제로 제 석사 2년간 인공지능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했어요. 가장 이상적인 학위논문은 그러한 연구를 잘 갈무리 해서 정리하는것이겠죠. 그런데 다소 행정적이고 정치적인 문제가 생기더군요.
일단 행정적인 문제는 제가 연구한 인공지능은 지나치게 공학적이라서 인지과학이라는 전공의 학위논문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도교수님의 지적이 있었어요.
또한 정치적인 문제는... 으음. 이건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더 자세히 다루고 싶은 공대 대학원의 폐해와도 맞닿아 있는데. 일단 이번 인터뷰에는 생략하도록 하죠.
어쨋든 제 논문은 공학적인 측면을 많이 배제했어야 하는데. 난감한 노릇이었죠. 제가 2년동안 공부한건 컴퓨터공학 아래 인공지능이었는데. 공학적 측면을 배재하라고 하면 무엇을 학위논문으로 써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마침 1년전쯤 쉬는 시간을 쪼개서 장난식으로 연구한게 있는데 그게 바로 Telepresence 였거든요. 내가 움직이는 대로 원격에 있는 로봇이 움직여서 제 행동을 대신하는 연구요. 그러한 연구는 일단 인지과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HCI 측면에서도 꽤 매력있는 연구였기 때문에
그 연구를 졸업논문 주제로 삼아야 했어요. 결국 어처구니 없게도 장난으로 했던 연구가 제 학위논문 주제로 결정이 된거죠. 대신 Telepresence 를 전면에 내새우되 제가 연구했던 인공지능을 그 안에 억지로 우겨넣어 1부를 Telepresece 2부 인공지능 등으로 병치시켜 논문을 작성했어요.
50 페이지 내외의 학위논문에서 이렇게 다양한 내용을 넣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어쩔수 없이 2부 인공지능 같은 경우에는 background knowledge가 있어야 이해할 수 있을정도로 불친절하게 구성하였어요. 저는 그래서 아직도 제 학위논문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부끄럽고 한심스럽고. 논문 인쇄도 그래서 최소한으로 했고. 그나마도 주위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지가 않군요.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결국 제 전공인 인지과학이 여러가지로 제 발목을 잡게 되었네요.
그렇다면 인공지능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만족스운 편인가요?
... 그것도 아니예요. 인간의 뇌가 인공지능의 롤 모델이라는 판단하에 2년간 뇌를 모방한 신경망과 진화연산을 통한 인공지능을 연구했어요.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그 두 모델을 혼합한 진화신경망만 2년간 죽어라 팠죠. 이 부분은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분야예요. 해외에서는 나름 hot 한데...
그런데 그 퍼포먼스가 기대만큼 나와주지 않네요.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어요. 만일 제가 박사 공부를 한다면 이 부분에 좀 더 집중에서 연구해보고 싶어요. 이 부분에 있어 제가 주목하는 학자는 텍사스대의 K.Stanley 박사예요. 그 사람이 제안한 NEAT 라는 모델은 제가 추상적으로 꿈꿔왔던 진화신경망이었고. 성능도 우수하게 나오는 편인데. 아직 널리 알려지진 않았어요. 먼 훗날 사람같은 기계가 나온다면 어떠한 형태로든 이 사람이 분명한 영향을 미칠것 같아요. 아직 30살 전후의 젊은 사람인데. 그래서 더 기대가 돼요.
그럼 앞으로 박사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까?
글쎄요. 말씀드렸듯 제가 연구하고 싶은 진화신경망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척박해요. 지난 2년도 몹시 외로웠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 연구논문을 쓰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저 밖에 없었어요. 도움을 줄곳도 청할곳도 없이. 그냥 저 혼자 연구할 수 밖에 없어서 외롭고 괴로웠죠. 가능성이 없어서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해외에서는 주목하는 분야인데요.국내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같은 고통을 반복할 자신은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박사과정을 밟는다면 해외밖에 답이 없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네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맞나봐요. 저만 생각하고 해외 박사공부를 하기에는 여러가지 여건에서 몹시 힘드네요. 나이도 있고.. 재정적인 문제도 있고...
그렇다면 졸업후 하게 되는 일에 대해서 여쭤보지 않을수 없겠네요.
일반적으로 brain 이라 불리는 과학 석박사들의 진로는 크게 4가지로 나눌수 있어요.
첫번째 교수가 되던지
두번째 etri 나 kist 같은 국책 연구소로 가든지
세번째 대기업 연구소로 가든지
네번째 대기업 혹은 중소기업 사업부로 가든지
뒤로 갈수록 선호도가 떨어지는 선택이죠... 교수는 일단 박사 과정을 마쳐야 하고 그 후 post doctor 라 해서 약 2-3년간의 연구소 경력을 쌓고 나서 선택할 수 있죠. 요즘은 워낙 학력 인플레가 심한 시대라 어지간한 논문 실적과 학벌이 아니면 실패하기 쉽상이예요.
국책 연구소도 보수가 사기업에 비해서 후한편은 아니지만 일단 공무원 신분으로서 안정적이고 근무여건이 상대적으로 훨씬 편하다고 알려져 있어 교수 선택 다음으로 선호되죠. 그러나 경제한파 탓인지 몇년째 신입 연구원을 채용하지 않고 있어서 국책연구소에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 이상으로 힘들어요. 채용공고도 거의 나지 않을뿐더러. 공고가 나더라도 이미 내정된 사람이 채용되기 일쑤라서...
그다음이 대기업 연구소입니다. 공무원 신분은 아니지만. 일단 근무여건 및 강도가 제품 사업부에 비해서 훨씬 편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 최첨단 기술을 연구한다는 자부심도 있죠. 국내에는 삼성의 종합기술원 LG 의 CTO, 현대 남양 연구소 등이 있습니다. 외국 기업으로는 MS, 구글, 애플, IBM 등 연구소가 있고요.. 대부분 국내에는 없지만요. 국책연구소에서 채용을 안하니 교수를 꿈꾸지 않는 나머지 석박사들이 대기업 연구소에 몰리는건 당연하겠죠. 따라서 경쟁이 매우 치열한 편입니다. 더구나 경제한파의 영향인지 이젠 대기업 연구소에서도 채용공고를 거의 내고 있지 않아서. 국내 석박사는 물론 해외 석박사도 갈 수 있는 부분이 매우 협소해져 일반 학사 졸업생과 마찬가지로 제품 사업부로 많이 빠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사업부는 엔지니어 계통에서 선호하지 않는 직군이라는 늬앙스로 들리네요.
호불호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사업부는 일반적으로 기획을 통해 제품을 생산하는데. 그 안의 엔지니어는 기획팀에서 정해놓은 일정을 맞추어 제품개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과중한 업무로 인해 근무환경이 열악한 편입니다. 미혼자의 경우에는 일에 대한 열정과 패기, 또 그안에 찾아내는 재미, 무엇보다 후한 보수 등으로 사업부 근무가 마냥 나쁘다고 할수 없지만 결혼하고 나서도 1년중 6개월을 해외 출장을 다니고 밤 11시 퇴근을 밥먹듯이 하여 가정에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볼때는 장기적으로 선호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닌듯합니다. 이건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 예요.
가정적 안정이 치열한 기술계통에서의 성취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편인듯 하네요.
제 경우에는 S전자 사업부에서 근무하다가 OO 연구소로 옮기게 된 경우가 되겠죠. 엔지니어로서의 근성을 버리고 안락함을 쫓아 직장을 옮겼다는 시선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이화여대 이인화 교수의 칼럼을 읽은적이 있어요. 게임 개발자들이 예전같은 헝그리 정신이 없다. 잠자코 먹이를 기다리다가 죽어가는 늙은 거미와 같다..란 맥락으로 나태해진 게임 엔지니어들을 강하게 질타한 칼럼이었죠. 엔지니어들은 밤새기를 밥먹듯이 하며 열악한 환경속에서 근무해야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대표적으로 드러난 글이었어요. 실제로 많은 기업의 고위층의 생각이 그러하니. 엔지니어에 대한 대우는 그만큼 열악해질수 밖에 없죠. 더 안타까운건 많은 엔지니어 당사자들도 그러한 대우에 익숙해져버렸다는거죠. 이건 엔지니어 공급 과잉에서 비롯된 문제일 수도 있어요. 그나마 대기업에서는 엔지니어를 혹사시키는 대신 보수를 후하게 주고 있지만. 혹사시킨 만큼 엔지니어들은 지쳐가고 개발자로서의 수명은 줄어들게 듭니다. 결국 10년이내에 퇴사하여 개인사업을 하던지. 회사내에서 기획이라든지 인사 등이라든지 아예 직군을 바꾸게 되는거죠. 해외에서는 나이 지긋한 백발의 노인이 프로그래밍을 하는 모습이 흔한 광경이지만 국내에서는 그렇지 못해요. 사회에서 엔지니어를 바라보는 시선이 몸으로 때우는 3D 업종으로 보기 때문이죠. 그런면에서 S전자에 다니면서 엔지니어로서의 위기감을 가지게 되었어요. 3년간 야근을 밥먹듯이 하면서 무언가가 자꾸 사그러드는 느낌. 결국 퇴사하여 공부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지요.
단순히 안락함을 쫓아 회사를 옮긴다? 적어도 제 경우는 아닌것 같군요. 쉽게 지치고 싶지 않았을뿐이예요.
이공계 출신 들은 사회적, 문화적 소양이 인문계 출신보다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것도 과중한 업무량의 영향이라 볼 수 있을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공대 출신의 친구만큼이나 인문대 출신의 친구들이 많은 편이예요. 영화 만드는 친구, 광고 만드는 친구 기자 친구, 출판업에 종사하는 친구... 목적의식을 가지고 인맥을 구축하는 편은 아니지만 운이 좋게도 친구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예요.
그러한 제 경험을 미루어 보면 이공계출신의 편협한 교양과 의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느정도 동의할 수 밖에 없어요. 제가 만나온 친구들과 동료들이 대부분 명문대 출신에 대기업 종사자들이기 때문에. 제가 만나온 많은 이공계 종사자들이 평균적인 사회적 위치에서 더 떨어져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1년에 업무와 관련되지 않는 책을 1권이라도 진지하게 읽는 경우가 참 드물어요. 말씀드렸듯 엔지니어는 대부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어요. 장담컨데 연구소를 제외한 그 모든 부분에서
엔지니어가 정시출근, 정시퇴근을 하는 것을 용납하는 기업은 거의 없을거예요. 최소한의 휴식과 사회활동도 위협받는 상황에서 실체적 이득이 얼른 잡히지 않는 고상한 교양활동 등은 이공계인에게 사치예요. 이것은 비단 현업에서의 문제가 아니예요. 학생시절부터 꽉짜인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하는 이공대 학생들 입장에서는 그 흔한 베스트셀러 소설 읽는것도 버거워요. 기껏 읽는다고 하면 처세, 성공하는 법칙 같은 기획서적류? 정신적으로 빈곤해질 수 밖에 없지요. 이들이 과연 사회지도층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제 입장에서는 굉장히 회의적이군요. 사회 지도층을 비균형적으로 인문계 출신이 장악하면 결국 이공계인의 처우는 항상 그자리일테고 악순환의 반복이예요.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삼성, LG 같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열흘간의 동계 휴가 등 엔지니어의 합리적 근로환경을 만들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까요?
저는 일단 이러한 시도 자체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사회 지도층에서 근본적 체질 개선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러한 의지를 지속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S전자에서 근무할때 한 일화를 들었어요. 90년대 초반에 잠시 S그룹이 전사적으로 74제를 실시한적이 있었어요. 7시에 출근하여 4시에 퇴근하자. 4시 이후에는 가정을 돌보고 다른 사회활동을 장려하자는 취지였지요. 당시 사회분위기를 고려하면 정말이지 파격적인 근무환경이 아닐수 없어요. 그 제도에 대한 의지도 강력했던걸로 보입니다. 4시 이후에는 회사 문을 걸어잠그고 아예 야근을 못하게 강제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그 후 어떤일이 벌어졌냐하면. 4시에 퇴근하는척하면서 경비원 몰래 월담하여 회사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왜 그랬을까요? 일이 너무 좋아서? 아닙니다. 상사가 시켜놓은 일은 7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할때까지 열심히 해도 완수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는겁니다. 진짜 효율적인 근무 환경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그 내부의 프로세스를 싹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출퇴근 시간 조정 등 주먹구구식의 전시행정을 통해 쉽게 개선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거죠.
그렇다면 대학원 과정에서의 노동문제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있을것 같네요.
나름대로 국내에서 가장 업무강도가 센 곳중 하나라는 S전자 무선사업부에서 3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습니다. 워낙 어릴때부터 자취하면서 잡초같이 학업과 사회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서 정신적, 물리적으로 견딜만 했어요. 근데 대학원 생활은 정말 견디기 힘든 구조더군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일단 제가 경험한 대학원 생활이 모든 이공계 대학원생에게 해당되는 일반적 환경은 아닐 수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공통점은 있죠. 먼저 과학기술의 생산과 수요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야겠네요.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에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연구가 필수입니다. 그러나 신기술이 반드시 제품화가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일종의 투자와 같은 개념이 되겠습니다. 쉽게 말해 10개의 신기술을 돈을 들여 개발을 하지만. 모두다 상품화 하여 이윤으로 연결시키기는 어렵지만 하나만이라도 시장을 선도할 기술을 건지기 위해 기업 입장에서는 연구 개발비라는 리스크를 무릅쓰고 신기술 개발을 하는것이죠. 이를 위해 아까 말씀드린 기업내 연구소를 운영합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분산하고자 하는 노력이 수반됩니다. 이를 위해 일정량의 기술 연구를 대학원 연구실에 의뢰하게 되는것이죠. 일단 정규직 인원을 채용하는것도 아니고. 그를 위해 공간을 마련하는것도 아니고. 기술 개발 사례로 얼마간의 댓가를 치루는 방식이니 과학기술 연구실 운영을 위한 리스크를 상당부분 줄이게 되는것이죠. 또한 정부 입장에서도 국가적 차원에서 기술개발을 위해 국가 연구소를 운영함과 동시에 대학원과 손을 잡고 연구과제를 수행하게 됩니다. 이렇게 대학원 입장에서는 정부, 기업과 연동하여 과제를 하고 그 과제비로 연구실의 운영비를 충당합니다. 운영비는 작게는 전기세, 사무용품 같은 각종 기자재비부터 연구 장비 구입비, 그리고 연구비라는 명목으로 지급되는 학생 인건비,학술대회 참가비 등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결국 대학원은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 과제를 끊임없이 지속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수와 학생들은 그 노동력으로 투입되고.. 그 과정에서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등의 또 다른 결과물을 생산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에는 하나의 맹점이 존재하게 되는데. 대학원이 자율적으로 기술개발을 선도하기 어렵다는것입니다. 어쨋든 정부와 기업에 고용된 구조이기 때문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연구를 하게 되는것이죠.
어쨋든 정부와 기업에서 원하는 기술이라는것은 그만큼 일반 소비자들이 원하는 실용적 기술이라는 이야기가 될텐데.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요?
맞습니다. 정부와 기업에서 보는 기술은 성과를 바라죠. 그 성과라는것이 결국 사용자에게 매력있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을때는 그들이 선도하는 기술의 방향은 매우 실용적으로 흐릅니다. 그러나 조금 다르게 본다면 실용을 추구하다보면 멀리 내다보는 기술에 소홀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쉬운 예로. 만일 아인슈타인이 현재의 대학원에서 연구를 한다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할 수 있었을까요? 그걸 어디다가 쓰게요? 어느 기업에나 정부에서 원하는것일까요?
창의적 연구와 미래를 보는 기술에 대한 여유가 없이 결국 대학원도 기업 산하의 연구실에 다름없어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대학원의 역할이 그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는. 말씀드렸듯. 지능을 가진 기계를 연구하고 싶었어요. 뇌를 모티브로요. 그러나 이 기술을 당장 사용할 곳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기술을 연구하길 원하는 정부부처나 기업이 없다는 의미예요.
이 기술연구에 펀딩을 받을 수 없으니. 조직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연구를 하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논문 몇편 쓰다가 졸업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추구하던 연구분야가 전혀 쓸데 없는 분야일까요? 그럴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건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해외 연구소에서는 미래를 보고 뇌를 모티브로한 인공지능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이 인터뷰를 보게 된다면 한가지 충고 드리고 싶은건. 가고자하는 연구실을 선택할때는 그 연구실의 연구분야나 논문 실적이나 취업률 등도 고려해야겠지만. 현재 어떤 정부/기업 과제를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것이 가장 중요하다는것입니다. 국내 이공계 대학원이 낭만적으로 하고 싶은 공부만 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닙니다. 결국 대학원에 진학하였을때 본인이 어떤 연구 인력으로 투입되며 그 연구에서 자신이 학문적 보람을 느낄 수 있을것인지 확인하는게 매우 중요합니다.
인터뷰를 마쳐야 할 시간이네요. 마지막으로 졸업하면서 느끼는 소회 등을 말씀해주십시오.
학부생은 졸업하면서 나는 모든걸 다 안다고 생각하고, 석사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박사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모른다라고 생각한다죠. 확실히 석사 공부를 하면서 과학 기술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또 대학원을 오지 않았다면 과학 기술연구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세상을 몰랐겠죠. 2년간 국내외 학술, 저널에 약 10편가량의 논문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게 성과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비싼 비용을 치르고 보이지 않았던 문을 열었다는게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한가지 시니컬한 목소리고 하고 싶은 얘기는 아카데믹한 과학. 혁신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한 천재가 거대한 산을 쌓아놓으면 평범한 과학자들은 그 산에 모래 한삽씩 끼얹으며 본인 입지를 확보해나가는 식지요. 결국 영웅심에 들떠 과학에 뛰어드는건 낭만적이긴 해도 현명한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쉽게 현실과 본인의 재능에 타협하여 안주하는건 서글프죠. 꿈과 현실. 그 어디에 쏠리지 않고 현명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과학자들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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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야심한 시간 고장난 장비 고치고 모니터링 하느냐 뚱~ 하니 앉아 있다가 좋은글을 보네요.
지금 시스템 엔지니어로 잠시 일하고 있습니다만.. 동감이 참 많이 가는 글입니다. 설날인데 저 포함 4명이 회사에서 밤샘 근무중이네요 흐흐
공대생이 나름 재미나긴 하지만 다시 테어나면 우리나라에선 다시 이 길로 올 엄두는 안나네요.
빨리 이공계의 처후가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엉엉...
개인적으로 토목과 대학원생입니다만, 대학원 생활자체는 교수님의 마인드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그래도 대다수가 상당히 생활에 압박을 받는것은 사실이구요 ㅠ_ㅠ
엔지니어라는 삶에 있어서 엄청나게 압박을 받는 것은 할아버지뻘 선배님들까지 해서 거의 동의합니다..정말..빡세죠..;;
컴공 -> 프로그래머 -> 인공지능 -> 심리학전반, 언어공학 공부 -> 코칭센터 ->센터창업을 거쳐온 저와 비슷하면서도 종착역이 다르군요^^
또 제가 후에 인지과학 대학원을 갈 수 있는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른점은 대학원 or 상담센터에서 나눠진 듯 하군요 전 연구보다 직접 상담을 하기 시작했으니..
인공지능 공부하다보면 인지과학이나 응용심리학쪽으로 공부를 안할수가 없죠..
현제는 언어공학으로 상대방 마음 재 프로그래밍하는게 직업이니 인공지능에 대해 어느정도 통찰이 있지만..
이제 저는 인공지능은 손 놓고 우울증 손님 상담만 하고있네요.. 그리운 밤샘 프로그래머의 추억이여~
그동안 실제적인 상담을 하면서 알게된점은 마음중에 감정층은 육체와 거의 일치한다시피 링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현제 감정에 생긴 문제들을 이런 데이터에 기반해서 대부분 해결하고 있고요
뭣도 모르던 시절엔 감정을 소프트웨어로 구현한다는게 가능하다고 상상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런 이유로 단순 흉내내기를 제외하고 감정을 생물학적인 육체 없이 인공지능으로 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이 됩니다.
아무래도 직장을 다니다 학위과정에 들어가면, 이것저것 고민이 많아지는건 사실입니다.
후배들이 물어보면.."철없을때 박사까지" 가 최선이라고 이야기 하게 되는군요.. 아무래도...
저같은 경우는 그래도 받은만큼 쪼아내던 직장보다는 학교가 편하긴 편한가 봅니다. 직장에있건 학교에 있건 미래가 안보이긴 마찬가지라서..
학교에 있으니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도 할 수 있고, 사회에서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게..그것이 지금 궁핍한 생활과 막연함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며 살 고 있습니다.
논문 10편이면.. 대단하십니다.
지금 졸업 요건 논문 갖추기도 아주 힘들어 하는 상황에 부러울 나름입니다.ㅜㅜ
입으론 죽겠다, 죽겠다.. 다음학기에도 안끝나면 나가서 취직을 하겠다 떠들지만..
그래도 학문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만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동지"들이 있으니.푸후훗..
열심히 삽시다들!!!
대단하시네요 쉽지 않은 결정을 하셨어요.
저도 S전자에 있고 5년차지만 함께 대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정확히 같은 분야는 아니지만
전 가정(딸도 있고 둘째도 계획중입니다.) 이 있어서리 돈은 계속 벌어와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_-;;;
그리하여 저도 유학 등을 고려해보았는데... 포기;;;;
꿈과 이상의 gap이 벌어지는 것에 대하여 한 숨 한 숨 내쉬었었습니다.
결국 파트장께 대학원 다니는 거 허락 고고싱 =3=3=3
이왕하는 거 서로 즐거운 공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ps. 요즘은 회사 분위기 많이 달라졌어요 ^^ 일 끝나면 가자!!!! 입니다.. 물론 무선사는 좀 빡세지만요 -.-;
심리학과 4학년 생인데요. 저는 인지나 인지과학 대학원을 전공하려고 하고있습니다. 뭔가 제가 앞으로 가려하는 길을 이미 가신 분의 이야기인것 같아서 굉장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시각이나 청각 지각쪽에 관심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연구가 많이 되지 않아서 조금 두렵고 두근두근한 심정인데요, 여튼 음.... 앞으로 좋은 선택하시고 가시는 길에 밝음 있기를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