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09/12/10 13:28:13
Name 50b
Subject [일반] 글쓴이의 바람과 일기에 관한 잡담.
1.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앞 페이지에
여성 독자로부터 날라온 편지에 대한 소개가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여성분이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다는 아주 단순한 것이였는데

하루키는 누군가가 자기의 글을
읽고 행동으로 이루어진 것에 크게 감동받았다고 했다.

'여자가 책을 읽고 남자친구를
왜 만나러 가게 되었는지'

'하루키가 받았다는 감동은 대체 어떤것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결국 이일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는데

살면서 생겨나는 여러가지 의문을 모아 두었다가.
죽음의 문턱 앞에서 의문을 깨닫고 "씨익" 웃으면서 죽는다면
조금은 행복한 죽음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2

하루키 아니 글잘쓰는 중학생 만큼의 필력이 있진 않지만

나또한 조금씩 어설픈 글을 쓴다.

이것이 지금 내가 하는 유일한 취미이다.

만약에 이러한 취미 조차 없었다면
덫에 걸린 쥐처럼 발버둥치다
살수 있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죽었을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이
다같이 즐기는 취미도 아닌데
왜 이곳에다 글을 쓰는지
조금은 이해되지 않을수도 있다.


입에문 담배연기에 취해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의 취미는 "글을 써서 남들에게 보여주는것"이다

여지껏 쓴 글에는
사실인것도 있고, 사실이 아닌것도 있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일들이 퍼즐처럼
제멋대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주관적인 역사가의 입장과
같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일어났던일에 관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을 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먹으면 양이 적고
두개 먹으면 배가부른 짜파게티의
양을 조율 하는 아주 사소한 일 일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글을 쓰는 사람에겐

하루키가 받은 편지의 감동이나

팬래터 같은 것은 전혀 필요가 없다.
(오지도 않지만)

하지만 하나의 바램은 있다.

글을 읽어본 누군가가

하루쯤은 노련한 청소부인
시간의 빗자루질을 피해서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한잔 마시고

편안히 잠을 자는것이다.

------------------------------

1.

시금치를 싫어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이트를 싫어하는 것처럼 잘못된 편견이란걸 알지만

어린시절의 나에게 시금치 주위로 생겨나 편견은
시멘트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기에 좀처럼
떨쳐 낼수가 없었다.

"일기"를 쓸때엔 식탁에 차려진 시금치가 떠올랐다.

구슬치기를 하고 BB탄 총싸움을 한다거나 하는
재미난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나에겐 그것을 글
로 표현해내는 능력이 없었다.

일기를 잘 쓰지 않는 학생은 나 혼자였는데
선생님 이라는 커다란 조직을 이길수 없었기에
능력이 없어도 무조건 써야만 했다.

슬프지만 일기를 쓴다 란것은 생존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2

초등학교 이후로는 일기를 써본적이 없다.

얼마전부터 시작한

너무나 허전한 싸이에 꽃을 심는 기분으로

그날 있었던 일을 압축해서 적어 놓곤 한다.

건조대에 널부러져 말라버린 빨래같은
건조한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적어둔 글을 보곤 하는데
너무나 압축이 잘 된 탓인지 전혀 기억할수가 없었다.

턱없이 모자란 나의 기억력 덕분에
분명히 있었던 일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후론 일기를 쓴다

일기를 쓴다고 해서 열쇠고리가 달린 이쁜 일기장에
몰래 몰래 쓰는것은 아니고

연습장이나 이면지에 대충 적어 놓고, 책상 어딘가에
넣어두고

일기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다 보면 책상 정리를 할때쯤에
적당한 시점에 우연찮게 발견 된다.

우연히 발견된 일기가 삶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진 않지만
소소한 재미를 준다.

물론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새벽에
낄낄 대는 재미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엷은바람
09/12/10 13:47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일기에 관련 된 얘기는 적극 공감됩니다.
매번 쓰다 말고 쓰다 말고 하는데.. 이면지, 굴러다니는 종이 쪽지에라도 소소한 일들을 적어둬야겠네요
Who am I?
09/12/10 13:52
수정 아이콘
한달전부터 독하게(?)마음먹고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수첩이나 손으로 하는 메모는 영 재능이 없어서 꽤나 오래전에 정리했던 블로그에 날짜와 시간기준으로 줄줄이 생각날때마다 쓰고 있지요. 시작은 두리뭉실하게 글쓰는 버릇을 없애보자! 솔직하게 기록하자! 였는데...뭐 막상해보여 여전히 두리뭉실하게 대충 쓰고 있지요. 그래도 조금씩 나 스스로에게 솔직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으하하하.

내 삶을 나도 기억못하는건 꽤나 난감하더라구요. 흐흐;;
드랍쉽도잡는
09/12/10 17:40
수정 아이콘
제목에 바램이 아니고 바람입니다.

일기 꾸준히 쓰다가 한 번 놓기 시작하면 다시 쓰는 게 쉽지 않더군요.
09/12/10 18:55
수정 아이콘
엷은바람님// 저처럼 하세요 하하.

Who am I?님// 가끔 기억 못할때가 있더군요..

드랍쉽도잡는질럿님// 적고 나서 고칠려고 했지만 급히 나온다고 못고쳤네요 지적 감사 합니다^^
맞아요 꾸준히 하다가 한번 안해버리면 뭐든지 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최연발
09/12/10 20:30
수정 아이콘
50b님 글 너무 좋은데요.

팬이 되버린 것 같습니다.

크크, 50b님의 글은 뭐랄까 50b님만의 색깔과 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디 오늘부터 기억하게 될 것 같네요. 저는 특히 당신은 쿨한 사람입니까, 보낸 문자는 잊어 버려야 한다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글 많이 부탁드릴게요.
스카이_워커
09/12/10 23:01
수정 아이콘
하루키의 글을 읽은 후와 같은 감동을 얻는다거나, 50b님께 팬레터 같은 걸 쓸마음은 없지만 ;; 글을 읽으며 생각에 남기고, 귀차니즘을 극복하고라도 감사의 댓글은 잊지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라이트팬입니다. =)

생각이 난김에 워드로 일기를 써서 모아둔 폴더를 들어가보니 가관입니다. 2007년 2월 모일, 12월 모일, 2008년 1월 모모일, 2009년 1월 모모일... 새해가 밝으면 또 일기를 써보는 시간이 찾아오겠군요. 이번에는 기필코 꾸준히 기록을 남겨서 훗날의 소소한 재미를 하나 더했으면 좋으련만...

앞으로도 글 많이 부탁드릴게요. (2)
09/12/10 23:12
수정 아이콘
최연발님// 감사 합니다^^. 이전 글도 읽어 주셨군요..

스카이_워커님// 네!!!!. 다음 글은 "인턴 숙소를 털다"가 될것 같네요^^
슈퍼 에이스
09/12/11 21:39
수정 아이콘
50b님//글을 읽다보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텅빈충만
09/12/12 18:49
수정 아이콘
일기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좋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8186 [일반] 제자리로... [4] 임헐크님3134 09/12/10 3134 0
18185 [일반] [잡담] 뭔가 재미있는일 없나요? [92] Who am I?3667 09/12/10 3667 0
18184 [일반] 글쓴이의 바람과 일기에 관한 잡담. [9] 50b3059 09/12/10 3059 0
18183 [일반] 한국 프로야구 레전드 스토리 - 3. 투박한 근성의 2할타자 김인호 [9] 페가수스3670 09/12/10 3670 1
18182 [일반] 대표팀 전지훈련 명단 발표!! [27] Bikini3584 09/12/10 3584 0
18181 [일반] Live Session [15] Charles3428 09/12/10 3428 0
18179 [일반] 한화, 선발용 ML출신 용병투수 2명 영입 [24] xeno4131 09/12/10 4131 0
18178 [일반] 캐나다에서 소형차 토요타 야리스(비츠)의 성공과 한국의 큰차 제일주의. [32] 성야무인Ver 0.005414 09/12/10 5414 0
18177 [일반] 챔피언스 리그 32강 일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21] NecoAki3895 09/12/10 3895 0
18175 [일반] [인증해피] 에바 덕후와 일반인의 대화(스포살짝) [26] 해피5536 09/12/10 5536 0
18174 [일반] 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 [25] 헥스밤7047 09/12/10 7047 0
18173 [일반] 나만의 야구 팀을 꾸려보자 '프로야구 매니저' [18] Anabolic_Synthesis4435 09/12/10 4435 0
18172 [일반] 국내 배우로 삼국지 캐스팅을 한다면? [52] 와이숑6336 09/12/10 6336 0
18170 [일반] 고백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 [42] Love&Hate18399 09/12/09 18399 19
18168 [일반] cj, 온미디어 인수 [19] swordfish5945 09/12/09 5945 0
18167 [일반] 이병헌, 캐나다 동포 전여친에게 1억원 피소.... [59] 햇살같은미소8672 09/12/09 8672 0
18165 [일반] 얼마전 지하철지연으로 인해 서울대 면접에 늦었다는 학생에 대한 기사.. [40] 굿리치[alt]8208 09/12/09 8208 0
18164 [일반] Ob-La-Di, Ob-La-Da 첫 라이브가 12월 2일에 있었네요... [11] 히로요4883 09/12/09 4883 0
18163 [일반] 범죄자가 유치하는 올림픽이 대한민국의 자랑? [14] 노련한곰탱이5202 09/12/09 5202 0
18162 [일반] 09-10 UEFA챔피언스리그 32강 경기 결과 (영상) [29] Charles4215 09/12/09 4215 0
18161 [일반] 2009년 49주차(11/30~12/6) 박스오피스 순위 - '한국도 뉴문 열풍' [26] AnDes4599 09/12/09 4599 0
18159 [일반] wow) -Frostmourne hungers- [13] Ace of Base4444 09/12/09 4444 0
18158 [일반] [아이돌] 소녀시대가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 그림을 보고... [21] 크리스5716 09/12/09 5716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