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좋아하는 누나가 있었다. 내가 자꾸 파스타 소스를 입에 묻히면서 먹자 "귀엽네"라며 휴지로 내 얼굴을 닦아 주었고, 그 순간부터 그 누나와 나의 나이 앞자리 숫자가 다르다는 것 따위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연락도 자주 주고받게 되고, 그렇고 그런 관계에서 던질 법한 농담도 주고받으며 나름대로 순조롭게 풀려가는 듯했다. 맛있는 밥도 먹고, 카페 가서 자연스레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되고, 서로가 잘 맞는다는 것도 확인했다. 둘 다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 순간 나에게 가장 와 닿는 것은 알폰소 쿠아론 특유의 롱테이크의 위압감도, 산드라 블록의 탈의씬도, 우주의 아름다움과 중압감과 공포감도 아닌, 내 손에 맞닿은 부드러운 손결뿐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각자의 집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럼 우리 집 올래?
"집에 가기 싫어요"라고 문득 던진 나의 말에 대한 대답이었다. 누나의 집은 지하철로 1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였지만, 그 긴 시간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그 날 밤에 대한 기억은 두 가지뿐이었는데, 하나는 그 누나의 집 문을 열 때의 두근거림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몸에 떨어진 '그녀'의 땀방울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통해 마음의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으나, 그녀는 나를 통해 몸의 외로움을 달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나의 마음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누나'가 되었다.
이후로도 나는 두어 번 정도 그 누나를 찾아갔다. 마음을 정리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고, 0.1%라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서로가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만 더 절실히 느꼈고, 나는 몸이 아닌 마음을 원했기 때문에 더는 그 누나를 찾지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똑같은 걸 세 번 당하진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세 번이나 겪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 누나를 '썅년'이라고 욕하고 다녔다. 나를 세 번이나 이용해 먹은 거니까. 나중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저 서로가 원하는 것의 차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로는 그 누나를 욕하지 않기로 했다. 내 마음대로 마음을 줘 놓고선,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누나는 나에게 마음을 달라고 요구한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당시 21살이던 나와 31살이던 누나의 나이 차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누나도 처음엔 마음을 원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별로라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그냥 처음부터 서로의 요구가 달랐을 뿐이었을까?아직도 잘 모르겠다.
비록 '원하는 것의 차이'가 나에겐 상처가 되어 돌아왔지만, 나 혼자 기대하고 나 혼자 상처받은 것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처를 받으면서 성장하는게 사랑이지 않을까- 라고 되뇌이며 나를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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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얘기 하나 남겨봅니다.
한 수도승이 이단자로 몰려 군중들에게 둘러싸인 채 고초를 당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돌을 집어던지고 몽둥이로 두들겨 팼지만 그 수도승은 전혀 아픈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한 소녀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수도승 앞에 섰다. 그 아이의 손에는 막 피어난 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그가 꽃송이를 서서히 들어올리더니 휙 수도승을 내리쳤다. 그러자 그 수도승은 못 견디겠다는 듯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가끔은 미움보다 사랑이 더 아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썅년이 된다는 건,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