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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5/30 05:07:17
Name 글곰
Subject [일반]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
야심한 밤에 잠 못 이루고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리그베다 위키 사태에서 보여지듯, 인터넷의 세계에서는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나 실수만으로도 거대한 사이트가 눈 깜빡할 사이에 멸망해버리곤 합니다. 물론 그 사이트의 대체재가 없다면 멸망의 속도는 늦춰지겠지요. 그러나 그건 별이 순식간에 폭발해 초신성이 되는지, 아니면 천천히 식어서 갈색 왜성이 되는지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인터넷의 특성상 대체재는 어떻게든 공급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리그베다 위키는 나무 위키로 완벽하게 대체되어 버렸고, SLR클럽의 회원들은 지속적으로 타 사이트로 유출되고 있습니다.

저는 피지알을 좋아합니다. 심지어 사랑하기까지 합니다. 집에서든 회사에서든 컴퓨터를 커면 항상 피지알 창을 먼저 켜 놓습니다. 14년 9개월 동안 172개의 글을 썼고 5404개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제가 쓰는 글의 98%는 피지알에 쓰는 글입니다. 사이트 규모에 비해 글이 올라오는 속도가 느리고, 시스템적으로 뻘글이나 별 생각 없는 글이 제한되며, 글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일 것을 강제하는 동시에, 나름의 위트와 해학이 존재하고 있는 이 사이트의 특색이 저는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요.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고 피지알 또한 마찬가지지만, 최근 며칠간 그 문제는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이유는 당최 운영진이 보이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피지알이라는 이 작은 사회는 다른 사이트에 비해 제약이 많이 걸려 있습니다. 물론 제약이 많고 적음은 선택의 영역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듯 제약이 많은 사회에는 그만큼 많은 관리가 필수적입니다. 소위 말하는 큰 정부는, 정부의 역할이 확대되고 할 일이 많아지기에 조직을 키우고 인력을 확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손댈 데가 많으니 당연한 귀결이지요. 그리고 피지알에서 정부 역할을 하는 조직은 운영진입니다. 그러나 운영진은 지금 손을 놓고 있습니다. 혹은, 손을 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이 둘 사이의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기억하는 분들이 얼마나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피지알에서 여러 사태가 발생했을 때마다 운영진을 편드는 쪽에 서 있었습니다. 아마 누군가는 '어휴 후빨 쯧쯧' 하고 혀를 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운영진에게 가해지는 부담과 부하가 얼마나 될지 알고, 그리고 그 반대급부는 본인의 만족감 이외에는 전무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계속 그래왔습니다.

당장 이번 사태만 하더라도, 분노한 사람은 많으나 그 방향은 제각각입니다. 더 적은 통제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더 많은 통제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며, 더 확실하게 명시된 규정을 원하는 사람이 있고, 더 느슨하고 유연한 규정을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규정을 두고 더 융퉁성 있게 적용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더 딱딱하게 적용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운영진은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욕을 먹게 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영진은, 말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혹은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답변이든 그렇지 않은 답변이든 간에 일단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한 사이트의 운영진으로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의무를 하고 있다는 증명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피드백을 달라고요.

그리고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그 피드백은 단 하나, 그나마도 운영자 한 사람의 개인의견 형태로 달린 댓글 하나 뿐이었습니다.
적어도 이건, '옳지 않은' 일입니다.



운영진 임기제라든지 대변인 제도 등, 현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해서 쓰는 건 그만두겠습니다. 다만 저는 제가 애정을 듬뿍 가지고 있는 이 사이트가 멸망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피드백입니다.

무의사결정(Non-decisionmaking)이라는 행정학의 개념이 있습니다. 정부가 과중한 행정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논란이 예상되는 문제를 아예 정책적 검토의 대상에서 제외해버리고 무시함으로써 문제를 피하는 행태입니다. 이러한 무의사결정이 늘어나면 사회의 모순이 점차 쌓이고 결국 폭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예상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우선 의제화해야 합니다. 무시하는 것은 결국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뿐입니다.



거 말 좀 하세요.
남들이 수백 번은 한 이야기, 그래서 이젠 지겹기까지 한 이 말 한 마디를 굳이 되풀이하기 위해 이 새벽에 키보드를 두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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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파괴왕
15/05/30 05:21
수정 아이콘
저 역시 피지알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이 사태가 하루빨리 정상화 되었으면 합니다. 운영진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현금이 왕이다
15/05/30 05:23
수정 아이콘
운영진이 앞으로 취해야 할 행동(혹은 말)은 그간의 경위 설명, 잘못된 점이 있다면 그에 대한 사과와 대책 마련일텐데...
회원들 뿐 아니라 운영진들도 피지알에 대한 애정?이 많이 떨어진 상태일 겁니다. 잘잘못을 떠나 사람인 이상엔 말이죠.
솔직히 현 시점에서 그분들이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갈 동기부여랄까요, 그게 없어 보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봐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뭔지.
어려워요.
다음 주 로또 1등
15/05/30 05:33
수정 아이콘
만약 제가 운영진이라면 지금의 운영진만큼도 할 자신은 없기에 함부로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피지알에 대한 애정이 떨어진 운영진이라면, 애정과 열정이 있는 누군가에게 자리를 넘기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그런 열정이 있는 운영자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는 사이트라면...정말 안타깝지만 차라리 문을 닫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듯 합니다.
현금이 왕이다
15/05/30 05:36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게 정답인데 어느 것도 쉽지 않다는 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침묵은 비판받을 수 밖에 없겠죠;
다음 주 로또 1등
15/05/30 05:25
수정 아이콘
이 새벽에도 운영진의 공지가 올라왔을까 게시판을 떠돌고 있습니다.
거 말 좀 하세요.(2)
프로아갤러
15/05/30 05:29
수정 아이콘
벌점이 무서워서 지나갑니다?!
vanilalmond
15/05/30 05:58
수정 아이콘
답답합니다. 그냥 시간을 보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닐텐데요. 이렇게 유야무야했다가 또 일이 생길텐데
15/05/30 06:41
수정 아이콘
걱정은 되지만
어디서 풀어야할지 도대체 감이 안잡히는데다가
십자포화가 확실한 현상황에 도저히 총대를 맬 자신도 없고

운영진간의 위계나 리더가 없어 책임을 강제할수도 없는 상황이라

그렇게 걱정만 하면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흘러가다보면 어쩌면 운영진들은 피드백없는 유령활동만 이어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위계가 없는 느슨한 현재의 체제가 운영진과 회원과의 상호작용을 감당하는것이 불가능 한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좋은 의도로 야심차게 도입한
건의게시판이나 세분화된 벌점제도가 서서히 올가미로 조여지게 되어 옴짝달싹 못하게 된것같아 보이기도하고, 이런 저런 생각에 심란하네요
재문의
15/05/30 06:49
수정 아이콘
글쎄요..

[제목이 주는 비극성과 본문과의 괴리감이 너무 큰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이 말할수 없는 탄압이나 공포감을 주는것도 아니구요
(물론 원전 출처가 어디있지도 압니다만)
냉면과열무
15/05/30 06:50
수정 아이콘
피지알을 정말 사랑하는데.. 지금 제가 보는게 이 사이트의 끝이 아니였음 하네요.. 스러지는 느낌이예요..
은때까치
15/05/30 12:26
수정 아이콘
무의사결정, 정말 공감되는 표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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