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꿈이 없었다. 스물 일곱, 이제 막 학교라는 둥지를 벗어나 내 손으로 밥을 벌어야 했던 그 순간에도 이렇다 할 꿈은 없었다. 그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고, 돈이 떨어지면 일을 했다. 무슨 일을 해도 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삶을 위한 벌이는 뭘 해도 내겐 의미가 없었고, 입에 풀칠하기 위한 모든 활동은 의미가 없어도 반드시 해야 했다.
뭔가 하고싶다는 사람들은 솔직히 속으로 비웃은 적도 많았다. 그 꿈, 똑같이 꾸는 사람이 많았다. 백명이 달려들어봐야 한명이 하는 자리고, 그 자리에 서기 위해 사람들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별다른 꿈이 없는 자들도 똑같이 거짓말을 했다. 단지 그 자리가 주는 안락함과 권력을 위해서, 그 자리가 주는 부와 명예를 위해서. 학교내내 책과는 담을 쌓은 녀석들도 취미는 독서라고 적었고, 모두가 똑같이 인자하신 어머님과 엄격하신 아버님 밑에서 평온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모두가 똑같이 현재시제와 과거시제를 구분하는 법을 배워 900점을 넘고 있었다.
그랬기에 내게 꿈은 거짓, 착각, 환시, 자기합리화, 뭐 그런걸로 더욱 더 굳어졌다. 역사 속에서 늘 있어 왔던 위정자들의 선언들, 백성을 위해 일어났다는 정치가들의 말과, 민중을 위해 떨쳐났다는 사람들의 결론과 그 수많은 젊음들의 이력서는 내게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로 이시대의 그들, 우리들이 괴벨스고, 스탈린이고, 전두환이었다. 애초에 꿈을 꾸지 않았던, 또는 못했던 나는 점점 더 꿈과는 멀어져갔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한 길은 내게도 같은 질문에 답하기를 강요했다. 십년 후 자기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면접에서 묻는 것은 무례한 질문이다. 거기에 대고 업무와 관련없게 포크 가수요, 라고 답하는 것은 자기 숟가락을 스스로 놓으라는 소리니까. 화가 났지만, 어떤 회사에서는 그 질문을 던지는 면접관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회사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별로 다를게 없었다. 여전히 면접자들은 자신의 꿈과 비전에 대해 거창한 포부를 밝히고 있었고, 나는 안쓰러움과 죄책감과 이상야릇한 우월감까지를 느꼈다. 나또한 그뒤로부터, 적당한 역겨움을 참아 가며 보조를 맞추었다. 한발 한발, 살기 위한 제자리걸음을 딛을 때마다 발보다 가슴이 아파 왔다. 이상한 세상, 진짜 꿈을 숨기고 모두 남들도 끄덕일 만한 꿈들만을 꺼내들면서, 그것도 서로 다 내면을 알면서도 껄껄거리는 세상. 나도 똑같았다. 나도 괴벨스였고, 나도 스탈린이었고, 나도 전두환이었다. 아니 내가 차라리 그보다 더했을 것이다.
아, 하지만, 너는 아닌 것 같다. 그래, 너는 아닌 것 같다.
세상은 너 같은 사람들을 위한 것일 거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너 같은 사람의 것이어야만 한다. 별 기대도 없이 물어봤던 네 꿈, 그리고 너무나 진솔했던 네 대답. 그래, 그런 꿈을 꾸는 자야말로 세상을 가질 자격이 있다. 나는 이렇게 너를 칭송할 자격조차도 없는 구겨진 인생이지만, 감히 네 꿈에 박수를 보낸다. 넌 이룰 자격이 있고, 이뤄야 하며, 이룰 것이다. 물론 너도 다른 누군가의 앞에서 결국 살기 위해 그럴듯한 가면을 쓰겠지만, 나는 믿는다. 네 가면은 적어도 다른 이들의, 혹은 내가 썼던 그것과는 남다른 이유라는 걸 믿고, 또 안다. 네 꿈은 모든 꿈을 비웃던 나마저도 감화시킬만큼이나 매력적이고, 그 매력을 아는 이라면 모두들 네 꿈에 동조할 것이다.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네 마음이 네 꿈과 미소를 지을 때.. 그때가 온다면 나도 뿌듯할 것 같다.나도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 생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꿈이 거짓이라고만 둘러댔던 알량했던 나의 오만함을 반성하며, 뒤늦지만 다시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