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한지 7개월 후인 1860년 7월, 옥스퍼드 대학의 자연사박물관에서는 역사에 남을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윈의 불독'으로 불리는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ely)와 새뮤얼 윌버포스(Samuel Wilberforce) 주교의 대결이었다. 논쟁 중에 윌버포스 주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만에 가득 찬 조소를 머금고 헉슬리에게 물었다.
["댁이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게 할아버지 쪽입니까, 할머니 쪽입니까?"] 희대의 패드립을 들은 헉슬리는 일부러 느릿느릿 일어나 다음과 같은 말로 윌버포스의 악담을 맞받아쳤다.
["진실을 무시하고 자기의 재능을 과학적인 문제를 조롱하는 데 사용하는 당신같은 인간보다는, 차라리 원숭이를 조상으로 택하겠소."] 토론장 곳곳에서 박수와 함성이 터지고 창조론을 믿는 한 여성은 놀란 나머지 졸도해버렸다. 이에 대해 윌버포스는 당황한 나머지 자신의 마지막 발언 기회마저 포기하고 말았다. 헉슬리는 이 논쟁으로 대중들에게 진화론에 대한 확실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종교와 과학을 대표하는 윌버포스와 헉슬리. 뭔가 이상해보이는건 착각이다.
(출처 :
http://lovetl.egloos.com/5695044)
이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편견을 가지는 종교인과 과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만에 빠져 감정에 호소하는 것 밖에 못하는 무지한 종교에 대항하여 당당하게 진리를 설파하는 과학의 승리는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렇다. 참 '잘 만들어진' 이야기다.
오늘날 이 이야기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기록들 속에서는 이러한 대화를 찾아볼 수 없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진화론과 관련된 논쟁이 있었고 그 자리에 헉슬리와 윌버포스가 참석한 것은 분명하지만 위와 같은 대화가 오갔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비로소 기록상에 등장하는 것은 30년이나 지난 189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후대에 삽입된 '소설'일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윌버포스의 개인 약력을 살펴보면 위의 이야기가 사실일 가능성은 더더욱 낮아진다. 윌버포스는 주교의 신분이었지만 과학적 지식 또한 해박했으며 <종의 기원>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몇 가지 중대한 문제점들을 지적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다윈은 이것을 비상하게 영리한 글이라고 평가하며 중요하게 여겼고, 윌버포스의 비판을 수용하여 진화론의 이론 중 몇 가지 사항을 수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윌버포스는 토론에 임하기 전에 당대의 저명한 생물학자였던 리처드 오언에게 조언을 받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해온 상태였다. 1860년 논쟁 직후에 나온 데스먼드의 평론에서도 '윌버포스와 헉슬리는 서로를 적이지만 훌륭한 인물로 여겼으며, 나름대로 각자의 친구들이 흡족할 만큼 충분히 공격하고 반격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윌버포스가 과학적 논쟁을 제쳐두고 감정에 호소하는 유치한 패드립 밖에 못했다는 것은 여러모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지금도 헉슬리-윌버포스의 옥스퍼드 논쟁 이야기는 진실인 것처럼 대중들에게 인식되고 있고, 죄없는 윌버포스는 무식한 종교인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며 끝없는 고인드립을 당하고 있다. 헉슬리와 논쟁 좀 했다는 원죄 때문에. 그가 살아돌아온다면 아마 명예훼손으로 수천명 이상을 고소하고 떼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진실을 무시하느니 원숭이가 되겠다는 헉슬리의 발언은 분명 호소력이 있다. 본인도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에서 내 실력이 개판이라 못 이긴다는 진실을 외면하고 팀원탓만 하기보다는, 1인분 이상의 역할을 하며 원숭이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다.
우리의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위해, 모두 히오스를 해서 1인분을 한다는걸 증명하자. 꿀잼 히오스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