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떨어지던 동생이 문고리에 어깨를 찧고 힘없이 신음을 뱉는다.
분이 풀리지 않아 확 패버릴까 하다가
문 밖에 서서 내 기척을 살피고 있는 아빠를 발견하고 한 번은 참기로 했다.
내 차례였는데, 내가 먹을 아이템이 또 안 나왔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책상을 크게 한 번 내리치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오늘 실수했던 놈이 누구였더라? 나는 한 명씩 이름을 불러 오늘 실수했던 놈들을 족치기 시작했다.
버러지만도 못한 것들. 진짜 그냥 다 쳐죽여 버릴까 보다.
오늘도 꽝이다. 대체 왜 나만 이렇게 운이 없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퇴근한 엄마가 동생 어깨의 멍을 보더니
또 때렸냐며 자고 있던 나를 다그친다.
잘 자고 있는데 왜 또 난리일까? 때린 것도 아니다. 그냥 밀었는데 지가 가서 부딪친거지.
그리고 들어올 때 노크 좀 하라고 수없이 말했건만 도무지 들어 먹질 않는다.
잘 때는 좀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말문이 막힌 엄마는 입을 다물고 다리를 절며 밖으로 나갔다.
문 밖에서 희미하게 다리가 아프다는 말이 들려왔다.
하루 종일 서 있으니까 다리 아픈 게 당연하지! 당연한 말을 뭐하러 해! 나 들으라고?!
나는 엄마의 등 뒤에 소리친 뒤 계속 잠을 이어갔다. 이 짜증나는 집안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다.
서버가 리셋되기 한 시간 전에 가뿐하게 눈을 떴다.
이런 고요한 새벽이 좋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내가 원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다.
창문을 열고 밤공기를 마시며 담배를 피울 땐 정말 기분이 좋다.
세상에 아무도 없는 기분. 나 혼자 덩그라니 남아서 고독을 즐길 수 있다.
때로 아주 가끔, 학교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하다.
졸업은 했을까? 요즘 취업이 그렇게 어렵다는데…
일찌감치 포기하면 편할 텐데. 어차피 결과가 같다면 왜 그리 용을 쓰는 걸까.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사실 내 미래가 생각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솔직히 이제 친구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연락을 피한지 2년이 넘어 간다.
언젠가부터는 연락도 오질 않는다. 그거야 애초에 바라던 바다.
라면에 말아먹을 밥을 가지러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가는 길에
거실에서 이불 펴고 자고 있던 엄마가 부스스 고개를 들어 냉장고에 파김치가 있다고 알려준다.
밥솥을 열었는데 딱 봐도 밥이 두 공기가 채 안 되어 보인다.
엄마는 갈수록 밥솥에 남겨두는 밥의 양을 줄이고 있다. 유치하고 졸렬해서 기분이 상한다.
처음부터 뚱뚱했던 것은 아니다.
덩치가 조금 있는 편이긴 했는데 그래도 건장하단 소리 듣고 잘 지냈다.
제대할 때만 해도 나쁘지는 않았다. 어느 사이에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차피 쉽게 찐 살이라 쉽게 뺄 수 있다.
지금은 그냥 내가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길 뿐이다. 필요할 때 빼면 된다.
배를 채우고 담배를 피던 와중에
문득 어제 동생이 보라고 알려준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그 글 제목이 가물가물하다.
75kg 감량기였나?
이런 식의 성공기가 으레 그렇듯, 잘난 척이 지나쳐서 역겹다.
그리고 무슨 운동을 어떻게 했다느니 어떤 시술을 받았다느니 써야 하는데
뜬금없는 자기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놔서 대체 이게 무슨 글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마치 나는 이렇게 해서 됐으니 너도 할 수 있다는 전형적인 꼰대 마인드다.
논리적 근거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그냥. 근성으로. 열정으로! 어이가 없다.
거기다 대고 사람들은 댓글로 축하한다고 대단하다고 난리를 부린다.
왜 누구도 이 글의 헛점을 지적하지 않을까? 몇 군데만 꼬집으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 형편없는 글인데.
둘러 보니 게임 사이트다.
실소가 나왔다. 게임 사이트에서 인생 막장들끼리 다이어트를 논하고 잘들 논다.
동생놈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나에게 내민 걸까? 분위기 파악 못하는 건 이 집안 종특인가.
시간낭비를 끝내고 게임에 접속하려는데 아빠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키보드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숨소리도 죽였다.
아주 고요하게 거실에서 다박다박 지팡이가 길을 찾는 소리가 난다. 이윽고
웃옷을 벗는 소리,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 세면대 소리, 칫솔 소리, 이불을 덮는 소리, 엄마가 뒤척이는 소리.
아빠의 허약한 숨소리. 왔어요? 묻는 엄마의 덜 깬 소리. 말없이 몸을 누이는 아빠의 기척 소리.
거실이 조용해졌음을 확인한 뒤 나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려 게임에 접속했다.
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갈 때쯤
아빠가 빠르게 시력을 잃기 시작했다.
가세는 더 빠르게 기울어 갔고 나는 휴학 후에 입대를 결심했다.
수도권의 대학 진학이 가능했던 동생은 몇 군데의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을 알아보다 여의치 않았는지
당분간 진학을 미룬 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울렛 여성복 매장에서 일하던 엄마는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마트의 행사장으로 직장을 옮겼고
우리 가족은 각자 빠르게 변화에 적응해 갔다.
갈수록 말수가 줄어드는 아빠처럼 우리 집 전체도 갈수록 조용해져 갔다.
제대 했던 날
방이 하나 줄어버린 우리의 새 집을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이름도 없는 다세대 주택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어차피 번갈아 가며 하루 종일 밖에 있다고 내가 안방을 쓰게 되었다.
엄마는 거실에서 이불 깔고 테레비 보면서 자는 게 편하다고. 아빠는 문을 열고 문턱 넘기 번거롭다고.
아빠는 이제 거의 말이 없었지만 웃는 표정은 변함이 없었고 지팡이가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다만 조금 더 늙으셨고. 말씀에 쇳소리가 많이 섞이셨다.
동생은 나보다 키가 더 컸다. 나는 부모님 잘 모시느라 수고했다며 동생의 어깨를 툭 쳤다.
키가 커서 더 싱거워진 동생은 멀쑥하게 웃었다.
출근하던 엄마가 노크를 하고 내 방에 들어와 스피커에 손을 얹고는
오늘 저녁에는 다 같이 삼겹살을 먹을까 했다.
하필 PVP 중에 들어와서 나는 오늘 중요한 일이 있다고 둘러댔다.
엄마는 별 말 없이 뒤돌아 나가려다가, 그래도 일찍 끝나면 들어와서 함께 먹자고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오후에 동생과 나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오라고.
봐서. 나는 짧게 대답했다. 시키는 것도 많다.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스피커 위에 3만원이 놓여 있었다.
정오가 지나 아빠도 출근을 나섰다.
동생이 점심에 뭐할거냐고 묻길래 일 있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이 있다고 집을 나갔다.
집안이 고요하다. 나는 엄마가 주고 간 3만원을 쥐고는 골똘히 생각 했다.
아마도 어제 내가 짜증내서 미안한 마음에 주고 간 것이겠지.
오랜만에 외출을 할까? 친구들에게 연락하면 혹시 만나 줄까?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이미 너무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고 이젠 서로의 관심사가 너무나 달라 말이 안 통할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너무 많이 변했다.
맞는 옷도 없고 어떤 옷을 입어도 가슴과 배가 튀어나와 숨길 수가 없다.
바지는 잠기지 않아 대충 끌어올린 뒤에 지퍼로 올릴 수 있는 데까지만 올린다. 그리고 그 부분을 헐렁한 티셔츠로 가려야 했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다. 이발도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오늘은 햇살이 좋아.
오랜만에 대낮의 바깥 공기를 쐬어볼까 싶어 나는 츄리닝에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왔다.
담배를 사는 김에 로또를 5천원어치 사고
길가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아이스 카페모카를 시켰다.
창밖 테라스에 앉아 거리를 보면서 커피를 마시니 기분이 좋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인가.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벗어나 햇살 아래 여유를 즐기니 이 정도만 해도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교 시간인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학생들이 많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던가 싶은 걸 보니 나도 나이를 제법 많이 먹었다.
나는 자전거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동생은 자전거를 좋아했다.
항상 자전거를 갖고 싶어 했지만 집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모님은 대충 다른 선물이나 외식으로 생일을 떼우곤 했다.
나는 화가 나서 내 선물은 안 줘도 되니 동생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심통을 부렸지만 잘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우리 가족에게 선물이라는 단어는 마치 사라진 언어처럼 되어 버렸다.
내 고등학교 때 그 단어를 한번 부활시킨 적이 있었다.
당구장 아저씨의 자전거를 뽀려서 동생에게 생일 선물로 줬다.
그 말없던 녀석이 그렇게 신나게 웃으며 떠드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동생이 타기에는 안장 높이가 잘 안 맞아 동네에 있던 자전거포를 갔다가 당구장 아저씨한테 들켰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싸대기를 맞으면서 혼쭐이 났고 결국 동생은 자전거 안장에 앉아 페달 한 바퀴 굴려보지 못한 채 선물을 잃고 말았다
나는 동생 손을 붙들고 도망치려고 해봤지만 너무 무서워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께 이르겠다는 당구장 아저씨 앞에서 질질 짜며 싹싹 빌었고 덕분에 반성문 한 장으로 끝낼 수 있었다.
소문에 듣자하니 옆동네 누구는 목우촌 아저씨 자전거를 뽀렸다가 일만 오지게 했다는데 이 정도면 평타라고 동생이 나를 위로했다.
가오가 상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학자금 대출 안내 서류를 들고 집에 돌아온 동생이 엄마와 오랜 대화를 했던 날이 기억난다.
그날 밤 동생 방에서는 숨죽여 우는 서러운 소리가, 안방에서는 비슷하게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나는 입대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다.
동생을 처음 만났던 날
핏물 색이 섞인 기이한 살덩이 작은 생명체, 고장난 시계 초침처럼 팔을 흔들었던 작은 아이.
겹겹이 싸인 담요와 포대기를 살짝 들어 동생의 배와 가슴을 봤던 기억이 난다.
나를 봤다.
나와 오래 눈을 맞추고는 그 작은 다섯 손가락으로 내 새끼 손가락을 살짝 쥐었다.
어린 나는 입 밖으로 너무 크게 비명이 나올까봐 다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 아빠가 소리 없이 웃었다.
제대할 때 즈음엔 형편도 나아지고 동생도 대학에 가 있을 줄 알았다.
언뜻 들었는데 아빠가 나가는 협회에서는 돈이 거의 나오질 않았고 동생도 알바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모양이다.
그 때문인지 동생은 얼마 전부터는 알바를 하지 않고 있다. 아닌가?
아무튼 알바를 그만두긴 했는데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말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
나라도 알바를 하면 좋기야 좋겠는데 도저히 내 상황이 이래서 그게 쉽지가 않다.
현실 생각에 나는 또 착잡해졌다. 게다가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쁘다고 이따가 전화한다고 대충 끊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시간이 일러 집에 들어가기는 싫고 나는 아무 PC방이나 찾아서 들어갔다.
엄마에게서 또 전화가 오길래 그냥 꺼버렸다. 모처럼의 여유였는데 뭐가 잘못된 건지 기분이 안좋다.
그러나 몇 시간 뒤 다행히 오늘이 가기 직전에, 갖고 싶던 아이템이 나와서 나는 오늘 하루를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현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동생은 짧은 머리를 쑥쓰러워 했다.
일찍 끝나서 같이 삼겹살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동생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동생 놈은 그냥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망했다 라고 농담을 했는데 난 웃지 못했다.
눈앞의 시야가 산산히 깨져 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고 있는 동생 곁에서 나는 밤새도록 충혈된 눈으로 손톱을 물어 뜯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다만 그날이 오늘이고 지금이 벌써 5월이라는 건 꿈에도 몰랐다. 시간이 나 모르게 언제 이렇게 가버린 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핸드폰을 켰더니 그제서야 문자가 울린다.
왜 안 오냐는 동생의 문자 하나하나가 가슴을 때렸다.
아니 내 인생을, 이 현실의 저주받을 주인을 때렸다.
출근하는 엄마와 자고 있던 아빠가 일어나 동생과 포옹을 했다.
엄마는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아빠는 동생의 얼굴과 어깨를 한참이나 더듬더니 뒤돌아서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은 현관을 나와 잠시 울었다. 우리는 의정부 행 버스에 올랐다.
부대찌개를 먹고 담배를 피웠고 버스를 탔고 삼거리에 내렸고 입소대대 안으로 들어갔다.
난 정신이 혼미했고 안색이 안 좋았다. 오히려 동생이 신나지도 않으면서 유쾌하게 소란을 떨었다.
한 장병의 어머니가 단상에 올라 뻔한 이야기를 했다. 대한의 건아 내 아들 어쩌구 하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머리 깎은 동생 또래들의 코끝이 빨개졌다. 야속한 군악대가 힘차게 연주를 시작했고
이 말도 안되는 분위기 속에서 동생이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갈게.
군악대의 연주 속에서 나는 무너졌다. 나는 동생을 꼭 안고 놓아주지 못했다.
내 눈물로 동생 어깨가 젖자 곧 내 어깨도 젖기 시작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통곡을 했다.
싫다. 가지 마라. 이딴 데 뭐하러 가냐. 젠장. 빌어 처먹을. 내가 너한테 왜 그랬을까 내가 대체 왜 그랬을까.
내 등을, 어깨를, 팔꿈치를 지나 손목을 잡은 동생의 손이 나를 그치게 했다.
남자돼서
올게라는 뒷 말은 목이 메어 하지 못한 동생은 상그지처럼 찡그려 웃으며 멀어져 갔다.
조금씩 멀어지다 안개 같은 인파 속으로 뿌연 내 시야 속에서 점점 작아져 갔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연대장이 개소리를 지껄였고 개 같은 국민의례, 개 같은 군악대의 소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목구멍이 뒤집힐 정도로 울었지만 꿈이 아니었다. 음악이 바뀌었고
장병들이 오합지졸로 줄을 맞춰 가족을 떠나는 행진을 시작하자 그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가족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몰려들었다.
저기 보인다.
나를 봤다.
나는 눈물을 닦고 똑바로 섰다. 단전에 힘을 모으고 입을 크게 벌렸다.
시끄러운 군악 소리를 넘어서 나는 할 말이 있다.
동생이 가까이 지나갈 때 나는 벼락처럼 소리쳤다.
개 같이 구는 놈 있으면 말해. 죽여버릴 테니까.
동생이 엄지를 들었다. 나도 들었다. 나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제발 건강해라 라는 말을 반복했다.
동생이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반복했다.
-이따가 밤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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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퇴근할때 오늘은 차타고 갈 핑계를 찾고있었는데 걸어갑니다.. 7km인데..이게 다 글쓴님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글은 일본의 히키코모리 묘사랑 흐름이 꽤 흡사하네요. 역시 이런거엔 국적이 없다고 해야하나...
몇 문단까지는 주인공놈을 흠씬 두들기고 싶은 마음과, 나도 저 정도로 뻔뻔하고 자기생각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도 있었는데
군대가는 거에서 우는걸보고 주인공의 감수성이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캐릭터의 일관성이 약간 무너진 느낌..? 초중반까지는 소심하고 의도적인 자기기만 캐릭터가 후반에는 갑자기 '몰라서'그랬던 것처럼 심리적 쇼크를 받는 부분이.. 어쩌면 그래서 더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도 들고 그랬습니다. 제가 저런 히키코모리였다면 아마 동생이 군대를 간다거나 저런 은은한 쓸쓸함?이 섞인 날에도 별 반 다를 것 없게 되지 않았을까, 혹은 그러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지 못해서 히키코모리가 못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글 올라온 시점이 밤이니 바로 올리셔야겠네요 밤이잖아요 지금 빨리 쓰시죠 찰싹찰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