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개 사회적 역할에 부여된 일반적인 인식을 곧이곧대로 밀어붙이며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뻔뻔할 정도로 당연하게 요구해왔다. 남자가 6살일 때 어느 명절날 일가 친척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처음으로 그 일이 일어났다.
그의 할머니는 우리 손주 고추 좀 보자며 우악스럽게 남자의 바지와 속옷을 잡아 내렸다. 어린아이고 자신의 손자이기 때문에 괜찮다는 통념이 행위 자체의 추악함을 완벽하게 가려주었고 남자를 둘러싼 사람들은 입이 찢어져라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조숙하고 섬세한 감성을 가졌던 남자는 지독한 수치심을 느끼며 방으로 뛰어들어가 이불 속에서 소리 죽여 꺼이꺼이 울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과 자신의 사람에게만 관심을 가질 뿐, 남이야 어찌되던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가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머리에 찐득이는 젤을 잔뜩 바르고 언제나 험악한 표정과 사나운 눈빛으로 소리를 지르던 양아치 놈들은 언제나 남자를 ‘똥덩어리’ 라고 불렀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따귀를 때리거나 발로 차며 괴롭혔다. 어수룩해 보이는 남자의 외모와 움츠러든 자세가 그들에겐 자신보다 약한 녀석이라는 인식을 하게 만들었고 단지 그 뿐이었다. 아무도 남자를 위해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어느날 점심시간에 양아치 놈들은 남자를 화장실로 끌고가 가래 침이 끈적하게 흘러내리고 군데군데 똥칠이 된 더러운 좌변기 물속에 머리를 처박고 물을 내리며 똥덩어리가 너무 커서 내려가질 않는다고 낄낄대며 웃었다.처절한 비명이 뛰쳐나오는 입과 코 속으로 더러운 물이 해일처럼 밀려들어왔고 역겨운 매스꺼움과 함께 구역질이 올라왔다. 남자의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은 더러운 하수구 똥물 속으로 흘러내려갔다. 콸콸콸콸콸. 그 일이 있고 난 후로 남자는 평생 지독한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성을 가지고 있었고, 일부의 허락된 손님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에게는 절대 성문을 열지 않았다. 단지, 성벽 위에서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오늘 하루 어때요? 날씨가 참 좋지요?” 따위의 따스한 말을 건넬 뿐이었다. 남자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천만의 인구가 사는 대도시에서 공장을 다녔지만 지독하게 고독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집을 나오는 순간부터 밤이 되어 다시 집 안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시야 안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없었지만 정작 말 한마디 나누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지하철에 탈 때면 수백명의 사람들과 피부를 스치고, 부딪히고, 눌리고, 누르고, 비비며 지독한 체취를 공유했고 그때마다 남자는 거대한 쓰레기봉투 속에 더러운 쓰레기들과 함께 쑤셔 넣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지나치게 쓰레기를 많이 담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빵빵한 쓰레기봉투.
남자는 사람들이 모두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는데, 그 생각을 떠올리게 된 것은 추운 겨울날 깊은 새벽에 편의점을 다녀오는 길에 아무도 없는 차도를 걸을 때였다. 불빛이 모두 꺼져 검게 보이는 아파트는 거대한 검은 바위처럼 보였고 주홍빛 가로등 불빛이 길에 차갑게 얼어붙은 눈을 비추며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엇보다도 남자를 기분 좋게 만든 것은 상쾌할 정도로 고요한 침묵이었다. 종일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불편함과 짜증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놀라울 정도로 세상이 아름다워진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남자는 그 새벽길의 고요한 침묵이 너무나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 고요가 그대로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정확히 5시간 뒤 남자가 집 밖으로 다시 나왔을 때 세상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길을 걷는 사람, 차를 타고 가는 사람,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 담배 피는 사람, 사람, 사람, 사람. 남자는 조용히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더러운 새끼들.
새벽녘 고요한 도시의 아름다운 침묵은 남자의 뇌리에 철근처럼 강렬하게 박혔다. 이 거대한 도시에 홀로 남아 매혹적인 침묵 속에서 오로지 자신만이 살아 숨쉬고, 떠들며, 거리를 종횡무진하고, 거리낌 없이 지내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를 찾아오는 빈도가 늘어났으며 점차 남자의 머리 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남자는 하루 종일 자신만의 멋진 이상향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대로 실현시키고 싶은 순수한 욕망이 청초한 꽃망울처럼 피어올라 남자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남자의 뒤틀린 욕망은 마치 고름처럼 흘러나와 마음속을 축축하게 채워나갔다.
그렇게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 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고 망상에 잠겨있던 남자의 이상향은 거인처럼 거대해져 망상의 장벽을 뛰어넘어 현실로 걸어 나와 그와 대면했다. 순수한 욕망으로 생명을 얻고 자아를 가진 거인은 남자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남자의 마음에 거대한 의지가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그 순간 남자는 좁고 어두운 지하 원룸에서 뛰쳐나가 길거리를 질주했다.
이른 새벽의 거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지만 한 골목길에서 술에 취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민첩한 동작으로 취객에게 달려들어 목젖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뜨거운 피가 넘쳐 입안으로 흘러 들어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 어떤 사회적 제도와 개인의 도덕심, 감정적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던 취객의 몸짓이 멈추고 거리엔 침묵만이 가득했다.
남자는 웃었다. 광기에 충만한 기운이 온몸에서 샘솟았다. 해방감에 폭발한 거대한 쾌감이 아찔하게 심장을 조여왔다. 다시 태어난듯한 상쾌한 기분에 남자는 전율하며 세상이 떠나가라 크게 웃었다. 웃음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의 머리 속엔 거인의 한마디 속삭임만이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