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와이프에게 카톡이 날라왔다. 며칠전에도 내 생일이니 아들놈은 잠깐 장모님에게 부탁드리고 맛난거 먹자는 말에 자기 좋아하는거 아무거나 먹어요 했다가 니 생일이지 내 생일이냐? 라고 한소리 들어먹은터라 오늘까지 생각하고 알려줄게요 라고 하는 수 밖에. 이제 7개월 된 아들놈 키우는 상황에 이사하느라 대출도 끌어다 썼고 와이프도 실업상태나 다름 없기에 바늘 귓구멍만한 내 월급을 모두 갖다 바쳐도 늘 형편이 빡빡하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정말 딱히 갖고 싶은 것도 없긴 하지만 말이다.
20살 이후 거의 혼자 자취하면서 셀프 미역국도 귀찮아서 안먹고 매번 저녁때 지인들 있으면 밖에서 술이요 없으면 집에서 술이던 나였는데 생일이라고 미역국을 비롯해서 이것저것 꼬박꼬박 챙겨주려고 하는 와이프님이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지. 암 매일같이 아침밥 얻어먹고 출근하는데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 아니겠냐라고 또 생각해 본다. 물론 술 먹는건 눈치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2. 이유가 어쨌건 간에 누군가에게 기억될만한 사실이 있다는게 좋을수도 나쁠수도 있지만 생일처럼 축하받아야 하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마냥 좋을 수 없다는 건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누군가는 생일이라고 신나게 술먹고 케이크 자르고 축하받겠지만 누군가에겐 온몸이 찢어지는 기분이 들테니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둠의 저편에서 대놓고 인간이란 결국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다라고 말하지만 그것도 살아가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희망과 힘이라도 남아 있어야 버티는게 아닌가. 정말 이제는 눈물도 남지 않을 사람들에게 여전히 앞에선 칼로 쑤시고 뒤에선 뒤통수를 후려치는 양아치들도 있는데 말이지. 쌩판 남인, 일면식이 있을리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학교밥 먹고 사는 내가 하는거라곤 옹졸하게 욕하고 비난하고 몇 마디 글을 쓰는게 전부라는 사실이 참 쓰리다. 뭐 확실한건 주둥이와 손가락질로만 다 처먹으려 드는 나도 저 양아치보다야 낫긴 하지만 개새끼인건 사실이지. 암 개새끼고 말고.
3. 내일 아마 어디 멀리 나가진 못하고 근처에 사시는 장모님께 아들래미를 맡겨놓고선 저렴한 고깃집에서 간단하게 나마 반주를 하지 않을까 하는데 지방질이 두툼한 돼지고기에 들이 붓는 소주는 참 독할 듯 싶다. 나에게는 축하요, 누구에겐 눈물이 될테니. 아 그런데 어떤 (년)놈은 그나마 이렇게라도 진행되서 다행이다 하면서 비싼 술과 안주를 처먹으며 희희낙락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네? 팍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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