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졸업 신청 서류에 신청을 완료하고 나니 앞으로 어떻게 결과가 되든 학생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많은 일들이 항상 그러하듯 우리 주변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요즘처럼 한국사회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는 건 처음입니다. 십여년도 더 전에 처음 일학년 학부때 멋모르고 참여한 (끝물의, 아주 잠깐의) 학생운동에서 느꼈던 '한국 사회는 최악이야' 라고 술자리에서 내뱉던 그 말의 뒷면에는 '지금은 엉망이지만 내가 나이를 먹고 우리 세대가 커가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라는 희망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도 그런 치기어린 말을 하지는 않지만 '다음 세대가 나온다손 쳐도,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더 나아지지는 않을거야'라는 절망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무엇이 우리의 절망을 이렇게 깊게 만들었을까요.

정동영 의원과 고등학교 동창이시던 아버님께서는 아직까지도 민주당의 평생 호갱님이시고 (물론 정의원 본인은 당적을 옮겼지만) 올해 99세이신, 장롱 어딘가에 본인이 찾지 못한 (북한) 개성의 땅문서를 소중히 지니고 계시는, 빨갱이라면 치를 떠시는 외조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신 어머님은 그런 가족 내부의 정치적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꽤 순조롭게 3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지내오셨습니다. 마치 하나의 국회 안에 민주당과 신한국당이 공존했듯이요. 그렇지만 부모님들의 공통된 목적은 당신들의 자식을 건사하고 가정경제를 풍요롭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당신들의 부모 형제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점이였죠. 그리고 그런 합의된 목표점이 있었기에 그런 견해차의 극복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통령과 수권정당은 당신들의 국민들을 ( 선거에서 그렇게 울궈먹던 '어머니'나 부모된 입장에서 걱정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지만) 당신들 손발 편하게 할 종놈들 부리듯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작 그 종놈들이 모두 딴 나라로 도망갈 자유, 당신들에게 부역할 세대를 스스로 끊어버릴 자유를 가진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듯하네요.

물론 제가 부모님과 정치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요즘은 부모님들께서도 당신들 자식세대에게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신 듯 합니다. 덕분에 2~3년 전만 하더라도 결혼과 출산, 양육 등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저를 몹시 나무라셨지만 이제는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너 하나만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다소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십니다. 그런 태도의 변화가 저로써는 장남의 책임 등 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의미에서는 편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희망 하나로 70~80년대를 버텨오신 부모님 세대가 그런 부분을 포기하신 것으로 해석되어 어떤 의미에서는 씁쓸한 느낌이 듭니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는데, 한국에서는 그 어느때보다도 깊은 절망이 느껴집니다. 곧 다가올 세월호 1주기는 그런 절망의 상징이 되어 제 가슴에 평생 동안 남겠죠. 두서 없이 말이 많네요. 남은 휴일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