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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1/01 11:01:26
Name 두괴즐
Subject [일반] [음악] 신해철, '일상으로의 초대': 내가 그에게 배운 사랑


설마했는데, 그는 결국 떠났습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재개하기로 했으면서 허망하게 갔습니다. 의료사고의 여부는 좀 더 면밀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겠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후회는 항상 늦게 오는 법이지요. 그래도

 

그의 음악이 남았습니다. 

추억이 있습니다. 

 


*

저는 2000년대 초에 신해철을 처음 접했습니다. 서태지의 경우도 비슷한데, 제가 음악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하던 시기가 그 즈음이죠. 계기는 서태지의 컴백이었습니다. 6집 <울트라맨이야>를 듣고 '세상에 이런 음악이 다 있나?'했었지요. 꾸준히 대중음악을 들어왔다고 생각해왔었는데, 알고 보니 세상엔 너무나 진기한 음악들이 많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습니다.

 

이미 우리세대에겐 서태지나 신해철 등은 비주류였습니다. 당시 록음악을 듣던 친구들은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저에게 접근해왔고, 신세계를 알려주었죠. 그리고 그 때마침, 신해철의 베스트 앨범인 <The Best Of Shin hae-Chul/Struggling>[2002]가 나왔습니다. 저는 이 음반으로 신해철에 입문했습니다. 

 

신해철의 비보를 듣고 아주 오랜만에 이 음반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먼지만 쌓여갔던 제 10대 시절의 추억도 꺼냈지요. 한창 공부를 해야한다고 규정된 시기에 연애를 하게 되어 어려운 마음들이 족쇄가 되어갈 때, 저는 그의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다시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민물장어의 꿈'도 제게 큰 질문이 되어주었던 노래였죠. 그의 노래들은 학교에서 하지 않던 이상한 질문들(당연히 해야할 인생의 고민들)을 많이 던졌고, 그것이 저의 중2병을 깊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작가 지망생이 된 계기도 사실은 시인이나 소설가에 의한 것이아니라 이러한 음악 때문이었죠.

 


저를 신해철에게로 전도한 한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그 친구는 심심하면 제게 와서 '일상으로의 초대'를 불렀지요. 미래에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자신의 님을 위해서요. 무슨 말인가 하면, 저를 대상으로 프로포즈 리어설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뭔일인가 싶겠지만, 그렇습니다. 저도 남중, 남고, 테크였던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런 역할도 맡아야 하는 것이었고, 저는 곱상한 편이었죠. 여하튼, 그래서 그런지

 

신해철의 명곡 중의 하나인 '일상으로의 초대'는 항상 저에게 다소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바로 그 친구 때문이지요. 그 놈(송X! 보고 있냐?)은 그 곡에 담긴 철학을 전하고자 했겠지만, 저에겐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로 매번 기억되었습니다. 물론, 명곡의 위대함 때문에-

 

무엇보다 저도 사랑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곡의 가사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닫게 되었지만요. 

 

'사랑은 일상을 공유하는 것, 서로의 일상으로 초대하는 것'이라는 것을요.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지, 또 얼마나 폭력적이고 위험한 일인지도요.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에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이 생각이 나네요. 

 

난다는 사라진 두근거림 때문에 서글퍼합니다. 그 때 한군은 이렇게 이야기하죠. "두근두근은 새로운 사람 누구와도 느낄 수 있지만, 이렇게 오래 서로를 잘 알고, 잘 맞춰온 관계는 쉽게 가질 수 없는거야."라고. 서로의 일상에 초대하고, 그 일상들을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인지하지만, 그것이 또 얼마나 신비롭고 위대한 일인지는 쉽게 잊는 것 같습니다. 사랑이란, '착각에서 비롯한 장담'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이 일상에 의해 사라져 갈 때, 진짜 시험대에 오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를 들으면서 신비가 일상에 안착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가늠했던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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쎌라비
14/11/01 11:56
수정 아이콘
이 노래를 이본이 진행하던 음악프로에서 들었던 생각이 나네요. 벌써 몇년전인지.... 아무쪼록 좋은데 가셨기를 바랍니다.
두괴즐
14/11/01 23:14
수정 아이콘
저도 종종 이본의 음악프로를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고 보면 참 예전이지요.
...And justice
14/11/01 13:01
수정 아이콘
사무실 한켠 컴퓨터에 해철이형 노래를 며칠간 계속 틀어놨네요.
어제는 지인들과 노래방가서 해철이형 노래만 2시간동안 부르며 제방식대로 그분을 보내드리고 왔습니다.
부디 좋은곳에서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두괴즐
14/11/01 23:15
수정 아이콘
그랬군요. 저도 조만간 그런 풀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14/11/01 21:56
수정 아이콘
보고싶습니다.
두괴즐
14/11/01 23:15
수정 아이콘
너무 아깝고,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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