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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07 07:25
듣던 음악도 끄고, 간만에 집중해서 글을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의 장면 장면이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 지나가는 장면들이 새롭게 읽히네요. 새로운 관점을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글 또 부탁드릴게요.
14/10/07 08:26
아침부터 신선하고 재미있는 글을 읽어 기분이 좋네요. 추천 꾹 누르고..
글 내용 중에 후계를 정한 것이 '자신이 가진 모순성을 회피하는 행위' 라고 써주셨는데, 글을 쓰신 그 맥락과 의도에 기반해서 볼때 혹 그것이 '회피'가 아닌 '정당화 된 결론이다'라고 생각 할 순 없을까요? 필요조건을 충족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제가 브루스 웨인이 아니기에) 비슷한 유년기의 경험, 비슷한 생각, 비슷한 활동성 등.. 어느정도 웨인의 이상을 이어서 실현할 조건에 부합한다는 판단이 섰을때 서슴없이(?) 자리를 하사하는 모습으로도 해석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 가정하에서는 본인의 모순성을 '필요'라는 미명하에 이미 '정당화'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14/10/07 08:43
긴 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제가 생각했을땐 배트맨이라는 또 하나의 자아가 브루스 웨인이라는 개인의 욕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이고, 그런 면에서 배트맨이 보인 모순성이 개인이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기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욕망의 스탠스가 다른 로빈에게 배트맨이라는 역할을 밀어준건 그러한 책임도 떠넘긴것이라고 보았거든요.
그렇지만 본인의 모순성을 필요로 정당화했다는 생각은 저도 하긴 했어요. 다만 그 정당화가 정말 정당한가는 부차적인 문제지만서도요.
14/10/07 09:55
다크나이트에 대해 프로이트적으로 해석한 것은 많았죠. 자아(덴트), 초자아(배트맨), 원초아(조커) 식으로..
기존하고는 다르게 욕망의 발현과 정당화 측면에서 써주셨는데 색다르게 다가오네요. 이걸 프로이트로 보기보단 융의 페르소나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싶네요.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부조리까지는 공감하지만 그것이 코미디로 이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좀 회의적입니다. 그 부조리가 배트맨(혹은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의 한계라고 보여지지 작품에서 그걸 통해 블랙코미디를 구현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아서요.
14/10/07 10:34
이런 해석도 가능하군요. 대단하시네요. 수능 비문학 지문에 나올법한...
전 다크나이트는 일반사람이 가지고있을만한 고뇌를 배트맨에게서 다시 일반사람에게로 퍼져나가는 관점에서만 봤는데 말이죠. (배 2개 서로 폭발 치킨게임 장면, 하비덴트의 몰락) 저의 지적 수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라 업무끝나고 다시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여러모로 다크나이트는 정말 희대의 명작인 건 분명하군요. 히어로물은 '다크나이트' 전후로 나누어진다는 말이..
14/10/07 11:22
몇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일단 블랙 코메디라 함은 어떤 것을 지칭하는지. 희극이 아닌 것을 희극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블랙 코메디라고 전 보는데,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에서 전 놀런이 자신이 던지는 주제를 가지고 희화화한다는 인상은 전혀 받지 못했거든요. 오히려 더 진지하게 비극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려고 하지요. 그리고 욕망의 억제가 표현된 부분이 어떤 것인지. 우물에 떨어진 사건으로 욕망의 분출이 억압되었다고 하셨는데, 그 전에 가지고 있던 욕망이 뭔지 잘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으로 보면 조커와 배트맨은 정확히 동일 성향의 사람들이 아닌가요? 둘의 차이점은 사회적 정당성인데, 그것은 욕망의 발현과 억제의 측면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느냐 못받느냐 하는 것인데 조커의 출현으로 인해 정반대에 있던 그들이 사실은 전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다크나이트에서 보여주니까요. 조커와 배트맨의 심문 장면도 그렇고. 오히려 캐릭터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은 투 페이스에게 더 알맞지 않을까 하거든요. 말씀하신 욕망의 발현과 억제에서 그것이 억제되던 과정,(화이트 나이트로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모습) 욕망이 조금씩 발현되는 과정(정의를 추구하는 기본 욕망 아래 복수와 폭력에 점점 더 기우는 모습들, 식당에서 브루스 웨인에게 시저를 이야기하며 타락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든가 경찰로 변장한 조커 일당을 동전던지기로 심리적 한계에 몰아붙인다거나) 그리고 그 욕망이 마침내 자신을 완전히 장악한 모습( 투페이스로의 변모 이후) 에서 변모의 시작, 중간, 끝이 명확하게 드러나니 이런 접근은 아무래도 배트맨에게는 적합하지 않아보여요. 마지막 문단도 조금 다른 생각인게,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배트맨이 수호하는 사회적 가치는 보수적인 사람들의 그것과 일치합니다. 오히려 무정부주의를 바탕으로 반자본주의에 가까운 사상을 지닌 베인이 끝내 배트멘에게 제압되고, 또 사람들과 연합해 벌이는 투쟁의 하이라이트가 바스티유 감옥 혁명의 장면으로 패러디 되지만 그것은 결국 정의롭고 선량한 사람들과 배트맨에 의해 정리되지요. 배트맨의 주식을 조작해 그가 가진 자본주의의 힘을 무력화하는 부분을 현 사회(특히나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점령 시위)와 연결해서 본다면, 너네가 지금 벌이는 무장 투쟁이나 사회적 변혁의 모습이 무슨 프랑스 대혁명인줄이나 알겠지만, 그건 사실 있는 사람 돈 뺏어서 알거지로 만들고 무법사회를 만들려는 폭동에 다름 아니며 정의 따위는 없다 라고 읽을 수도 있구요. (실제로 이런 것 때문에 놀란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매우 많습니다) 배트맨의 방법론을 가지고 반사회적인 자들의 투쟁이라고 읽기에는 배트맨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그 근본적 가치를 간과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부 예술 영화의 예를 든 것도, 그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예술 영화들은 인간이 인간 자체로 사회에 맞서 싸우라는 주제 의식을 던지는 걸 고려할 때 배트맨 트릴로지는 오히려 그런 주제와 매우 닮아있으나 그 가치관의 저울질에서는 여태까지 있어왔던 영화들과 딱히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해요. (설국열차와 비교를 해보면 부조리와 부조리에 대항하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배트맨은 매우 온순한 영화겠지요) 인셉션이나, 팀 버튼의 배트맨시리즈가 접근방법에는 훨씬 어울린다는 생각도 듭니다. 잘 읽었습니다.
14/10/07 11:57
역설적인 부분에서 오는 아이러니함은 분명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저 역시 블랙코미디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크나이트 트릴로지는 영화 전반에 걸쳐 비극적인 분위기를 이끌고 가지 냉소나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부분은 없다 생각했거든요.
왕천군님이 지적하신대로 투페이스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더 알맞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커와 배트맨은 동일 성향이라 생각치는 않습니다. 사회적 정당성은 차치하고서라도 규칙과 혼돈을 추구하는..서로 지향점이 많이 다르다 생각해요. 제가 영화의 표면만 본 부분도 있겠지만, 대중영화인 만큼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전달되는 모습이 사실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도 들구요. 좋은 본문에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인셉션도 이러한 방식으로 좋은 글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4/10/07 13:03
이 글이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욕망의 표출이라는 부분에서 접근했으니 사회적인 접근을 제하고 본다면 배트맨과 조커는 동일한 인물이 맞겠지요. 본문에서 자꾸 사회학적인 접근과 정신분석학적인 접근이 혼용되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14/10/07 13:45
네. 사실 제가 사회학과 심리학적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 두 가지 접근방법을 의도치않게 혼용해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14/10/07 13:43
대단치 않은 글에 좋은 답변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질문들을 이해한 한도에서 하나씩 좀 더 부연해볼게요.
0. 웨인의 억압된 욕망에 대해 웨인은 조실부모하고 알프레드에게 양육된 사람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가 가진 트라우마는 어둠으로 대변되는 공간 속에서 부모의 상실, 감각의 상실이라는 사건을 겪었고, 빛으로 대변되는 그가 가진 권력과 재산을 통해 통제가능한 세계의 확장과 어둠의 공간은 대비되는 공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통제가 가능한 영역의 확장이라는 것이 웨인에게는 욕망의 확장과도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어둠 혹은 통제 불가능한 불법적 영역은 (무기력한 상실과는 대비되는) 통제라는 욕망의 확장을 방해하는 억압의 기제라고 생각했습니다. 1. '블랙코미디'라는 표현에 대해 제가 블랙코미디라고 다크나이트 트릴로지의 상황을 묘사한건 사회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가진 욕망을 분출하려고 시도한 두 인물의 어느 관점에서도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과 조커와 배트맨 두 인물 모두가 극 중에서 공공연하게 '광대'라거나 '이상한 놈 freak' 이라고 언급되는 부분때문이었는데요 저도 곱씹어보니 엄밀한 의미에서의 블랙코미디의 정의와는 다소 멀리 떨어져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부조리극의 상황에 가깝다고 생각되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사회 안에서 인간이 존재하는한 어떤 방식의 극단으로 향하든 타인과 소통하는(그리고 타인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에 사는 것과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은 양립이 불가능한 명제들이라는 것을 제시하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관점에서 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은 완전히 실현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계속 이런 욕망의 실현을 바라는가에 대한 모습이 (그리고 그것을 시도하는 인물들이) 씁쓸하면서도 희극적으로 느껴졌어요. 놀란 감독이 적극적으로 그러한 부분을 극중에서 어필하려는 생각은 없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오히려 비장한 느낌을 일부러 만들어내려고 애쓴 흔적이 있죠.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이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이 될 수 밖에 없겠죠. 2. 조커와 배트맨/웨인의 지향점에 대해 제가 생각한 두 인물의 동일점은 욕망에 대한 지향이 있다는 점이고 그러한 욕망의 지향을 해소하기 위해서 불법적인 수단을 이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인물은 본질적으로 같은 인물이지만 배트맨/웨인과 조커의 차이는 그러한 욕망이 사회의 틀 안에서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러한 틀을 무시(혹은 파괴)하느냐 혹은 그러한 불법을 통해서 합법의 영역을 늘린다는, 소위 말하는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행동의 모순성을 정당화하려고 하느냐에서 온다고 봅니다. 사실 영화 곳곳에서 웨인이 배트맨을 봉인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장면과 대화들에서는 자신도 그러한 행동의 모순성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웨인은 결국 배트맨이라는 존재의 봉인을 다시 해제하고 계속되는 인지부조화를 공동선의 추구라는 또 다른 가치에 의해서 정당화하려고 한다는 점이죠. 그런 의미에서 조커가 배트맨/웨인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국은 두(세?) 인물이 갖는 욕망의 추구와 사회적 규율의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나 (혹은 해결될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배트맨은 시도는 하지만 대답을 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보이고요. 답을 적다보니 제가 원글에서 쓴 이야기의 재탕 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3. 베인에 대해서 전 영화에서 묘사된 베인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싫어합니다. 제가 생각한 원작에서의 베인은 탈리아나 라즈 알 굴에 종속된 심복이라기보다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이고 배트맨이 낮의 제국의 왕/밤의 탐정의 이미지라면 베인은 일관된 밤의 대통령의 이미지였거든요. 그런데 여기선 너무 라즈 알 굴 & 탈리아 부녀의 심복처럼 묘사되어서 좀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여간 제 개인의 취향은 차치하고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베인이 일종의 사회 혁명(혹은 전복)의 시도를 했고 이를 배트맨과 일반 시민들이 합심해서 막은 행동을 통해 배트맨/웨인이 사회적 동의를 통해 정당화되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제가 그것에 완전히 동의할 수 없는 점은 결국은 배트맨/웨인이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이 본질적으로는 자신이 통제권을 가진 자본주의적 체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행동이 아닌가 하는 것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배트맨이 여전히 웨인의 욕망의 확장 (합법적 통치가 가능한 영역의 확장)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14/10/07 19:40
트라우마가 어떤 욕망의 억압이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그것은 평온한 상태로 있을 수 없는 것이지 그것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소망이나 욕구를 억누르는 것은 아니니까요. 배트맨 비긴즈를 예로 들때, 그것을 욕망으로 분석하려면 이전까지 어둠 속에서 놀기 좋아했던 브루스 웨인의 모습이 나와야 좀 더 자연스러운 해석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브루스 웨인이 품고 있는 욕망이 자신에 대한 통제, 자신이 세상에 발휘하는 통제력의 확대 같은 것이 아니죠. 애초에 브루스 웨인은 브루스 웨인으로 있을 때도 딱히 세상에 대한 욕망 같은 것이 없습니다. 범죄자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지만 그것이 통제라는 욕망으로 귀결될 수 있을까요? 배트맨으로서의 통제는 사실 브루스 웨인의 이상향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거든요. 유일한 것은 레이첼 도스를 향한 욕망이죠. 그래서 제가 브루스 웨인/배트맨 이 통제하고자 한다 라는 대전제 자체에 의문을 품는 것이구요.
방법론적인 것만 따져서 법도 깨부수며 정의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다크나이트는 반사회적이다 라고 볼 수 만은 없다는 것이 제가 덧붙인 이야기입니다. 급진적인 라즈 알굴, 목적 없이 혼돈을 추구하는 조커, 그리고 반 자본주의 및 무질서주의에 입각한 아나키즘의 신봉자 베인까지, 이들을 맞서는 배트맨의 정의라는 것은 "현 체제의 유지와 개선" 이라는 지극히 보수주의적인 것이니까요. 오히려 배트맨은 사회적이며 지극히 현대적이고 현실적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욕망을 어떻게 추구하는가, 보다 어떤 욕망을 품고 있는가 역시도 고찰이 필요하다는 거죠. 좀 이야기가 겉도는 느낌이 드는데....아무튼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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