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사랑 (1987년, from 사랑하기 때문에 Track 3 / 작사 작곡 유재하)
: 80년대 가요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다소 촌스런 키보드 소리와 사랑에 빠진 아이같은 순수한 가사가 돋보이는 곡. 전자 소리로 덧칠해진 도입부를 지나 Verse 부분으로 가면서 엇박이 매력적인 드럼 소리가 그녀를 향한 쿵쾅거리는 마음을 대변해준다. 사귄지 얼마되지 않은 커플에 관한 이야기로 딱 적합하다. 기교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유재하의 목소리는 첫사랑의 풋풋한 감성을 넌지시 청자에 전달해준다. 원 앨범에서는 3번 트랙이었지만 리마스터링 앨범에서는 1번 트랙으로 격상했다. 개인적으로 동화같은 입구로 그려진 리마스터링의 곡 배치가 좀 더 마음에 든다.
- 지난 날 (1987년, from 사랑하기 때문에 Track 1 / 작사 작곡 유재하)
: '다시 못 올 지난 날을 난 꾸밈없이 영원히 간직하리'. 마치 구운몽의 양소유처럼 세상만사 다 경험한 불혹의 남자가 건내는 말처럼 느껴진다. '모든 과거는 아름답다'고 얘기했던 김태원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 말을 했던 김태원의 당시 나이는 40대가 이미 넘은 상태고 저 가사를 썼던 유재하의 나이는 26살에 불과했다. 철저히 대중가요인 노래에 다소 계몽적인 내용이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지만 이미 20대에도 각자 좋은 과거 나쁜 과거를 우리 모두 갖고 있었다. 그 후회와 다짐을 구어체에 녹여 마치 술자리에서 각자의 철학을 얘기하는 자리같은 노래가 되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 중에서 참 부드러운 방식을 채용했다.
- 텅빈 오늘 밤 (1987년, from 사랑하기 때문에 Track 2 / 작사 작곡 유재하)
: 절과 절 사이를 끊어서 노래한다. 그때문에 이 앨범의 가사 중 가장 운문에 가까운 노랫말로 느껴진다. 하지만 가사 자체는 지극히 구어체다. 다른 곡들과 달리 미사여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노골적인 외로움 가득한 낱말들이 존재할 뿐이다. 템포는 그가 만든 곡 중 가장 빠른 BPM을 자랑한다. 편곡에서는 80년대 팝계를 주름잡았던 뉴웨이브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즐거운 파티에 취하기도 모자랄 판에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외로워함은 물론 편곡 방식까지 조용필의 '눈물의 파티'가 떠오르기도 하다.
-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1987년, from 사랑하기 때문에 Track 5 / 작사 작곡 유재하)
: 슬픔을 참 많이 담고 있다. 꺼이꺼이 우는 비통함이 아니라 혼자 침을 꿀꺽 삼키며 떠나간 사람이 남긴 마음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우는 쓸쓸함이 가득하다. '이제야 비로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못 그린 내 빈 곳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의 가사가 그렇게 해석된다. 마치 혼자 자취방 옥상에 올라가 소주 한 팩 빨면서 서울의 달을 보며 '에이, 인생사 나 혼자지 뭐'라고 씁쓸히 웃음짓는 어떤 청년이 떠오른다. G드래곤의 '삐딱하게'와도 이런 측면에서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다소 많은 가사와 음표를 달고 있는 후렴구의 멜로디도 인상 깊었다.
- Minuet (1987년, from 사랑하기 때문에 Track 9 / 작사 작곡 유재하)
: 클래식을 잘 모르긴 하지만 이 노래는 우리를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어느 오스트리아의 공연장에 데려다준다. 클래식 전공인 그가 어쩌면 전공 숙제로 했던 작품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클래식 악기만을 사용한 인스트러멘탈 곡이다. 3/4박자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비올라, 바이올린 그리고 첼로의 3중주가 각자의 리듬을 타며 조화롭게 노래를 구성하고 있다. 원 앨범에선 마지막 트랙을 담당했지만 리마스터링 버전에서는 딱 중간에 위치하며 앨범 주위를 환기시켜주는 효과로 쓰이고 있다.
- 그대 내 품에 (1987년, from 사랑하기 때문에 Track 6 / 작사 작곡 유재하)
: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하얀 캔버스에 그림으로 그대로 옮겨지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이 곡에서 유재하의 가사는 과하지 않은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감성적 아름다움을 완벽히 살리고 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때의 그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듣는 사람에게 전해진다. 행복해서 짓게 되는 눈물이란 이런 곡에서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문체도 경어체를 사용하여 더욱 정중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이 그려진다. 스튜디오 버전을 잘 들어보면 보컬의 볼륨이 상당히 크고 드럼의 볼륨은 꽤나 줄여져 있다. 대신 리듬을 담당하는 악기가 피아노란 점이 눈에 띄었다.
- 사랑하기 때문에 : 조용필 (1985년, from 조용필 7집 / 작사 작곡 유재하)
: 유재하의 가요계 데뷔곡. 처음 대중가요로 만든 노래라 그런지 완연히 팝발라드적 편곡으로 구성돼있다. 조용필의 보컬도 그렇게 노래한다.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라고 외치는 후렴 전까지 잔잔하게 부르다가 후렴에서 터지는 방식을 취한다. 또한 조용필 보컬 색깔 탓인지 중년 부부가 서로를 보며 노래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하다. 잠시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간 아내가 되돌아온 후 그녀에게 감사하는 남편의 모습이 그려진다. 지극히 개인적 생각일런지 모르겠다. 그만큼 유재하의 리메이크 버전과 달리 선 굵은 감성으로 노래가 짜여져있다. 중간 중간 자유롭게 악보를 뛰어다니는 피아노 소리도 노래의 별미다.
- Best 3. 가리워진 길 (원곡 : 김현식 / 1987년, from 사랑하기 때문에 Track 7 / 작사 작곡 유재하)
: 유재하 1집은 피아노와 현악기 편곡을 바탕으로 한다. 그 공식을 가장 대표할 수 있는 노래가 바로 '가리워진 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처럼 중간에 기타 사운드가 있지도 않아서 늘 언급되는 '가요와 클래식의 조화'란 말에 젤 적합한 곡일 수 있다. 사실 가리우다 란 말은 없다. 그야말로 예술성을 위한 시적 허용으로 만들어진 제목이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떠오른다. 프로스트는 자신이 행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말했고 유재하는 이 곡에서 갈래갈래 나뉘어진 인생의 길목 그 모두에 당신이 필요하다며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곡 길이도 4분을 넘지 않으며 흔히 말하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다 잡은' 노래다.
김동률이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을 편곡할 때 화려한 사운드로 했다고 한다. 허나 곡을 들은 김현철이 '단순한 편곡일 수록 시간이 갈수록 세련되진다'는 조언을 하며 심플한 피아노 편곡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물론 현악기 편곡이 간단하단 말은 아니지만 피아노와 현악만이 편곡을 이룬 가리워진 길이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남아있는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1994년...'의 곡도 클래식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원곡은 86년도에 김현식이 불렀지만 유재하가 다시 리메이크한 버전이 훨씬 때깔이 좋다.
- Best 2. 우울한 편지 (1987년, from 사랑하기 때문에 Track 8 / 작사 작곡 유재하)
: 80년대 가요 중에서 가장 세련되고 완벽한 편곡에 가까운 곡. 당시 잘 쓰이지도 않았던 블루스적 피아노 리듬과 유재하가 자신의 전공을 살린 현악 사운드가 곡의 바탕이 되었다. 음대 재학 중 피아노에 정통한 친구를 섭외해서 녹음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뭔가 '주먹구구식' 녹음을 한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연주를 들려준다. 간주에서의 피아노 솔로도 아름답다. 마지막 엔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플룻 솔로도 음악의 아름다움이 이런 것이구나란 걸 알려준다. 가사는 다소 모호하지만 잘 뜯어보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있다. 한 여자가 사귀는 남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에는 사귀면서의 불안감과 거기에 따른 슬픔이 적혀있다. 남자는 그 편지를 받고 여자에게 말한다. '네가 어떻든 난 상관없다. 더이상 불안해하지 말고 이런 우울한 편지는 쓰지 않아도 된다'라고. 그래서 가사의 주제는 분위기와 제목과 달리 그리 우울하지 않은 내용이다. 허나 마이너로 작곡된 곡 탓인지 곡의 느낌은 상당한 암운으로 가득하다. 때문에 처음엔 잘 손이 가지 않은 트랙이기도 했다.
- Best 1. 사랑하기 때문에 (원곡 : 조용필 / 1987년, from 사랑하기 때문에 Track 4 / 작사 작곡 유재하)
: 조용필의 원곡을 완전히 자신의 색깔로 바꾼 곡. 도입부부터 간주 전까지 클래식 악기들로만 편곡이 채워져있다. 특히 도입부에 꿈의 궁전같은 동화적 클래식 편곡은 처음 듣는 순간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미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 부분만으로 한국 가요를 빛낸 명곡 반열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1절의 반이 지나갈 무렵 등장하는 얇은 관악기 연주가 마치 새가 지져귀는 것 마냥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라는 색깔 대비 표현을 비롯해서 곳곳에 아름다운 가사가 즐비하게 펼쳐져 있다. Verse 부분과 달리 후렴구는 다소 통속적인 내용에 통속적인 표현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중간의 기타 솔로 사운드도 미세하게나마 어색하다. 전체적인 얘기로 돌아가자면, 앞서 언급했듯이 조용필 원곡과 달리 유재하 리메이크 버전은 젊은 연인들의 사랑이 떠오른다. 그만큼 그의 담백한 목소리와 기승전결을 부각시키지 않은 편곡이 세련미를 더했기 때문이다. 이 노래가 등장한 이후에도 오래도록 이런 식의 편곡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다음은 일본 뮤지션 hide 편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사실 앨범 발매 직후에는 평론가들이 까기 바뻤고 대중적으로도 소위 폭발적 임팩트를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허나 당시 뮤지션들과 일부 대중들에게 충격을 주었죠. 요절 이후 끊임없이 이 음반의 가치가 세월이 갈수록 커지고 커져서 지금의 '클래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발라드 계에서는 지금까지도 작편곡의 교과서 같은 존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