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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8/30 03:46:04
Name endogeneity
Subject [일반] "홀로 사는 칠십노인을 쫓아내달라는 원고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어난다."




제목이 피고 측 답변서 내용이 아니라 판결문 문장이라는게 포인트입니다.

이미 어느 정도 알려진 사건이긴 하지만 아주 간단히 사실관계를 요약하면


(1) 원고는 주택공사, 피고1은 할아버지, 피고2는 딸입니다.

(2) 이 사건 임대주택에 대해 계약서상 임대인=원고, 임차인은 피고2로 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3) 그런데 피고2는 단지 피고1의 업무를 대신 처리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일 뿐, 처음부터 다른 지역에 집을 소유하여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4) 한편 원고는 이 사건 임대주택을 분양전환했습니다.

(5) 그리고 임대주택법 15조 1항엔 '우선분양권'은 '당시까지 거주중인 무주택자인 임차인'에게 준다고 규정되어있습니다.

(5) 원고는 '유주택자인 임차인'인 피고2에 대해 주택 명도, '무단점유자'인 피고1에 대해 퇴거를 청구했습니다.


1심은 원고의 청구를 전부 인용하였으나 2심은 이를 기각했고 원고가 항소 포기를 하면서 절차가 종결됩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2심의 논리는 이러합니다.




(1) 임대주택법 전체의 입법취지

 -> 장기주택임대를 영업으로 하는 주택임대업자를 지원하여 임대주택의 공급을 늘리는 한편

 -> 부족한 임대주택이 실수요자에게 제공되도록 하기 위한'


(2) 임대주택법 15조 1항 1호의 규정목적

 -> 무주택자를 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것은 임대주택이라는 한정된 자원의 분양에 있어서 아직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서민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고,

 -> 실제 거주한 임차인을 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것은 한정된 자원의 분양에 있어서 실수요자를 우선 배려하기 위한 목적


(3) 이 사건의 경우

 -> 이 사건 임대주택의 임차 목적은 분명히 피고1의 주거공간을 구하는 것이었지 피고2의 주거공간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 피고 2가 아버지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원고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것은 법적 권리에 관하여 정확한 지식과 정보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저지른 실수

 -> 피고 1에 대하여 임대차계약 체결과정에서 있었던 작은 실수 때문에 이제 와 그 주거공간에서 계속 거주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고 하기에는, 원인이 된 피고들측의 잘못과 그 결과 사이에 균형을 잃었다


(4) 법률의 해석의 방법

 -> 법률 문언의 올바른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법률용어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그 법률이 달성하고자 한 정책목표와 우리 사회가 법체제 전체를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가치를 아울러 고려하여야 한다.

 -> 피고 이종명의 주거안정은 당초부터 위 정책목표와 계획상의 보호범위 내에 있었던 것이지 그 바깥에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5) 사법부의 법해석이 가능한 범위

 -> 입법부가 만든 법률을 최종적으로 해석하고 집행하는 법원이 어느 정도 수선의 의무와 권한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 이는 의회가 만든 법률을 법원이 제멋대로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이 의도된 본래의 의미를 갖도록 보완하는 것





이와 같은 이유로 피고1이 임대주택법 15조 1항 1호가 정하는 임차인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도출한 이 사건 재판부는

아마도 우리나라 판결문 역사상 가장 시적인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 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하기 때문에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 사건에서 따뜻한 가슴만이 피고들의 편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도 그들의 편에 함께 서있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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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뭔가 뻘소리를 덧붙일 예정이었으나

이 훈훈한 판결과 아름다운 문장에 별 쓰잘데기도 없는 잡동사니를 덧붙이는게 부적절하다고 사료되어 여기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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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30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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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로 써도 현실감 떨어진다고 까일 마무리네요....현실에 저런 경우가 어딨냐면서
14/08/30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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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지키기 위해 사람이 있는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기 위해 법이 있다는것을 느낄 수 있는 판결문이네요.
yangjyess
14/08/30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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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바른 마음'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도덕의 기반은 이성적 추론이 아니라 감정적 직관이라면서 흄의 글을 인용하더군요. <이성은 열정의 하인이며 오로지 열정의 하인이어야 마땅하다. 이성은 열정에 복종하고 봉사하는 것, 그 외에 다른 직(職)은 결코 탐낼 수 없다.> 따뜻한 가슴이 피고들의 편에 섰다면 그 하인인 차가운 머리가 어찌 주인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네버스탑
14/08/3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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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저랑 같은 책을 읽으셨군요.. 직관이 먼저고 판단은 이미 했고 그에 따라 근거를 만든다가 핵심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책에서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나오죠 그리고 그들이 외치는 정치적 이슈같은 것도 말이죠.. 뭐 현재 우리나라 자칭 보수는 너무 극단적이고 광신도 적이라 꽤 다른 구석이 있더라구요
최근 심리학에 관심을 가져서 그런 책을 종종 보는데 혹시 추천해주실만한 책이 있으시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endogeneity
14/08/3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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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흄이나 애덤 스미스 같은 사람들은 정말도 감정을 도덕의, 그것도 우리가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도덕의 적절한 기초로 생각했을 겁니다.

근데 판사가 '자기 감정에 근거하여' 판결을 내렸다고 하면 아무리 다른 모든 사정이 온당해도 결코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 뭔가가 있는 건 같습니다.
현행의 재판제도에서 여러 제한에도 불구하고 판사가 갖고 있는, 정확히는 '판사의 내심의 목소리'가 갖고 있는 어마어마한 권력이 그 원인일 것입니다.
그런 우려가 어찌 부당하다 하겠습니까.
iAndroid
14/08/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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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법률이 달성하고자 한 정책목표와 달성하고자 하는 가치를 고려하는 시점은, 이 법률 문구가 정확히 나타내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을 때 법원의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법률 문구에 정확히 명기된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 상황을 해석으로 뒤집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현실과 맞지 않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라도 환산보증금을 넘는다는 이유만으로 건물주가 승소하고 임차인이 쫓겨나게 만든건 사법부 자신이었죠.
그래도 그걸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사법부는 명확한 법률 문구 기준으로 판결을 내린다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찬바람 어쩌구라는 시적 표현이라니... 사법부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저런 판결을 했는지 모르겠네요.
일각여삼추
14/08/30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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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정확성을 요구하는 판결문에 상기와 같은 문구는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어보입니다.
yangjyess
14/08/3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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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하긴 한데 따음표 안의 문장은 거의 유게감 ... 킄
레지엔
14/08/30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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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보라고 만든 글에 저런 문장이 좋은 문장인지 좀 의문입니다. 예컨대 제가 진단서에 저런 시를 쓰면(..)
블링이
14/08/3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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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업무를 위탁받아 집행하는 공공기관으 역할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판결이네요.

계약관계의 민법이 주 사안이었다면 얄짤없었겠지만요..
켈로그김
14/08/3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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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공사의 액션은 정당하다고 봅니다.
임대주택 신청시 차명등록이 이미 보편적인 편법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사정에 대한 판단을 자의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죠.
동시에 법원의 판결도 사회적 약자를 충분히 배려한 훈훈한 판결이라고 보고요.

임대주택 공고 떠서 사무실에 신청하러 가면, 다들 전화기 잡고 소득이 없는 친척 주민등록번호 물어보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맞벌이 부부는 소득초과로 신청자격 자체가 없거나, 외벌이라도 아슬아슬한 경우가 많죠.
소득기준 자체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 편법이 횡횡하는 상황..

그러다 보니 오히려 기준에 나름 부합하는 사람들이 자기 명의로 넣었다가 후보자로 밀려버리는 일이 심심찮게 생겨납니다.
소득 초과하는 사람들은 명의 빌려다가 떡하니 당첨되어버리는 피꺼솟하는 사태가 생기죠.

본문의 피고는 그와는 반대의 상황이니 법원이 피고의 손을 들어줄 수 있겠지만,
주택공사 입장에서도 굳이 약자를 핍박하기 위해 취한 액션은 아니라고 봅니다.
endogeneity
14/08/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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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판결문 중에는 재판부가 원고에게 조정을 권했더니 원고 측 반응이

'향후 유사 사정이 있는 자가 근거 없는 분양을 주장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조정에 응할 수 없다'

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것이 잘못된 우려라고 말했지만
이후 동종의 사건들이 대법원까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정당한 우려였다고 보는게 더 맞는 것 같습니다.
단약선인
14/08/3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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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하겠지요.
아침부터 훈훈합니다.

PS. 2심에서 원고는 항소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상고를 포기한것이겠지요?
저런 경우엔 상고를 해도 승산이 있어 보이긴 한데...
원고의 대응도 깔끔하네요.
14/08/3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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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 포기까지, 주공도 하긴 그냥 퇴거명령 내린게 소송까지 가서 불쾌는 했겠습니다만...이게 공기업이고, 결국 판결문이 역대급이네요(여러가지 의미로). 따옴표 안의 문장은 조금 심하게 말해 오글거리지만, 글 제목만큼은 분명하게 괜찮네요. 잘 읽었습니다.
오백원
14/08/3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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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음표 안의 문장이 오글거린다면 정말 유명하신 시인분들의 글들도 그 분들이
유명한 시인인걸모르고 편견없이 본다면 그 시들도 많이 오글거릴겁니다.
요즘들어 오글거린다는 말 하나로 문학적표현 혹은 시적표현자체가 많이 부정당하고있다고 생각되네요
John Swain
14/08/30 09:43
수정 아이콘
그 감성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성적으로 작성되야할 판결문에 지극히 감성적인 문구로 맺으려는 것이 오글거리고 거부감이 갈 뿐이지요. 문장 자체만 떼어 놓는다면야 훌륭하긴 합니다만..
14/08/30 11:22
수정 아이콘
뭐 그런데 정작 문학하는 사람이나 시쓰는 사람들도 최근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보고 오글거린다는 말을 엄청 씁니다.
작품을 가지고 합평할때 이런표현을 보면 진짜 변사 톤까지 써가면서 가루가 되도록 깜...
시대를 풍미했던 주옥같은 표현이나 작법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얼마든지 부정될 수 있고,
문학사상이나 예술풍조 같은건 모두 전대의 주류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기 마련이니까요
14/08/3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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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꾸밈과 유의미한 수사 정도는 구분해가며 비평해야 교수님께 혼이 안 나겠죠. 알고 부정해야 의미 있는 것이지, 요즘처럼 자기한테 조금만 낯설면 맥락상 적절한 수사법인지에 대해 파악해보지도 않고 대뜸 '오글거린다'며 거부하는 속된 언어습성이 새로운 문예사조로서 정당화될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문어, 은유, 감정적인 표현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일상언어에서 벗어나기가 그렇게나 두려운가 싶습니다.
14/08/3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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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정도 구분 못하고 비평할 정도면 그건 애초에 비평이란 말을 붙이질 않겠죠.
14/08/3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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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하는데 말입니다.
14/08/30 09:53
수정 아이콘
정말 자의적인 판결일 뿐.
저기서 써있는 사실관계도 여기 재판부가 판단한 사실일 뿐 실제 저렇다고 확정된 게 아니죠. 결국 대법원 가서 뒤집혔습니다

사회에서랑 마찬가지에요. 내가 좋은 사람이고 싶어사 눈 앞의 사람한테 예외를 인정하고 호의를 베푸는 건 사실상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침해입니다. 차라리 자기 이득 챙길라고 남을 엿먹이면 누가 봐도 잘못한 거니 개선의 여지라도 있지 호의의 형태를 띤 침해야 말로 정말 아무도 가해잔 없고 억울한 사람만 있는 최악의 상황을 불러오죠.
대패삼겹두루치기
14/08/3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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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가 있을까요? 본문만 보면 크게 잘못된 판결은 아닌 것 같은데 뒷 얘기가 있다면 그것도 알고 싶어서요.
endogeneity
14/08/3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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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근데 저 임대주택법 15조 규정에 관한 이 사건 판결의 해석과 '명백히 다른' 입장이 대법원의 확고한 태도로 자리잡았던 건 맞습니다.

아마 이 사건과 다른 사건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들을 보시고 '이 사건에 관한 판결'이었다고 착각하신게 아닐까요?(제가 못찾은 것이었을 수도 있으나)
14/08/3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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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간에 2009. 4. 23. 선고 2006다81035 사건이 이 사건의 상고심 판결이라고 배웠습니다. 로앤비에서는 검색해도 원심판결의 사건번호가 기재되지 않는데,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서 2006다81035판결을 검색하면 원심판결의 사건번호가 2006나1846판결이라고 나오네요.
endogeneity
14/08/30 11:28
수정 아이콘
오 딱 맞네요. 어제 새벽에는 아무리 찾아도 이 사건의 대법원 판결은 안나오는 것 같았는데 그냥 새벽이라 검색능력이 저하된 것이었을 뿐이었군요.

이 대법원 판결은 딱 '민법의 원칙대로 가자'는 태도를 관철한 것 같습니다. 가령


"결국, 임대주택법상의 임차인이라는 용어는 임대차에 관한 일반법인 민법의 규정, 그리고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임차인’의 의미로 돌아가 해석할 수밖에 없는바"



"일반적으로 계약의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그 계약에 관여한 당사자의 의사 해석의 문제에 해당한다. (중략) 이 경우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언대로의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한다."
14/08/3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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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임대주택법 제15조는, 임대주택의 임대의무기간이 경과한 후 기존 임차인 중에서 무주택 등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자에게 우선분양전환권이라는 특혜를 부여하는 규정인데, 여기에서의 임차인을 위와 같이 ‘실질적 의미의 임차인’이라고 해석한다면, 당초 임대주택법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임차인으로 선정되어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로서의 임차인이 아니더라도 따로 실질적 측면에서 임차인이라고 해야 할 자가 있으면 그를 임차인으로 인정하고 그에게 우선분양전환권을 부여하게 되어 임대주택법의 기본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던 임차인이 중도에 우선분양전환권자로서의 자격요건을 상실한 후 무주택자인 친·인척 등을 입주시키고 그를 내세워 임대주택을 분양받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임대주택법의 취지를 몰각시킬 우려마저 있다. 이는 임대주택법을 포함하여 법질서의 규범성과 안정성을 크게 해치는 결과가 될 뿐이다.

한편, 원심은 이 사건에서의 특별한 사정에 대한 구체적 타당성 때문에 위와 같은 법적 안정성의 요청이 후퇴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 사안을 구체적 타당성 있게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위와 같은 법률 해석의 본질과 원칙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무엇이 구체적 타당성 있는 해결인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법률 해석의 본질과 원칙에서 벗어나 당해 사건에서의 구체적 타당성 확보라는 명분으로 1회적이고 예외적인 해석이 허용된다면, 법원이 언제 그와 같은 해석의 잣대를 들이댈지 알 수 없는 국민은 법관이 법률에 의한 재판이 아닌 자의적인 재판을 한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할 것이며, 이는 법원의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해칠 뿐만 아니라 모든 분쟁을 법원에 가져가 보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게 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심히 훼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임대주택법 제15조 제1항이 국민의 주거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임대주택이 피고 2와 같은 실수요자에게 우선공급되도록 하려는 공익적 목적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위와 같은 법리는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출처 : 대법원 2009.04.23. 선고 2006다81035 판결(건물명도등) > 종합법률정보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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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결문을 읽으면서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심 판결문도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문장이지만, 저는 대법원의 태도가 좀 더 타당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endogeneity
14/08/3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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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첫째 문단 부분은 주택공사가 아주 일관되게 주장해온 부분을 받아들인 것일 터입니다.
두번째 문단은 거의 명백히 이 사건 판결의 최대 구멍이었는데, 대법관이 아니라 초등학교 6학년 토론 수업에서도 같은 지적을 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그러고 보니 바로 이 사건 대법원 판결이 '법적 안정성이 구체적 타당성에 우선된다'는 판결이었군요. 이 판결의 추상적 법리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또 '가을 들녁 황금물결' 운운하는 원심판결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 둘이 같은 사건 판결이었단 것만 몰랐습니다;)

결국은 임대주택법이 일정 기간 싸게 임대로 집을 주고 분양권도 우선 얻게 하는 '정책적 목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의 사업자-수요자 간의 관계는 결국 사법상 계약관계이며 따라서 민사법의 일반법리에 따라 규율됨이 원칙이며
그런 이상 '이 법률 규정의 해석에도 민사법의 원칙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게 진정한 골자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누군가가 임대주택법을 남용하더라도 그건 주택공사의 사정일 뿐'이라고 보기에 충분한데다가
다른 한편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의 문제와 별개로, 이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선 양자의 상충이 없다고 볼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테니까요.
14/08/30 11:49
수정 아이콘
음. endogeneity님께서 말씀하시는 '민사법의 해석 원칙'과 '법적 안정성'의 문제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닐텐데요.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법률을 일관되게 해석하는 것이지요. 이는 민사법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헌법상의 법치국가원리에서 비롯되는 법질서 일반에 관한 것입니다. 무엇을 핵심으로 보느냐에 있어 미묘하게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양자는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따지자면 법적 안정성이 더 상위의 가치이며 목적이고, '민사법의 일반 법리에 따른다'는 것은 수단에 불과할 뿐이죠.
endogeneity
14/08/30 12:01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어떤 특정한 원칙이 "먼저" 있어야만 그에 대한 "안정성" 문제가 비로소 뒤따른다.' 는 것입니다.
그 원칙이 해당 사안에 적용될 원칙이 아니라면 애초에 "안정성" 문제같은건 없다는 뜻이죠.
"먼저"가 포인트인 셈입니다.

사실 이 대목에 관해선 저희 사이에 여하한 의견대립이랄 것이 없다고 보입니다. 당연한 얘기인데요.

아마 제가 비판받을 만한 지점은 제가 별로 적절하지도 않은 논리를 가지고
이 사안에서 민사법 원칙의 적용을 미심쩍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라고 보입니다.
endogeneity
14/08/30 11:05
수정 아이콘
댓글들을 읽어보니 원래 본문 밑에 써넣으려고 했던 '쓸데없는 잡동사니'의 쓸모가 전혀 없진 않은 것 같아 댓글로 적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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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사건 판결에는 법리상 문제가 결코 적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a) 일단 이 사건 판결의 결론을 사실상 결정지은 위 (3) 부분의 논지는 계약법의 일반법리에 굉장히 반합니다.

1) 일단 계약내용이 처분문서에 기재되어 있고 문언의 의미가 분명하다면 그 내용대로의 계약을 인정해야 한다는 굉장히 많은 판례
2) 1)의 법리를 주요한 이유로, 예금계약 명의자와 실질적 예금주가 다르더라도 예금계약 당사자는 원칙적으로 명의자(이 경우 은행은 대부분 명의자와 별개의 예금주가 있음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라는 전원합의체 판결(2008다45828)


(b) 한편 바로 이 사건 임대주택법 규정에 관해 대법원은

" ‘분양전환 당시 당해 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임차인’은 임대사업자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임차인이나 위 시행령 제 10조 제 1항에 정한 요건을 갖춘 임차인을 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임대사업자의 동의를 받지 아니한 무단 전차인에 불과한 재항고인은 위 우선매수권 있는 임차인에 해당하지 아니한다"(2008마1306)

이 판결은 무단전대를 금하는 민법 629조에 그 논리의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민법 규정의 취지는 '임대차 계약이 인적 신뢰에 기초하는 계속적 계약'인 점에 있다는게 대법원의 확고한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예금계약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예금계약이 계속적 계약'이라는 점이 주요 논거로 고려되었던 점,
그리고 전차인이나, '임차인의 묵인을 받은 점유자'(혹은 임차인을 사용대주로 하는 사용차주?)나 임대인 입장에선 뜬금없기는 마찬가지인 점을 생각하면, 이 사건 피고들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이해해야 할 여지가 상당해보입니다.


(c) 이렇게 (3) 부분을 쳐내면 위의 (1), (2)는 맞는 말이긴 한데 그것만을 판결의 이유로 삼기는 '정당화의 힘'이 약한듯 하고
(4), (5) 같은 건 애초에 저게 맞는 말인지 자체부터 논란의 여지가 있을 법한 논리인 이상
결국 이 판결을 정당화할 이유가 남아나질 않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 예시한 두 대법원 판례보다 이 판결이 먼저 나왔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원고인 주택공사가 '찬바람 일어나는 상고장'을 대법원에 들이밀었으면 파기환송 판결을 받아낼 가능성은 상당히 있어보입니다.


3.


2. 에서 두드러진 논리는 '이 사건에도 私法의 일반원칙이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겠다'라는 점은 언급될 필요가 있습니다.
계약서에 자기 이름을 쓰면 자기가 계약당사자가 되버린다는 걸 몰랐던 딸에게도 '표시주의의 원칙'은 그대로 관철되어야 하며
아내 병수발로 인생을 탕진하고 자녀들로부터 소외받은 노인은 '무단점유로 타인의 소유권 행사를 방해하는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법이 원칙을 '가차없이' 구현하는데 그 존재의의가 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 법이 구현해야 할 원칙은 '정의로운' 것이어야 하고, 그런 이상 원칙들은 늘 '숙고'의 대상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특히 법의 대원칙이라는 건 본래 '어떤 구체적 생활관계에서 발생한 어떤 구체적인 사실'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사법의 일반법이라 불리우며 여러 대원칙들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민법전을 돌아보면
특히 이 법전이 인간 생활관계의 어떤 국면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가를 돌아보면
거의 7할에 가까운 규정들(채권법 전체, 민법 총칙의 소위 '법률행위 부분', 물권법의 소유자-점유자 관계, 담보물권 부분, 그리고 상속관계)이
채권관계에 주된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 아주 두드러진다는 점을 볼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민법이 예정하는 인간이란 '채권자와 채무자'이고, 인간관계란 '채권관계'인 것입니다.

물론 법이 규율하는 생활관계는 인간의 생활관계들 중에서도 기본적으로 '분쟁이 잦은' 관계인 것이고
민법이 특별히 채권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거기서 유난히도 '분쟁이 잦기 때문'이라고 말하는게 좀더 공평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민법이 채권관계라는 인간생활의 특수한 국면을 규율하기 위해 개발해온 여러 원칙이
분명히 채권관계로 환원될수가 없는 인간생활의 다른 국면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고 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4. 3.에서 쓴 얘기들도 솔직히 불만족스럽게 느껴질 수가 있으리라는 걸 흔쾌히 인정합니다. 차라리

"소유권의 행사에도 사회적인 한계가 있다는 전제 하에 판단한 다수의 대법원 판례(가령 79다483 등등)가 있고, 이 사건 계약이 피고2 명의로 체결되는 '외관의 작출'에는 원고의 과실이 없었다고 할 수 없는바, 이러한 사실 관계 하에서 원고의 피고에 대한 소유권 행사는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

라고 쓰면 여전히 똑같은 논리에 불과하긴 하지만 '기술적'으론 그럴싸해보이는 외양을 갖추게 되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렇게 쓴다고 해서 결국 여기서 문제되고 있는 쟁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결국 도피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적어도 이 사건 판결이 아마도 '피하고 싶었던'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 사이의 딜레마가 생각보다 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는 점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판결의 결론이 그냥 틀렸다고 말하기엔 뭔가 여운이 많이 남았다는 게 솔직한 소회입니다.
전파우주인
14/08/30 11:18
수정 아이콘
준 공무원급 문화를 갖고있는 사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으로서,

주택공사 담당직원은 굳이 소송걸고 싶지 않았지만 근거를 만들어놓지 않으면 안될까봐 소송걸었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해보면 막장인가요? ㅠㅠ

그건그렇고 판사님 멋지네요.
endogeneity
14/08/30 11:32
수정 아이콘
몇몇 분들의 적절한 지적으로 이 글이 전제하는 주요한 사실관계 하나는 명백히 틀렸음이 드러났으니 댓글로 적어둡니다.

결국 원고은 '찬바람 일어나는 상고장'을 대법원에 들이밀어 파기환송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에이멜
14/08/30 11:47
수정 아이콘
최근에 봤던 한 판례가 생각나네요.
교실에서 친구의 휴대폰을 훔쳐서 판매한 고등학생이 퇴학을 당했는데 여기에 대해 소를 제기해서 퇴학 처분 취소를 받아낸 사건입니다.

법원 "나쁜 길에 선 학생 포기 않는 것이 학교 역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7069166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학교 역할의 '기본'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재판부는 "학생들은 아직 배움의 단계에서 인격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에 있다"며 "이들을 지도하기 어렵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베스트 댓글이 참 인상깊었습니다. "판사는 착한척만 하면 되고...괴로운건 선생님과 아이들... "
endogeneity
14/08/30 11:56
수정 아이콘
제 개인적으론 특히 네이버 댓글창은 쿨몽둥이들의 '압제'가 심해보입니다. 그것도 또 하나의 감성팔이인데

물론 이 사건 고딩이 퇴학 취소 받고 '크크크 판사 꼰대놈 땡스땡스 이제 신고한 새키 족친다 크크크크'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인간 세균 수준의 인성의 소유자였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만 판결문의 사실관계조차 '재판부가 인정한 것'일 따름이고, 심지어 그것조차 기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이런 사실관계의 경우

그것에 대한 감상이란 건 그걸 읽고 있는 사람의 평소 인간관과 세계관의 압도적인 영향을 받을 테죠.
그거까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유사한 감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가 되는 것 같고요.
에이멜
14/08/30 12:15
수정 아이콘
리플에는 온전히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해당 판결을 곱게 보기 힘들었는데, 교육 전문가 집단인 학교의 판단에 대해서 비전문가인 판사가 학교의 '기본'까지 설명해주시는 친절함에 실소가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중고등학생들이 학교폭력의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처벌 부족'을 꼽고 있는데 퇴학 취소 처분을 내린 판사는 과연 이러한 사실을 알고나 있을지 좀 걱정이 됩니다.

http://www.wsobi.com/news/photo/201303/8246_5674_110.jpg
endogeneity
14/08/30 12:26
수정 아이콘
그 지적도 옳습니다.
비전문가라니까 생각나는게 한 사실심 판결(사실심 판결임에도 아주아주 중요한 리딩 케이스이긴 합니다)에선 판사가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상당히 자세히 써내려간 부분이 있는데, 아무리 판결의 중요한 전제이긴 했지만 낄낄낄
저글링아빠
14/08/30 12:24
수정 아이콘
저 아래 강용석씨 환송심 판결 댓글과도 관련 있는 글 같아서 몇 마디 더 적어보고자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아래에서는 형사판결문입니다만) 저는 민사판결문의 이유에서는 증거의 객관적이고 적확한 취사에 의한 정확한 사실인정과 그러한 사실에 대한 법률의 정확한 해석 및 적용 과정을 애매함이 없이 분명하게 드러내어 주문에 나타난 결과에 이른 과정을 누가 봐도 동일한 의미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면 되고, 해당 판결문에 관여한 법관의 개인적인 소회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런 문제는 성질상 정답은 없는 법이라 이것은 순수하게 제 사적인 의견에 불과합니다만, 단순한 기분학상의 문제는 아니고 그렇게 생각할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에 이런 판단에 이르게 된 것이라 몇 가지 더 부연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이런 식의 판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법원이 이 사건의 상고심 판결에서 따로 지적하고 있기도 하듯이) 법원의 판결이 법률의 객관적이고 일관된 해석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판사의 온정에 의하여 경우에 따라 법률과 다른 결론을 낼 수도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겁니다. 사실 이 사건을 건조하게 보자면 항소심은 해당 사안에서의 구체적 타당성을 앞세워 해당 법조항의 임차인의 범위를 실질적 임차인으로 확장하는 "법률 해석"을 하였던 것이고 1심과 상고심의 법률해석은 그와 달리 법률의 목적에 기한 일관적 해석을 앞세웠던 것 뿐입니다. 그런데 판결문을 이런 식으로 적어두게 되면 마치 항소심은 법 해석의 테두리를 넘어 이 사건에서만은 판사의 온정으로 정당한 권리자의 권리에 앞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 운운의 문구는 마치 이 사건의 원고가 형편이 넉넉했다면 마찬가지로 실질적 임차인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다른 결론이 났을 것이라거나, 혹은 반대로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은 다른 사건에서도 판사의 재량 및 온정에 따라 일반적인 시민보다 보다 유리한 법률해석을 적용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은 법률의 일관된 해석을 사명으로 하는 법원의 역할 및 그에 대한 시민들과 사회의 기대에 크게 반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러한 감정적 소회의 표현은 결국 자신이 내린 판결 결과에 대한 강한 자기확신의 외관을 부여하게 되는데 (이는 실제로 자기확신이 있었느냐의 문제와는 다릅니다. 사실은 이 사건의 경우에는 오히려 판결의 결론에 사실은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식의 문언을 부가했다고 볼 여지가 있지요.) 그러한 자기확신에 기초한 감정적 언사는 유죄판결에 따른 형을 선고받는 형사피고인 혹은 민사판결에서 패소의 결과를 받아든 당사자에게 불필요한 윤리적 비난을 가하는 결과를 피하기 힘듭니다. 이 건은 주택공사의 입장에선 상고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법리적으로 충분히 다투어볼 만한 사건이었으며 앞으로의 많은 사건에서 선례가 될 수 있는 사건이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공기업인 주택공사가 이렇게 승소 가능한 사건을 방치하고 자신의 재산 손실을 감수하는 행위 자체가 공기업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자신의 온정을 자의적으로 베푸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위에 어느 분이 적어두셨듯이 이러한 행위를 함부로 하면 해당 담당자는 감사의 대상이 되도록 되어 있어 이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방지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 판결문은 주택공사의 주장이 법률상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넘어 주택공사의 이러한 제소는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며 사회적으로 부당하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띄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사건에서 그러한 판단이 뒤집힌 이상 이런 식의 비난은 매우 잘못된 것이었으며, 설사 그 판단이 뒤집히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민사사건의 법관이 패소당사자에게 도덕적 훈계를 할 권한은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법관의 업무가 자신이 겪지 않은 타인의 일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기에 자신의 결론에 대한 자기확신을 가지지 못하면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해하고 지지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자신의 직무가 본질적으로 자신이 겪지 않아 확신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중요한 일들을 판단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기초한 원초적인 조심스러움을 잃게해서는 안될겁니다.

마지막은 이런 식의 판결이 하급심인 경우엔 이를 파기하는 상고심에게 쓸데없는 부담을 부여하게 됩니다. 우리의 사회 통념에 부합하는 감정적 소회를 적어둔 판결문의 법률 해석이 결국 적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상급심은 이를 파기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상급심은 마치 피도 눈물도 없는 것처럼 보일 뿐 아니라, 판결문의 결론이 심급을 가치며 변경되는 경우 당사자들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판결 결론에 대한 의구심을 불필요하게 증폭시키게 됩니다. 결국 소송이란 사회적인 분쟁의 가장 첨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법치사회에서 그 해결의 기준이 법률이며 그 역할은 법원이 담당하고 있기에 법원의 판결의 객관성과 일관성에 대한 사회의 신뢰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들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행동은 불필요하게 이러한 당사자와 사회의 믿음을 흔들 여지가 있기에 이런 식의 판결문을 받아든 상급심은 상당히 곤혹한 처지에 처하게 되지요.
endogeneity
14/08/30 12:34
수정 아이콘
'온정주의란 오해' '패소자에 대한 불필요한 비난' '상고심의 쓸데없는 부담' 이군요. 좋은 말입니다.

근데 말씀하셨듯 '이런 문제에는 성질상 정답은 없는 법'이라 이런 감상이 드는 것일 수는 있겠는데
바로 그런 이유에서 대법원 자신도 좀 '불쌍하다' 싶은 문제에선 다소는 무리하더라도 '법리를 개발'해서
온정주의란 오해, 불필요한 비난을 교묘히 회피하면서도 쓸데없는 부담을 조금은 짊어졌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저글링아빠
14/08/30 12:43
수정 아이콘
제 말씀은 대법원이건 하급심이건 다소 무리하다 싶은 "법리"를 개발해서 이를 판결의 이유로 삼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당연히 법원의 권한 내의 행동이니까 개별 사안에서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갖더라도 이 경우와는 논의의 평면이 다릅니다)
(그것이 무리하든 아니든) 법리와 무관한 법관의 감정의 표출이 판결문에 표시되는 일은 없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겁니다.
endogeneity
14/08/30 12:50
수정 아이콘
'무관한'.

결국 그게 핵심이자 저글링아빠님의 저 긴 논지(저 댓글 뿐 아니라 밑의 글 댓글까지도 포함하여)를 이끌어가는
딱 하나의 인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마 제가 '공감이 안되는' 대목이기도 하겠고요.
그래도 하신 말씀들은 대부분 타당합니다. 특히나 위에 댓글에도 썼지만 현행 재판제도는 '판사의 내심의 목소리'에 지나친 권력을 줍니다.
그러니 이에 경계의 시선을 보내는 건 정당하죠.
Abrasax_ :D
14/08/30 12:32
수정 아이콘
훈훈한 소식인데 판결문을 쓰는 머리까지 따뜻해질 필요는 없었을 것 같아요.
endogeneity
14/08/30 12:42
수정 아이콘
훈훈한 판결문도 하나 소개했으니 이번엔 칼바람 일어나는 판결문을 하나 소개할 까 합니다. 이건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의 소수의견인데

"나의 동료는 본 사건과 맞부딪쳐 노체(盧體) 드디어 직무 때문에 쓰러졌다. 그런데 원심 재판관은 어떤가? 몇천이나 되는 증거 가운데 한 쪽 구석인 2개의 조서만에 구애되어, 더욱이 이것도 충분히 검토를 하지 않고 매우 간단히, 또한 이것도 판결문인가 놀랄 정도의 무문곡필로서 제 1심 판결을 일축하고 있다. 그 천박함, 그 단견, 극언하면 그 비열함. 할 말이 없다. 그런데도 대언장언한다. 약한 개일수록 크게 짖는 법이다. (중략) 나는 합의에서는 3대 1로 졌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진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나의 소수의견은 뜻있는 사람이나 후세의 사가가 바르게 비판하여 줄 것이라고 믿는다."(박우동, "판사실에서 법정까지", 중)
사악군
14/08/30 16:01
수정 아이콘
이거야말로 무장색 패기가 느껴지는군요.. 어떤 판결이었는지가 궁금해집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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