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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올린 키보드 관련 글들의 댓글을 보면 커스텀 키보드는 조립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분이 꽤 있었습니다. 물론 어려울 수도 있으나, 원하는 재료를 구하는게 어렵지 조립하는 것 자체는 정말 어렵지 않습니다. 체리 스위치를 사용한다면 더 쉬워지구요.
'문과라서..', '인두기는 잡아본적이 없는데..', 같은 말은 다른 취미에는 어느정도 적용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키보드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커스텀 키보드가 막 생기던 시기에는 난이도가 많이 높았지만 요즘은 어느정도 공산품화되서 DIY키트가 잘 되서 나오거든요. 조립만 하면 되게끔요. 혹여 문제가 생기더라도 관련 커뮤니티에 물어보면 많은 고수님들이 친절하게 알려주십니다. 괜찮아요 저도 하잖아요.
이 글은 (계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커스텀 키보드의 조립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나 키보드는 어떻게 조립하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한 커스텀 키보드 조립기입니다. 얼마전에 아는 여자사람이 한 대 만들어달래서 그럽시다..하고 만들었는데 아래 사진에도 있다시피 온통 핑크핑크하거든요. 핑크는 처음이라 사진을 열심히 찍은게 이렇게 쓰이네요..^^;; 키보드는 이렇게 만드는구나..하고 가볍게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1. 조립하기 전에..
1.1. 조립 도구
기본적으로 납땜세트는 꼭 있어야 합니다. 스위치, 다이오드, 저항의 체결은 납떔을 통해서 하거든요. 전 하코사의 20X시리즈를 사용하지만 이런 비싼 인두, 인두기, 납 등등..은 제대로 즐기시는 분들에게는 좋아도 입문용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제 막 기타를 배우는 초보가 몇백만원하는 기타를 쓰진 않잖아요. 물론.. 하나도 조립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하나만 조립해본 사람은 없는 것이 이쪽 동네다보니, 따라오는 부작용으로 '장비병'이라는게 있긴 합니다. 더 좋은(비싼) 장비를 찾는 그런 즐거움이지요.
시작은 미약해도 됩니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는 이런 몇만원짜리 세트로도 충분히 좋은 키보드를 조립할 수 있습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핀셋입니다. 스위치나 LED 체결에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지만, 저항을 땜하려면 하나쯤 있는게 낫습니다. 저항이 많이 작거든요. 극성도 없고 위아래 구분도 없는지라 손으로 잡고해도 괜찮습니다만, 정신 건강을 위해서..^^; 핀셋은 사진처럼 끝이 구부러져있는게 좋습니다. 이유는 아래에 다시..
이외에도 윤활세트(윤활제 + 윤활용 붓 + 윤활 플레이트 등)도 있으면 좋습니다. 순정 체리 스위치는 그대로 쓰기 곤란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윤활을 해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1.2. 부품
이전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키보드는 하우징(껍데기) + 기판 + 스위치 + 기타 잡자재로 구성됩니다. 스위치나 기타 잡자재는 관련 커뮤니티나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쉽게 구하실 수 있습니다. 하우징이 문제인데, 요즘엔 아크릴이나 알루미늄으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단가 절감을 위해 아크릴을 썼으니 참고해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조립에 필요한 부품들을 모아봤습니다. 왼쪽은 하우징 + 기판이고, 오른쪽은 위에서부터 LED, 저항 + 범폰(키보드 다리), 하우징 고정용 볼트 + 다이오드, 스테빌라이저 입니다. 납땜세트와 위 사진상의 부품이 다 구비됐다면 키보드 조립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고 봐도 됩니다.
2. 만들어볼까요?
준비물도 다 있고, 조립하기 적당한 장소도 있습니다. 커스텀 키보드를 즐기는 사람마다 조립과정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니 제가 조립하는 과정이 꼭 정석이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키보드는 저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구나~하시면서 편하게 보시면 됩니다.
2.1. 사전 작업
우선 부품에 이상이 없는지, 내가 생각한 색상이 나오는지(생각보다 중요합니다)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립 다 해놨더니 '이게 아니야!!'하면 슬프잖아요. 사람 손이 두 개다보니 제 몸의 일부가 나왔네요..^^; 비루한 폰카라서 LED 색상이 확산되어 보이는데 정상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LED는 체결 후에 다리를 잘라주기 때문에 저렇게 한거고.. 스위치는 이상이 있어도 바로 교체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이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한 스위치만 샘플로 체결해보고 내가 생각했던 컨셉대로 잘 뽑혀나오는지 확인해봅니다.
원활한 키보드 동작을 위해서 다이오드라는 부품이 들어갑니다. 전류가 의도한 방향이 아닌 역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방지해주는 고마운 아이지요. 방향성이 있으니 체결할 때 방향을 잘 보고 해야합니다. 그대로는 체결이 힘들기 때문에 기판을 공중에 띄워서 체결해줘야 하는데, 여유가 있다면 바이스같은 좋은걸 쓰겠지만 전 대신에 와이어링할 때 쓰는 전선묶음 두 개를 사진처럼 바이스 대신 썼습니다.
사진을 잘 보시면 다이오드가 체결되는 자리에 ->같이 생긴 화살표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이오드에 검은 띠가 있는데, 이게 쏠려있는 방향과 기판에 표시된 화살표를 맞춰 조립해야 합니다. 역방향으로 체결하면 동작이 안 됩니다.
다이오드 체결이 다 된 모습입니다. 다리가 삐져나와있는데 이걸 그대로 쓸 수는 없으니 니퍼등으로 바싹 잘라주면 됩니다.
그 다음은 저항을 붙일 차례입니다. LED를 쓰지 않을 생각이라면 저항땜은 생략해도 됩니다. 조립에 핀셋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저항이 많이 작습니다. 1.5mm정도 되는 것 같은데, 이걸 맨손으로 납땜하다가는 정신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핀셋이 없어도 되긴 합니다만.. 왠만하면..^^;;
2.2. 스위치 체결
여기서부터 커스텀 키보드 유저들마다 조립 순서가 많이 갈립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전 스테빌이 들어가는 키부터 스위치와 하우징사이에 간섭이 없는지 확인하는데요, 1x1 키는 이상이 생기면 해당키만 손쉽게 교환이 되는데 스테빌이 들어가는 키는 잘못하면 키보드를 통째로 들어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하우징을 바꿔줘야 합니다.
적당한 키캡을 골라 스테빌이 들어가는 키에 꽂아보고 하우징과의 간섭은 없는지 확인해봅니다. 다행히 별 문제가 없었네요.
스테빌에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면, 기판에 맞게 스위치를 체결해주면 됩니다. 딱히 어려운 것은 없지만, 스테빌이 들어가는 키의 경우 조립 후 키캡을 꼈을 때 타건감이 1x1 키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스위치의 축이 틀어져서 그런건데, 이럴 때는 해당 스위치만 임시로 디솔더링하고 스위치 축을 조절한 후에 원하는 키감이 나오면 그대로 다시 납땜해주면 됩니다. 기판과 보강판 사이의 유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꾹꾹 눌러가면서 스위치를 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격이 생기면 키감이 이상해집니다.
뒤집어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LED를 쓰지 않는 키보드라면 스위치 체결은 여기서 끝입니다. 슬슬 키보드 같아지고 있습니다.
스위치를 다 체결했다면, 이제 LED를 껴줄 차례입니다. 2.1.에서는 저항없이 전력공급원에 그대로 LED를 갖다대었기 때문에 밝기가 좀 차이날 수도 있으니 다시 한 번 실제 동작 환경에서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한대로 잘 됐네요.
문제가 없다면, 나머지 스위치에도 LED를 껴주면 됩니다. 제가 조립한 키보드는 핑크 원톤이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다양한 색상을 조합하신다면 내가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색상이 들어가는지도 확인해보셔야 합니다. 체결 후에 삐져나온 다리는 다이오드떄와 마찬가지로 잘라주면 됩니다.
LED 체결까지 되었습니다. 좀 키보드같네요 이제.
2.3. 후작업
하우징마다 다르지만, 보통 10개 이상의 볼트와 너트가 들어갑니다. 하우징은 보통 상판 + 중판 + 보강판 + 하판으로 구성됩니다. 본딩으로 전부 붙여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A/S가 안 되니까 필요한 부분만 본딩하고 나머지는 볼트를 이용해 체결합니다. 하우징 조립 후에는 옆면을 중점적으로 보면서 혹여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USB케이블과의 간섭은 없는지 확인해봅니다.
하우징 조립까지 끝났으면 수고했으니까 기념사진 한 방 찍고..
키캡을 껴줍니다. 스페이스바가 튀어나와있는건 제가 끼다 말아서 그렇습니다. LED 투과는 키캡이나 하우징의 재질과 색상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사전에 구상을 잘 해봐야 합니다.
불끄면 이렇게 됩니다. 풀LED 키보드는 이 맛에 쓰는거거든요 사실. 생각한대로 잘 나왔네요.
3. 마치며..
이 글을 보셨는데도 '키보드 조립은 어려워!'라고 생각하신다면 제 글솜씨가 부족한 탓이니 사과 말씀 드리겠습니다. 요즘에는 보신것처럼 몇 가지 사항만 주의하면 누구나 쉽게 키보드를 만들어볼 수 있게끔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비용은 어떤 키보드를 만드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이 글에서 조립한 키보드는 키캡을 제외하고 순수 재료비만 10만원대 후반입니다(풀배열이라서 더 비싸졌습니다). 가볍게 만들어볼만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헉소리나게 부담되는 것도 아닌 것이 참 오묘하네요. 기성품이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하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 키캡을 제외한 이유는 키캡이 생각보다 비싸서 그렇습니다. 이 글에서 조립한 키보드에 쓰인 키캡은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제가 주력으로 쓰는 키보드들에 꽂혀있는 키캡들은 가격대가 좀 있거든요..
궁금하신 점은 댓글이나 쪽지로 문의주시면 아는 한도내에서 최대한 자세하게 답변해드리겠습니다. 키보드 만드는거 생각보다 별거 없지 않나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