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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06/30 01:33:14
Name 언뜻 유재석
Subject [일반] [잡담] 나는 열 명에게 말했다.
이제 나는 열 번째 선언을 했다.






책에서 본 건지, 아니면 어디 채널 휙휙 돌리다가 들었는지 출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스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선뜻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그것을 할 것이라고 열 명에게 말하라. 그럼 그것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하고 싶어 안달이 나고 그런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꼭 해야만 해 이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나는 열 명에게 말했고, 이제 나는 나를 속일 수 있을진 몰라도 이 열 명은 속일 수가 없으니 나는 해야 한다.

나는 열 명에게 말했다.








12년 전, 스무 살의 봄의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막연히 뭔가가 쓰고 싶었다. 대학은 점수에 맞춰 아무개 공대에 왔지만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을 쓰고 싶다면 어디 문창과나 국문과 등 뭔가 부지런히 읽고 부지런히 써야 하는 곳에 갔어야 했지만, 그냥 물 흘러가듯 아무개 공대에 갔다.

(그마저도 끝내 마치진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마구 끄적거렸다.

이제는 표지가 누렇게 변한 파란색 표지의 당시 습작노트는 지금은 차마 한 줄도 언급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오그라듦으로 가득 찼지만

몇 번의 이사에도 차마 버릴 수는 없었다. 그게 버려지지 않게 되더라. 그 낡고 얇은 공책이...







하지만 12년이 지나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

어떤 사회 구조적인 문제나, 환경을 탓하진 않는다. 나라는 인간, 개인의 문제점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는 것에 스스로 변명거리를 잔뜩 만들어 놓고 애써 피했다. 게으름이란 본원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걸 알잖아 등으로 눈 가리고 아웅 했다.







나라에서 매년 진행하는 스토리공모대전이 있다. 대상, 최우수상, 입상작 등 한해에 대략 17편씩 뽑는 모양인데 우선은 이걸 목표로 잡았다.

글 쓰는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나마 이 공모전이 가장 만만한 상대로 보였다. 대상이 목표가 아니다. 응모가 목표다.

기성, 신인을 가리지 않고 개인, 법인도 모두 참여 가능한 공모전이라 정말로 쟁쟁한 사람들이 다 응모하는듯하다. 역대 수상자들 면면을

봐도 입상 욕심을 낸다는 건 500원짜리 즉석복권이 1억 맞길 바라고 긁는 것보다 더 도둑놈 심보일게다. 그래도 꿈만 꾸던 과거에서

현실로 첫걸음을 내딛는 계기로 이만한 소스가 없다고 생각했다.






12년 전과는 많은 것이 다르다.

그때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지만,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고, 그때의 감수성과 오그라듦은 많이 희석되었다. 그때 꾸던 꿈보다 좀 더

실현 가능한 꿈으로 바뀌었다는 건 희망적일지 모르겠다. 그때는 돈에 허덕였고, 지금은 시간에 허덕인다. (물론 돈은 여전히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다른 점은 "열 명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생일날 꼭 몇 자라도 메모를 써주는 손발 오그라드는 오빠, 동생, 형인 줄만 알았는데 구체적인 계획을 말해주니 모두 놀라움보단

응원과 격려를 해주었다. 흔쾌히 10인의 증인이 되어준다 약속했고 구체적으로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 물어낼 위약금을 가지고

계약서를 작성하자던 지인도 있었다. 이렇게 응원만 받을 줄은 몰랐다. 개중 하나 현실적으로 어림도 없다는 지적도 있을 거라

마음의 준비를 했었는데 열이면 열 모두 응원해 주었다. 아마 모두의 마음속엔 차마 이루지 못한 꿈, 하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씩은

있었을 텐데 나의 이 선언이 그들 마음속의 스위치를 누른 게 아닌가 싶다.

'저 게으른 녀석이 뭔가를 하겠다고 말했어. 저 녀석이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물론 여전히 나는 게으르다. 회사도 다녀야 하고, 다른 할 일도 많다. 비장한 사명감이나 원대한 목표는 꿈도 꾸지 않는다.

그래도 이 일을 계기로 나는 (혹여 있을지 모르는) 내 미래의 주니어에게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원래부터 나의 꿈은 "무슨 무슨 직업을 갖자" 가 아니라 "어떤 어떤 아빠가 되자" 였으니까...








매일매일 배우고, 웃고, 공감하며 가는 이곳에 이렇게 지극히 사적인 글을 올린 이유는

증인이 될 사람을 더 만들어 두고 싶어서다.




나는 열 명에게 말했고, 이렇게 더 많은 사람에게 말했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된 나는, 게을러지고 나태해질 때마다 이 글의 조회 수를 보며 부끄럽지 않게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당신의 생각보다 열 명에게 말하는 게 어렵지 않다. 꿈을 꾸는, 망설이는 청춘 모두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이 오길 바라며....








『이제 나는 열 명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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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맥
14/06/30 01:36
수정 아이콘
열한명 째입니다. 화이팅.
14/06/30 01:41
수정 아이콘
열 두명 째 추가요.
전파우주인
14/06/30 01:44
수정 아이콘
열세명 째입니다. 화이팅.
14/06/30 02:24
수정 아이콘
추천도 했습니다. 화이팅!
윤가람
14/06/30 02:31
수정 아이콘
305명째네요. 화이팅입니다.
임옥희
14/06/30 03:37
수정 아이콘
멋있어요.
터치터치
14/06/30 06:01
수정 아이콘
열번의 사과라는 글을 기다립니다. 크크크

응~모작 쾌변하세요.
카푸치노
14/06/30 07:00
수정 아이콘
멋지세요-_-b
이미 열명에게 말을 꺼냈다는거 자체가 많은 생각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텐데
꼭 이루실꺼라 믿어요!
14/06/30 10:05
수정 아이콘
천 명 넘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화이팅입니다. :)
켈로그김
14/06/30 10:14
수정 아이콘
빼도박도 못하는 그 상황이 나를 덜 게으르게 해주더라고요.
어차피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해야하기 때문에, 평소에 우리는 최대한의 게으름을 발휘하며 살아야 합니다.
히히멘붕이삼
14/06/30 13:06
수정 아이콘
응모가 목표다, 라는 말이 참으로 와닿네요. 글이라는게 시작이나 발상보다도, 완성된 형태로 하나의 이야기를 탈고하는 그 끝까지의 여정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힘내세요!
하카세
14/06/30 14:01
수정 아이콘
정말 속에만 담아두고 있으면 거기서 멈추더라구요. 저도 남에게 말하고 다니니 하게 되더군요. 응원합니다.
스트릭랜드
14/06/30 16:15
수정 아이콘
신춘문예 정도만 생각했는데 다른 공모전들도 많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신춘문예 등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날림으로 몇 군데에 응모했다가 당연하게도 떨어지고 마음을 접어버린 저는... 응원만...

꼭 응모하세요~ 두 번 하세요~
14/06/30 16:26
수정 아이콘
꼭 이루시라고 추천했습니다. 응모 후기글이 올라오길 기다릴게요.
아이유라
14/07/01 11:34
수정 아이콘
꼭 이루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댓글 하나 더 남기고갑니다.
열명에게 말하기. 저도 써먹어봐야 겠네요.
14/07/02 00:50
수정 아이콘
이 편지는 한국에서 시작되어...

열흘 내에 열 명에게 말하지 않으면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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