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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29 23:35
하하...근데 하륜이나 조영무 같이 자신의 처신에 주의한 사람들은 그냥 내버려 두긴 했어요. 뭐 이 두사람도 흑역사가 좀 심하긴 했지만...
14/06/29 23:38
하륜은 처신에 몇번 실패했는데도(이색 비문 사건이라던가 민씨일가 숙청할때 했던 실언이라던가...) 봐주기도 했죠 아무래도 태종이 하륜은 좀 특별하게 생각한게 아닌가 싶긴합니다 나름 자기의 제1공신이자 신하라고도 볼수있으니 나이도 많았고....
14/06/29 23:41
저는 이방원은 얀데레라고 망상합니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삼봉 추종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고요.
그리고 정말 태종 때 사간원을 만들고 사관들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거 보면 보면 이사람은 정치의 본질에 대해 너무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란 생각을 합니다. 결국 권력이 부패하지 않게 하는건 비판과 타협의 프로세스죠. 이젠 저도 드라마 볼일은 한동안 없겠네요.
14/06/29 23:43
저도 조선 아니 어쩌면 한반도 역사상 현실 정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실행한 사람이 이방원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바탕으로 누구나 꿈꿀 법한 이상적인 정치를 구현한 사람이 세종이구요.
14/06/29 23:42
뭐 이숙번은 참다참다 지른 느낌이랄까... 워낙 안하무인으로 굴 때도 태종이 많이 봐주기도 했구요.
근데 그는 너무 나갔죠... 그가 적당히만 했으면 평생 유배지에서 썩지는 않았을 겁니다. 인척도 아니었고, 그가 좋아했던 숙부랑 닮았으니까요 응?
14/06/29 23:44
흐엉.. 정도전이 끝나다니 너무 슬퍼요 ㅠㅠ
그나저나 보면서 드라마 보기전엔 이방원을 그냥 권력욕 많고 능력 많은 왕인줄 알았는데.. 지극히 현실주의적이지만 인정도 많은 사람이더라구요. 거기다가 명재상들을 바를만큼 똑똑하기까지... 정말 태종도 세종 못지 않은 먼치킨인 것 같습니다.
14/06/29 23:44
개과천선도 끝나고, 정도전도 끝나고...
즐기던 게임도 다 엔딩을 봤고..(응?) 이제 놀 거 다 놀았으니 공부나 해야겠네요.. 크크... 혹시 드라마 끝난 이후부터 세종 즉위 전까지 대충 어떤 흐름이었는지 알려주실 분 있으신가요? 역사는 고등학교 때 국사를 배운 게 전부고, 기억이 하나도 나지를 않아서.. 흑흑
14/06/29 23:58
이방원의 1차 왕자의 난 이후에, 태조는 왕위를 둘째 아들인 이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그가 2대왕 정종이 됩니다.
1398년에 왕위에 오르나, 이방원을 왕세재로 책봉하고 1400년에 왕위를 물려주게 됩니다. 왕위에 오른 태종은 재상중심의 정치체재인 왕-의정부-6조의 정치 체계를 부정하고 왕-6조 직접보고를 하게 하는 6조 직계제를 시행하게 됩니다. 6조 직계제는 중앙집권적 관료정치를 표방하는 조선에서 27대 왕중에서 3대 태종과 7대 세조, 두 왕에게서만 볼 수 있는 정치체재입니다. 태종에게는 3명의 왕자가 있었는데, 첫째가 양녕대군 둘째가 효령대군 셋째가 세종이 된 충녕대군이었습니다. 태종은 일찌감치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했고, 문무에서 굉장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졌다고 알려졌습니다만 결국 태종의 강력한 뜻으로 폐위되고 셋째인 충녕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14/06/30 01:05
양녕은 거의 개망나니라 할 만했고...
양녕의 폐세자는 물론 태종의 결단이었습니다만, 폐세자하지 않으려고 정말 안간힘을 썼죠. 하지만 노력해봤자 허사였죠. 양녕 자신이 워낙 글러먹은터라. 그리고 그 양녕은 훗날 세조를 적극 지지함으로써 나름 세종에게 복수를 합니다.
14/06/29 23:50
신라의 태종 무열왕인 김춘추, 고려의 태조 왕건, 조선의 태조 이성계, 조선의 태종 이방원
태-라는 묘호가 붙는 왕들에게는 나라의 기틀을 세우거나, 새로운 왕조의 시대를 연 왕들이었습니다. 혹자들은 이조라고 조선을 폄하하지만, 후세의 역사가들은 그들의 과오를 누락시키지 않았지만 그들의 업적을 기억합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 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데미안의 말이 위의 4명의 왕의 과오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묘호니 역사니 어려운 말보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참 좋은 드라마가 종방했다는 것이네요.. 주말에 아버지와 저를 하나의 채널에 잡아둔 tv프로그램 오랜만이었네요..
14/06/29 23:54
태종이 권력욕에 찌든 피의 군주라고 생각을 하는데
태종은 정말 적게 피를 본 왕이죠. 숙청도 왠만하면 피를 안 보는 방식으로 유배로 끝낸 경우도 많고요. 워낙 왕권이 강해서 위협이 될 소지도 없었고요. 다만 자기 왕권에 반하는 숙청은 비교적 온건하게 했으나(자기 자신이 워낙 먼치킨이니) 후대를 위한 숙청에는 가차 없었던 점이 피의 군주로 보이게 하는거죠. 다만 그 숙청도 광범위하고 무분별하게 진행된게 아니라 필요한만큼 정확하게 딱 필요한만큼만 도려냈죠. 이게 세조랑 차이점인데 후대 양녕을 쥐고 흔들고 실지로 권력을 휘둘렀던 민씨에 대한 숙청 그리고 잠재적 세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심씨에 대한 숙청 이것도 외척견제로 보면 왕권주의에서 충분히 이해될만한 일이죠.
14/06/29 23:55
정도전의 이상을 확실하게 짓밟기는 했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절대왕권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으니까요 그 후에 세종이 정도전의 이상에 가까워 보이는 건 세종이 우리나라 역사상 첫손가락에 꼽히는 왕이었기 때문이죠 그 후에 세조 이후 신권이 강해진건 솔직히 세조의 숙청 실패라고 봐서요
14/06/30 00:06
글쎄요. 태종은 절대군주이긴 하지만 자기 하고 싶은대로 제도를 만든 사람은 아니죠.
일단 사간원을 만들어 간관을 육성한 사람도 태종 그리고 사관들이 쫄지 않고 역사를 기록하게 한 사람도 태종. 인지라... 자리 자체에 대한 위협에 대해 과민할 정도로 대응했던 사람이지만 정책이나 기타 정치 관련해서는 그렇게 폭군처럼 행동했던 사람은 아닙니다.
14/06/30 00:13
자기가 하고 싶어서 사간원 만들었고, 그렇다고 왕에 걸림돌이 될 세력을 놔두었는가? 그것도 아니구요
자기가 하고 싶어서 역사를 기록하게 한거죠. 그렇다고 사실대로 기록되었는가? 그것도 아니구요. 정도전 관련 기록이 그 예죠 그냥 폭군이 아니었다 정도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 건 사실이죠
14/06/30 00:38
뭐 자기하고 싶은 대로 하긴 했습니다만, 기본적인 지위 만큼은 지켜주었습니다. 사관이 따라다닌다고 벌은 주었지만 죽이진 않았고, 간관들이 심하게 탄핵한다고 해서 화를 내고 관직을 삭탈했지만 죽이진 않았습니다. 태종처럼 극한의 왕권을 가졌던 왕이 간관과 사관 죽인다고 해서 반대 먹진 않았죠. 태종이 상왕시절, 장미라는 시녀가 태종에게 안마를 하다가 꾸지람 받자 다시 안마할때 세게 두드렸는데 이거가지고 세종하고 삼정승한테 죄를 논하라고 그랬고, 삼정승은 반역죄에 준해 죽이자고 주장합니다만, 죽이진 않았죠. 뭐 태종도 바본 아니었습니다. 실제로도 왕이 사람 목숨 맘대로 날리진 못했어요.
14/06/30 00:55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했는데 못한게 아니라 잘했죠.
세종때 치세를 이룰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세종의 능력도 있지만 태종이 그만큼 후일을 위해서 깔아놓은게 많았기 때문이니까요. 그러니까 문제 삼을게 없는거고요.
14/06/30 01:20
잘하고 못하고는 별개로 정도전의 이상을 태종을 짓밟은 건 사실이죠
정도전의 이상과 다른 시점에서 태종의 능력과 공과는 아무 관계 없죠
14/06/30 00:09
정도전도 끝나고 월요일도 찾아오고 이래저래 힘이 안나시는 분들은
내일 밤 JTBC 파랑새는 있다 서울의 달 서울 뚝배기의 작가 김운경의 신작 유나의 거리 강추합니다. 보세요 두 번 보세요!
14/06/30 00:14
태종이 피를 적게봤다 하지만 이건 중국쪽을 비교대상으로 해서인거죠
우린 우리의 모델을 봐야합니다. 삼한을 일통시킨 고려태조 왕건을 보면 답나오죠 고려를 끝내고 조선을 연 아버지 태조이성계 위의 두군주에 비하면 이방원은 살인귀라고 봐야죠 그의 정권은 피로 이루어진거고 그의 행위를 모범으로 따라한 손자 세조가 그짖을 반복한겁니다. 이방원이 죽을때까지 반복한 권력강화를 위한 살륙극은 아들 세종과 대마도정벌 내치등으로 인해 좀 눈감아주는 거지 인간적으론 아니죠
14/06/30 00:17
우리 기준으로도 많은 것도 아니죠.
세조시대 옥사나 4대 사화나 정여립의 난, 환국정치, 탕평책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숙청 생각하면 태종이 딱히 많이 죽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적게 죽인 축입니다. 단지 형제나 처남, 사돈을 죽였기 때문에 이미지가 강한 거죠. 솔까말 정도전이 이방원보다 사람은 훨씬 많이 죽였죠. 왕씨 왕족 몰살 부터 해서 이숭인 이하 반대파까지... 그리고 고려도 왕건이 적게 죽였기 때문에 광종이 엄청나게 많이 죽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지 않았습니까?
14/06/30 00:25
세조랑 비교하면 태종이 진짜 섭섭하죠...태종은 사람을 죽이더라도 왕조의 시스템은 완성 시키려고 했는데 세조는 사람도 죽이고 시스템도 망가뜨리고.... 그덕에 손자인 성종이 개고생을 했고 그 여파가 연산군한테까지 가게되죠
14/06/30 00:31
일단 먼저 이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권력은 부자지간이어도 나눌 수 없다." 비슷한 시기의 홍무제 주원장만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개국공신을 죽였습니다. 그나마 편안이 살다 죽은게 탕화 정도죠.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룬 왕건 역시 친족을 죽이진 않았지만 그에 반발하던 이흔암, 환선길이나 청주 세력 등 구 궁예지지파들을 몽땅 숙청해야했습니다. 거기다가 공산 전투 이후 후백제로 돌아선 호족과 장수들의 처자식까지 몽땅 죽여버렸죠. 솔직히 태종이 죽인 사람들이 대부분 친족들이었고, 외척은 얄짤없이 멸문 시켜버렸지만, 정도전이나 남은의 일족들은 잘 죽이지 않고 오히려 다시 직첩을 내리기도 합니다. 뱀발에서 언급했듯이 이른바 유학자들에게 가장 끔찍한 죽음인 부관참시마저도 태종은 거부했죠. 씁쓸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전제왕권제 아래서 안정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피가 흘렀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요. 중국사에서도 광무제나 송태조정도가 숙청이 없거나 적었지 거의 대부분의 왕조국가에서 권신이나 권력있는 친족간의 권력투쟁은 예사였습니다.
14/06/30 01:04
윗분들도 많이 말씀하셨듯이 세조를 끌고오면 태종에게 정말 많이 미안합니다.
태종시기까지는 나라의 기틀을 잡는 시기였죠. 이성계의 뜻대로 방과가 왕위를 이었으면 얼마 못가서 망하거나 잘해도 고려 시즌2 였을 겁니다. 말로는 신진사대부가 왕을 잘 보필하는 거라고 하지만, 신진사대부 역시도 권문세족이었고 백성들을 수탈했습니다. 국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훨씬 나라를 위해선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겁니다.
14/06/30 01:45
그 둘이랑 비교한다손쳐도 이방원이 흘린 피가 이성계가 바다에 빠뜨려 죽인 왕씨들에 비할 수 있을리도 없고,
왕건 같은 경우는 쿠테타와 정복 둘 다를 해낸 인물입니다. 이쪽은 죽인 단위수가 다르죠.
14/06/30 02:21
근데. 고려는 숙청이 없지도 않았지만, 초기에 외척 견제 못해서 피보지 않았나요?..
당장 2대 혜종때부터 문제가 생겼고, 강대한 외척세력과 복잡한 혼인관계땜에 끊임없이 시달림을 받았죠. 이게 중기로 넘어가서는 외척이 왕보다 더 힘이 쎄진경우도 생겼구요. 사실 이방원의 외척에 대한 숙청은 고려사를 거울로 삼은걸수도 있지 않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14/06/30 16:09
고려태조 왕건은 자기 자신이 피를 안본 덕에 자식들이 무진장 고생하고 왕건 자신이 피를 봤을 경우의 몇배에 달하는 대살육이 있었습니다.
뛰어난 무장이었던 왕건의 직계 후계자였던 그 혜종이 암살 위협을 몇번을 당하고도 기반이 약해 덮어둬야만 하다 보니 심신파탄이 되어 일찍 죽었고, 정종, 혜종보다 기반이 강했던 정종도 대놓고 일어난 반란 한번에(주동자로 잡혀 죽은게 300명...) 그러고도 불안해서 결국 서경 천도 시도하다 죽었으며, 정종보다 기반이 강했던 광종마저도 그야말로 피가 철철 흘러 넘치는 대숙청을 벌여야만 했습니다. 태조 왕건은 숙청 안했죠. 네. 그래서 그 자식들은 그 뒷처리에 몇배의 숙청을 해야만 했지요.
14/06/30 00:38
정도전에서 나왔듯이
태종은 정도전의 정책을 대부분 계승했습니다. 특히 왕자의 난의 주요인이 되었던 "사병혁파"는 반대로 태종때 사병혁파를 해 버리죠 딱 하나 달랐던게 [재상 중심의 정책]이었고, 이걸 서로 타협할 수 없는 사상의 문제였습니다. 그에 반해서 세조는 참....
14/06/30 01:06
태종은 정도전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왕권의 약화를 반대한 것이니까요.
개혁의지로만 본다면 이방원>정도전>정몽주>이성계 라고 생각합니다.
14/06/30 00:43
오늘의 안재모는 용의 눈물 유동근에 절대 밀리지 않는 이방원 그 자체였습니다.
진짜 용상에서의 그 연기는 드라마의 화룡점정 그 자체였다고 봅니다.
14/06/30 00:58
개인적으론 좀 더 광기를 보여주면 어땠을까 하는생각은 들더군요 오늘 이성계와의 독대씬에서는요. 물론 깔끔하게 처리한 연기도 좋았습니다. 저에겐 안재모씨를 다시 보게한 작품이었어요
14/06/30 01:04
저는 반대로 그런 정도면 충분히 야심과 광기를 보여준 수준이라고 봅니다.
용의 눈물에서는 부자간의 화해를 주로 다루었으니 이런 수준이 적당하지 않나 싶네요.
14/06/30 01:48
즉위 후 이방원이 사병혁파를 한 것은 아무래도 왕권강화의 일환으로 봐야겠죠.
왕자일 때 사병혁파를 당할 순 없지만 왕이 되었으니 사병혁파를 할 것이다. 좀 당연한 이야기였나요 흐흐
14/06/30 02:09
충녕의 세자 책봉에 반대했다니...
세종은 황희에 대한 원한을 품었겠군요. 아버지처럼 피를 묻히기 싫어하는 세종이 이걸 과연 어찌 갚았을지..
14/06/30 02:12
세종 13년 9월 10일 황희가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다
세종 14년 4월 20일 황희가 고령을 이유로 사직하자 허락하지 않다 세종 14년 12월 7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하니,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17년 3월 29일 영의정부사 황희가 전을 올려 노쇠함으로 사직하기를 청하니 이를 허락치 않다 세종 18년 6월 2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하나 윤허하지 아니하다 세종 20년 11월 19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을 청하니 허락치 않다 세종 21년 6월 11일 영의정 황희가 사직할 것을 청하다 세종 21년 6월 12일 황희의 사직을 반대하다 세종 22년 12월 21일 영의정부사 황희가 자신의 파면을 아뢰다 세종 25년 12월 4일 영의정 황희가 연로함을 이유로 해면을 청하나 듣지 않다 세종 31년 10월 5일 황희를 영의정 부사로 그대로 치사(致仕)하게 하다 문종 2년 2월 8일 영의정부사 황희의 졸기(卒記) ..
14/06/30 08:25
태종은 왕권지상주의자가 맞습니다 단 조선왕조개국공신이고 문과출신이기 때문에 정도전과 뜻이 맞았을 뿐이죠 그 누구보다 영리했기 때문에 이상을 져버리지 않고 뜻을 펼쳤고 동시대에는 영락제와 같았으며 엣시대에는 당태종과 견줄만하다 여겨집니다 아마 명에 갔을때는 영락제와 상당한 교분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14/06/30 16:22
정도전의 재상중심제는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나간 감이 있지요. 이념적으로야 언제나 실력과 덕망을 겸비한 자손이 나오기 힘든 왕에게 전제권력을 주는 것보단 실력으로 그 자리를 차지한 재상이 실질적인 통치를 하는 게 옳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이걸 위해서는 그 재상을 선출하고, 권한을 규정지으며, 견제하고, 문제가 생기면 이를 정당하게 피를 안보는 형식으로 끌어내리는 그 모든 시스템이 갖춰져서 제기능을 발휘하면서 작동해야만 했고, 전례도 없는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제대로 돌리는 데에는 몇년 가지고는 택도 없었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나간 이상주의적 사상이었고. 이런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이인임처럼 사리사욕을 챙기지만 정치력은 만랩인 사람이 합법적으로 최고권력을 누리는 시스템이 됩니다. 대신, 조선은 '후계자를 최고의 학자이자 군자로 양육해서, 그렇게 준비된 왕에게 최종 대권을 준다' 로 나아갔죠. 실제로 조선 왕들의 평균 능력치는 매우 높은 편이었고. 오늘날 인터넷 상에서 혹평을 듣는 왕들도 다들 능력치만 따지면 대단한 편이었으니. 그리고, 이런 시스템을 구축해낸 건 태종-세종-문종으로 이어지는 역대급 지식인 왕들이었고.(태종-고려 역사상 최연소 과거급제자, 세종-말이 필요없다! 문종-세종이 온 힘을 다해 만들어낸, 수명과 여색밝히기가 조금만 더 있었어도 완벽했을 왕) 사실 이런 식으로 3대나 이어지지 않았다면 조선의 군왕 육성 체계도 불안했을 수 있지만, 3대나 이어지다보니 이게 안정화가 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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