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스가 붐비고 곳곳의 창문이 열린다.
반바지가 늘어나며 치마가 짧아지는 그러한 날씨가 좋은 요즘이다.

과제가 많아 간만에 도서관에 들러 자료수집 후 정리를 하는 도중 같은 과 후배를 만났다.
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밥약속을 의미없이 하는 사이.
오늘도 어김없이
오빠 언제 밥한번 먹어요
어 그래그래 연락해~
단순한 대화로 각자 자리를 달리한다.

장서로 향하는데 후배가 다시 돌아와 말을 건낸다.
맨날 먹자먹자 하지말구 내일 바로 먹어요.
시간되세요??

딱히 할 건 없는데 일단 빼고본다.
글쎄.. 과제땜에 좀 바쁠 것 같은데??
그럼 모레어떠세요?
뭐 괜춚할듯..그럼 낼 밤에 다시연락해.

도서관 왔다가 엉겁결에 꽁돈이 나간다.

그런데 아직 기한이 좀 남은 과제를
난 왜이렇게 급하게 하고있는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일까지 마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릿속에 자리한다.

다음 날. 점심까지 빡세게 과제를 마치고
집에서 쉬는데 카톡이 왔다.
밥후배 였다. 생각보다 일찍 카톡이와서 좀 놀랐지만
왜? 밥 낼 아님?
밥먹기전날 먼저 카톡달라면서여
... 그건 그런데.
뭐 드시고 싶으신데요? 후식은 제가살게요 그러니까 맛있는거 사주세요
그래 그럼 내일만나기전에 뭐먹을지 생각하고 와
갈팡질팡하는거 싫어하니까. 알았지????
네 지금 뭐하세요??
.........
.....
...........

계속 카톡이온다 . 오후부터 잠들기전까지 여자사람과 카톡하는건 꽤나 오랜만의 일이다.
카톡하다보니 몰랏던 얘기들도. 서로의 근황도, 조금은 사적인 이야기들도 오간다. 나쁘진않다.

만남의 날. 고작 후배 밥사주는 날인데 괜히 신경 쓰인다.
더 날 신경쓰이게 만든건 후배가 너무나도 이쁘게 하고 왔다는 것이다.
남자는 속물이다. 큰 관심이 없다가도 새로운(이쁜) 모습을 보게되면 갑자기 관심이 생긴다.

만나자마자 후배는 조잘거린다. 오늘은 과 후배같지가 않고 그냥 동생같다.
팔도 툭툭치고 대화도 많이하고, 우리가 언제 이렇게 친했나 싶을 정도로 즐겁다.
밥먹고 어느새 후식,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하러 술집까지 오게됐다.

과 행사에서 내 기억으로 이 후배는 술을 매우 못마신다. 얼굴이 벌게지고 혀도꼬부라지는 전형적인 술찌질이다.
맥주 몇 잔에 벌써 벌게진다.
에휴.. 더 먹였다간 내가 귀찮아질 것 같다.
이제 그만 마시자. 낼 수업 없어?
있는데 좀더 마셔도 될 것같은데 왜 저 자꾸 보내려그래요 (10시쯤 됐을 듯하다)
너 술마시면 노답인거 교수님도 아셔. 드가셈
시룸

옥신각신 하다가 어느새 한 잔을 다 비웠다.
계속 더 있으려고 하는 것.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혹시 나를 마음에 조금은 두고 있는것인가
이건 그린라이트인가 갑자기 머리속이 꽉 차기 시작했다. 텅비어있었는데..어느새 어느 부분의 세포가 발동하고 있는 느낌이다.

오빠는 왜 맨날 밥먹자고 하고 연락안해요?
선배가 먼저 해야돼?
그럴수도 있죠..연락 기다린 적도 있는데 결국 안오더라구요
그래? ..그럼 뭐..미안

시간이 깊어가고 이런저런 대화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내일 또 연락한다는 후배 말에 조금은 설레기 시작했다. 내일은 무슨 옷을 입을까..

갑자기 후배가 물어봤다.
근데 선배 그 과제 다 했어요? 급해보이던데..
어 거의 다 했지..
기한이 언제까지 인데요?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