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서 애 데려오는데 아가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를 잘했다.
손흔들며 빠이빠이 하다가 뽀뽀 한번 해주고 허리숙여서 꾸벅 인사하더니 현관문 안으로 밀며 들어가시라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오니까 걸어들어가서는 문 닫히기 전에 허리숙여 인사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껌뻑 넘어갔다.

난 인사성이 없는 편이었다.
별 뜻도 없는 뻔한 말을 하는 것이 의미없게 느껴졌기 때문이었고 그러다보니 인사하는 게 어색해서였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 낯선 사람들과 인사할 일이 늘어났는데 그조차도 내가 아이에 빙의해서 인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중생인지 여고생인지 모르겠는 우리집 앞집 딸이 화장 진하게 하고 남자친구랑 연애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집앞 계단 뒤에 사복 숨겨놓고 갈아입고 데이트하고
밤늦게 와서 다시 옷 갈아입고 집에 들어가면
안에서 그 집 어머니가 "넌 어딜 갔다 오니?"라고 물어보곤 했다.
나랑은 세대차이도 나거니와, 난 고교때까진 공부만 하다가 대학 온 다음부터야 연애할 생각을 했기 때문에 화장하고 연애하고 다니는 학생은 껄렁껄렁 불량학생들이려니 하는 선입견이 내심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싫어할 것 까지는 없지만, 불량학생은 맞겠지 하는 정도로.

주말에 이 커플을 세번 만났다.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느라 바쁘던 와중에 나를 보더니 남자애가 밝게 인사했다.
그런데 그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초면에, 자기들끼리 얘기하느라 바쁜 와중에, 내심 선입견도 가진 사람을 상대로도 자연스러운 타이밍을 잡아 단숨에 친숙한 대화가 가능한 상태를 만들었다는 걸 느꼈다.
오히려 내가 인사에 서툴러서 엘리베이터 나오는 길에 뭐라고 해야 하나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인사는 뜻 없는 말이 아니었다.
말 자체는 틀에 박힌 별 뜻 없는 말이라해도 적합한 표정 어조 타이밍을 파악해서 어색함 없이 대화가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건 중요한 기술이며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가에게 인사성을 가르치기로 했다. 인사성은 사회성 면에서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다.
나부터 좋은 타이밍에 좋은 표정과 어조로 인사를 잘하는 것을 연습하기로 했다. 내가 익히지 못한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