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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07 06:40
저는 개인적으로 왕안석을 좋게 평가합니다만, 그가 소통 또는 정치력이 크게 부족했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송이 신권이 강했던 게 태조였나 누구였나 하여간 황제의 유지가 "처형당하는 선비가 없게 하라"였나 뭐 하여간 그 비슷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죠. 그래서 소동파도 죽을 뻔했다가 간신히 살아서 하이난으로 유배를 가기도 했구요.
왕안석이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적인 요소를 알았더라면, 아마도 훗날 그가 역신전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냐 열전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냐 따위의 논쟁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이건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죠. 누구 이야기였는지는 까먹었는데 아마 조선 초기 집현전 학사 중 한 명이었을 겁니다. 남들은 다 역신전에 이름이 올랐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게 포인트죠).
14/01/07 06:54
맞습니다. 아마 송태조의 유훈이 큰 역할을 했을겁니다.
사실 채씨정권 하에서의 원우당 탄압 당시가 이 유훈이 깨지느냐 마느냐의 중대기로였는데 결국 지켜졌죠. (물론 소식은 그에 버금가는 끔찍한 유배생활을 견뎌야 했지만요)
14/01/07 07:39
애국심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파쇼가 되죠. 왕안석까지는 모르겠지만 그 뒤를 이은 채씨 정권을 보면 전체주의자라고 해도 될만큼 국가의 영향력을 확장해서 사회의 가장 말단까지 장악하려고 했죠. 지금 시대의 그분들도 뭐...
14/01/07 08:40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통용되는 애국심은 18세기 이후에 나왔다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제국주의 침략과 맞물려 정신침략의 일환으로 등장한 셈이죠. 과거의 애국심이란 결국은 군주에 대한 충성심과 다를바 없을겁니다. 국가의 3요소 보다 황제가 위에 권림했으니까요.
14/01/07 14:42
왕안석은 정말 천재에다가 사상적 완성이 높은 규범등을 마련하고 현재로 치면 큰정부 형태의 통치를 하려 했었죠...
그러나 지금은.... 솔직히 뭘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한몫 챙기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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