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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14 10:37
예전 삼갤/삼도 등 커뮤니티들에서 이런 문제로 키배가 크게 일어난 걸 봤는데 그 당시 갱살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강력히 규탄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식으로 결론이 났었던게 기억나는군요. 확실히 현대 이전까지 조조는 계속 까여왔지만 그 주된 공격점을 학살에서 찾진 않았으니까요. 학살은 거들 뿐.
13/11/14 10:30
오나라 : 장소(서주 팽성), 제갈근(서주 낭야), 보즐(서주 하비), 노숙(서주 임회 -> 하비), 여대(서주 광릉). 촉나라 : 제갈량(서주 낭야), 미축(서주 동해)
딴거 떠나서 제갈량 하나만 있었어도 천하통일하고 황제했을지도...
13/11/14 10:34
한때 저도 조조를 대단한 능력을 가진 난세의 영웅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냥 단지 미친개학살마 싸이코패스일 뿐이라고 봅니다.
한 짓을 보면 그냥 미친놈이죠. 조조, 항우, 백기, 히틀러, 2차대전 때 일본군, 스탈린 모두 인류에게 있어선 안될 미친 학살마들입니다.
13/11/14 10:34
그냥 조조의 흑역사죠. 조조가 그나마 잘 되어서 저렇게 흑역사 취급해주는 거지, 역사상에서 패자의 입장이었으면
가루가 되도록 까였을 겁니다. 약간 다른 예지만 히틀러 취급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13/11/14 10:35
서주대학살로 유비의 길을 열어준 조조.
개인적으로는 저 학살을 옹호하지 않느냐 하느냐로 제대로된 조조빠인가 아닌가를 구분합니다.
13/11/14 10:42
조조 이전에도 대규모 학살이 존재했고, 그 학살 당사자인 백기, 항우 역시 당대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으며, 그 자신들도 결국 몰락합니다. 더욱이 백기는 죽으면서 장평에서 저지른 학살에 대해 후회하죠. 백기, 항우 모두 조조보다 수백년 전 사람들이었습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조조의 학살은 어쩔 수 없었다" 가 아니라 대학살 자체는 당대에도 충분히 비난을 받았습니다.
위무제는 물론 뛰어난 위인입니다. 그러나 그의 공과 과를 충분히 가려서 냉정하게 평가해야합니다. 조조라는 위인을 칭송하기 위해 조조의 엄연한 과실인 서주대학살을 묻어버린다면 "박정희대통령은 경제개발에 공이 있으므로 유신독재정도의 과실은 시대도 시대이므로 넘어갈 수 있다." 라는 논리도 용인된다는 뜻이죠. 아무리 수백년, 수천년전 일이라 할 지라도 결코 쉽게 볼 문제는 아닙니다.
13/11/14 10:42
서주대학살이야 말로 요정설의 시초라고 봅니다. 이거 없었으면 유비가 그렇게까지 비상할 수 있었나 싶기도 해요.
그나저나 절대 미화할 대상이 아니죠. 서주대학살은;;;
13/11/14 10:43
몇년전까진 조조는 저평가되었고,유비가 고평가되었다는게 댓글란 분위기였는데.. 요즘은 평가가 바뀐 듯 합니다.
조조가 너무 재평가되버려서 이제는 까이고,유비는 따져보니 과소평가된 먼치킨.. 이렇게 느껴지네요. 그냥 변함없이 꾸준하게 까이는 건 손제리.
13/11/14 13:38
조조는 나름 명문가 자손이어서 기반이 있었지만,유비는 정말 동네 소상공인 출신 맨손이었죠.
삼국지연의에서 나오는 제갈량 군사업적중 상당부분은 유비의 전공이었다고 하구요. 일부에선 잘난부하빨이라고도 하지만.. 사실 사람마음 얻는게 쉬운일은 아닙니다. 관우가 천하를 양분했던 조조를 버리고 원소의 객장에 불과했던 유비를 택한건 정사에도 나오는 일이라고 하죠. 용인술면에선 오히려 유비가 조조보다 낫지 않나 싶습니다.
13/11/14 17:46
용인술면에서 유비가 조조보다 낫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런데 관우만 놓고봐도 관우한테 지나친 권한을 줘서 형주 한방에 날려먹게 된 거나 명장 조운을 끝까지 홀대한걸 볼때 조조보다 낫다는 생각은 안들어요.
13/11/14 19:13
조운은 홀대당했다고 봐야할까요? 친위대장격을 많이 맡겼는데.. 이것도 상당한 요직입니다.
조조밑에서 팽당한 부하들을 생각하면 조조보단 유비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유비사후 제갈량이 촉을 이끈 걸 생각하면 용인술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위의 실질적인 1인자가 된 사마의는 결국 위를 찬탈했는데, 촉의 실질적인 1인자가 된 제갈량은 촉을 삼키지 않고 끝까지 충성을 다했는데요. 사마의를 살아생전에 크게 기용하지 않았지만,말그대로 제거하진 못했습니다. 꽤 많은 수하들을 처형했는데도 말이죠... 본인이 임명한 전선사령관이 해당지역을 말아먹은 건 조조도 한중공방전에서 경험했습니다. 물론 한중의 가치보단 << 형주의 가치 ..긴 했습니다만
13/11/14 23:24
네 홀대당했습니다. 조운이 바른말을 많이해서 찍혔죠.
유비가 황제에 오르려고 할때 반대했다거나 이릉전쟁 반대했거나 이런 것들 때문에요. 사마의랑 제갈량을 가지고 조조랑 유비를 비교할수는 없죠. 조조는 사마의를 크게 중용하지 않았는데 조조 사후에 사마의가 자기 능력껏 1인자가 된거고 제갈량은 유비가 전권을 밀어줘서 1인자가 된거니까요. 관우같은 경우는 관우가 단순히 전쟁에서 져서 형주를 잃은게 아니라 외교감각의 완전 부재(대표적으로 혼담을 제의한 손권한테 지독한 폭언을 퍼부었죠) 수하 관리의 문제(부하들이 반란 일으켰구요.) 등이 복합적으로 연결되서 날려먹은거잖아요. 그런걸 이야기하는겁니다.
13/11/15 18:05
아..제가 기억하기론 신하들이 유비에게 황제에 오르라고 연명해서 상소를 올릴때
조운은 빠진걸로 아는데요. 이게 맞는건지 다시한번 살펴볼께요.
13/11/15 18:14
조운이 귀양가거나 관직 깎인 적도 없는데 홀대받았다는 의견은 납득안됩니다.
유비사후에도 축에서 충분히 우대받은 조운입니다. 사마의에 관한 제 의견은 변함없습니다. 사마의를 잘 다독여서 충성심을 심어준 것도 아니고,그렇다고 완전히 제거해서 권력에서 밀어낸 것도 아니구요. 마속의 미래를 어느정도 예측한 유비가 조조에 비해서 용인술을 뛰어나다고 봅니다. 형주는 어느정도 실수했다고 봅니다만, 촉에서 형주를 맡길만한 인물이 어차피 관우밖에 없지 않나싶습니다.
13/11/14 14:33
요즘도 개천에 용 난다는 표현을 쓰는데 1800년 전,
유력자의 자식으로서 어릴때부터 충분한 물자와 환경속에서 자기계발 하고, 인맥 쌓은 조조와 그냥 시골 촌부였던 유비가 대립각을 세우고 싸웠다는 점과, 또 하나의 국가를 세웠다는 점도 대단한것이지요.
13/11/14 17:53
네 저는 유비가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건 아닙니다.
다만 조조랑 비교될 정도의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만큼 조조를 높게 본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흐흐
13/11/14 18:14
조조가 유비가 높게 평가했죠. 저도 유비가 나름 인간적인 매력 있고 군사적으로 뛰어난 점이 있는 인물이다
정도는 인정하는데 정치(행정), 문학, 군사, 리더십 거의 모든 면에서 최상인 인물이 조조잖아요. 그런 조조와 비교하기엔 유비는 많이 떨어진다는 거죠.
13/11/14 10:45
흠 창천항로 많이 봤는데 그게 딱히 미화라고 보긴 좀 그렇던데요 유비삼형제의 시선에서 분노하는 장면도 나오구요 그 분노하는 장면에서 저렇게라도 자신의 천하를 그려나가는구나 하고 유비가 한탄 비슷하게 하는 장면이 나오긴합니다만...흠 그걸 미화라고 볼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학살대상인 서주백성들이 "오오오!" 하며 탄복을 하며 조조님을 위해 기꺼이 죽어드리리다라는 식으로 나오며 그러면서 학살장면을 찬란하게 묘사....' 제가 기억을 못하나 해서 지금 다시 서주대학살 부분을 봤는데 다시 봐도 이런장면은 없네요;;
13/11/14 10:48
분노를 하면 끝까지 분노하던가 하지 자신의 천하를 그려나가는 구나 라는식으로 마치 조조의 과업을 이루기위한 작은 희생정도로 묘사했죠.
13/11/14 10:54
그걸 조조의 과업을 이루기위한 작은 희생이라고 묘사했다고 볼 수있나요 그냥 유비시점에서 유비자신에 대한 한탄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저따구로 세상을 그리는구나 하고 조조의 대한 비판으로 보면 볼 수있다고 생각해요 뭐 이건 작품에 대한 해석이니까요
대학살을 최대한 커버치려고 했다고 하면 동감하겠습니다만 그걸 미화하려고 했다는 의견에는 좀 반대 의견입니다.
13/11/14 10:46
연의로 인해 제대로 미화된 대상은 유비도, 제갈량도 아닌 손제리가 아닐까 합니다. 오히려 유비, 제갈량은 연의로 인해 더 폄하된듯한...
연의에서 손제리의 막장드라마틱한 말년을 두루뭉술하게 뭉게버리는바람에 덕을 많이봤죠. 흐흐흐.. 하지만 정사가 부각되면서 손제리는 까야제맛이 되버린..
13/11/14 10:48
능력과 인성은 별개죠. 업적과 과오는 구분해야하는데 업적이 대단하다고 과오를 덮으려고 하는것이나 과오가 심하다고 업적을 폄하하는 것 둘다 실수인데 앞의것을 행했다고 욕하면서 자신은 뒤의것을 행하는 경우나 그 역이 상당히 많더군요.
13/11/14 10:52
진정한 학살왕은 백기..
물론 조조의 학살은 옹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 그랬는지는 조조만 알겠죠. 서주학살로 이득본게, 많은 인재들과 난민들이 강남, 형주로 흘러들어가서.. 나중에 형주를 장악한 유비, 강남의 손가에 도움이 되죠;
13/11/14 11:07
저는 서주대학살 때문에라도 철저하게 유비빠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조조의 인간적인 매력이고 뭐고를 떠나서 저 정도의 심각한 악행을 저질렀다면 그냥 능력만 뛰어난 싸이코패스죠. 여기에 유부녀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눈쌀 찌푸려지는 추잡한 행각은 덤이네요. 괜히 연의에서 유부녀 때문에 죽을 뻔한 장면이 있는게 아니라는... 크크;;
13/11/14 11:10
유비가 한동안 무능력하고 사람좋은 이미지였는데..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닙니다.
동네 소상공인이 한나라의 황제까지 됐는데 먼치킨이 아닐래야 아닐 수 없죠. 한왕실의 핏줄이야 사실 널리고 널렸는데요..
13/11/14 14:37
그거 위략에 나오는 기록이라 신빙성이 조금 의심되기는 합니다. 애초에 위략이라는 사서 자체가 믿을만한 사서는 아니라서요. 위략에서 나온 대표적인 설이 장비 로리콘 설, 유선벤허설 같은 이상한 설들이라는걸 생각하면...;;
13/11/14 11:09
공과야 말할 필요도 없는건데 서주대학살은 그걸 넘어서 아예 이해가 안된다는 게 문제죠.
사실 백기나 항우, 그리고 몽고나 이슬람, 십자군 등의 대학살은 어느 정도 이유가 존재하고 그 이후에 평가가 이루어지는거잖습니까. 근데 서주대학살은.... 설마 도겸이 너무 강해서 위협이 될거라고 생각하고 서주 인구를 줄이려는 목적이었을까요? -_-;;;;
13/11/14 11:14
아버지가 죽어서 진짜 빡쳐서 복수심에 그랬다는게 그나마 설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후 조조의 행동들을 보면 이것도 이해는 잘 안가지만-_-; 근데 이건 1차를 설명을 못하네요;
13/11/14 11:15
도겸은 아무리 잘 쳐줘도 유표 젊은 시절의 마이너버전인데... 조조의 서주대학살은 왜 저질렀는지 그 동기도 이해가 안 갑니다. 특히 1차.
13/11/14 11:16
조조는 자신이 싫어했던 사람에 대해서 잔인할 정도로 결벽증적인 처리를 했는데, 그 점에서 본다면 서주를 자기가 품을 땅으로 생각조차 안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2차 학살때는 아버지 살해의 명분을 뒤집어씌웠고... 사실 이건 파면 팔수록 실드꺼리가 없어요. 삼국지 관련 커뮤니티에서 함부로 실드쳤다간 다 까이는 이유도 그런 거고.
13/11/14 11:17
사실 조조를 선호하는 경향은..한국의 결과중심사회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조조를 꽤 좋아하는 편이고..삼국지를 보다보니 예전엔 찌질하다고만 느꼈던 유비도 조조만큼 매력있고 잘난 인물이었더군요.하하
13/11/14 11:17
어이쿠, 댓글들이.
제가 저번 창천항로 글에서 조조빠라고 인증했는데 학살 옹호하는 사람이 된건가요? 이 무슨...그런 의미는 아닌거죠? 다들 삼국지의 캐릭터로 조조건 뭐건 좋아해서 게임할때 조조로도 해보고 엄백호로도 해보고 하는 거죠. 조조 좋아하는 거하고 히틀러 좋아하는 거하고 비교는 얼척없네요. 히틀러 게임도 있나요? 에이.. 역사적 사실에서 조조의 공과를 논하는 글은 참 좋습니다만, 우리가 여기에서 보통 논하는 건 대부분 문학에서 게임에서 캐릭터를 논하고 위빠, 촉빠 나누며 노는 거지, 조조빠는 이해할 수 없다느니 무슨 악인을 추종하는 듯이 소리가 나오나요. 조조가 역사에서 사람 많이 죽인 개상놈이니까 내가 삼국지에서 조조로 많이 하는걸 반성해야 하는건 아니니까요. 다들 그런 의미가 아니실 거라 믿고, 저 이번 주말에 조조로 천통하고 유비 목 베어 버릴겁니다. 옙~ 참고로 조조는 정말 능력치가 좋아서, 강유,서황, 장료, 장비, 주태, 손책은 일러가 잘 생겨서 많이 합니다. 손권은 목벱니다.
13/11/14 11:20
본문 글의 목적은 그게 아니라 누굴 빨든지간에 서주대학살에 대한 것만큼은 악행이라고 인정하자, 이겁니다.
서주대학살 쉴드치는 것은 솔직히 객관적으로 봐도 얼척이 없으니까요. 당대에도 악행이라고 욕을 처먹은 일인데 말이죠. ps. 마지막 줄은 공감합니다. 손권은 목베야죠 크크;;
13/11/14 11:23
그런 쉴드는 미친거고요. 제 말은 게임(창작물)과 역사를 구분하자는 겁니다.
저번에 창작물에서 조조빠라고 했다가 갑자기 역사적 사실이 등장하니 쓰레기를 응원하는 꼴이 되서..응사 쓰레기는 멋있는데.
13/11/14 11:21
사실 실제 역사에서 조조의 가장 무서운 점은 사람의 목숨을 자기 목적을 위해 너무 쉽게 사용했다는 점이겠지요.
유비는 답답할만큼 사람을 아꼈는데 조조는 자기 사람도 술먹고 뎅강, 글읽고 뎅강, 거기다 식량이 모자라자 보급담당관에게 덮어씌어 죽이는 건 소름끼치죠.
13/11/14 11:30
이문열 삼국지에서는 이부분을 너무 노골적으로 옹호해서 눈살이 찌푸려지더군요.
그렇게 한걸 마치 큰 결단력을 보인것처럼 평하며 소인은 작은 정에 치우쳐 결단을 못하는데 이런 결단력을 내린 조조가 대단하다 라는식으로 말하고 그뒤 장사를 잘지내줬으니 됐다 이런식으로 묘사를 하는데.. 사람죽여놓고 장사만 잘지내준다고 해서 그게 죽은 사람의 억울함을 얼마나 풀어줄련지
13/11/14 11:35
하...이문열 삼국지. 정말 말많죠.
이문열이 참 글은 맛깔나게 쓰는데, 삼국지를 완전 재창작해서. 정말 첫 삼국지는 이문열로 시작하면 안된다고들 하더군요.
13/11/14 11:26
지금부터 쓸 댓글은 좀 논란이 될만한 글이지만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그냥 미천한 한 개인의 입장에서 조조가 왜 학살을 벌였을지를 생각해보자면, 당시 조조는 가진거 다 날려먹은 후(동탁 추격하다가 반격당해서 본인도 죽을뻔하고, 거병했던 병사들 궤멸당함..) 원소와 장막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연주에 자리잡은 상황입니다. 이때가 192년 원소랑 공손찬의 싸움에 당시 주위 세력은 양 세력 싸움에 휘말리게 되면서, 조조도 도겸이랑 싸움을 벌이는데, 시작은 도겸의 선공이었지만, 도겸은 개털리고 10개 성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조조입장을 보면, 연주를 장악한지 1년도 되지 않아서 서주 일부 지역도 점령했고, 곧 아버지인 조숭이 도겸에게 살해 당하면서 다시 전쟁이 터진상황 아직 군사적 기반이 확실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에게 적대적인 지역을 점령한 후 조조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게임으로 설명하자면, 미디블2:토탈워 에서 도시(혹은 성)을 점령한 후 선택지가 3개 뜹니다. 1. 점령만 한다 : 장군 기사도 오름, 약탈수입 거의 없음, 도시 인구 그대로, 대신 불만이 폭발, 기사도 높은 장군 + 많은 군대로 3~4년 점령해야 불만 진정됨 2. 약탈 한다 : 장군 공포도 오름, 약탈수입 최고, 도시 인구 하락, 불만도 많이 쌓임 3. 학살 한다 : 장군 공포도 오름, 약탈수임 별로 없음, 도시 인구 절반이상 하락, 불만도 없어짐(..) 물론 저처럼 평화를 사랑하는(?) 유저는 대부분 1번을 선택할것입니다만, 상대 도시를 털어먹고 도망가야 하는 상황이면 2번을 적극 이용하고..(특히 로마라거나.. 제노바라거나.. 베네치아 라거나.. 콘스탄티노플 이라거나.. ) 중후반 빠른 점령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3번도 적극 이용합니다. 다시 돌아와 하고 싶은말은 조조의 서주 학살은 분명 도의적으로 비난받을 선택입니다. 조조 스스로도 연주반란이 일어나서 개털될뻔한 이유가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당시 조조의 상황으로 생각했을때, 절대 해서는 안될 선택지는 아니었습니다. 적당히 서주를 털어먹고 연주로 돌아가서 세력을 키우려고 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물론 아버지 사망에 대한 분풀이도 포함해서) 다시 말하자면 당시 조조는 겨우 1개주를 장악하고 세력을 키운지 1년 정도 밖에 안되는 신흥 세력이었다는 겁니다.
13/11/14 11:34
말씀하신대로라면 조조의 학살을 나름 이득을 얻고자 하는 동기에서 이뤄진 행동이라고 봐야겠네요.
하지만 현실에서의 학살은 게임에서의 학살보다 페널티가 더 크고(위에서 언급된 조조에 반감을 가진 인재들의 예가 좋은 예네요.), 본인이 동탁 암살에 관여하고, 반동탁연합군 참군 당시 추격전을 벌여 얻은 좋은 평판을 다 까먹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는 결국 [이득 < 손실]의 결과가 발생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오로지 손익 계산으로만 따진다고 하더라도 조조의 서주대학살은 결코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가능한 선택지 중 하나였을지는 몰라도요.
13/11/14 11:35
조숭이 죽기 전에도 서주대학살이 있었습니다. 조숭이 죽고도 또 있었고... 그리고 말씀하신 세 개의 선택지가 매우 일반적이긴 한데, 3번을 택했다치더라도 동시대에 조조만큼 많은 학살을 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당대에도 비판받았다는 사료가 그 근거가 되고... 뭐 그러나 당대 혹은 극히 최근까지 조조의 악덕을 논함에 있어서 서주대학살의 순위는 좀 후순위긴 했죠. 그건 시대적 가치관의 차이가 반영된 부분이 있어보입니다.
13/11/14 12:46
원소/원술은 사세오공의 명문가 중의 명문가였고,
조조는 동탁 암살 기도와 반동탁 동맹시 마지막까지 동탁을 추격해서 충의지사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외의 군웅들은 그냥 지방 호족일 뿐이었죠. 초기에 왜 인재들이 원소와 조조에게 몰렸는지는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주대학살을 통해서 조조는 충의지사로서의 이름을 잃어버립니다. 대신 그것을 이어받은 게 유비죠. 그때까지 아무 터전도 없이 객장만 전전하던 유비를 원소도 조조도 대우해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인의라는 명성이었습니다. 유표도 그 이름값 하나만 믿고 유비를 받아들였고, 손권도 맨몸뚱아리의 유비와 동맹을 맺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조가 서주대학살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촉과 오는 생기지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관도대전 이후 조조가 승상이 되고 한은 계속 유지되었을지도 모르죠.
13/11/14 12:55
가끔 보면 삼국지 연의가 영웅 조조를 악당으로 만들어놓았다고 잘못 생각하는 조조빠들도 있지만 오히려 연의는 조조를 입체적인 캐릭터로 잘 포장해준 편이죠.
이전 민담 등을 보면 조조는 그냥 찌질한 악역이죠. 백성들 사이에서 조조는 이미 악당으로 여겨졌다는 거고, 그 이유가 저런 학살을 비롯한 실책이고요.
13/11/14 13:46
삼국지을 처음 읽을때는 갓제갈짜응 죽고나니, 내가 너무 슬퍼서 책을 읽을수 없잖아! ㅠㅠ
두세번쯤 읽을때는 조조 짱짱맨! 관도대전 좀 쩌는듯! 역시 대륙을 평정한 난세의 간웅! 삼국지 커뮤니티에서 짬밥 좀 쌓이고 정사도 대충 읽어보고 나면 결론은, 오오! 유비! 오오! 이보다 더 짬밥이 쌓이면, 에휴... 어차피 다 디질거 멋한다고 저렇게 아옹다옹 했을까잉... 그러나,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 손제리는 까야 제맛.
13/11/14 13:57
조조의 개국공신이면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모사였습니다(곽가, 순유, 정욱 등도 순욱에 비하면 그 위치에서 한 수 접어줘야 합니다). 마지막에 틀어진 것은 위왕보다도 '구석'을 받은 것에 있는데, 이 지점에서 순욱이 조조를 '한나라'의 중추 세력으로 밀어올리고 싶었던 것이지 찬탈을 하기를 원치 않았다고 보는 견해가 통설입니다. 승상은 어쨌거나 황제 휘하의 시스템을 돌리는(실질적 전횡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그 권위가 황제를 위협할 수 없는) 자리지만, 종친이 아닌데 왕이 된다는 것은 한나라의 시스템을 그야말로 개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구석을 받는다는 건 왕으로 나아가는 바로 직전 단계고요.
13/11/14 13:50
넘치는 재능과 야망 강력한 카리스마.... 그런 면에서 조조를 좋아하지만
인간성이나 대인관계 같은거 보면... 좀 찌질할때도 많고 뒤끝도 쩔고 소심한면도 있고... 그렇지만 또 간간히 대인배적인 모습도 나오고... 그래서 뭔가 입체적이고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서주대학살은 쉴드치고 싶지 않네요.쓰레기짓임]
13/11/14 13:55
서주학살은 실행동기가 너무 없어서 과연 사실일까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서주토박이 진등 부자등이 너무 순순히 조조를 따른것도 그렇고.
사실이 아닐 가능성 2%를 억지로라도 찾아보자면.. (일단 사서에 나오는 얘기이므로 98%는 사실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는건 동의합니다.) '남녀가 갱살되었다'고 학살이 명백하게 표현된건 조만전인데, 조만전의 경우는 적국인 오나라사람이 조조에 대해 쓴 기록이라 나쁜쪽으로 과장해서 썼을 가능성도 2% 있긴있겠죠.서주군이 대패해서 전사자가 많았거나 초창기라 청주군에 대한 군기관리소홀로 사고가 발생했고 이게 오나라엔 과장해서 전해졌다든가 말이죠. 다른기록에는 '도겸의 군대는 패한 후 도주하였는데, 죽은 자의 수가 수만 명이나 되었으며..' 이런 기록들이 나오는데, 이건 그냥 압도적으로 발린 대패를 기록해놓은것일수도 있구요.적벽대전이나 이릉대전 대패후에도 패배한쪽엔 죽은자가 수만명은 되었을텐데 그것만으로 육손이나 주유를 학살자로 부르진 않죠
13/11/14 14:00
조만전에만 써있다면 그런 의심을 가져볼만하나 자치통감에서도 대놓고
연도는 초평 4년(193년) 가을에 조조는 군사를 빼내어 도겸을 쳐서 10여개의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팽성에 이르러 대전을 치렀는데 도겸의 군사가 패하여 달아나서 담을 지켰다. 애초에 경, 낙은 동탁의 난을 만나서 백성들이 떠돌아다니다가 동쪽으로 빠져나가 많은 사람이 서주 땅에 의지하였는데, 조조가 부임하여 남녀 수십만 명을 사수에서 파묻어 죽이니 물이 흐르지 않았다. 조조가 담을 공격하였으나 이길 수가 없자 마침내 떠났으며, 여, 수능, 하구를 공격하여 빼앗고 모두 도륙하였는데, 닭과 개 역시 다 없애니 텅 빈 읍에는 다니는 사람이 다시없게 되었다. 남녀 수십만명을 사수에서 파묻어 죽였다고 씌여져있죠. 조만전은 오히려 많이 축소한느낌
13/11/14 15:46
위의 어느 댓글처럼 왜 그랬는지는 조조만이 알고 있을거라 봅니다. 당시 조조의 최측근들도, 역사가들도, 독자들도 모르고 또한 이해할 수도 없는 이유일테구요. 전 유비빠(엄밀히 말하자면 관우빠)지만 조조를 싫어하지는 않는데 서주대학살은 삼국지를 몇백번을 읽어보아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강을 시체로, 그것도 양민들의 시체로 막아 강물이 흐를 수 없을 정도로 학살할만큼 빡쳤던걸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대답은 백번 양보해도 글쎄...입니다. 창천항로에서 유비가 말한 것처럼 아버지의 죽음을 핑계로 한 단순히 땅따먹기의 과정이었다면 가루가 되도록 까여도 할말이 없을 것이고, 조숭의 죽음이 가장 널리 알려진 이유라고 보아도 아버지의 죽음을 수십만 백성들의 죽음으로 갚으려 했다면 그것도 말 그대로 미친 짓이죠.
13/11/14 17:40
다른건 몰라도 창천항로 팬으로서 한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창천항로에선 서주대학살즈음에 조조가 또 개똥철학을 씨부리고 학살대상인 서주백성들이 "오오오!" 하며 탄복을 하며 조조님을 위해 기꺼이 죽어드리리다라는 식으로 나오며 그러면서 학살장면을 찬란하게 묘사.... 이딴장면 없습니다. 창천항로가 말도안되는 찬양으로 조조 안티를 만들어내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런 어처구니없고 몰상식한 장면은 없습니다. 서주대학살은 분명 비탄받아 마땅한 조조 최악의 실수이고 창천항로에선 이걸 아버지의 복수로 학살을 자행한것 같지만 천하제패를 위한 행보였다. 정도로 유야무야 넘어갑니다. 유비의 참혹하고 잔인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천하를 향한 그림을 그려가고 있구나. 정도가 그나마 부정적이진 않은 말이였구요. 알고 계시겠지만 무언가를 비난할때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비난해주시기 바랍니다. 적벽의 참패에 대한 묘사로 까이면 까였지 서주 대학살은 멋있게 표현한적 없습니다.
13/11/14 20:31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amgugji&no=279969&page=
창천항로 부분은 이거 보고 쓰신건가요 아니면 본인이신가요 크크크
13/11/14 23:40
과연 그게 조조의 지시였을까요? 거의 야만인과 다름없는 청주병들의 통제불능의 만행이라고 보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조조는 그들의 잔인함을 어쩔 수 없이 안고 간 거구요. 그 당시 조조는 기반이 거의 없었거든요.
13/11/15 08:48
한편에선 서주대학살은 조조가 직접적으로 시켰다는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는 점과 또한 조조가 청주의 황건적을 토벌하면서 얻은 병사들이 상당 부분 많았다는 점을 드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최종 책임자는 조조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히틀러나 스탈린도 학살 책임이 꽤 줄어들 겁니다. 조숭을 죽인 직접적인 책임이 도겸이 아닌 황건적 출신들이라 해도 결국 책임을 지는 건 도겸이듯, 청주 일대에서 편입된 병사들이 다수라 해도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조조입니다. 더군다나 서주 대학살 이전에도 학살이 저질러진 바가 있습니다.
더더군다나 조조가 그런것도 제대로 통솔못한다는건 통솔력에 엄청난 결격사유가 있는거고 이건 조조를 까는거밖에 안되죠 자기 군사도 제대로 통제를 못해 수십만명이 갱살당하는 학살이 있었다? 이건 삼국지의 어떤 무능한 지휘관도 하지 못한 겁니다. 더구나 조조의 핵심이었던 진궁등 조조의 수하들이 이 사건으로 등을 돌렸는데 조조의 지시도 아닌데 왜 그들이 등을 돌렸을까요
13/11/15 12:36
그걸 말하자면, 애초에 다른 군주들은 청주병같이 유교를 배우지 않은 집단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리고 진궁등 조조 수하들이 등을 돌린 건, 단순히 조조의 잔인함보다 서주 학살로 평판이 떨어진 조조 옆에 있기 싫은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따라서 그들이 떨어져 나갔다는 게 조조가 학살을 지시했다는 근거가 확실하다고 볼 수는 없죠.
13/11/15 12:53
이런식이면 히틀러나 스탈린도 학살 책임이 꽤 줄어들겁니다. 결국 책임을 지는건 우두머리고 조조가 책임을 질수밖에 없죠
그리고 조조가 자기 부하들 일일이 통제를 못해서 대규모 학살이 일어났다라... 그거야말로 조조가 무능하다라는걸 말하는거밖에는 안되죠 그리고 자치통감에 대놓고 조조가 묻어버렸다고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가을에 조조는 군사를 빼내어 도겸을 쳐서 10여개의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팽성에 이르러 대전을 치렀는데 도겸의 군사가 패하여 달아나서 담을 지켰다. 애초에 경, 낙은 동탁의 난을 만나서 백성들이 떠돌아다니다가 동쪽으로 빠져나가 많은 사람이 서주 땅에 의지하였는데, 조조가 부임하여 남녀 수십만 명을 사수에서 파묻어 죽이니 물이 흐르지 않았다.' 조조가 학살을 지시하지않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대체 청주병이 유교를 배우지 않았고 다른 군주는 유교를 배운 병사를 사용했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건지... 그 청주병의 우두머리는 조조이고 그 청주병들이 조조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조조의 백성이 될지도 모르는 백성들을 수십만명을 파묻어버렸다는건가요? 조조는 뭐 허수아비인가요...
13/11/16 04:52
이건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하는 이야긴데, 역사적 인물로 볼때 히틀러, 스탈린과 조조를 바라보는 시선에 굳이 차이를 둘 이유는 없어뵙니다. 수십세기가 아니라 당장 조조가 지난 20세기 인물이었다면 지금도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겠죠. 히틀러, 스탈린을 다루는 게임이 어디 있냐지만 혹 압니까. 나관중처럼 천년쯤 지나면 나올지도요.
창작물의 조조와 역사적 인물로서 조조를 구분해야하는 건 도리어 조조팬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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