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은 참 예술적인 왕이었죠. 처용무를 추니 다들 막 울었다고도 하구요. 왕이 그러면 나라가 망하는 건 역사의 클리셰 수준이긴 합니다만 -_-; 몇 개 소개합니다. 칠언절구니 그런 건 생략.
이슬 젖은 아리따운 붉은 꽃 푸른 잎 속에 만발하여
향기 풍기는 누각에 남풍에 취하네
구경만 하라고 은대(승정원)에 주는 것이 아니라
심심할 때 보며 천지의 조화를 생각케 하는 것이지
6년 4월에 승정원에 내린 시입니다. 명절에도 놀지 못 하고 고생한다고 사계화(월계화)를 주며 내려준 시라고 합니다.
장미과로 요렇게 생긴 꽃이라고 하네요.
고요한 은대에 낮이 지겨운데
무더위를 견디지 못해 졸고 앉아 있노라
연꽃을 꺾어서 은근히 주니
잔에 가득한 술 싫어하지 말게나
두 달 후에는 연꽃을 주며 이런 시를 줬죠. 그 외에 꽃에 대한 시들을 제법 볼 수 있습니다.
사물을 궁리하니 하늘보다 높고
인간사 헤아리니 꿈속과 같네
공명에 얽맴은 한갓 부질없는 것
길이 취해 꽃 구경함만 못하리
요런 것도 있고
녹음 짙은 동산 숲에 경치가 융화한데
훈훈한 바람 듬뿍 옥렴롱에 부는구나
섬돌 앞 춤추는 나비 다정도 하여
지는 꽃을 좇으며 아까워하네
요런 것도 있군요. 기준은 걍 제 맘에 든 거 (...)
푸른 이슬은 밤에 맺혀 비단 치마 적시고
가을 바람은 소슬하여 애띤 간장을 녹이누나
난간에 기대 기러기 소리 들으니 달빛이 차갑고
눈물진 눈시울에 슬픈 마음 이기지 못하네
요런 것도 있네요. 미인을 (아마도 남자 그리워하는 미인의 마음을) 대신해서 쓴 거라고 직접 말해줍니다 (...)
눈썹은 봄 버들인 양 곱고
얼굴은 이슬 머금은 꽃송이처럼 아름답네
붉은 입술 속의 흰 이를 드러내어
능히 탕부들의 간장을 끊는구나
이건 그냥 예쁜 여자 보고 쓴 거겠죠?
이런 시들을 내리면서 해석하라 하고 답시를 받았죠. 이런 것들은 그냥 흥에 취해 쓴 거 같지만, 왕이 내리는 시에 정치적인 의도를 빼기는 힘들죠. 신하들의 충성, 왕의 절대 권력을 강조했던 연산군, 그런 신하들에게 경계하라며 내린 시들도 있습니다.
사시절 아름다운 경치도 놀이만은 못한 것이니,
부디 그윽한 데에 밝은 가을 달을 구경하리
바람 부는 강에 물결 타고 건너기 좋아 마오
배 뒤집혀 위급할 때 누가 구해주리
이런 걸 내리며 승지들에게 해석하게 했는데 권균은 앞에 건 가을의 경치, 뒤에 거는 인신(人臣)을 경계한 말이라고 해석합니다. 대간들 함부로 까불지 마라 니들 목숨은 내 손에 있다 뭐 이런 걸까요? 이게 안 통한다 싶었는지 보름 후에는 아예 대 놓고 대간을 까는 걸 내립니다.
백성에게 잔인하기 내 위 없건만
내시가 난여(鸞輿 모르겠어요 -_-a)를 범할 줄이야
부끄럽고 통분해 정서 많아서
바닷물에 씻어도 한이 남으리
무섭군요 -_-;
어제 사묘에 나아가 자친을 뵈니
잔드리고 나서 눈물이 자리를 가득 적셨도다
간절한 정회는 한이 없는데
영령도 응당 이 정성을 돌보시리라
어머니 폐비 윤씨를 위해 지은 시입니다. 의외로 이거밖에 안 보이네요.
뭔가 막나가는 것 같은 시도 있습니다. 경회루에 배 띄워놓고 누각을 지었는데 그 광경을 보고 지은 시입니다.
웅장한 산봉우리 공중에 솟구치니
신령스러운 큰 새우와 학이 시대를 맞추어 모였구나
여러 영준이 함께 잔치하니 충성스러운 마음이 합쳐지고
외로운 귀신이 잡혀 갇히니 간사한 폐부가 타는구나
안개 누각ㆍ구름 창에 용선이 아득하고
무지개 사다리에 노래와 피리소리 봉루(鳳樓)가 까마득하네
누가 오락하려고 백성의 힘을 괴롭힌 것이냐
모두 조선을 위하여 오래 살고 잘 사는 것을 표시함인데
이런 식이죠. 이건 실록에는 없습니다만 -_-a
전체적으로 그냥 노는 시 (...) 신하들한테 뭐라 하는 시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절대권력이 구축된 후 쫓겨나기까지 우울하다 해야 될 지 인생 포기했다 해야 될 지 모를 시들도 보이죠.
사물을 궁리하니 하늘보다 높고
인간사 헤아리니 꿈속과 같네
공명에 얽맴은 한갓 부질없는 것
길이 취해 꽃 구경함만 못하리
이게 11년 7월 23일 거고, 그가 쫓겨나는 12년 1월 5일에는 좀 큰 게 있죠.
공명도 죽은 후에 다 헛것이니
평시에 음악과 술 취하며 편히 지냄만 못하여라
한 번 청년으로서 황토에 묻힌 손이 되면
이 세상 돌아오기 어려우니 한한들 무엇하리
그 아래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군자는 비록 죽음을 근심하지 않는다 하나 만약 천운(天運)을 당하면 어찌 슬픔이 없으리오
뭐 그렇다고 이런 시들만 쓴 건 아니구요. 이런 것도 있어요.
대궐 안에서 꽃과 달의 시구를 누가 가르쳤던가
두고 읊으매 생각이 간절하여 정분이 더하기만 하이
다시 보매 복숭아 오얏꽃 밝은 햇살이 옹호하였으니
나야말로 삼한에서 제일가는 호걸이야
아 예 잘났으요 - -;
명예를 구하느라 수고하지 말고
모름지기 자주 술에 취하라
한 번 이 세상 떠나가면
황천객 면하기 어렵나니
이건 5월 24일, 다시 인생 포기한 거 같은 시가 나옵니다.
복숭아나무 가꿔 열매 둘이 열렸는데
하룻밤 광풍에 모두 떨어졌네
가꾼 은근한 공 허사로 돌아가니
무슨 일로 하늘은 이다지 무정한지
7월 17일에 지은 시인데 나라가 망하는 건 왕이 문제가 아니라 충성 안 하는 신하들이 문제다고 하면서 내린 시입니다. 왜 내 맘을 몰라줘잉 그런 걸까요?
참 창작을 많이 한 왕이고, 창작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왕이죠. 이 때 연산은 자기가 곧 쫓겨나리라는 걸 알았던 걸까요? 아니면 그냥 우울증으로 저런 시를 쓴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컨셉으로 이런저런 시들을 써 본 걸까요? 11, 12년에는 시를 하도 많이 써서 어떤 경향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긴 합니다.
하지만 저런 시들과 뭔가 연관되는 장면이 있으니... 폐위되기 불과 9일 전이죠. 그 날도 후원에서 잔치하면서 풀피리를 직접 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탄식했다 하죠.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는 것을..."
궁녀들은 비웃었다 하는데 그 장녹수와 그녀 못지 않게 총애를 입던 전비는 같이 흐느껴 울었다고 하죠. 연산은 그들의 등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 했다 합니다.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불의에 변이 있겠느냐마는, 만약 변고가 있게 되면 너희들은 반드시 면하지 못하리라."
그는 정말 낌새를 알아챈 걸까요? 아니면 그냥 불안감이 맞아떨어진 걸까요. 사실 불안할 만 해요. 피로 만들어진 절대권력, 그게 어디까지 갈 지 걱정되는 건 그 자신이겠죠.
이런 모양이니 그의 마지막까지도 뭔가 그럴듯한 느낌이 나죠. 반정 세력이 연산군을 찾아가 옥새를 내놓으라 하니 이렇게 말 했다 합니다.
"내 죄가 중대하여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좋을 대로 하라."
기본적으로 이럴 땐 "뭔 쌩구라여 ㅡㅡ"하겠는데 연산이라면 정말 그랬을지도?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거참... 대체 그 때 무슨 생각을 했을지...
연산군 시 하니까 김삿갓 생각났는데 역시 올리기는 좀 그렇네요 -_-; 수위가 너무 세서;;; 일단 이름부터;;;
뭔가 심심하니 근황 하나.
요새 과일나라 앨리스에 빠져 있습니다. 카톡이랑 연동되는 스마트폰 게임인데요 -_-a 인기가 없는 건지 주변사람들이 안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다함께 차차차는 많이 하던데. 암튼 혼자 빠져서 이러고 있는데.
대략 요런 게임요
여기서 점수 제일 높은 사람 뽑아서 황금사과 목걸이(33만원짜리라던데 - -a) 준대서 막 열광해서 하고 있었죠. 인터넷에서 고득점 스샷 올라와봐야 삼백만점 정도라서 해볼만하다 생각했고 540만점까지 올렸었습니다. 그래서 잘 하면 되겠는데 하고 있었는데 홈페이지에 들어가 중간 순위를 보니...
1위가 790만점 orz......... 제 점수는 10위 안에도 들지 않더군요. 최근에 올라온 스크린샷에서는 832만점까지;;;;
에휴 그럼 그렇지 - 0-a 나름 안 하던 현질까지 해서 하고 있었는데 허무해지네요. 내일이 마감인데 그냥 포기 - 0-
그럼 진짜 이상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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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크크크킄크크크 저도 빵 터져서 옮겼습니다 >_<
그런 게 많이 느껴져요. 신날 땐 씡나다가 우울할 땐 급 우울... 주변사람들이 많이 힘들었을 듯 해요. 그런 비위 맞춰 준 (맞춰준 정도가 아니라 가지고 놀았지만) 장녹수가 대단하긴 한 듯 -_-;
아무래도 당시에는 중 2병 정도가 아니라 그냥 미친놈 취급 아니었을까요 '-' 갑자사화로 신하들 죽여가는 중에 태평성대라는 시 쓰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