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뚱이로 할 수 있는건 생각보다 적다.
나름 한 노가다 해왔다고 자부하지만, 경력이 끊긴 지금은 어딜 가도 써주지 않는다.
누가 왜소한 체격의, 십자인대 파열 경력이 있는, 못생긴 술쟁이를 고용하려 하겠는가..
샤시 설치하는 기술로 4년 입에 풀칠하긴 했는데..
첫 1년은 기술이 무르익지 않았을 때라 날림공사 비슷하게 된 것 같다.
그 집엔 누가 살고 있을까.. 부디 추위에 강한 사람이길.. -_-;
머릿속에 든 것은 생각보다 적다.
제너럴리스트는 물론 아니고, 스페셜리스트라고 하기엔 내 양심이 비웃는다.
그나마 익힌 지식조차 약이라는 도구 없이는 무용지물에 가깝다.
약을 주지 않고 설명만 한다고 아픈게 나을리는 없으니..
약올라서 더 아프고, 그 사람에게 맞은 나도 아플거같다.. 이거 굉장히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지식이구나.. 불편한 진실을 알게되었다.
생각하면 할 수록 나 자신이 밥만먹고 똥만드는 기계같아서 마음이 괴롭다..
똥만드는 기계주제에 자격증 덕을 보는것 같아서 자존심도 좀 상한다.
사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내게도 한가지 재주가 있긴 하다.
별거 아닐 수도 있고, 누군가가 이미 발견하여 뒷북을 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주 간단한 도구로 완전에 가까운 "구" 를 만들 수 있다는거.. 나름 자랑스러운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구체 제작기술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진 않을까?' 라는 망상으로 잠시 행복했었다.
책상 서랍에서 빠져나간 베어링 구슬이 맑은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걸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잘 만들었더라..;
이미 내가 낄 곳이 사라진 느낌..
베어링 구슬에도 상처받는 나는 정말 섬세한 남자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정말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인간임이 보다 확실해졌고 말이다. -_-;
『하루하루를 소비하듯 보내는 나 자신이 처량하다.
언젠가 찾아올 인생의 겨울에 대비하는 자세가 너무도 소흘함에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몸에 걸친 모든 것을 벗은 알몸뚱이의 나는 상상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초라할 것이고
방만하게 보내온 날들의 댓가는 언제가 되든 반드시 찾아와서 내 뼈와 살을 분리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