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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11/01 02:29:41
Name 그러려니
Subject [일반] 어느 부부이야기14
술 한 잔 했습니다 껄껄
두 가지 주절거리려고 합니다..

.
.
.



아버님 건강에 문제가 좀 생기셨습니다. 아내의 친정 아버님 말입니다..
몇 년 전 부터 전립선 쪽이 시원치 않아 종합 검진 수치 때문에 별도로 검사를 받으시더니
이번에 암 초기진단이 나와 로봇 수술을 받게 되셨습니다.
그제 결과가 나왔더랬죠.
나는 나름대로 우리 가족에 있어 중요한 얘기다 싶어 전화로 아내에게 어떤 얘기를 하는데,
아내 반응이 시원치를 않고 영 집중을 안 한다 싶었습니다. 몇 시간 지나서야 일이 그렇게 됐다고 카톡을 보내오더군요.
술 한 잔 하면서 그 얘기가 다시 나왔습니다.

"수술 자체는 미리부터 크게 걱정 안 해..
근데.. 평생 당신 자존심 때문에도 그렇고 가족 위해서 그렇게 애쓰고 열심히 사셨는데..
결국 때가 되니 어디든 병이 드는구나 생각하니까.. 인생이.. 참.. 너무 서글픈 거야.."

그제도 혼자 집에서 별의 별 생각 다 했겠죠..
자식으로서 속상하게 했던게 젤 많이 떠올랐겠죠.
아 그 때 내가 그렇게 속상하게 안 했으면 혹시라도 지금 이 병이 안 오지 않았을까.
지금 현재도, 아 내가 좀 더 속시원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혹 또 어땠을까.
이런 저런 생각 했겠죠.
그러면서 혼자 숨이 넘어가도록 울었을 수도 있었겠죠.

.
.
.


하루 하루 최선을 다 해 사는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조금이라도 가슴 아픈 상황이 왔을 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고 덜 가슴 치고, 덜 마음 아프기 위해서 말이죠..



딸 아이 얘기 하나 더 할까 합니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데, 이 녀석이 사춘기가 제대로 와 있는 상태입니다.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할 때죠.
복싱장에 가서 복싱도 배우고 줄넘기도 하고 프로그램대로 하면 다이어트에도 좋고 키 크는 데에도 좋을거다란 얘기를 한참 전에 해줬었고, 그래서 최근에 아내가 다이어트 복싱장에 둘러보러 갔었나 봅니다.
다녀오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군요.
구체적인 얘기는 없었습니다만,
엄마로서 딸 자식 보내기에 만족할만한 분위기가 아니었었나 봅니다.
뭐 그런거 있지 않습니까. 아들 녀석이면 문제가 없는데 딸 아이라 좀 마음이 쓰이는.
그러고는 두어 번 더 딸 아이가 엄마한테 얘기를 꺼냈는데 단칼에 안되겠다, 그냥 수영을 하자 했나 봅니다.
그제 퇴근 후 딸 아이랑 수퍼를 다녀 오는데,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얘기를 먼저 꺼내더군요.

달리기를 잘 하려면 복싱을 하는게 좋아요 수영을 하는게 좋아요..?
(아내 골치 아프지 않게 거짓말을 할까 잠시 생각했습니다만)복싱을 하는게 좋지!.. 복싱장 되게 다니고 싶구나?..
네..
엄마한테 다시 얘기 해 봐.
엄마가 화 낼 것 같아요..

어제 낮에 아내와 통화하면서 그 아이가 그렇게 얘기하더라.. 전해 주었습니다.
퇴근해서 돌아오니 복싱장 등록하고 왔다고 아내가 얘기하더군요.
술 한 잔 하면서 또 얘기를 꺼냅니다.
"난 걔가 그냥 단순한 호기심에 들볶는 건 줄 알았었거든(들볶는다라.. 뭐 사춘기 소녀와 엄마 사이의 뭐 그런게 또 있는가 봅니다)..
근데 걔가 달리기 잘하려면 어느게 좋냐고 물었다는 걸 들으니 아 이건 당장 시켜줘야겠다 싶더라고.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야지."

딸 아이가 뭐든 잘 하고 싶어하는데, 누굴 닮았는지 운동신경이 좀 그렇습니다.
특히나 달리기 잘 못하는 거에 대해 많이 속상해 하고.. 자존심도 많이 다치고 했었죠.
아내도 늘 그걸 안스러워 했는데.. 달리기 잘 하고 싶어서 거길 다니고 싶어 한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겁니다.
어쨌든, 아이가 그렇게 원하면 시켜줘야 한다는 뜻으로 어제 얘기를 한거였는데, 한 방에 뜻이 통해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
.
.


결국 늘 비슷한 얘기 또 합니다만..
저 같은 사람에게..
인생 별 거 없는 것 같습니다..

낳아주신 부모님 속 상하지 않게 애 쓰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자식들 행복할 수 있게 최선을 다 하고,
언제 어디서든 어떤 내용을 가지고서든 서로의 뜻을 알아 줄 수 있는 내 단 하나의 사람에게 고마와하고..
뭐 더 바랄게 있겠습니까..

.
.
.


이제 좀 잘까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 글을 보며 머리를 쥐어뜯겠죠. 이 일기는 뭐냐!! 하면서 말이죠.
그래도 오늘 일을 꼭 글로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껄껄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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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그 뒤
12/11/01 02:42
수정 아이콘
저도 술 한 잔 마시고 밑에다 일기를 썼는데요...
딸 얘기가 저에게도 그대로 감정이입이 되네요. 제 딸도 달리기 못하는데...
장인어른 수술 잘 받기를 바랍니다.
전립선암은 초기에 발견되서 수술이 잘되면 재발 걱정 안하셔도 되는 암입니다.
로봇수술 받으시면 입원기간이나 불편감도 그렇게 길지 않으실 거구요..힘내세요
그러려니
12/11/01 02:49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아내도 어머님께 그렇게 들었고 저도 이것 저것 나름대로 알아보고 아내에게 같은 얘기 또 해 주긴 했는데..
다른 분에게 이렇게 또 들으니 너무 고맙고 또 힘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Tychus Findlay
12/11/01 07:22
수정 아이콘
맘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그러려니
12/11/01 12:0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혜정은준아빠
12/11/01 09:11
수정 아이콘
결국 늘 비슷한 얘기 또 합니다만..
저 같은 사람에게..
인생 별 거 없는 것 같습니다..
뚱뚱한아빠곰
12/11/01 09:20
수정 아이콘
딸이 사춘기인데 아빠와 저렇게 대화를 하는 것을 보아 성공한 듯 싶은데요... 부럽습니다...ㅠㅠ
아들만 둘인 저는 딸 있는 아빠만 보면 왜 그렇게 부러운지...

지금쯤이면 회사에서 이 글을 보며 머리 쥐어뜯고 계시겠지요? 크크크
오늘 하루도 화이팅입니다!
히히멘붕이
12/11/01 10:18
수정 아이콘
딸 입장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근데 달리기를 잘하려면 당연히 수영 아닌가요? 다리힘도 좋아지고 무엇보다 폐활량에 있어서 장난 아닐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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