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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1/26 14:02:56
Name 7drone of Sanchez
Subject [일반] [공연리뷰] 서울시향 말러5번 @sac 110121
지    휘   : 정명훈
피 아 노  : 조성진

프로그램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말러, 교향곡 5번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연주하는 플레이어는 신예 조성진 이었습니다. 말러에 집중해서 감상을 하고 갔기 때문에 조성진이라는 어린 친구의 신상을 파악할 생각조차 안 했습니다만 알고 보니 금호에서 육성하는 신예 플레이어 같더군요. (올 초에도 신년음악회를 금호아트홀에서 치른 경험도 있는 친구랍니다.) 혹자는 '정명훈의 말러5번으로 인해 신예 플레이어의 재롱잔치를 망쳐놓았다' 라는 혹평을 쏟는 걸 봤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피협을 연주할 때 남아 있던 서울시향 단원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각 파트의 수석을 배치하지 않고 그저 무난한 연주를 하더군요. 설시향의 수석파트 정도라면 그의 연주를 충분히 보필하고도 남을만한 쟁쟁한 실력일 텐데 신예여서 그런 배려(?)를 했는지는 몰라도 그 점이 아쉬었습니다. 너무 평이하고 무난하게 흐르던 연주는 오히려 앵콜 때 녹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본디 국내 신예 플레이어의 무대는 김선욱과 손열음만 찾아댕기고 있긴 하지만 또 한 사람을 추가할지는 추후에 생각해 봐야겠네요.


인터미션 이후에 시작된 말러 5번 1악장은 말러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곡입니다. 1901년 심각한 대수술 끝에 죽다 살아난 말러는 그로 인해 삶과 죽음, 존재의 의미에 관한 보다 심오한 묵상과 마주친 경험을 그대로 1악장에 녹여냈습니다. 즉, 2번 교향곡에서 다룬 죽음이라는 소재는 말러가 3인칭 관찰자 시점에 서서 바라본 것이었다면, 5번 1악장에선 비로소 1인칭 시점에서 바라본 좀 더 생생한 느낌을 묘사했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장례행렬의 발자국을 무기력하게 들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는데 결국 행렬이 자신을 빗겨갔다는걸 피날레부분에서 묘사한 게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장송행진곡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장송행진곡이 서곡의 기분으로 쓰인 걸로 감안한다면 2악장은 5번의 실질적 첫 악장이겠죠. 제1주제인 분노는 격정적, 투쟁적 사운드를 담아, 2주제인 평화는 말 그대로 부드럽게 녹아들었습니다. 발전부에선 분노와 평화가 교대로 연주되다가 구원을 갈망하는 탄식조의 첼로 monologue를 통해 재현부로 넘어가고 결국 찬란한 코랄이라는 주제로 절정에 치닫게 되는 과정을 설시향은 쉴새 없이 몰아치더군요.


3악장은 장대한 스케르초인데 따농남-_-;스러운 렌틀러 영역과 까도남-_-;;스러운 왈츠영역이 잘 녹아있습니다. 여기엔 침대 위에서 요양하면서 공부한 바하의 대위법이 녹아있다고는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 이후엔 호른 에피소드가 시종일관 펼쳐지다가 홀츠클라퍼라는 캐스터네츠 성격의 악기가 등장하면서 마치 다음 악장을 재촉하는 듯 들렸습니다. 왜냐면 4악장이 그 유명한 Adagietto 이기 때문입니다. 말러가 한 여인에 대한 사랑 고백을 했다는걸로 유명한데요, 여기서 잠시 한 여인에 대해 언급해보자면, 본명 알마 마리아 후에 알마 말러, 알마 그로피우스-_-;, 알마 베르펠-_-;;등으로 불리었고요, 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녀는 후에 클림트의 첫 키스 상대였고 챔린스키에게 작곡을 배우는 등 당시로선 김태희라 불릴 정도로 미모와 지식, 교양을 겸비해서 후에 말러, 유명한 건축가인 발터 그로피우스, 작가인 프란츠 베르펠과 혼인을 하였고 화가 코코슈카의 연인이었으며 쇤베르크, 카루소 등과 친분을 평생 유지한 비엔나사교계를 뛰어넘는 hot people 이었죠. 이런 알마를 마음속에 담아둔 말러는 19살의 연령차에도 굴하지 않고 어느 날 우편을 한 통 보냅니다. 그 안에는 어떠한 말이 담긴 카드 같은 게 전혀 없었고 이 곡의 자필본만이 들어 있었죠. 이를 받아본 알마는 자신을 향한 사랑 고백임을 알아채고 그를 받아들였다는 후문입니다. 그날 이후 4개월 만에 결혼식을 치르기도 했고요. 이런 스토리가 담긴 악장이다 보니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기대를 하고 오셨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죠.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이날 4악장을 12분에 연주했을 정도로 무척이나 아름답게 연주했는데요, 그만큼 지나치게 처지는 느낌 또한 받았습니다. 앞서 달려온 1, 2, 3악장의 포스가 일순간 사라졌다고 할까요. 분명 4악장 연주 자체는 훌륭했습니다만 갑자기 변한듯한 분위기에 적응을 못 했습니다. 이런 기분이다 보니 중간에 하프 줄이 끊어지는 소리또한 심하게 귀에 거슬렸을 정도였죠.


마지막 5악장에서도 4악장의 불편한 기분에서 쉽게 헤어나올 수 없었습니다. 알마를 얻은 말러의 성취감이 맘껏 표출된 5악장은 심하게 낙천적인 피날레로서 삶에 대한 최고의 긍정으로도 보일 수 있지만 4악장 이후의 심한 변화로 인해 부실한 해피엔딩으로도 느껴졌습니다. 5악장이 끝난 후 관객 반응은 정말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거의 2번 부활 때와 근접했을 정도였으니깐요. 공연 후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어봐도 극찬 80% 실망 20% 였을 정도로 매우 평이 좋았던 날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여태까지 말러시리즈를 다녀온 제 점수는요 2번, 4번, 1번, 3번, 그리고 5번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주 공연장을 찾는 강행군이 이어지다 보니 제 감성이 많이 무뎌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이번 주 금욜도 신년음악회가 있긴 한데;;) 저에게는 정말로 아쉬운 공연이었습니다.


Epilogue> 아마 해석과 접근법에 대한 선호도의 차이 때문에 남들과 다른 결론을 내린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가 민감했는지 몰라도 '위~~~잉' 거리는 미세한 전기기구 작동되는 소리가 홀이 조용해질 때마다 들리더군요. 가끔 제 머리 위로 쏟아지는 에어덕트 때문인지는 몰라도 말이죠. 암튼 많은 분들이 기립을 했단 사실만 봐도 정말 대단한 공연이었음에는 논란이 없는 것 같네요. 더 많이 듣고, 집중하며, 열린 태도로 음악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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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Anscombe
11/01/26 14:07
수정 아이콘
한 가지만 덧붙입니다. 민감하신 게 아닙니다. 제 자리 우측으로 4칸 정도 거리에서 2-3악장 동안 진동 소리가 대략 8번은 울렸습니다. 말러였기에 그 정도로 끝난 겁니다.
달덩이
11/01/26 14:08
수정 아이콘
시향 말러시리즈는 갈수록 인기.. 게다가 표 구하기도 어렵고 말이지요.
저는 말러하고는 영 친해지지가 않아서 안 가고 있지만요(...)
조성진군의 쇼팽에 대해서는 얼마전에 모 회원님께 들었던게 있어서 어떤 느낌이었을지 약간 상상은 됩니다 ^^

좋은 리뷰 글 잘 읽고 갑니다.
Lunatic Heaven
11/01/26 14:42
수정 아이콘
어라... 저까지 세 명이 모두 한 블럭, 한줄에 조로록 앉아 있었군요-_-;;; 위에 언급된 모 회원님이 바로 접니다-_-v

저도 생각보다 기대를 참 많이 하고 간 공연이었고, 마지막에 기립을 하긴 했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70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 연주해준 서울시향과 정마에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말러는 저도 많이 친해지지 못 하는 분이라 많은 연주를 들어보진 못 했습니다만,
제가 갖고 있는 5번에 대한 이미지와 정마에의 해석은 좀 마아~니 달랐습니다.
오히려 조성진군의 앵콜 쇼팽이 제일 기분좋았다면 제 심정을 이해하실 수 있으실까요.

하프 끊어지던 그 순간엔 저도 너무 놀라서 양 옆 좌석 분들까지 깜짝 놀라실 정도로 흠칫.
중간중간 레코딩 음성같은 잡음이 들려와서 또 그거대로 집중을 흐리고.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너무 좋았다고 극찬을 해서 '내가 이상한 건가....'하고 고민을 했더랬죠.

다행이네요, 저만 그런 게 아니어서.
Montreoux
11/01/26 14:55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본문도 본문이고
댓글에 대박 에피소드가 있네요.
(제가 원래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은 스타일이라)

나란히 앉게 된 두 분이 같은 피지알러였다니.
아니...총 세 분인가요.
움화화 크크크..
흔치않은 일화네요.
저글링아빠
11/01/26 16:05
수정 아이콘
시향의 말러 사이클에 대한 더해가는 호평들로 인해 상당한 기대를 하고 지난 4번 연주회에 다녀왔습니다.

부분적으로 매우 뛰어난, 빛나는 순간의 연주들이 여러 부분 있긴 했었습니다만,
(뒤집으면 불만족스러운 순간들 역시 적지 아니하였다는 말도 됩니다. 하여간.)
전체적으로 조화롭지 않아 긴 연주에 그다지 편안하게 몰입할 수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연주의 기술면에서나 해석면에서나 아직은 여물지 않았다고 느껴져서 당분간은 시향의 말러 사이클은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곧이은 5번 연주에 대한 호평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에 제 생각이 섣부른 것인가 하고 있었답니다.
그 와중에 님의 감상기를 보니 어떤 느낌이셨을지 대충 이해가 됩니다.
역시나 저는 시향의 말러 공연은 조금 더 나중을 기약해야 할 것 같네요.
아로아
11/01/26 17:25
수정 아이콘
와우.. 반갑습니다.
저도 말러는 쉽게 친해지지가 않아서.. 올해는 패스하구요.
대신 서울시향의 명협주곡 시리즈랑 마스터피스 시리즈... 그거 모두 예약했습니다.

오늘 기분도 울적하기도 해서, 괜찮고 저렴한 공연 없나 찾아다니다가
오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진행하는 서울필하모닉 공연 질렀습니다.

합창석이네요...

오케스트라 음악를 정말 좋아하긴 하는데.. 저도 정말 막귀라.... ^^;;;
올해는 그냥 열심히 많이 듣자 주의로 나가고 있습니다.

좋은 공연 있으면 추천해주시고, 저도 데리고 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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