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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1/26 09:52:09
Name nickyo
Subject [일반] 1박 2일, 칭찬해 주고 싶어지는 그들.


참 오래도 해왔다.
매번 같은 형식이라고, 장소만 다를 뿐이라고 욕먹으면서
강호동의 목이 쉴 것 같은 난리 부르스를 들으면서
참 오래도 해왔다.


그럼에도 중장년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온 일요예능 1박 2일, 인터넷에서는 '무한도전'과의 경쟁이 치열하지만, 실제로 1박 2일은 가정에서 일요일 저녁, 가족끼리 별 껄끄러움 없이 웃을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포맷도 일본이나 미국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무작정 따다 쓰지도 않고, 어줍잖은 인터넷, 신세대 용어를 남발하지도 않는다. 오글거리지고 뻔하지만 그러한 보통의 예능을 열심히 한다. 성인 남자 여섯, 혹은 다섯이서 사람 웃겨보겠다고 사람맛 나게 뛰어다닌다.


사실 조금 질리는 감이 있었다. 매번 여행지만 다르고, 게임의 구조는 비슷한 그들. 그래서 한동안 챙겨보지를 않았다. 그런데, 그들의 이번 외국인 근로자 특집이라는 이름을 보고 간만에 다시 1박 2일을 찾아보게 되었다. 노동시장에서 가장 소외받는 그들, 한국 사회의 가장 아래에 위치하면서도 그 아래에서조차 빈번히 차별받는 중동, 동남아 지역의 노동자 분들과 함께하는 1박 2일이라니, 생각만 해도 정말 뻔했지만, 참 기특하다고 느꼈다.



1박 2일은 사람들에게 많은 추억을 남기는 프로그램이다. 때로는 그 지역에 종사하는 상인들에게, 시민들에게, 함께 참여한 학생들, 친구들, 어르신들, 외국인들, 그리고 이번 외국인 근로자 분들까지. 그것으로 웃음을 팔았으니 당연히 그정도는 해 줘야지! 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고, 뻔한 억지감동이라고 말 할 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그 외국인 노동자들의 눈물은 진짜였다.



아직은 어눌한 한국말로, 그들은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들의 가족이 담긴 영상편지를 받은 그 날 저녁, 짧게는 반년 길게는 수년간 못 만난 고향의 가족들과 부둥켜 안을 수 있게 만들어 준 1박 2일의 제작진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감사함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가족도, 그들도 서로를 끌어안은 채 울고 웃으며 함께했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가치있는 일이다. 나는 1박 2일이 뻔해도 좋다. 이대로 쭉 장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기특한 일도 많이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생산직, 제조업,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 지옥과도 같은 한국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라도 힘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참가한 그들만 위로와 구원을 받은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을 볼 수 있었던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들도 그렇게 마음의 위안을 받고, 가족에게 전화 한 통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겨우 사흘밖에 만나지 못해서 어떤 사람들은 괜히 바람만 넣은 것이다, 이별할 때는 더 힘들지 않느냐 라고도 할 지 모르지만 나는 그들이 그 한번의 만남으로 이 겨울을 힘내서 이겨냈으리라 확신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노동시장에 대해 우리는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 끝까지 외치고, 움직여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아픔은 '남'의 아픔이 아니다. 우리 또한 북미, 일본, 중동, 유럽, 호주등에 저렇게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설움을 겪으며 일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에게 한국이 희망과 꿈의 땅이었듯이, 우리 또한 여느 다른 나라에서 그렇게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국내에서도, 부당하고 힘든 노동속에서 그 노동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수많은 약자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렇기에 외국인 근로자와, 비정규직과, 생산직, 제조업 같은 힘들고 고됨에도 불구하고 그 노동을 존중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중받을 그 날까지 사회 전체에 대해 개선의 목소리를 외쳐야만 한다. 1박 2일의 저런 여행이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박 2일은 우리에게 잊고 지낸 소중한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해 주었다. 공통된 인간에 대한 '사랑'. 그래서 난 그들을 칭찬해주고 싶고,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1박 2일을 통해 조금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시선을 바꿀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기대도 든다. 세상은 그렇게 두 방향에서 바뀌어야한다. 그들의 감정을 어루만져가면서도, 사회 구조적 억압에 대해 시스템을 바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면에서 1박 2일은 내게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었다. 앞으로도 자주 이런 기특한 일을 해 줬으면 좋겠다.  아직도 세상에 소외되고 아픈 이들은 너무 많다. 국민 예능으로 꼽히는 1박 2일이, 다큐가 되도 좋으니 전국을 달리는 희망 전도사가 되어 주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인간미가, 참 멋졌다.




한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내 인생도 무의미하진 않으리.
한 목숨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면,
한 고통을 잠재울 수 있다면,
어리고 약한 티티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로 돌려보낼 수 있다면,
내 인생도 그리 무의미하진 않으리.


-에밀리 디킨슨 가의 생쥐-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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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동김씨
11/01/26 10:23
수정 아이콘
보통의 예능을 열심히 한다. 이말 좋네요 [m]
루크레티아
11/01/26 10:36
수정 아이콘
예능에 감동이 들어가면 다큐가 된다고 해서 싫어하시는 분들이 상당하신 것 같은데, 저는 감동도 예능의 필수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감동을 받으면 울게 되지만, 그 울음이 그친 후에는 반드시 웃게 되니까요. 웃음을 주는 예능에 있어서 웃음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는 감동 또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날따라
11/01/26 11:24
수정 아이콘
정형화된 틀-덕분에 보기 편하고-에서 최고예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는 좋은 프로로 쭉~ 갔으면 좋겠네요.
나야돌돌이
11/01/26 11:29
수정 아이콘
전 이제 일박없으면 안됩니다. 일주일을 버티는 힘이 되어버렸죠,
사실은 우리 승기때문에 정을 붙인건데 이제는 일박한테도 정이 들어서...^^;;;;
11/01/26 12:07
수정 아이콘
'보통의 예능을 열심히 한다' 이 표현이 정말 딱이네요. 일박은 미친듯이 웃기거나 기발한 아이디어는 없지만 보기에 편하고 멤버들과 같이 여행하는 듯한 친근한 느낌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이지 않아 가족들이 모여 보기에도 좋고요. 평소 티비를 그렇게 즐겨보지 않는 어머니께서 일박이일은 본방 재방을 모두 보고 케이블에서 하면 또 봅니다. 어머니께서 좋아하고 웃으시니 저에겐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프로그램이에요. 만약 일요일 저녁에 1박2일이 없다면 정말 허전할 것 같네요. 오래도록 장수하는 프로가 되길 바랍니다.
태바리
11/01/26 14:35
수정 아이콘
편안하면서도 웃음과 때로는 감동을 주는 프로그렘이라서 좋아합니다.
또, 가족들과 놀러갈려고 계획할때 1박2일이 갔던 곳을 골라서 가는 재미도 있더군요.
일반인들이 잘 몰랐던 여행지를 소개시켜 주면서 웃겨주기도 하는 저에겐 주말엔 빼먹으면 안되는 방송입니다.
코뿔소러쉬
11/01/26 14:59
수정 아이콘
저 시는 만화 '바텐더'에서도 나왔던 내용이네요...
그런데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맞는데 '가의 생쥐'는 뭔지 모르겠네요. 좀 알려주세요~
엘푸아빠
11/01/26 16:16
수정 아이콘
예전 복불복 할때 정말 싫어했는데 ㅠㅠ; 그래도 편하게 보기엔 좋았죠.
낭만토스
11/01/26 17:30
수정 아이콘
무한도전은 화려한 양식을 먹는 듯한 기분
1박 2일은 어머니가 해주시는 집밥 먹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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