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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10/21 21:16:35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첫 만남은 동아리였습니다. 거의 다 죽어버릴 동아리였고, 포기하다시피 했었는데 참 희한한 일이 일어났었죠. 새내기들이 풍물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뭐 기억 나는 게 거의 없는 가운데서도 어떻게 어떻게 가르쳐주면서 갔었죠. 09년의 일이었습니다.

하나는 이제 막 제대한, 여자에게 말도 잘 못 하는 예비역, 하나는 재수생 새내기. 역시 남자에게 말을 잘 못 하는 애였습니다. 다른 애들이랑 친해지면서 밥 먹고 술 먹고 노래방 가고 할 때도 걔랑은 말을 제대로 붙이지도 못 했죠. 제가 말 걸면 화들짝 놀라면서 '네? 네?' 했거든요.
호감은 있었지만 이제 막 살아난 동아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거기다 동아리 내에서 남녀문제로 일이 두 번이나 벌어지면서 뭘 할 엄두도 내지 못 했습니다. 그저 매일 찡그린 얼굴 대신 웃는 모습을 언젠간 볼 수 있길 바라면서 시간을 보냈죠. 결국 그 애가 제가 웃으면서 말을 건 건 반 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리고 그게 다였죠. 뭐 그래도 참 좋더라구요.

2010년. 이제 동아리에서 멀어져야겠다고 생각하며 애들에게 좀 차가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을 때, 그 애가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남자친구가 생겼더라구요. 그 미소가 참 예뻤었죠.

연애 못 해서 그렇게 힘들어 할 바에야 제발 연애 한 번이라도 해 봐라며 빌어줬던 게 통했는지 몰라도 참 좋아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남자에 대한 경계도 많이 사라졌는지 제게도 말을 걸었고, 그 후에 밥도 먹고 같이 놀기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죠. 그 애를 그렇게 밝게 바꿔 준 그녀의 남친이 참 고마웠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그 고마움이 부러움이 되고 질투가 된 것은.
정확히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는지는 확신을 못 하겠습니다.
1년 동안 애쓰다가 결국 못 보게 된 그녀의 미소. 하지만 그 때 그녀는 이미 남친에게 푹 빠진 상태였죠. 시간이 지나니까 남친이랑 매일 다투고 시간이 더 가면서 이젠 헤어졋다는 말은 단지 싸웠다는 말을 의미할 정도가 됐을 때, 참 안타까웠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그 남자에게 너무 매달리게 되었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제가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
저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입장, 언제까지 그녀만 바라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되든 안 되든, 마음만은 전하고 싶었죠. 한 번은 꼭 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뭐 서툰 저답게 그걸 알아차렸는지 어느 순간부턴 피하기 시작하더라구요.

얼마 전, 마음을 먹고 마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타이밍만 노렸죠. 시험 전으로 할지 후로 할지. 그리고 몇 일 전, 실수로 마음이 나와 버렸습니다. 이번에는 확실히 헤어졌다는 그녀가 다시 남친에게 전화가 오고 있다며 고민할 때, 순간 정색을 해 버렸었죠.

여자와 뭔가를 해 보겠다, 그런 생각을 아예 포기했던 기간이 너무 길었나 봅니다. 시작하기 위해 그리도 준비했던 말이 떨어지지가 않더군요. 시간은 흐릅니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폰이 울리네요. 그녀의 전 남친에게서요.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녀는 전화를 받으며 집으로 들어갔고, 저도 씁쓸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차라리 그 때 받지 말라고 강하게 나갔어야 했나, 그렇게 충동적으로 하지 말고 제대로 계획을 짜서 했어야 했나, 많은 후회들이 몰려왔습니다. 어떤 식이든 이미 시작은 해 버렸죠.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나오든 간에요.

그녀를 좋아했든 안 했든, 그녀를 생각하며 떠오른 건 언제나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어색한 인사 외에는 제게 말을 거는 것 자체를 기대할 수 없었던 그녀가 먼저 인사하고 웃으면서 말을 걸게 된 게 반 년, 그녀와 약속을 해서 밥이라도 같이 먹을 수 있게 된 게 그 후로 또 반 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반 년 후, 심심하면 문자나 전화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곧 대학을 떠나게 됩니다.
이제 곧 그녀의 시험기간이 끝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마음을 전할 수나 있을지도요. 어떤 식으로든 마음을 전할 것 같긴 합니다. 더 이상은 '좋아했다'는 싫거든요. 차라리 거부당하더라도 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
술 김에 글 하나 날려 써 봅니다. 전 왜 이리도 용기가 없는지 모르겠네요.
술 깨면 부끄러워서 지울지도 모르는 글 하나 써 봅니다. ㅠ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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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소년
10/10/21 21:53
수정 아이콘
연애 경험 한 번 없는 제가 뭐라고 충고를 해드릴 수는 없고... 헌데 이미 글은 읽어버린 뒤네요.
연인들이 서로 궁합 맞춰보기 좋아하던데, 남녀 문제는 아무래도 본인들 스스로가 더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지속될지를 생각하지 말고 글쓴이 분께서 그 여성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또 그 여성분은 글쓴이 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서로의 마음을 맞춰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러려니
10/10/21 21:46
수정 아이콘
어떤 경험이건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겁니다.
얼마가 지나건 그 얼마 후에, 그 얼마 후가 새로운 삶이건 그 전의 연장선상이건 상관없이,
다시 꺼내볼 무언가가 있다는 것만큼 고마운 일도 없는 법이죠.
지금 그 고마운 것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시네요.
순간순간의 그 애틋한 기억. 감정. 잘 보관해 두시길.
지금만나러갑니다
10/10/21 21:47
수정 아이콘
소중한 경험이 될꺼에요
켈로그김
10/10/21 21:58
수정 아이콘
이미 호감은 어느정도 있었고,
이런저런 현실의 사소한 벽이 부담스러워 착한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그녀를 밝게 바꿔줄 그녀의 남자친구는 내가 되고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라면, 콜롬버스의 달걀처럼 그 남자친구가 한 일이 간단해보여 급 자신이 생겨났을지도 모르지요.

나 자신이 아니니 장담을 할 수도 없고, 모든 상황을 알 수도 없지만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니 한가지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다음번엔 나 스스로를 속이지 않을테야.'

어느쪽으로 속이고 있는지는 저도 모를 듯 합니다.
좋아했는데, 그렇지 않은 척을 한건지.. 아니라면 그렇게 좋아하는건 아닌데 그저 '이때다' 싶어서 자기최면을 거는건지...

비슷한 경험이 몇 번 있었는데,
결국은 그 순간이 지나가면 내 마음 나도 모르고, 아름답게 추억하려 미화시킨 거짓 기억만 남더군요.
어느 쪽으로든 자신을 속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무척 후회하게 됩니다.
fd테란
10/10/21 22:21
수정 아이콘
마음은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시네요.
사람은 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하네요.
지금 억지로 참고 흘러넘기셔도 나중에 병되실거에요.

용기를 내세요.
10/10/21 22:33
수정 아이콘
이글 편지로써서 보여주세요... 진심이담긴글이라 나중에 후회는 들지않을거같네요
Ms. Anscombe
10/10/21 22:28
수정 아이콘
대학 떠나고 취업 준비하다보면 지금같은 생각은 싹 달아날 듯..
눈시BB
10/10/21 22:34
수정 아이콘
감성소년 님// 그러려니 님// 지금만나러갑니다 님// 켈로그김 님// fd테란 님//
정말 감사합니다.ㅠㅠ 뻘글 위로해주셔서 감사해요. 해 보겠습니다.
루델 님// 네 ^^ 어떻게 할 지 잘 고민해 봐야겠네요.
Ms. Anscombe 님// 사실 그래서 아예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더 잡고 싶은 마음이 큰 거죠.
헤헤헤헤
10/10/21 22:44
수정 아이콘
용기를 내라는 뻔한말밖에는 해줄말이 없네요.

너무 갑자기 불러놓고 고백하는것보다는
요새 남자친구랑 사이가 안좋으면 잘 안해줄테니까 평소에 챙겨주는 모습보이고
(누군가 잘해주다가 그 사람이 안그러면 쓸쓸해지는데 그때 다른 사람이 잘해주면 좋죠)

남자친구문제때매 힘들어하는걸 술마시면서 위로해주면서

진심을 말하며 내가 더 잘해줄게 .
벤카슬러
10/10/22 12:36
수정 아이콘
풍물패 이야기가 있길래 봤는데...
연애 이야기로 돌변 ㅠ.ㅠ 모태솔로는 슬픕니다.
그래도 힘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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