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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25 16:12
이런말이 있죠
위는 실세를 중시하는 자들에게 정통으로 인정받았고 촉은 의와 충을 중시하는 유자들에게 정통으로 인정받았고 오는 모에요소로서 덕후들에게 정통으로 인정받았다.
10/07/25 16:15
궁금한게 있는데, 전국시대의 우위가 후대로도 이어졌습니까? 그러니까 그만큼의 관리가 충분히 되고 있었고, 다른 지역의 성장폭 이상의 성장으로 비교우위가 유지가 되었나요? 인구수나 동원 병력을 볼 때 촉지방의 경우 위나라의 1-2개 주 이상의 전력은 되지만 독립적으로 위나라와 동등하게 붙을 만큼의 생산력이 유지되지 않을 것 같아서요.
10/07/25 16:19
손제리는 까야 제맛~
파촉지역의 풍족함은 익히 알려져있지요. 문제는 진출로입니다. 손제리의 배신으로 형주를 잃은 시점에서 유비세력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유방이 파촉지역의 풍족함을 바탕으로 물량으로 승리를 할 수 있었던 몇가지 이유는 뛰어난 군사능력을 가진 한신, 내정의 일인자 소하, 뛰어난 두뇌의 장량 등의 활약도 뽑을 수 있지만 당시 시대적으로 진나라가 분열이 되어서 다시 전국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그 물량을 활용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유비가 파촉을 얻은 시점에는.. 이미 하북, 중원, 옹주는 조조가, 강남과 형주 일부는 손제리가 틀어막고 있던 시점이지요. 파촉의 물량을 폭발시킬 2곳의 진출로는 형주, 옹주 입니다. 당시 파촉을 얻은후에 유비가 손제리에게 할당한 형주의 세력을 잘 보면 정말 강릉, 무릉 제외하고 전부 내주죠. 유비는 최소한의 중원을 향한 진출로만 제외하고 모두 내준 셈입니다. 하지만 관우가 조인을 압박하던 시점에 손제리+여몽이 배반해서 모든 형주의 거점을 잃고 만것이죠.
10/07/25 16:24
익주가 아무리 부유해봤자 강동을제외 그외 부유한 다른 지역 다 선점하고 정비한 위나라를 이기긴 힘들었죠.
전국시대의 진이야 중원이 여섯국으로 분열되어있었으니까요(초를 제외하면 5국) 그 여섯국중 초를 제외한 5국이 하나의 나라로 강력한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아무리 진이라고 해도 천하통일을 하기 힘들었을겁니다
10/07/25 16:33
손제리의 배반이 많이 까이는 이유들 중 하나가 타이밍이 아주 거지같았기 때문입니다 -_-
당시 관우가 우금의 군대도 격파하고 번성을 공략하던 중에 있으며, 황하 이북으로 천도까지 고민할만큼 조조를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유비는 마초를 내세워 장안을 목표로 한 서량진출의 준비가 거의 막바지에 이른 단계였기 때문에 유비에게 있어 손권의 배반은 정말 뼈아픈 사건이었죠. 형주를 빼앗긴 이후에 이미 국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흐지부지 시간을 보내다가 이릉 대전에서 육손한테 관광당할 때까지가 촉나라의 국력이 추락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siriuslee님 말씀처럼 형주의 중요성은 물론 인구도 그랬겠지만 해상교역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재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옹주와 양주 또한 서방과의 교역을 위한 교통로였구요. 익주 자체로는 남만과의 교역만이 이루어질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제갈량의 북벌이 엄청난 이펙트를 가져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남만 평정 이후 익주와 남만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만으로 그만큼의 성과를 거둔 것도 전 대단한 업적이라고 느낍니다. 관우의 번성 점령+마초의 서량공략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면 양주, 옹주, 익주, 형주를 기반으로 둔 촉나라의 국력에 큰 변화가 있었겠지만... 물론 옹주, 양주 지역이 허술하다고 말씀드릴순 없지만 상대가 마초라는 사실은 분명 판세를 뒤바꿀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래서 손제리는 까야 제맛...
10/07/25 18:02
결론은... 유비가 촉을 얻은것은 말그대로 호랑이가 날개를 얻은 것이었군요.
이 상황을 생각한다면 유비라는 인물이 삼국지의 주인공으로 가장 잘 어울릴 수 밖에 없겠네요. 무슨 인생이 엔간히 다이나믹해야지...
10/07/25 19:36
관우,장비,방통이 형주에서 위의 한 축을 견제하고
마초,위연,황충,법정이 옹,양주쪽으로 진격하고 유비,제갈량,조운이 익주에서 양측에 호응을 했었더라면...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곤 하죠.
10/07/25 20:04
파촉은 방대한 물자를 생산하는 배후지로는 적합하지만 지형탓에 거길 근거지로 치고 나가는 데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보급문제가 항상 걸리죠. 전진기지가 필요합니다. 그 전진기지가 된 게 역사적으로 관중이지요.
파촉+관중(여기에 +서북방면)까지 얻는다면 그때부터는 확실히 차원이 다른 힘을 과시하는 게 맞습니다. 나중 오호십륙국 시기나 한참 나중의 수당교채기에도 확인되는 것이지만, 강남지역이 제대로 개발되기 이전엔 중국 분할의 세력균형이 이루어진 형태를 보면 보통 파촉+관중/하북/강남 으로 갈라집니다. 전국시대때도 그러했고, 한진교체기에도 그렇고, 오호십륙국 시기에도 그러하며, 수당교체기까지 이러한 세력균형이 형성되죠. 중원 역시 인구 많고 생산력 좋지만, 아무래도 한가운데인데다 지형적 방어선 꾸리기가 난감한 지역이라서 세력기반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중원을 먼저 먹고 그다음 다른 지역으로 뻗어나가 성공한 몇 안되는 사례가 조조고, 그 조조도 원소에게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렸다가 간신히 뒤집었으며 나중엔 하북을 기반으로 잡았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크지요. 만약 북벌에 성공하여 옹량주를 경영하고, 기회를 보아 장안이 위치한 관중까지 장악한다면 그때부터는 촉한 주도의 중국통일이 가능해집니다. 관중-관서-파촉의 촉한+강남의 동오 라는 세력조합이 하북+중원을 확보한 조위와 거의 대등한 힘을 가지게 되며, 중원의 지형적 특성을 생각하면 삐끗 하는 순간 전 지역을 상실할 가능성까지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그렇게 북벌을 한 것입니다. 결국 실패했지만, 성공의 가능성이 낮은 편도 아니었고.
10/07/25 20:09
형익 동시진격도 결국 목표는 관중, 관서 장악이었습니다. 형북지역이 지리적으로 중원에 극히 가까운 지역이여서 이지역을 장악하면 연주, 예주, 사예지역이 모두 사정권에 들어오지요. 조조가 중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관중, 형북, 회남지역을 제압해 중원을 지키는 방어벽으로 삼았기 때문인데, 그중 하나가 무너지는 셈이니까요. 당연히 방어전력을 확보해야 하고, 그렇게 해서 관중, 관서가 약해지면(관중도 방어지역의 하나 아니냐... 고 할지 모르나, 세 지역이 모두 유지될때에 비로서 방어선으로써의 의미를 가진다 할 수 있으니.) 파촉에서 출발한 본대가 관중을 장악하고 대업을 실현할 수 있다, 는 것이 융중대전략의 요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10/07/25 21:14
사실 형주를 쥐고 있었더라도... 관우와 그를 위시한 여러 인재들이 죽으면서 한계에 다달았다고 생각합니다.
파촉지방이 생상량이 우월하더라도 문화의 중심지가 아니기에 중원에 비해 인재풀이 열악하고, 유관장 사후 제갈량이 그 많은 일을 전담하면서 명을 단축시킨것도 인재가 부족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촉을 점령했지만 거기에서 배출한 인재가 유비시절에 중용된적도 없고, 중용된 사람들은 대부분 중원출신.... 사실 형주없이도 성공할뻔한 첫번째 북벌도 인사로 인한 문제였던걸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죠.(법정과 장비의 부재가 가장 아쉬웠던 순간...) 조조는 수많은 모사진과 장수진에 순욱이라는 최고의 후방책임자가 있었기에 여러번의 멸망직전에서 부활하여 중원과 하북을 얻었던걸 생각하면 더욱 인재의 중요성이 확실해지죠. 촉의 운명은 서서 방통 법정 유관장을 잃으면서 이미 그 끝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10/07/25 22:07
아무리 익주지역의 물량이 대단하다고 하나 하북과 중원의 물량을 익주 하나만으로 감당할 수는 없지요.
오히려 당시 최고의 물량지역은 익주보다 하북이었습니다. 중원을 완벽히 장악한 조조가 원소의 하북 물량에 상대가 안 될정도로 압도를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시황이나 한고조가 익주 관중을 기반으로 천하를 통일했다고 하나 위나라처럼 안정적으로 하북과 중원을 다 장악한 국가를 상대한 적이 없으니 직접적인 비교가 힘들겠지요. 또 관중을 장악했을 때 서역과의 교역 루트가 생긴다고 하나 그당시 교역이라는 게 국가의 경제 발전을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조금 미지수입니다. 분명 익주라는 지방의 힘을 연의에서는 조금 간과한 것 역시 사실이나 손권 때 부터 강동은 확실히 발전하고 있었고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지역을 다스렸다는 강점 역시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오나라의 문제점은 비어버린 형남이었지요. 강동 역시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인데, 유비 세력 아래서 안정되기도 전에 갑자기 분할이 되어버리고 다시 오나라에 의해 점령당합니다. 그렇게 끝나나 했더니 이릉전으로 인해 다시 피폐해지고 수많은 반란과 인구부족 속에 오나라의 국력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는 것일 겁니다.
10/07/25 23:20
관중과 형주 이 둘을 보면 저는 더 중요한 지역은 형주라고 봅니다. 그래서 사실 위의 입장에서는 제갈건담 시절보다 더 무서웠던것이 바로 관우의 마지막 전쟁이었지요. 아니, 애초에 제갈량의 삼국분립 구상 자체가 형주가 본진이고 촉이 생산기지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노숙의 삼국분립 구상도 비슷한(물론 오가 형주를 먹는) 형세였지요. 역시 배반의 손제리. 손제리는 까야 제맛.
그런데 문제는 제갈량 시대의 형주는 오나라의 땅이며 오와 연합을 할 수 밖에 없는 촉의 입장에서는 관중밖에 노릴 곳이 없게 되 버렸지요. 물론 관중 역시 본문에 언급한만큼 요충지중에 요충지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당시의 구도에서는 역시 차선일 수 밖에 없는 것이구요. 물론 저 역시 북벌의 의의는 한큐에 위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불균형한 세력비를 촉이 타개하기 위한 점진책이라는 관점에는 동의합니다.
10/07/26 09:55
아니 우리 제리는 왜 이리들 까시나요..후후.
이게 전부 촉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아닌가요? 오의 입장에서야 촉의 2중대를 해야 할 이유가 없죠. 형주라는 물량, 인재 풍부한 전략적 요충지를 먹을 수 있다면 먹는 게 손제리의 입장아닐까요? 촉의 천통을 위해 협조할 이유가 없죠. 멀리 내다보고 어쩌고 할 것도 없고, 손제리야 형주먹고 힘길러 자기가 북진하고 싶었겠죠. 능력이 되건 말건 그거야 후세의 판단이고, 앞마당 멀티는 일단 먹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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