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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06 09:44
촉빠 입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인물이 '유봉'입니다.
만약 유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조운이 유선을 구해내지 않았다면?? 촉의 역사는 조금이나마 달라졌을까요?? (저 같은 저질 촉빠입장에서는 이럴때 마다 유선을 구해낸 조운이 맘에 들지 않는다능......ㅠ.ㅠ)
10/02/06 09:57
정말 실제 역사속 인물들 중에 제갈량만큼 완벽한 인물이 있었나 싶습니다.
어렸을적 수박겉핥기 식으로 읽었던 삼국지지만, 요즘 제갈량에 관한 글이나 자료 하나하나를 보면 정말 퍼펙트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일것 같네요.
10/02/06 10:50
조조같은 인물이라는 말에 백번 공감하며 제갈량과 조조는 같은 법가적 사상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이죠. 촉/위를 다스리는 방법이 법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집권 과정이 판이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양상을 띄게되는 점이 특이하기도 합니다.
권력의 핵심에서 동탁을 비롯한 이각/곽사의 권력다툼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그 산증인인 조조는 이후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이들은 무자비하게 학살해버리고 그 불씨조차 남기지 않죠. 아끼는 인재라고해서 사정 봐주고 그런거 없이 그냥;;; 반면 제갈량은 촉에 입성 이후에는 유비 직속 신하/형주에서 들어온 세력/촉 토착세력 으로 나뉘어진 세력간의 다툼을 제어해야되는 입장이었고(유비에 힘을 빌어 제어할 수 있었지만 유비 사후에는 상당한 공을 들여야 했죠. 창업자인 조조와는 달리 제갈량은 어디까지나 신하였으니) 안그래도 좁아터진 인재풀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짜내기 위해 마지막까지 그 인재의 활용도를 높이려고 한 눈물나는 노력의 결과가 본문의 내용 아닌가 싶습니다. 위연이나 양의같은 인물이 조조밑에서 일했다면 낌새가 보였다면 그냥 보내버렸을텐데....위나라에는 워낙에 인재가 많았고 등용을 원하는 인재들이 몰려들기도 했었으니.
10/02/06 11:36
저런 인물을 가까이 할수 있던 사람이 부러울 정도로 제갈량이라는 사람은..
사실 북벌을 성공시키려면 1차가 가장 적기였다고 생각하는데, 읍참마속이라는 고사를 남기며 사라진 마속 -_-;; (최근 삼 11을 해서 말인데, 삼 11에서는 사기던데 말입니다 ;;)
10/02/06 11:39
티티님// 삼11에서
조조 + 순유 주유 + 제갈각도 꽤 사기적이긴 한데 제갈량 + 마속 앞에 다 버로우...... 하지만 조운 + 강유 이 조합은 못 깬다능....
10/02/06 11:41
제갈량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자신이 너무 완벽하기에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죠...
그래서 촉은 제갈량이 죽은 뒤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점차 망해가고요... 오히려 위나라의 '사'집안이 오히려 후계자를 완성하며 결국 나중에는 3국은 결국 '사'씨 집안사람이 통일하게 되지요-_-;;
10/02/06 12:02
사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와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비교해서 보고 있으면 나관중은 고도의 촉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군략과 불굴의 의지를 겸비한 희대의 걸물 유비는 갑자기 맘만 좋고 질질 짜는 무능력 큰형님이 되어버렸고 부동의 투탑 관우와 장비는 여포 '따위'에게 탑 자리를 내주고 갑자기 3:1 드립;; (하지만 그만큼 삼국지연의를 보고 있으면 나관중이 소설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썼다는 생각이 들죠)
10/02/06 12:08
인재 활용과는 상관 없지만, 공명의 북벌을 한니발에 비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장안으로 가는 길의 험준함과 알프스를 넘는 대장정, 보급의 부족함 속에 악전 고투 하지만, 결국 압도적인 국력차에 패배.
10/02/06 12:12
FreeSpirit님// 후계자를 양성하지 않았다는 표현보다 잘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요? 실질적으로 제갈량의 후계자는 마속이었는데 이 친구가 한번의 중요한 고비에서 미끄러져버리는 바람에 제갈량 사후 그 후계 구도가 강유-장완-비위로 분산되어 내려오게 됩니다. 장완-비위의 내정쪽 후계는 괜찮았지만 질병과 곽순의 암살로 활약이 멈춰졌다는 점, 군사쪽 후계인 강유는 그 청빈함과 충성스러움, 근면함에 비해 군사적 재능의 미달로 무리한 북벌을 자주 감행했다는 점이 안타깝다면 안타깝지요. 분명히 제갈량의 후계 구도는 존재했고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10/02/06 12:40
일단 양의, 위연 둘다 성격이 너무 안좋았습니다. 조조 휘하에 있었다면 위충이나(믿고 있었는데 한번 도망친 적 있다고 원소가 내려오는데 하북에 던져놓고 퇴각.) 예형(성격 안좋다고 유표가 죽이게끔 형주로 보내버림) 신세를 면치 못했겠죠. 이들을 관리하느라 고생하는 제갈량의 모습이 눈에 훤합니다.
위연의 모반 건은, 거의 전적으로 위연의 잘못입니다. 위연의 잘못을 보면, 첫번째가 군령을 위반한 것입니다. 제갈량은 북벌군의 총사령관이자 승상으로서 당시 황제 유선을 제외한 최고 명령권자였습니다. 그런 제갈량이 임종즈음에 전군에 퇴각을 명했고 특히 위연에게는 후방을 끊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겼습니다.(후미의 중요성은 1차 북벌때 조운 별동대의 후미를 조운 자신이 맡았다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 명에 따랐음에도 유일하게 위연만은 그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는 곧 군령 위반입니다. 참수되어도 할 말이 없죠. 후미를 못믿을 사람에게 맡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둘째는 사심으로 북벌군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위연은 명령을 거부한 이유로 제갈량이 없어도 자신은 충분히 그를 갈음할 수 있고 더군다나 양의의 명령따윈 듣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위연이 제시한 두가지 이유는 전혀 촉군의 동의를 얻지 못합니다. 그 근본적 이유는 정식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적인 이유였기 때문입니다.(위연과 양의와의 불화) 또한 위연은 양의 등이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고 퇴각하자 먼저 북벌군의 퇴로를 선점하여 끊어 버리고 양의를 공격하는 등 명백한 내란 행위이며 반역행위를 저질러 버립니다. 양의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명령받은 대로 행동했는에 이를 위연이 저지하고 공격까지 받았으니 반역이라 표를 올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인 것입니다. 셋째는 거짓된 표를 올려 조정을 근심하게 한 점입니다. 앞서 제시한 두가지 이유에 추가로, 위연은 양의가 반역을 꾀하였다는 거짓된 표를 올려 조정을 근심케 하고 잘못을 호도하였습니다. 하나하나가 참수되도 이상하지 않은 잘못을 셋이나 저질러 버렸죠. 위연의 잘못은 말단 병사들까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왕평이 위연과 맞섰을때 위연을 질책하자 위연의 군사들은 자신들의 사령관에게 잘못이 있음을 알고 모두 흩어져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위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로 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그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비록 진수는 본래 위연의 뜻은 나라를 배반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고 변호해 주고 있습니다만 그 행위만 두고 볼때 위연의 잘못은 변명이 불가능하다고 밖에 볼수가 없습니다.
10/02/06 12:46
또한 이는 양의의 사건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양의가 결정적으로 몰락하게 된 계기는 장완이 제갈량의 뒤를 이으면서 부터였습니다. 스스로를 장완보다 위라 생각했던 양의는(북벌 이전까지 장완은 언제나 양의보다 아래에 있었습니다.) 결코 해서는 안될 말인 마지막 북벌때 위로 투항했더라면 이라는 말을 꺼내 버린 거죠. 국가반역죄입니다. 특히나 촉한은 조위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국가이념을 지니고 있죠. 잘못된 발언으로 자신의 지위를 상실한 케이스이며, 이런 일은 그리 적은 편이 아닙니다. 아무튼 이일로 인해 양의는 면직되었으며 유배되었는데 유배지에서도 비방을 끊지 않았으므로 체포명령이 떨어졌고 이를 비관한 양의는 자살을 하고 맙니다. 결국 자멸해 버린 거죠.
10/02/06 12:52
"둔전까지 행하여 정면대결의 의지를 확고히 보여줌.
그러나 제갈량의 수명이 여기서 다하며 결국 북벌이 종료." 제갈량의 둔전은 마치 첼시의 자본에 대항하는 벵거의 아카데미+영계 정책을 보는것 같네요 크크 하지만 벵거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결국 종료..는 아니겠죠 ㅜㅜ
10/02/06 13:05
유봉의 일도 비슷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삼국지 정사 구절 해석부터 봐야겠죠. 문제가 되는 구절은 諸葛亮慮封剛猛 입니다. 여기에서 剛 은 '강직하다' 라는 뜻도 있지만 '굳세다' '억세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제갈량이 생각하기에 유봉이 강직하고 용맹했으므로 죽였다' 라고 생각하여 유봉제거설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번역 자체도 틀렸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강직하고 용맹한 게 아니라 억세고 사나운 것이였다면, 나중에 내란을 일으킬 위험인물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지요. 또한 촉서 유봉전을 보면 관우는 번성ㆍ양양을 포위한 이후부터 유봉과 맹달을 여러 차례 불러 병사를 일으켜 자신을 돕도록 했다. 유봉과 맹달은 산속의 군이 막 종속되기 시작하여 동요시킬수 없다고 말하고 관우의 명령을 수락하지 안았다. 결국 관우는 패배했고, 유비는 이들을 원망했다. 또 유봉과 맹달은 다투며 화합하지 못했고, 유봉이 맹달의 군악대를 빼앗았다. 맹달은 죄를 지은 것을 두려워하고, 또 유봉의 행위에 대해 분노하여 유비에게 표를 올려 이별을 고하고 부하들을 인솔해 위나라로 투항했다. 위문제 조비는 맹달의 자태와 재능을 칭찬하며 산기상시ㆍ서성 세 군을 합쳐 신성군이라 하고, 맹달에게 신성태수를 맡겼다. 이렇게 되어 있지요. 상용은 형주와 파촉의 경계선상에 있는 구역이며, 관우의 북벌을 엄호해야 하는 게 마땅한 임무라 하겠습니다. 그런 중대차한 임무를 저버리고, 여기에 엄연한 동료인 맹달의 군악대를 빼앗아 적국으로 투항하게 만들어 버린 건 작지 않은 죄입니다. 상당히 큰 죄를 지은 데다가(판결에 따라서는 처형 가능) 성격까지 억세고 사나워 나중에 내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면(원담의 경우 거의 내친 자식 취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원소 사후 상당한 지지를 얻습니다. 유봉도 양자긴 하나 마찬가지로 장자죠.) 결국 죽을 수밖엔 없지요.
10/02/06 13:19
팽양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강력한 군벌 세력인 마초를 상대로 내란 사주. 3족이 처형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촉한 역사상 기록에 남은 3족 처형은 위연 외엔 없지요.)
그리고 제갈량의 후계자는 장완이며, 그 다음은 비의입니다. 특히 장완의 경우 유비에게 죽을뻔한 일을(연의에서의 방통 일화와 비슷한 일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갈량이 살려준바 있으며, 관우 북벌-이릉 대전의 과정에서 관직에서 물러난 일이 있었는데(친척이 형주에 있다가 오나라로 붙어버렸습니다.) 이걸 다시 기용한 것도 제갈량입니다. 제갈량이 장완에게 보낸 서신도 상당히 많지요. 장완을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다 할 수 있습니다.(덤으로 강유는 이때까지는 '유망한 인재' 이며, 출신(량주)차별 하지 말고 키우라는 서신을 제갈량이 장완에게 보낸 적도 있지요) 장완은 내정에 대한 권한 뿐만 아니라 군권까지 쥐고 있었으며, 상용 급습책이나 북벌 계획을 세우는 등 군사분야에서도 최고 통수권자로써 활동합니다. 그 다음대인 비의의 경우 유선이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다고 되어 있으며, 오히려 내정부분에 대한 권한이 군권보다 더 적지 않나 생각됩니다. 내정 권한은 아예 없다시피 하고 군권도 제대로 쥐지 못했던 강유는 더 말하기도 힘들죠.
10/02/06 16:02
유선이 직접 통치 이후에 비의는 대사령(사면령)조차도 맘대로 못할정도 였으니 유선의 권한이 막강했습니다
그나마 상서령의로서 유선에게 직언을 자주하고 황호도 함부로 설치지 못하게 했던 동윤도 246년에 죽고 그 뒤를 이은게 간신이자 강유와 사이가 나빴던 진지여서 촉의 상황은 망할 조짐이 보인다 였습니다. 강유는 비의 사망이후엔 정말 붕 떠버려서 사서상이면서도 제대로 지원 조차 못받고 혼자 고군분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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