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간 쉬었습니다. 안좋은 일들도 있고 몸상태는...... 신경 안쓰기로 했습니다. 신경 써보았자 몸상태가 좋아질 리가 만무하기에......
이번에는 초기 인천의 프로야구구단의 역사 - 정확히 표현하자면 삼미슈퍼스타즈와 청보핀토스 - 6년을 다룹니다.
인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야구를 들여온 곳이자 동대문운동장과 버금가는 역사의 야구장 도원구장이 존재하던 곳입니다. 부산과 함께 구도라는 명칭을 두고 경쟁할 수 있는 도시이며 박현식, 김진영, 김경기, 정민태, 김수경, 박진만등 한 시대를 주름잡은 선수들을 배출한 곳입니다.
하지만, 이 인천이라는곳의 프로야구는 순탄치 않았으니.......
초기 삼미슈퍼스타즈의 전설적인 꼴찌전설이 펼쳐졌으며 태평양돌핀스가 1989년에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단, 2번을 제외하면 언제나 꼴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전설적인 약팀. 그나마 태평양돌핀스가 1989년에 첫 포스트시즌 진출, 1994년에 첫 한국시리즈 진출을 일구어냈지만 태평양돌핀스도 제 8의 구단 쌍방울레이더스와 참혹한 "탈꼴찌 싸움"을 벌이며 밑바닥에서 헤매었습니다.
삼미슈퍼스타즈 - 청보핀토스 - 태평양돌핀스를 이어 4번째로 현대유니콘스가 자리를 잡았고 창단 첫 해에 정민태 - 위재영 - 정명원등을 내세운 마운드와 박재홍, 김경기, 이숭용, 박진만등의 타선을 앞세워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그 다음해에는 탈꼴찌 싸움으로 떨어졌고 1998년에 인천연고팀으로 첫 우승을 일구어내며 감동을 안겨주었으나 곧바로 1999년 시즌이 끝나고 연고지 이전을 선언. 처음으로 연고팀이 연고지를 버리는 비극을 맞이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2000년에 5번째로 SK와이번스가 들어섰으며 몇년간의 또다른 인내끝에 2007년, 연고팀으로 2번째로 우승을 이루어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에 연고지를 버리고 떠난 현대유니콘스가 기어이 해체되며 아직까지도 연고팀의 배신과 그로인한 아픔이 진행되고 있는 도시. 그 곳이 바로 인천입니다.
1982년 15승 65패, 1985년 3월 31일부터 4월 29일까지 지긋지긋하게 이어졌던 18연패, 그 18연패를 헤어나오자마자 곧바로 이어진 첫 프로야구 구단의 매각.
이제 초기 인천 프로야구 6년을 서술합니다.
절취선----------------------------------------------------------------------------------------------------------------------
프로야구 개막을 준비하고 있을때, 가장 골칫거리였던 인천, 경기, 강원권역 연고지팀. 원래는 현대에게 인천, 경기, 강원권역 연고지팀 창설을 권유했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를 위해 준비를 하던 현대그룹이 그 권유를 수락할만한 사정이 되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인천, 경기, 강원권역은 야구의 불모지라 불릴만큼 황량했습니다.
언제나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 최동원, 김용희등을 배출하며 한 시대를 보내던 부산, 경남권역, 경북고와 대구상고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야구의 황금기를 보내던 대구, 경북권역,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를 중심으로 비록 수는 적었지만 질을 따지자면 국가대표급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광주, 호남권역, 천안북일고라는 야구 명문고를 보유한 대전, 충청권역.
그에비해 인천, 경기, 강원권역을 대표하는 선수라면 대학시절 최동원과 18회 완투승부를 기록한 임호균, 김진우정도뿐이었고 그나마도 그 해에 서울에서 열리던 세계 프로야구 선수권대회에 차출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인천, 경기, 강원권역 연고지팀으로 삼미그룹이 뛰어들며 삼미슈퍼스타즈라는 이름으로 구단이 창설되었지만 변변한 선수 한명도 없던 상황. 일단, 가장 많은 26명의 선수들을 보유했지만 서울권역의 MBC청룡, 부산, 경남권역의 롯데자이언츠, 대구, 경북권역의 삼성라이온즈, 대전, 충청권역의 OB베어즈, 광주, 호남권역의 해태타이거즈에 비하면 정말로 초라한 라인업이었습니다.
"국가대표 OB" 삼성라이온즈나 "준국가대표" MBC청룡과의 비교는 생략하더라도 노상수, 천창호를 중심으로 하는 마운드에 국가대표 3루수 김용희가 당당히 버티는 롯데자이언츠, 양은 가장 적은 14명이라도 질을 보자면 "원자탄" 이상윤, 김용남등의 마운드, 국가대표 1번타자 김일권, "홈런왕" 김봉연, "좌효조 우종모"라 불리며 교타자로 이름을 날릴 김종모, 김준환등의 황금타선을 보유한 해태타이거즈, 이제 22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울 "불사조" 박철순, 1970년대의 홈런타자 김우열, 윤동균, "학다리" 신경식등이 존재하는 OB베어즈와는.......
그렇다고 해서 삼미의 선수들이 비교 불가일정도로 초라한 선수들은 아니었습니다.
1번타자 조흥운은 좋은 타격감과 빠른발을 곁들이며 상대 내야를 흔들어 놓았고 양승관, 금광옥등이 버티는 타선도 타 팀이 얕보다가는 뜨거운 맛을 볼 수 있었으며 김재현등의 마운드도 컨디션이 좋으면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양승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1980년대 인천 프로야구의 상징으로 외야수로 활약하며 신언호와 함께 강견의 외야수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특히, 프로야구 원년 도원구장에서 벌어졌던 해태와의 경기에서 해태의 도루왕 김일권이 때린 우익수 앞 타구를 주워들어 1루로 송구, 프로야구 사상 첫 "우익수 앞 땅볼" 이라는 진기록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기세를 잃으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던 삼미슈퍼스타즈. 그들의 성적은....... 이미 출발하기도 전에 결정된 것이 아니었을까요?
개막전에서 삼성라이온즈를 꺾으며 좋은 출발을 했으나 전기리그 40경기에서 10승 30패, 후기리그에서는 더욱 참혹한 5승 35패. 도합 15승 65패. 역대 최저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슈퍼스타 감사용" 이라는 영화를 통해 많이 알려진 투수 감사용은 13연패라는 참혹한 기록을 세웠고 - 1986년에 빙그레의 장명부가 15연패로 신기록(?)을 세웁니다. - 전무후무한 타 구단과의 상대전적에서의 전패. - vs OB : 16패 -
일단, 이들의 성적을 살펴보겠습니다.
타자
조흥운 : 79경기 출장, 타율 0.284, 327타석 299타수, 85안타, 4홈런, 43득점, 44도루
양승관 : 72경기 출장, 타율 0.269, 269타석 242타수, 65안타, 8홈런, 40타점
금광옥 : 77경기 출장, 타율 0.270, 306타석 263타수, 71안타, 9홈런, 37타점
김호인 : 64경기 출장, 타율 0.279, 237타석 215타수, 60안타, 6홈런, 24타점
김경남 : 77경기 출장, 타율 0.269, 314타석 297타수, 80안타, 3홈런, 27타점
투수
김재현 : 47등판, 20선발, 192.1이닝, ERA : 6.13, 6승(2선발승, 4구원승) 19패 1세이브, 62K
인호봉 : 38등판, 11선발, 1333이닝, ERA : 6.56, 5승(4선발승, 1구원승) 10패 2세이브, 41K
감사용 : 41등판, 16선발, 133.2이닝, ERA : 6.46, 1승(1구원승) 14패 1세이브, 23K
주요부문 순위를 알아보겠습니다.
타자
홈런 : 금광옥(14위), 양승관(16위)
타점 : 양승관(13위), 금광옥(15위)
타율 : 조흥운(16위)
도루 : 조흥운(2위)
득점 : 조흥운(17위)
투수
다승 : 김재현(17위)
탈삼진 : 김재현(13위)
평균 자책점 : X
세이브 : 인호봉(6위), 김재현(11위), 감사용(11위), 김동철(11위)
각 팀간 상대전적을 알아보겠습니다.
vs OB : 16패, vs 삼성 : 2승 14패, vs MBC : 2승 14패, vs 해태 : 5승 11패, vs 롯데 : 6승 10패
도합 15승 65패를 기록했습니다.
이제 팀 성적을 확인해보겠습니다.
득점 : 302(6위), 실점 : 574(1위), ERA : 6.23(6위), 타율 : 0.240(6위), 홈런 : 40개(6위), 도루 : 74개(6위)
일단, 다른 부문은 생략하고 ERA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자면 그 해 전체 평균 자책점이 3.88이었고 평균 자책부문 5위였던 롯데의 평균 자책점은 3.95였습니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모든 기록은 아이스탯(www.istat.co.kr)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