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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6/15 22:15:26
Name Alan_Baxter
Subject [일반] 1991년, 시민 폭행 전경을 조사한 한 검사의 이야기
3천 명의 범인들


강경대군의 장례식이 치러진 1991년 5월 20일, 그날 광주 시내에서는 강경대군의 사체가 망월동 묘지로 가기 전 노제를지내느라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5.18 기념일 직후였고, 광주 시민의 분노가 끓고 있던 마당에 공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강경대군의 시신이 광주로 내려온 것이다.

누가 모으지 않았는데도 군중들이 저절로 운집했다. 수많은 학생, 시민 등으로 이루어진 시위대와 이를 해산하려는 전경간에 극심한몸싸움이 일어났다. 그런데 강경대 군 사건 이후의 정국을 더욱 불안하게 했던 우연찮은 사고가 그 날 밤 발생했다.

그 날 밤늦게 광주 충장로 한국은행 옆 프로그래스 카페 앞의 길을 지나던 시민 권창수 씨가 전경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청년에의해 집단 구타를 당하여 뇌에 손상을 입는 중상으로 사경을 헤매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강경대 군 사건으로 그렇지 않아도가파르게 치닫던 광주의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맞은편 건물에서 상황을 지켜보았던 목격자에 의해 범인이 여러 명의 전경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뜩이나 전경들에게 구타당해 숨진강경대 군 사건으로 긴장을 더해 가던 정국은 노제 현장에서 또다시 전경들에 의해 무고한 시민이 구타당하여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발생했으니 가히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이튿날 출근하니 이 사건이 검찰청사는 물론, 전국적인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었고 언론에서는 계속 빅 뉴스로 취급되고 있었다.검찰 청사는 바쁘게 움직였다. 검사장은 검찰총장뿐 아니라 청와대 민정 수석으로부터 계속 사건의 진상을 묻는 전화를 받느라 바빴고강력부장은 경찰에 진상 보고를 독촉하고 있었다.

경찰의 보고는 오리무중이었다. 상부의 문의는 빗발 같았고, 언론의 보도는 온갖 추측으로 확대 증폭되어갔다. 더 이상 경찰의수사와 보고만 기다릴 수 없었다. 직접 사건을 밝히기로 하고 강력부에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막막하기만 했다.

한밤중에 희미한 가로등 밑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데다 시위대와 다른 방향으로 귀가하던 권창수를 전경들이 집단 구타하여 목격자도없었었다. 유일하게 이원철이 맞은편 건물에서 어렴풋이 보기는 했으나 전경들인 것 같다는 것 외에 사건을 밝힐 만한 단서는아무것도 없었다. 강경대 군 사건은 대낮에 일어났고 사진 채증도 되어 있어 사복 전경을 중심으로 범인을 압축할 수 있었지만 이번경우는 상황이 달랐다. 목격자의 진술도 전경인 것은 확실한 것 같지만 얼굴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가 생겼다. 이날 동원된 전경은 3천명 이상으로 모두 동일한 복장과 방석모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 바로 옆에서 보았다고할지라도 누군지 식별할 수 없을 지경인데, 이를 적발해 내야 하다니 범인은 이미 전경으로 밝혀졌으나 목격자도 없고 한밤중에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3천분의 몇이라는 확률적 계산으로 범인을 찾아내야 했다.

강력부장의 주장대로 강경대 군의 사건처럼 전남도경에서 범인을 자체 색출하여 검찰에 넘겨 줄 것을 그 쪽에 요구했다. 그러나 전남도경의 태도는 예상했던(?)대로였다.

'자체 조사해 보았으나 전경들의 소행이란 증거도 없고 범인도 없다' 하기야 호랑이도 제 새끼는 안 잡아먹는다고 도경찰청장으로서도 자기 휘하에 있는 아랫사람을 도와주고 싶을지언정 잡아넣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밤새워 과격 시위를 막느라2백여 명의 중상자를 내면서 고생을 해온 경찰로서는 가령 자신들 속에 범인이 있다고 해도 선뜻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며, 아직피해자가 목숨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부하를 색출해 내어 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런 입장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검사의 길

계속되는 청와대 민정수석과 검찰총장의 채근으로 문종수 검사장은 초조해 했다.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이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으므로 검사장은, '우리가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강력부의 주인 검사인 나는 검사장의 그런 걱정을 덜어 주려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염려 마십시오. 반드시 잡겠습니다"

단순한 강력 사건과는 달리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뇌관의 구실을 하고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검사장은 검찰 공안부를 수사 진행에서 제외시켰다. 그러나 나머지 광주지검 모든 검사는 이 사건의 수사를 보조해 주도록 결정을 내렸다.

일단 그날 경찰의 진압 작전 일지와 전경 배치도를 도경 상황실장으로부터 입수했다. 작전 일지와 전경 배치도를 정밀 분석한 결과그날 밤 사건이 발생할 무렵 범행 장소를 통과했던 부대는 기동 3중대임을 알아냈다. 이로써 전경 3천명 중에 기동 3중대대원들로 수사 대상을 압축했다.

조사는 재빨리 진행됐다. 수사에 있어 속도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날 동원된 전경 중 기동 3중대 대원은 1백80명이었다. 사안의 성격상 신속한 조사가 필요하므로 즉시 기동 3중대 1백80명을 검찰청사로 불렀다. 그리고 기동 3중대 간부들로부터 그날의 수사 배치도를 건네 받았고 곧 이어 진압조, 방패조,체포조의 역할별로 구분하여 진술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키지 않는 수사였다. 설사 범인이 밝혀진다 해도 조금도 즐거울 것 같지 않았다. 조사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이같은 사태를 발생시킨 원인 제공자들이 누구란 말인가. 그들은 머리카락 보일까 꼭꼭 숨어 있고 애매한 젊은이들만 방패막이가 되어희생물로 바쳐지는 것은 아닌가. 전쟁 상황도 아닌 평화시에 거리에서 같은 젊은이들이 적군과 아군으로 대치한 채 격렬한 쟁투를벌이도록 만든 장본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런 안타까운 회의 속에 조사를 해 나갔다.

더구나 일반 사건을 조사하는 것처럼 이들을 피의자로 거칠게 다룰 수도 없고 전쟁터의 아군처럼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없는, 가자니 태산이요 돌아서자니 숭산이라고 난처한 입장이었다.

모든 검사들에게 전경 다섯에서 열 명씩을 배당해 이들이 속한 그날의 임무, 행적 등을 자세하게 조사했다. 전경들은 검사들에게 격렬히 항의하기도 하고 울면서 하소연하기도 했다.
당연한 노릇이었다.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자고 전쟁이나 다름없는 시위 현장에 온갖 고생을 다하고 돌아왔는데 이제는 무자비한 범죄자로 몰아 괴롭히고 있으니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겠는가. 이들의 반발을 탓할 수만은 없었다.

조사 도중 2층 검사실로 올라갔다. 그때까지 퇴근하지 않고 사태의 추이를 살펴보던 검사장의 얼굴은 짙은 수심에 쌓여 있었다.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지 분간할 수 없는 혼탁한 세상에서 법의 진리를 밝히려는 노력이 얼마만큼 의미가 있는 것인지고심하는 표정도 역력하였다.

"검사장님, 관사로 돌아가셔서 휴식을 취하십시오. 가능한 한 빨리 사건을 해결하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모든 검사들이 밤새워 고생하지 않소. 어떻게 한 몸 편 하자고 책임자가 돼서 그럴 수 있겠소. 난 괜찮으니 수고 좀 해 주시오."

문 검사장은 집무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검사장의 청 내 대기는 당연한 일일지 모르나 검사로서는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문 검사장은 독특한 사람이었다. 검찰에는 훌륭한 선배들이 많아 온갖 부정적인 비판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법을 지키는 최후의보루로서 제 임무를 꿋꿋하게 수행하고 있다. 그런 선배들로부터 나는 많은 것을 배웠는데 문 검사장도 그런 선배들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종류의 저녁 회식이나 외부 기관과의 합동 회식 등 모임 자리에 참석하는 일이 거의 없다.

"사정 기관의 책임자는 뭇사람들과 자주 어울려 개인적 시간을 허비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순간 그들과의 관련성 때문에 검사로서 응당 해야 할 직무를 망각하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사정 기관의 책임자는 외로울 필요가 있다."

이것이 그 이유였다. 언젠가 문 검사장에게 왜 사우나탕에 가지 않는가 물어 본 일이 있다. 그때 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정 기관의 책임자 아닌가.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인 사우나탕에서 같이 벌거벗고 있다면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소. 지역의사정 책임자는 행정 책임자와는 달라야 하지 않겠나. 일반 사람들과 다른 면모도 있어야 되는 게 아니오."

검사의 길을 스스로 실천해 보인 사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엄격하고 분명한 분이 이 중대한 사태에 직면하여 그냥 들어갈 리 만무였다.


검사와 피의자의 심리전


자정이 지나도 사건의 윤곽은 좁혀지지 않았다. 새벽 2시가 되었다. 검사들이 조사해 온 전경에 대한 진술서를 검토해 보았다.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이러다간 도무지 수사의 진척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아 전경들이 소환돼 있는 3층 회의실로 직접 가보기로했다.

관련 신문 기사들을 모아 들고 3층 회의실로 향했다. 피로와 심리적 압박감으로 지쳐 있는 그들을 상대로 또 어떤 게임을벌여야할지 아득한 심정으로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전경들은 하나같이 원망에 찬 눈길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따가운 시선을감지하면서도 밀고 나가기로 마음먹고 사건의 중대성을 역설하며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너희들은 경찰이 아니고 의무경찰들이므로 대한민국의 떳떳한 군인들이다. 군인은 자신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는다.몇몇 대원의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실수로 전 대원들이 이런 고통을 감수해야 되는가. 스스로 나와서 떳떳하게 진상을 밝혀라. 새벽4시까지 기다리겠다. 내 방은 103호실이다. 언제든 기다리고 있겠다."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지 않는 군인다움에 대해 말했지만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국토 방위에 충실하고 국가를 안전하게 지킬 의무가있는 군인들이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시작된 이 끝없는 악순환 속에서, 한쪽에서는 젊은이들이 목숨을 내놓고 잃어버린 그 무엇을되찾으려 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죄없는 젊은이들이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해 수많은 부상자를 내며 고생을 하고 있는 마당에군인다움 운운하며 설득하고 있는 자신이 떳떳치 못하다는 자괴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103호실로 돌아와서 초조한 심정으로 그들을 기다렸다, 새벽 4시가 돼도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다. 여론이 집중되어 있는 사건이라 빨리 해결은 해야 하고 시간은 없고 초조감이 덜미를 잡았다. 비상 수단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에건 설득이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몇몇 대원들의 책임으로 모두를 처단하겠다는 위협을 해야 한다.'

나로서도 내키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정해 놓은 시한인 4시가 훨씬 지나 있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3층으로 올라갔다.

"이젠 도리가 없다. 너희들은 비겁한 군인들이다. 비겁한 자는 용서할 수 없다. 설사 이 가운데 억울한 사람이 있더라도 비겁한동료 때문에 억울한 처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라. 형법 제 263조에 의거해 너희들 전부를 상해죄의 동시범으로 구속하겠다."

전경들 사이에서는 긴장이 높아 가고 있었다. 자칫하면 억울하게 구치소로 갈 판인데 그들로서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너희들 때문에 세상이 뒤집힐 지경인데도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억울한 동료들을 같이 처벌받게 하는 비겁한 자들이 너희들중에 있고 너희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군대에는 단체 기합이라는 것이 있다. 법률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형법 제 263조의상해죄의 동시범 조항이다. 어느 그룹에서 피해자에게 집단적으로 구타해 상해를 가했는데 누가 가해했는지 분명치 않을 경우 그룹전체를 상해죄의 동시범으로 처벌할 수가 있다. 이 경우 자신이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면 스스로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무죄입증은 어렵다."

이렇게 엄포를 놓고 있는 내 마음도 개운치는 않았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시위대를 진압했고 그 과장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에대해 잠도 못 자고 조사 대상이 되어 전전긍긍해야 하는 젊은이들을 놓고 어떻게 이런 협박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다시 계속 말을이었다.

"여러분 중에는 경찰 대학을 나왔거나 법과 대학을 다닌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지금 말한 법 논리에 대해서 잘 알고있을 것이다. 청운의 뜻을 품고 앞날을 계획하고 있는 너희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일부 비겁한 몇몇 동료들로 인해 180명 전체가처벌을 받는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여러분 전부를 구속하겠다. 모두들 마음의 정리를 하고준비하라."

결연하게 선언을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103호실로 내려왔다. 이쯤되면 필경 재보자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전경 180명과심리전을 벌인 것인데 결국 내가 뜻한 대로 이루어졌다. 새벽 5시 무렵 대원 중 한 명이 내 방으로 몰래 내려왔다.

"정말 이런 말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동료들을 배반하는 건 아닌지 판단도 안 서고요, 죄짓는 것 같습니다. 저, 제가 보기엔 이경철 수경이 직접 관여한 것 같아요."

전경들은 시위 현장에 돌아오면 온 몸에 묻어 있는 최루 가스를 씻어내기 위하여 모두 샤워를 하는데 그 때 두 대원이 수근거리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들 대원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새끼 죽었을까? 야방 (야간순찰) 나갔을 땐 그보다 더 두들겨 팼는데도 아무런 사고 없었잖아. 어떻게 됐을까? 중대장이 빨리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그 새끼 죽였을지도 몰라."

동료에 대한 밀고로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대원을 달랬다. 진실 규명을 위한 최소한의 희생이라 생각하고 마음놓고 있으라 위로했지만 그 대원은 동료를 밀고했다는 자책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아침이 됐다. 이경철 수경만 불러냈다. 그를 당직실에 격리시켜 놓고 나머지 대원들은 일단 차량에 대기토록 지시했다. 범행을저지른 대원 중 한 명이 적발됐으므로 구타에 가담한 다른 전경들이 틀림없이 동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차량 안의 전경들을 한사람도 이탈자가 없이 대기토록 해 놓고 오후까지 사건을 마무리짓기로 했다.


우리 시대의 희생자들

수사는 검사와 피의자간의 끊임없는 심리전이자. 피의자는 과연 자신을 신문하는 검사가 범죄 사실 여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있는지 조사받는 내내 궁금히 여기면서 그물망을 피해 가려고 한다. 반면 검사는 피의자가 범행에 어느 정도 관여해 있는지 의문을던지면서 추궁해 나간다. 이때 검사가 사실을 잘 모르거나 잘못된 방향을 짚으면 피의자는 안도하면서 변명과 거짓으로 일관한다.

그러면 수사는 실패 할 수밖에 없다. 결국 검사는 피의자와 마주하기 전에 충분한 증거와 추궁 자료, 그리고 피의자의 행적에정통하지 못하면 쉽게 자백을 받아내지 못한다. 검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피의자는 허물어지게 된다.

격리시켜 놓은 이경철 수경을 강력부장과 전남도경 폭력계장이 설득하였다, 계속된 설득에도 이 수경은 범행을 부인했다. 사실을밝히지 못하면 공멸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강력부장과 폭력계장은 설득을 계속하여 일부 자백을 받을 수 있었다.

다시 저녁이 되자 나는 이 수경을 불러 함께 밥을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아픔을이야기하고 전경 생활의 고달픔을 위로했다. 길가로 몰려나와 시위를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같은 젊은이 입장에서 그것을 저지하는입장에 선 전경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온갖 고통을 한 몸에 지난 희생자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저절로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리고 밤 10시쯤 됐을까. 관련 사실 전체를 자백하기 시작했다.

"저는 현장에 있었으나 직접 구타하지는 않았습니다. 같이 구타한 동료들은 모두 일곱 명인데.........."

이 수경은 그 일곱 명의 폭행 가담 정도를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 수경의 진술에서 드러난 일곱 명을 모두 불러 설득하고자백을 받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범죄 사실은 말하지 않고 다른 공범들의 가담 사실만 자세하게 진술했다.

이튿날 이 수경을 비롯한 여덟명에 대한 피의자 신문 조서를 다시 받았다. 그들로부터 신문 조서를 받을때는 범죄 사실을 은폐하는부분에 대해 엄하게 꾸짖었다. 각자의 자백을 상호 대조해 보면 거짓말은 금방 밝혀진다. 이렇게 하여 여덟명에서 모두 자백을받았다. 구속은 가담 정도에 따라 다섯명으로 정하고 세명은 불구속하기로 하였다. 구속 영장을 작성하고 있는 동안 한 편에서는수사 발표를 해야할 만큼 해결이 다급했던 사건이었다.

오후에는 이례적으로 광주 재야 단체가 성명을 발표했다. 재야 단체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신속한 수사에 무한한 신뢰를보낸다고 했다. 광주 재야 단체와 검찰의 관계상 이 같은 이례적인 성명 발표는 전무후무한 일이 아니었던가 여겨진다.

이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공안 정국의 여파로 총리와 법무장관이 사임하고 세상은 다시 조용해졌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들도범인의 구속으로 처리되면 씻은 듯이 잊어버린다. 세상 인심이란 모두 그런 듯 싶다. 이 사건의 피의자들도 세상이 이미 그들에대해 까마득히 잊어버린 가운데 1심에서 모두 집행 유예를 선고 받았고 항소심에 가서는 전남 경찰청 이승재 수사과장의 노력으로공소장 변경이 되어 모두 벌금형으로 처리되어 마무리됐다. 그리고 빈사 상태이던 권창수는 의료진의 극진한 치료로 그 후 병상에서회복되어 새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를 구타했던 전경들은 불명예 제대를 했다.

억울하게 당한 권창수나 거리로 내몰려 꿈을 짓밟힌 채 젊음을 소모한 아까운 꿈나무들, 모두가 희생자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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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으셨습니다.  정말 이번 시민 폭행 사건과 맞물리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신 분이나 나오는 검사가 누군 줄 아시나요?

바로 한나라당에서 원내대표를 역임했던 국회의원 홍준표입니다. 정말 지금 이미지를 생각하면 상상이상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시민을 폭행하고 다니는 전경들과 요즘 세태에 대해서 홍준표가 어떻게 생각할지, 한나라당의 한 의원으로서가 아니라

한 개인으로 던지고 싶은 질문입니다...... 물론 제 생각에는 ‘폭력시위가 잘 못 되었다.’ 라고 할 것 같지만요...

정말 세월이라는 게 참.. 무서운가 봅니다.

참고로 홍준표의 자서전인 《홍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거요》 나온 본문 중 하나로...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공개되어 있고, 디시인사이드를 통해서도 하나의 에세이로 남겨져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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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m I?
09/06/15 22:23
수정 아이콘
시간이 참으로 무서운것이구나...하고 새삼 느낍니다.
새벽오빠
09/06/15 22:24
수정 아이콘
이야기가 다 끝난 줄 알고 방심하고 있었는데,

유주얼 서스팩트 이상의 반전...
리오넬메시
09/06/15 22:34
수정 아이콘
조모씨도 그렇고 홍준표씨도 그렇고 무엇이 인간을 그렇게 만든걸까요...
09/06/15 22:34
수정 아이콘
대단한 반전이군요.
09/06/15 22:35
수정 아이콘
설마설마 했는데... 예지력 폭발이군요 -_-;;;;

툭하면 빨간 넥타이를 메고 나와서, 좌익 용공세력 운운하는 그 말버릇은 도저히 못듣겠고, 그 표정은 정말로 못보겠습니다. 진짜로요.

(인간적으로는 진짜 괜찮아 보이는데......)


(선거 3일전에 우리쪽 사무실 앞에서 대놓고 '빨간 페인트칠'을 하는 거 보고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습니다. 색깔론을 하더라도 장소는 좀 가려가면서 해주지 -_-;;;)
창작과도전
09/06/15 22:42
수정 아이콘
홍준표 정말 검사시절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치판에 가면서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한나라당 안에서는 정말 그나마 나은 축에 드는 인물이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이사람은 말은 안통하지만 그래도 대화를 할려고는 합니다.
09/06/15 22:51
수정 아이콘
홍준표 대단한 사람이죠. 드라마 모래시계에 나오는 검사의 실제모델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현실은 식사드립.
사상의 지평선
09/06/15 23:01
수정 아이콘
홍준표...
한번은 기자가 물었죠 의원님은 왜 넥타이를 하지 않습니까
' 하도 사람들이 잡아 댕겨서요~~' 라고 말하는데 웃기기도 하고 안됐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이미 색에 물든지라.. 정 말 모르겠군요 사람일이란.
이적집단초전
09/06/15 23:48
수정 아이콘
홍준표 원내대표가 정치를 한 계기도 참 간단하지요. 모래시계 검사로서 깡패놈들을 잡아넣다보니 원한을 많이 샀습니다. 대한민국 깡패들이 감히 검사를 건드리지는 못했지만 홍검사의 그 꼿꼿한 성격은 결국 검찰조직에서 밀려나는 결과를 낳았지요. 그리고 변호사로 개업하자 과거의 깡패들이 그렇게 협박을 했답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권력을 찾아 정치가가 된 것이지요. 마침 받아주는 곳이 한나라여서 한나라당 정치인이 된겁니다.

횽준표 원내대표야 말로 한나라당의 악함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지요. 개개인의 도덕성과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정당과 스탠스입니다. 저는 진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보수보다 능력있거나 심지어 도덕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지요. 그럼에도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의 타이틀을 다는 것 만으로도 그들은 더 능력있고 도덕적으로 변합니다. 이것이 시스템의 위력입니다.

도루코 노조를 이끌며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했던 김문수 경기지사가 삼성가에서 승승장구하며 고위 임원을 지냈던 진대제 의원보다 더 우파적인 정책을 지향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의 위력입니다.
진리는망내
09/06/16 00:04
수정 아이콘
정말 반전이 엄청난데요..-_-;
적울린 네마리
09/06/16 00:37
수정 아이콘
얼마전 백지연씨 프로나와 소회를 털어놓은 것보고.....

홍준표 전 대표야 말로 여당의 대표적 위치이다 보니.. 그렇고...
한편으론 양 계파에 치우치지 않는 독불장군으로도 보이고 한편으론 어디가 나을까 발 담궈보는 기회주의자로도 보이고...

단 한가지 지금의 원내대표보다는 보다 노선이 확실하고 뒷통수치지 않는 사람이란건 확실한 듯 합니다.
09/06/16 00:39
수정 아이콘
진짜 대박 반전이네요;
칠상이
09/06/16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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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집단초전박살님//마침 받아주는 게 한나라당이어서 한나라당으로 간 게 아닙니다. 당시 15대 국회를 앞두고 젊은피 수혈이라는 게 양당의 과제였습니다. 그때 한나라당에선 홍준표, 남경필, 이윤성 등이 국회에 들어왔고(더 많은데 제가 민주당 출입이다보니...;;;) 당시 국민회의인가요? 에는 김근태 천정배 정동영 김영환 등이 국회에 들어오게 됩니다. 여튼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라..
국민회의 쪽에서도 홍준표에게 러브콜을 엄청 세게 보냈습니다. 당시 홍 검사의 이미지가 국민회의 쪽과 맞은 면도 있구요, 그래서 거의 넘어오려던 순간, 정확히는 기억안나지만 다음날 점심 때 만나서 자잘한 이야기들(지역구는 어디로 하고 등등)을 마무리하고 입당원서에 도장을 찍기로 한 전날, 당시 청와대에 있던 YS가 직접 홍준표에게 전화합니다. "검사가 한나라당에 와야지 어디 갈라그러노?"정도의 말이라고 들었습니다. 당시면 신한국당인가요? 여튼 그래서 저녁에 바로 청와대로 가서 YS와 독대한 뒤 입당원서에 도장을 찍습니다.
당시 홍준표 영입하려했던 민주당 원로와 홍준표 둘 모두에게 들은 이야기니 팩트에 가까우리라 봅니다.
이적집단초전
09/06/16 08:32
수정 아이콘
칠상이님// 그렇군요. 좋은 리플 감사합니다.
햄종어린이
09/06/1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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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라는 정당은 멀쩡한 인간도 쓰레기급으로 만드는데 순식간이군요..
09/06/1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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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이 시스템을 바꾸기보단 시스템이 사람을 바꾸는 건가요..
무섭네요..;
공업셔틀
09/06/16 10:27
수정 아이콘
이적집단초전박살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딴지일보 인터뷰에서 본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그 인터뷰 내용에 칠상이님이 말씀하신 내용도 아마 그대로 있었던것 같습니다.
사실 당시에 모래시계검사로 명성을 얻고 있던 터라 정치권에서 보기엔 드랩 1라운더 급 특급 유망주였죠.
그 인터뷰 내용을 보고 유시민의원이 홍준표의원을 한마디로 평가할때 "소시민"이라고 했던 기억도 있구요.

전 개인적으로 홍준표의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한나라당 평균이 홍준표만큼만 되도 지금처럼 엉망이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홍준표의원 개인적으로 매력이 있고 인성도 괜찮다고 봅니다. 다만 철학이 없을 뿐이지.
09/06/16 16:05
수정 아이콘
홍준표의원님 검사시절엔 정말 대단했습니다. 조폭 타진이나 슬롯머신 사건으로 조직에 등돌리면서까지 정의감이 넘쳤습니다. 더불어서 이회창대표도 판사시절 정말 존경받을 만한 판결도 많이 내었고 소수의견으로 인권보호나 여성노동자 정년판결(전화교환원)등 소신있는 결정도 많이 내렸습니다. 두분의 리즈 시절이죠.

얼마전에 표결문제로 원내대표에서 하차할 위기가 있었을때(지금은 임기가 끝나서 하차) 야당인 민주당이 말렸습니다. 그마나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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