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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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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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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난 한숨을 쉬었다.
“너 진짜 징글징글하다. 어떻게 나를 불러낼 생각을 다 했냐?”
녀석은 고개를 숙인 채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친구가 녀석을 가리켜 꼬마라고 했을 때 발끈한 적도 있었지만, 이런 일을 저지르는 걸 보니 정말이지 꼬마라고 부르는 게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았다. 난 몇 번째인지도 모를 한숨을 내쉬다 고개를 저었다.
“관두자. 지금 와서 내가 널 닦아세워 봤자 뭐하겠니.”
게다가 우리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래.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나 들어 보자. 왜 불렀어?”
녀석은 우물쭈물했다. 나는 윽박질렀다.
“야. 뜸들이지 마.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만날 쳐들어오던 그 용기는 어디 갔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꽤 오해를 살 만한 말이긴 했다. 그렇다고 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굳이 해명하는 것도 웃길 것 같아 나는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녀석은 한참을 꾸물거리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날......”
“그 날?”
“......선배 사고 난 날이요.”
“어. 그런데?”
“그 날 전화해서 물어볼 게 있다고 했잖아요.”
“그래. 그랬지. 그런데 그게 왜?”
“그 때....... 저한테 뭘 물어보려고 했어요?”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고함쳤다.
“야, 이 미친놈아! 겨우 그런 거 물어보려고 이 난리를 친 거야?”
“하지만.......”
“환장하겠네.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는 거 가지고 너 지금 목숨을 거는 거라고!”
“쓸 데 없지 않아요.”
“뭐?”
“나한테는 중요하다고요!”
나는 말을 잃고 말았다. 녀석이 내게 소리를 지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항상 나만 소리를 질러 왔구나. 나는 새삼스럽게, 그리고 너무 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다. 지나치게 늦었다.
“......별 거 아니었어.”
나는 대답했다.
“그냥 전에 네가 준 과자 이름이 궁금해서 전화한 것뿐이야.”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시선을 피했다. 어색한 침묵이 주변을 감돌았다. 그 침묵이 견딜 수 없게 무거워지자 나는 다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자. 궁금한 거 이제 다 풀렸지? 그럼 나 이제 간다?”
하지만 녀석이 나를 막았다.
“물어볼 것이 하나 더 있어요.”
“......뭔데?”
그 순간 나는 녀석이 무얼 묻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도.
“혹시 조금이라도......”
녀석은 잠깐 말을 멈추고 입술을 꾹 깨물더니 이내 다시 말했다.
“조금이라도 날 좋아한 적 없어요?”
“없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너 같은 어린 꼬마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녀석이 떠난 방은 휑뎅그렁했다. 나는 닫힌 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조금 전에 녀석이 열고 나간 문이었다. 이제 더 이상 저 녀석을 볼 일이 없겠지. 그 생각을 하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 그렇게 말했어요?”
질문한 것은 여자 쪽이었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그녀가 다시 물었다.
“진심이 아니었잖아요.”
그녀를 속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래야 저 녀석이 나를 잊을 테니까.”
“이해가 안 가요.”
나는 살짝 웃어 보이려 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내 나이가 되어 보면 너도 알 거야.”
“나 보기보다 나이 많거든요?”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아직 어리단 이야기지.”
여자애가 발끈하며 뭐라 말하려 했지만, 그 전에 남자가 손을 저어 막았다. 그리고는 내게 예의바른 태도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 뭐 고생이라고 해야 하나....... 이상한 경험이긴 하네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보다 아까 한 이야기, 정말이에요?”
“무슨 이야기 말씀이신가요?”
“저 녀석 수명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거요.”
“많이는 아닐 겁니다. 기껏해야 며칠 정도일까요.”
“......하지만 그 며칠이 정말 절실한 사람도 있어요.”
남자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한심하긴. 정말 화가 나네요. 그래도 이제 더 이상 이런 쓸 데 없는 짓을 하고 다니진 않겠지요?”
“아마도요. 그런데 혹시 결례가 안 된다면 하나만 말씀드려도 될까요?”
“뭔데요?”
“직업상 저는 이런 일을 자주 겪습니다.”
남자가 다소 젠체하는 듯, 그러나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대체로 솔직히 말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말 그대로입니다.”
눈앞에 서 있는 이 남자의 뺨을 한 대 후려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했기에 나는 날카롭게 말했다.
“저 꼬마애가 평생 죽은 사람을 생각하고 살도록 내버려두란 말인가요?”
그가 대답했다.
“꼬마라고 할 나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심약한 분도 아닌 것 같고요.”
제기랄. 나는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남자를 싫어했었다. 그래서 나는 내뱉듯 말했다.
“아마 아니겠죠.”
“예. 그렇다면 굳이 저 분에게 상처 입힐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나는 입을 앙다물었다. 여자애가 슬쩍 남자의 눈치를 보더니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저렇게 따지고 들 땐 진짜 얄밉죠?”
“왜 또 친한 척하고 그래.”
“에이. 어른답지 못하게 왜 그래요.”
한 방 먹었군. 나는 쓰게 웃었다.
“그래. 얄밉네. 그런데?”
“하지만 오빠가 한 말이라면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
나는 여자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담겨 있는 것은 확신이었다. 나는 갑자기 웃고 싶어졌다. 이 괴상한 한 쌍이 대체 무슨 관계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 둘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그 단단한 믿음 같은 것이 나는 진심으로 부러웠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남자를 슬쩍 쳐다본 후 여자애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너, 쟤 좋아하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여자애의 얼굴에 온갖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마지막에 남은 감정은 분명 부끄러움이었다고 나는 확신했다.
“무, 무,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이렇게까지 알아채기 쉬운 사람이 있다니, 솔직히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건 안타깝게도 내게는 없었던 미덕이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이미 너무 늦었다. 아마도.
하지만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자애에게 말했다.
“돌려보내 줘.”
여자애는 심통이 잔뜩 난 표정으로 뭔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이쪽을 살펴보고 있던 남자에게 손짓했다. 남자가 다가왔다.
“나 대신 그 녀석에게 전해줄래요? 얼굴 보고 말하려니 어색해서.”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습니다. 뭐라고 전해 드릴까요?”
새삼스럽게 부끄러움이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나는 말했다.
“야, 너 나랑 사귈래?”
여자애가 지나칠 정도로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이년아. 네 오빠인지 뭔가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다행히 남자는 제대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상황을 이해했는지 여자애가 뭐라 투덜거리면서 다시 복잡한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 가야 할 때였다.
“그리고 이 말도 꼭 전해주세요. 또다시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이상한 짓을 했다가는 다시는 여자도 못 사귀고 평생 동정으로 죽을 거라고.”
“.......그것도 그대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신세 많이 졌네요. 저어........”
“이해원입니다. 저쪽은 석바리.”
“고마워요, 해원 씨. 그리고 바리야.”
“왜요?”
여자애는 여전히 불퉁거리는 투였다.
“아까 여기 해원 씨가 그러는데, 솔직한 게 제일이래.”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여자애에게 한 마디씩 쏘아대듯 말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시 녀석이 있는 세계에서 떠나기 직전, 나는 그녀에게 한 마디를 더 남겼다.
“잘 해 봐.”
나처럼 한심하게 굴지 말고 말이지.
지금까지
[奇談 - 열번째 기이한 이야기 (3)] 이었습니다.
제목은 글 완결짓고 나서 한꺼번에 수정하겠습니다. :)